‘은둔의 기업’, ‘베일에 가려진 기업.’
이는 과거 태광그룹의 이미지였다. 이호진 회장도 외부와 소통이 많지 않았고, 내부 임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최근 태광그룹의 금융계열사인 흥국금융가족의 풍경은 ‘상전벽해’라고 할 만큼 많이 변했다. 과거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문화가 흐르는 기업’, ‘예술과 비즈니스를 조합한 기업’ 등을 콘셉트로 외부와의 소통에 적극 나서고 있다.

흥국금융가족은 지난해 CI를 선포한 후 ‘흥美Zine’을 발행하고, ‘해머링맨 흥국광장’을 조성하는 등 외부로의 문을 활짝 열었다. 최근에는 현대미술 특별전을 연이어 개최하면서 예술을 통해 고객과의 접점을 넓히고 있다.

보험은 고객의 사랑을 먹고사는 산업이기에 고객의 신뢰와 믿음을 얻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흥국금융가족도 고객에게 달라졌다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으로 본사부터 바꿔보자고 생각했다. 사옥 안에 영국·일본 문화원이 입주해 있어 자연스럽게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할 기회를 만들었다.

아트와 비즈니스의 만남
2009년은 흥국금융가족에게 있어 아트와 비즈니스의 교집합을 만든 해였다. 본사 로비만이 아닌 로비 뒷부분까지 바꿔 새로운 플래그십 공간을 선보였다.

그동안 해머링맨을 통해 기업이 공공미술로 어떤 것을 보여줄 수 있었는지 확인시켜줬다면, 앞으로는 기업이 보여줄 수 있는 문화가 무엇인지를 알려주겠다는 것이다.

로비를 연중 상설 전시공간으로 활용해 신진작가들에게 많은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흥국금융가족 관계자는 “흥국금융가족 산하 일주문화재단이 1년에 20억원을 장학사업과 문화지원활동으로 활용되는데, 그중 일부를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명작가보다는 신진작가들을 주로 지원하는 일주재단은 작가가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작가의 뜻을 존중해 준다.

상업적인 공간이 아닌 로비 전체를 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할애, 강익중의 〈아름다운 강산〉, 조명작가 잉고 마우러의 〈홀론즈키의 사열〉, 국내 최대 모빌 작품인 프리일겐의 〈Your Long Journey〉 등 세계적인 작가의 유명 예술작품으로 가득 채웠다.

지하의 예술영화 전용관부터 로비와 광장의 예술작품까지 건물 자체가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인 것이다.

흥국금융가족이 지난해 주최한 한국현대미술 심포지엄만 해도 상당한 홍보 효과를 누렸다.

많은 사람들이 유익하고 좋은 문화예술행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흥국금융가족의 기업가치를 알게 되고, 그로써 회사 이미지를 높이는 일로 연결될 수 있다.

한국 현대미술 심포지엄 큰 호응
“기초과학이 튼튼해야 응용과학 등 산업부문이 발전하듯 순수문화, 예술이 만개하고 인력풀이 넘쳐나야 문화산업도 꽃피울 수 있다”는 태광그룹의 독특한 인식을 실천하고 있는 금융계열사 흥국금융가족은 문화산업의 주역으로 변신하고 있다.

이는 일주학술문화재단에서 나타난다. 일주학술문화재단은 자산 653억원(2008년 12월 기준)의 알짜재단으로, 장학사업과 문화지원활동을 후원하고 있다.

일주재단에게 해외유학비를 지원받은 수혜자만 해도 4500명이 넘는다. 흥국생명 사옥의 1층 로비를 예술작품 전시공간으로 바꾼 것도 일주재단이다.

그러나 정작 재단에는 달랑 경리직원, 큐레이터 1명만 있을 뿐 별도의 사무직원도 없고 행사도 없다. 매년 장학생을 뽑지만 별도의 홍보성 행사도 하지 않는다.

재단의 자산 규모, 지원활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문화계 인사들에게는 “보이지 않게 후원하는 빙산 같은 재단”으로 정평이 높다.

융통성이 없다고 생각될 수 있으나, “재단으로 만들어놓고 고정경비나 펑펑 쓰는 재단이 되지 말고, 쓸 데 확실히 쓰라”는 창업주인 일주 이임용 회장의 소신을 잇기 위함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는 흥국금융가족은 별도의 예술문화재단을 설립하고자 준비 중이다. 이 재단은 모기업인 태광산업의 기금으로 세워질 예정이며, 미디어, 미술, 영화, 문화 콘텐츠 등 예술 분야를 전문적으로 지원한다.

새 예술문화재단을 추진하는 이유는 티브로드, 티캐스트 등의 계열사를 통해 방송산업에 참여하면서 예술문화 부분이 취약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흥국금융가족 관계자는 “21세기는 문화가 먹여 살린다고 하지만 정작 문화산업의 토대가 되는 예술문화인의 지원과 콘텐츠 육성 등에는 눈을 돌리고 있지 않다”며 “예술문화를 지원함으로써 국내 문화산업의 자양분이 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우선 티캐스트를 통해 광화문의 씨네큐브를 직접 운영하기로 했다. 시네큐브는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현재 흥국생명빌딩 지하에 있다.

지난 9년 가까이 제3자에게 위탁해 온 씨네큐브 광화문을 그룹 계열사가 직접 운영, 그룹사의 지원을 통해 명실상부한 최고의 예술영화 전용관으로 키울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9년간 씨네큐브 광화문을 후원해온 흥국금융가족은 티캐스트와 함께 공동으로 독립영화제를 개최하고 우수 영화 제작자에게 지원할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더불어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던 지방에도 씨네큐브 광화문과 같이 예술문화를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할 생각이다.

그룹 관계자는 “단순한 상영관이 아니라 좋은 영화인과 영화팬이 만나고 영화 심포지엄이 열리는, 독립영화제를 후원하는 예술영화의 메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희 기자 wooang1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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