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보드라운 한지 닮은 이효선 Lee’s Art and Design 대표

한지로 뭘 할 수 있을까. 문이나 창에 바른다? 여기 한지로 귀걸이, 목걸이, 브로치 등을 거뜬히 만들어내는 장인이 있다. 이효선 Lee’s Art and Design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한지 액세서리에는 메탈 액세서리엔 없는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있다. 차분하고 우아한 한국 고유의 미를 담고 나니, 독특한 매력이라며 해외에서도 열광한다.

 

사진: 박재성 기자

눈물이 날 정도로 예뻤단다. 양손의 엄지와 검지로 프레임을 만들어 ‘그것’을 보고 있자니, 기가 막힌 풍경에 저절로 감동이 밀려왔단다. 무엇을 봤던 걸까. 일류작가의 예술작품이었을까. 아니다. 이효선 대표가 매료됐던 것은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낯선 골목길 모습이었다. 그는 “동네 곳곳이 갤러리였고, 문화 그 자체였다”고 회상했다.

“1995년 즈음인가요. 한국공예가협회원들과 견학을 갔었어요. 100년 전 문을 닫은 섬유공장을 찾았죠. 이미 폐허가 됐을 법한데, 그 공간이 그대로 보전돼 있더군요.” 100년 전에 쓰던 염색기계부터 하물며 필기구까지 고스란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공장 투어를 마치고 나서는 기념품 가게에 들러, 당시 공장에서 생산하던 제품의 미니어처를 구입했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남은 건, 아찔하리만큼 아름다웠던 풍경에 대한 기억과 기념품 가게에서 산 미니어처였다. 그는 자그마한 장신구를 손에 쥐고 생각했다. ‘이 작은 게 뭐기에 그 큰 땅의 문화를 대변할 수 있는 것일까.’ 그와 동시에 ‘나도 우리 문화를 대변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 그게 뭘까…’ 하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아톰’보다 ‘춘향’이 좋았던 여대생

이 대표는 전라북도 익산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유달리 전통을 중시하는 집안 분위기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대학에서는 응용미술학을 전공했다. 염색 실기수업 때 염료가 흰 천에 스며드는 모양에 매료돼 섬유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는 나염디자이너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그 당시 스머프나 아톰 같은 외래 캐릭터가 유행했었어요. 제가 작업해야 했던 것도 외래 캐릭터들을 프린트하는 거였죠.” 딱히 이유를 꼽긴 힘들었지만, 내심 내키지 않았단다. “국내에도 이 도령과 춘향이 같은 내로라할 만한 캐릭터가 많은데 왜 그래야 하느냐는 마음이랄까요. 이상하게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게 있었어요. 저와는 안 맞더라고요. 그래서 9개월 만에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모교에 돌아와 대학원 과정을 밟기로 했다. 전통성, 지역성을 살린 작품에 대해 더욱 골몰히 연구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한지’를 작품의 주재료로 택한 건 아니었다. 한때는 ‘양모’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모양은 예뻤지만, 원료 자체가 수입품이고 가격도 비쌌다. 졸업 후 10년간 다양한 재료로 작업을 해오던 차에, 포틀랜드 견학을 가게 됐다. 그것을 계기로 한지와의 남다른 인연을 평생 이어가게 된다.

다시 포틀랜드에서 복귀한 다음 날로 돌아가보자. ‘우리 문화를 대변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 그게 뭘까…’ 고민에 빠졌던 이 대표. 이윽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섬유공예 작업이며, 전주의 특산품은 한지다’, ‘그렇다면 한지로 공예작업을 하자. ‘한지 액세서리’가 문화상품이 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절묘했다.

 

예술과 전통, 그 불가분의 관계

이 대표의 작업실에는 아기자기한 한지 작품들이 즐비했다. 별도의 가구 없이도 인테리어가 아주 잘된 공간 같았다. 그가 작품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테이블 위에 두면 ‘작품’이지만, 몸에 지니면 ‘상품’이 되는 기특한 녀석들이에요.” 테이블 한편에 놓여 있던 첫 한지 작품인 ‘브로치’ 역시 그랬다. 수제 한지에 몇 번의 바느질로 수를 놓아 만든 모양이 독특했다. 산, 나무, 구름과 같은 자연형상을 한국적으로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갈색과 녹색, 그리고 주황색의 색감이 편안했다. 옷에 달면 액세서리가 되지만, 꽃병 옆에 두니 데코레이션 역할을 했다.

