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 남한화’가 경협의 본질…개성공단 폐쇄 가능성 낮아


지난 10여 년 간 지속된 남북경협의 중심에는 ‘햇볕정책’으로 명명됐던 대북 포용 정책이 있었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이후 지속된 장기간 관광 중단 사태와 그로 인한 금강산 부동산 시찰, 천안함 침몰 사고 등으로 경제협력의 앞날은 어둡기만 하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2년 5개월간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며 햇볕정책의 진행을 진두지휘했던 정세현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을 만나 남북경협의 진정한 의미와 남북 교류 관계 복원을 위한 묘책을 들어봤다.

주식시장에도 상승과 하락의 사이클이 있듯, 남북관계에도 사이클이 있는 듯합니다. 지금이 남북관계 사이클에서 최저점이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지금은 분명 하향 곡선에 와 있습니다. 교역량이나 남북 간 대화 횟수도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남북관계가 장기적인 침체 국면으로 가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최근 북한이 남한 소유 금강산 부동산을 몰수·동결했습니다. 북한이 초강수를 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일종의 반발 심리 차원이라고 보면 됩니다. 북한은 그동안 금강산 관광 재개를 열망해왔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냉담한 반응을 보이니 자연스럽게 북한이 토라진 셈이지요.”

그렇다면 관광 재개는 사실상 힘들다는 것입니까.
“현재로는 다시 회복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직 협상의 여지는 남아 있습니다. 북한은 남한이 관광 재개 논의를 제의하면 내일이라도 관광객을 받을 용의가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은 남한과의 사업을 포기하고 새 사업자를 찾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습니다. 북한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가장 적절한 대안은 정상회담입니다. 하지만 최근 정세 상 회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일단 대북 태도를 유화적으로 바꾼다면 북한이 스스로 달라질 것입니다.”

지난 10년 간 진행된 남북경제협력사업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통일로 가기 위해서는 남북이 경제적으로 먼저 가까워져야 합니다. 쉽게 얘기해서 북한 경제의 남한화가 이뤄져야 통일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북 경제가 상호 보완관계가 되어야 정치, 군사적 통일이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에 경협 사업은 아주 중요합니다.”

북한 경제의 남한화가 경협 사업의 핵심인 셈이군요.
“그렇습니다. 북한 경제가 남한 경제 시스템을 닮아갈수록 통일이 빨라질 수 있습니다. 북한 경제의 남한화는 경제적 상호 의존 관계 정립을 의미합니다. 북한이 결국 기댈 곳은 중국이나 미국이 아니라 남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꾸준한 지원과 교류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경제 교류가 곧 통일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인가요.
“경제 교류가 활성화되면 군사적 긴장감은 자연스럽게 없어질 것이고, 결국 통일이 가까워질 것입니다. 독일의 사례가 그 예입니다.

서독은 동독을 향해 ‘동방정책’을 폈습니다. 독일판 햇볕정책이지요. 서독은 동독에 18년 간 32억 달러를 지원했습니다. 동독 경제는 서독의 지원에 의존했습니다. 결국 이것이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계기가 됐고, 통일을 이뤄냈습니다.

만약 서독의 지원이 없었다면 동독은 소련이나 동유럽 강국의 품에 안겼을 것입니다.”

북한이 남한 경제를 닮아가려면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개성공단을 만든 것입니다. 쌀 지원이나 비료 지원이 밥을 떠먹여 준 것이라면, 개성공단 조성은 밥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1970년대에 우리 정부가 경제 부흥을 위해 만든 것이 마산수출자유지역 아닙니까. 그곳에 입주했던 외국 기업들의 경영 사례에서 우리 기업인들이 많은 것을 배웠다고 들었습니다. 그 체계를 우리가 그대로 답습하다 보니 우리 경제도 발전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개성공단이 ‘제2의 마산’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마산에서 일으킨 기적을 개성에서도 일으킨다면 북한 경제도 충분히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성공단이 원래 계획대로 개발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최근 개성의 상황은 금강산만큼이나 어둡습니다.
“전망은 어두워도 개성공단이 폐쇄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개성공단은 개성시를 먹여 살리고 있는 아주 중요한 존재입니다. 개성공단 근로자가 4만 명 정도 됩니다. 그들은 모두 개성 주민입니다. 공단이 폐쇄되면 개성은 가난해집니다. 북한이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지요.”

일부에서는 개성공단이 실패했다고 판단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정말 유치한 발상입니다. 회계학 이론 중에서도 자본의 회임 기간이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모든 기업이 초기 투자비용을 이윤으로 환수하려면 일정한 시간이 걸립니다. 개성공단에 투자된 돈은 이제 돌아올 때가 됐습니다. 무엇보다 개성공단의 성공 여부는 표면적인 매출로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면에서 개성공단이 성공을 이뤘다고 보십니까.
“개성공단을 만들 때 ‘경제협력을 통해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자’라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원래 개성공단 자리는 북한군 부대 터입니다. 공단이 건설되면서 부대는 북쪽으로 이동했습니다. 결국 군사지역이 경제평화지역으로 변한 셈이지요. 오죽하면 개성공단 덕에 실질적 휴전선이 올라갔다는 이야기까지 나왔겠습니까.”

남북경협이 북한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001년부터 4년 간 북한 전역에 대한민국의 이름을 달아서 쌀을 보내줬습니다. 쌀자루 겉면에 대한민국이 표기되니 남한 사람들이 자신들을 도와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대북 접촉 일선에 있던 사람들은 북한 관계자들의 대남 적대감이 많이 누그러졌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습니다. ‘동포가 아니면 누가 이렇게 도와주느냐’하는 고마운 감정이 전해진 것이지요. 경협이 가져온 이런 효과를 절대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최근 북-중 관계가 전보다 더 긴밀해진 것 같습니다. 남북관계에 큰 영향이 있을까요.
“경협 관계에 있어서 중국의 모습을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은 지금 남북이 대치하는 틈을 노리고 있습니다.

여차하면 북한 경제를 지원하는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만약 중국이 경제 교류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면 북한은 중국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남북통일은 물거품이 되는 것이지요. 민족사적 범죄를 막기 위해서라도 유화적인 태도를 통해 북한과 가까이 지낼 필요가 있습니다.”

정백현 기자 jjeom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