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머릿속에는 꽤 오래전부터 지워지지 않는 고민거리가 있다. 소규모 철못공장으로 시작해 반세기에 걸쳐 동국제강을 자산규모 7조원에 이르는 철강 전문그룹으로 키워놨지만 글로벌 회사로 레벨업시키려면 굴지의 철강으로는 한계에 부딪친다는 것이다.

장수기업으로 인정받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지만 또 다른 50년을 고민해야 하는 장 회장에게는 철강사업과 함께 그룹을 이끌어갈 새로운 바퀴가 절실 필요했을 터.

이런 고민을 공식적으로 털어놓은 때가 바로 지난 2004년 7월7일. 창립 5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 장 회장은 새로운 CI까지 선포하며 중장기 비전에 신규 사업 진출에 대한 야망을 그대로 담았다.

당시 장 회장은 “‘변화와 성장’을 주도하는 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공언하며 사업다각화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성장동력으로 글로벌 역량 갖춘 대우건설 군침
장 회장은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한 수준이다. 일단 동국제강이 인수를 시도해 오던 범양상선은 STX그룹으로, 대한통운은 금호아시아나그룹 품으로 넘어갔다.

또 다른 성장엔진으로 장착했던 정보기술(IT) 분야의 경우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 그룹 IT사업의 축인 DK유아이엘(옛 유일전자)은 지난 2005년 7월 인수한 뒤 받아 쥔 성적표가 초라하기만 하다.

인수 전인 2004년 약 2166억원이던 회사 매출액은 동국제강으로 편입 후 2006년 1518억원, 2007년 1599억원, 2008년 1828억원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성장하기는커녕 오히려 뒷걸음질친 셈이다.

건설사 인수에 공을 들였지만 이 역시 수포로 돌아갔다. 쌍용건설 인수를 위해 경쟁사인 남양건설보다 30%나 높은 금액을 제시하며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건설경기 후퇴로 결정을 미뤄오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로부터 인수불가를 판정받았다.

이 과정에서 캠코에 낸 입찰보증금 240억원마저 날리고 말았다. 그 뒤 반환소송을 전개하고 있지만 체면만 구기게 됐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

동국제강 그룹 매출의 70%는 여전히 동국제강과 유니온스틸에서 나오고 있다. 장 회장은 철강업과 시너지는 물론 대우건설의 해외 인력을 통해 글로벌기업으로서 역량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산업은행, 동국제강 밀어주기 진실은
이런 동국제강 그룹 매출의 70%는 여전히 동국제강과 유니온스틸에서 나오고 있다. 장 회장의 고민이 아직도 진행 중인 이유다.

이 과정에서 매물로 나온 대우건설은 동국제강에게 또 다른 희망으로 다가서고 있다.

철강업과 시너지는 물론 대우건설의 해외 인력을 통해 글로벌기업으로서 역량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역시 장 회장이 직접 챙기고 있다.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우건설 인수가로 예상되는 주당 1만8000원은 현재 주가 1만2000~1만3000원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50% 계산한 것이지만 가격이 너무 높다”며 이미 가격흥정에 들어간 모양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아직 불안하다는 평가가 많다.

일단 회사덩치로만 봐도 자산규모 9조원에 이르는 대우건설을 동국제강그룹(7조원)이 먹기에는 불안한 모습이다. 시가총액도 대우건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바꿔 말해 엄청난 인수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재무적 투자자들로부터 지분을 사들여 경영권을 얻으려면 4조원이 넘는 자금이, 산업은행 PEF 지분 50% 이상을 확보하려면 1조5000억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알려지고 있는 상황.

이는 동국제강의 자금조달 능력을 초과하는 수준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여기서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산업은행 PEF에 전략적 투자자(SI)로 참여하는 것. 일단 5000억원 정도 자금으로 지분 15~20%를 확보한 뒤 2~3년간 경영권을 위탁받는 방식이다.

그리고 나서 우선매수권을 통해 나머지 투자자로부터 지분을 매입, 경영권을 가져간다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 역시도 말처럼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동국제강이 덩치 크게 투자하고 있는 사업이 워낙 많기 때문.

특히 브라질 고로건설에 수조 원이 투입되는 등 향후 5년간 매년 5000억원 정도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2~3년 뒤이기는 하지만 3조원에 이르는 인수대금을 치르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박삼구 금호그룹 명예회장의 형 박정구 전 회장(작고) 둘째딸이 동국제강그룹 창업주 6남인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의 차남과 결혼했다. 이에 따라 가족회의를 통해 금호그룹이 얼마든지 입김을 넣을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금호그룹 구세주는 장세주 회장?
대우건설 노조의 반대는 극에 달하고 있다. 동국제강은 아예 명함도 내밀지 말라며 날선 성명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 의욕만 앞세우다가 M&A시장에서 고배를 마신 동국제강이 자신보다 덩치가 큰 대우건설을 경영할 능력이 없다고 못 박고 있다.

장 회장이 동생인 장세욱 부사장에게 회사를 떼어주는 계열분리 수순과도 연관이 있다는 의혹마저 제기하고 있다.

노조 측은 금호그룹과 동국제강의 관계에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두 그룹사가 사돈관계라는 것이 이들이 문제 삼고 있는 부분.

박삼구 금호그룹 명예회장의 형 박정구 전 회장(작고) 둘째딸이 동국제강그룹 창업주 6남인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의 차남과 결혼했다.

이에 따라 가족회의를 통해 금호그룹이 얼마든지 입김을 넣을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모호한 산업은행의 행보에도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금호그룹이 자베즈와 TRAC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자마자 매각주간사를 내놓더니 이제 갑자기 동국제강을 내세우는 등 횡설수설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5000억원으로 자금이 부족한 동국제강을 밀어줄 것이라면 차라리 떳떳이 지원 계획을 밝히라며 압박하고 있다.

4조원 실탄 포스코는 “관심없다” 손사래
대우건설 매각에 빠지지 않는 또 다른 기업이 있다. 바로 포스코다. 포스코 측에서 “현재는 인수를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부인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계속 포스코를 주시하고 있다.

워낙 실탄이 풍부하다 보니 M&A시장에서 이름이 빠지지 않는 것.
지난해 말 기준 현금성 자산이 4조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정작 포스코 측은 산업은행이 SI로 끌어들이겠다고 밝힌 상태에서도 별다른 관심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포스코건설이라는 건설사를 이미 보유하고 있는 여유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업계에서는 대우건설보다 대우인터내셔널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는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한 막강 글로벌 네트워크와 우수한 인적자원 때문.

포스코는 대우인터내셔널의 트레이딩 능력과 더불어 프로젝트 개발 능력을 높게 사고 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발전사업을 비롯한 각종 플랜트 등 사업을 개발하는 능력이 국내 종합상사 가운데 가장 앞서 있다.

게다가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할 경우 기존 철강제품 판로가 크게 늘어나 전체적인 시너지가 나올 것으로 전망되고 이 회사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각종 신사업을 개발하는 데도 큰 힘을 얻을 것으로 포스코는 기대하고 있다.

김성배 기자 sbkim@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