만져봤다. 한지여서 하늘거릴 줄 알았는데, 굉장히 견고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방수까지 된단다. “‘줌치기법’이라고 있어요. 전통기법인데 쉽게 말하면 한지에 지속적으로 힘을 줘서 견고하게 만드는 작업이에요. 사람도 아픈 만큼 강해지잖아요. 한지도 마찬가지예요.” 여러 겹의 한지를 물로 붙이고, 지속적으로 주물러 강하게 만드는 걸 ‘줌치기법’이라고 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야들야들한 한지가 가죽처럼 탄탄해진다. 그런 뒤 실과 바늘을 이용해 수를 놓는다. 두꺼운 가죽에다 바느질하는 게 어디 쉽나. 지금은 이력이 났지만, 초반에는 바늘귀에 손끝이 닳아 항상 벌겋고 아렸다. 젓가락질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단다.

“참 신기하죠. 중고등학교 가정 시간엔 바느질이 그렇게 싫었는데요, 이렇게 변했네요. 지금은 천만 보면 바느질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그는 이내 “이러한 변화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비록 작품 활동 차원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지만 예전 우리네 어머니들은 모두 바느질을 하며 예술작품 수준의 조각보를 만들었다”면서 “엄마들이 하던 걸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것뿐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한 지역의 ‘전통’과 ‘예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게 느껴졌다.

“이탈리아 장인들이 명품을 만드는 것도 같은 이치 아닐까 싶어요. 윗대부터 내려오던 걸 자연스레 이어가고 있잖아요. 이렇게 한 땀 한 땀….”'

 

작품, 제품이 되다

아린 손끝으로 하나씩 만들어낸 작품은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1998년, 한지 공예품 처녀작을 출품한 이래, 수차례 연 전시회에서 확인한 결과다. 전시회를 열 때마다 “따로 구입하려면 어떡해야 하느냐”는 문의가 쇄도했단다. 그래서 전주 한옥마을에 소량의 작품을 갖다 놓고 위탁 판매를 했더니 찾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아예 회사를 차리기로 마음먹었다.

“단 하나밖에 없는 작품이 팔리면 없어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작품을 상품화하기로 했습니다.” 2008년, 자그마한 회사를 차리고 ‘Lee’s Art and Design(이하 리즈)’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회사명에 들어간 Lee’s는 ‘전주 이씨’를 의미한다. 지금의 리즈를 있게 해준 부모님에 대한 감사의 뜻이란다.

리즈에서는 한지를 중심으로 섬유와 가죽까지 세 가지 재료를 이용한 공예품과 액세서리를 만든다. 한지로는 브로치, 귀걸이, 팔찌와 같은 액세서리와 인테리어 소품을 만든다. 섬유로는 스카프, 넥타이와 같은 패션 용품을 제작한다. 마지막으로 가죽 제품은 프린트 작업 위주의 가방과 지갑 등이다. 한지제품뿐 아니라 섬유와 가죽 제품도 ‘한국적인 미’를 담고 있다. 섬유 작업에도 ‘한지사(絲)’를 활용하며, 가죽 및 실크 제품에는 모시 문양의 프린트를 넣는다.

모시 고유의 문양을 실크와 가죽에 담아낸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이 대표는 “컴퓨터로 그래픽 작업을 먼저 하고, 이를 출력해 섬유와 가죽에 스미게 하는 작업”이라며 “화면에서 보는 색과 200도의 열을 받고 섬유에 스며든 색은 확연히 다른데, 이를 당초 의도한 색과 질감대로 구현해내는 게 기술의 차이”라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의도한 색감이 나오지 않아 마음고생도 심했다. 물론 지금은 색상 변환 값을 얼마만큼 줘야 보기에 편안한 색감과 질감이 연출되는지 잘 알고 있다.

캐나다 아주머니도 매료된 한지의 매력

이 대표는 원광대학교 미술대학 시각정보디자인과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하기도 한다. 회사를 설립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데는 사실 학생들의 기운도 작용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까 그런 거예요. 학생들 작품이나 아이템이 아무리 좋아도, 공모전에서 상 받는 데서 끝나버리더라고요. 일회성으로 끝나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학생들의 아이디어를 상품화하고 유통까지 시켜주고 싶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아무래도 회사를 운영하면 그럴 수 있으니까.”

회사 운영, 후학 양성에 이어 최근에는 전주한지조형작가협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현재는 전라북도 공예협동조합 자문위원도 맡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낮 시간에는 작품 활동 하기가 빠듯하다. 작업실을 찾는 건 밤 9시 이후나 가능하고, 퇴근은 통상 새벽 1~2시 정도에 한다. 그래도 작업하는 게 아직도 “재밌다”고 말하는 그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고 했던가. 조용히 작업 활동에 전념했더니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관심을 보였다. 2008년 독일, 체코와 2009년 캐나다, 베트남, 2010년 중국, 러시아 그리고 2011년 터키 등지에서 개최한 개인전·단체전 등이 단초가 됐다.

특히 한지로 만든 옷을 입고 패션쇼를 할 때는 외국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고 한다. “해외에서 한지의 입지가 차츰 공고해지고 있어요. 예전에는 한지를 영어로 표기할 때 ‘코리안 페이퍼(Korean paper)’라고 했는데, 지금은 ‘한지(Hanji)’라고 쓰는 걸 봐도 알 수 있죠.”

현지인들의 구체적인 반응이 궁금했다. “밴쿠버 전시 때의 일이에요. 한지 귀걸이와 목걸이를 꼭 구입하고 싶다던 아주머니가 있었어요. 제품을 팔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카드리더기를 가져가지 않았는데, 카드밖에 없다며 안타까워했어요. 그러다 이내 ‘집에 가서 현금을 가져올 테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하더라고요.” 몇 시간이 지났을까. 혹여나 이 대표가 갔을까 노심초사하며 뛰어온 캐나다인 아주머니. 지폐를 지갑에 넣지도 않고 부랴부랴 전시장을 찾은 모습이었다. “왜 한지로 액세서리를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이유가 생겼다랄까요. 우리 종이와 우리 기법을 이용해 만든 액세서리에 대한 자부심이 확고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대표는 “한지를 한번 만져본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그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에 폭 빠져든다”면서 “이는 우리 종이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미”라고 했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에는 본격적인 수출 계획도 세웠다. 전주시와도 손을 잡을 예정이다. 이 대표는 “수출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을 잡고 있는 중”이라며 “수출 상품은 핸드메이드 한지 공예품과 모시 텍스처를 살린 섬유제품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고향 떠나고 싶지 않아

모시문양 프린트가 들어간 지갑.

올 하반기는 이 대표에게 특히 바쁜 시기가 될 것 같다. 수출 준비와 더불어 새로운 제품 개발도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중소기업청 프로젝트도 맡았다. “‘기능성 한지제품개발 지원사업’이에요. 닥섬유 부직포를 이용한 쇼핑백을 개발하는 내용이죠. 마치 포장한 것처럼 상품에 좋은 옷을 입히자는 취지에서 개발하게 됐습니다.” 얼마 전 개발을 완료한 한지 꽃 조명은 시제품이 나온 상태다. 올해 말까지 상품화한다는 목표다.

혹자는 말한다. “외국에서 리즈 브랜드를 만든 다음,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면 더 나았을 것”이라고. 하지만 이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고유의 지역색을 살리고, 널리 알리고, 뿌리내리게 하려면 결국 이 땅에 기반을 둬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라고나 할까. 향후 10년 안에는 익산이 내려다보이는 갤러리숍도 설립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지역 사회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갤러리숍을 운영하고 싶다”면서 “단순히 숍이 아니라 공예학교도 함께 운영해 그 지역의 스토리가 담긴 작품, 상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어떤 지역을 여행할 때, 우연히 맞닥뜨린 곳에서 그 나라만의 독특한 문화를 발견하면 감동이 오잖아요. 제가 포틀랜드에서 겪은 것처럼요. 이곳 익산에 그런 공간을 꼭 만들고 싶습니다.”

 

장인수첩

미대에서 응용미술학을 전공하고, 조형예술학 박사학위를 땄다. 견학차 찾은 포틀랜드에서 ‘지역 문화 상품’에 대한 영감을 얻었고, 한지 액세서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회사를 차려 나염 경력을 바탕으로 모시 텍스처를 프린트한 가죽, 섬유 제품도 함께 만들고 있다. 한지, 모시와 같은 한국적인 느낌을 살려낸 상품으로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끌어냈다. 내년에는 해외 수출길에도 오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