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기획 21세기 신학맥 분석 ⑥ 대일외국어고등학교

“정치권에서는 윤보선 전 대통령의 손자,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둘째 자제인 현철 씨의 아들이 이 학교를 졸업했다.
재계에서는 현대가의 일원들이 이 학교를 많이 거쳤다.” 정임석 입학팀장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등장하는 신화고의 꽃미남 4인방 ‘F4’는 늘 당당하다. ‘F4’의 일원인 송우빈은 유창한 중국어로 마카오의 깡패들을 꾸짖고, 또 다른 멤버 ‘윤지후’는 여주인공 금잔디를 위해 해외 여행지에서 길거리 공연을 한다. 그들은 마치 밥을 먹듯 자연스럽게 모국 밖의 세상과 교유한다.

조선 시대 신덕왕후가 잠든 유서 깊은 유적지인 정릉에 위치한 대일외국어고등학교는 바로 현실 속 신화고이다. 국제화 시대 맞춤형 인재 양성의 산실이다.

지난 1983년 국내에 외고 시대를 연 이 신흥 명문고는 아직 역사가 일천하지만 그 발자취 만큼은 뚜렷하다. 매년 전교생의 절반 이상을 한국 사회의 3대 명문대인 서울대, 연·고대에 진학시키며 전통 명문고들을 압도하고 있다.

대한민국호 차세대 리더 양성의 요람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음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임석 입학팀장은 “올해 졸업생들만 해도 전체 학생 420명 중 207명이 서울대(23명), 연대(83명), 고대(101명)를 비롯한 ‘빅3’에 합격했다”고 강조한다.

올해뿐만이 아니다. 해외 대학 진학반 30명을 제외하면 전교생 390명의 절반을 훌쩍 넘는 학생들이 매년 서울대와 연고대에 진학하고 있다.

중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비싼 수업료에도 자녀들을 이 학교에 보내고 싶어하는 것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문대 진학률 때문이다.

서울대 입학자를 기준으로 발표하는 전국의 고등학교별 순위는 전통 명문고나, 라이벌고인 대원외고에 뒤처질지 모르지만, 서울대 중위권 학과에 비해 점수가 높은 연고대 상경계열 입학생 수를 감안할 때 이 학교의 위상은 전통명문고에 결코 뒤처지지 않는 다는 것이 정임석 입학팀장의 주장이다.

이 신흥 명문사학은 설립 이후 ‘국제화 시대의 인재 양성’이라는 ‘포지셔닝’을 앞세워 틈새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해왔다. 그리고 공교육 시장에서 후발주자들과의 격차를 벌이며 프리미엄 브랜드의 위상을 굳건히 했다는 평이다.

아직은 역사가 일천해 중량감 있는 명사들을 많이 배출하지는 못했지만 정계와 재계, 관계를 이끄는 그 유력인사들이 자녀는 물론 손자·손녀를 보내고 싶어하는 학교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개혁개방이 대세로 부상하던 1980년대의 시대정신을 포착하고, 과감히 시장에 진출한 ‘선발주자(first mover)’의 이점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윤보선 전 대통령의 손자, 그리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둘째 자제인 현철 씨의 아들이 이 학교를 졸업했다. 재계에서는 현대가 3세들이 이 학교에서 국제화 시대에 걸맞는 예비 경영자 수업을 받았다.

졸업생 절반 이상이 SKY대 진학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의 장남 정기선 씨가 대일외고를 졸업한 뒤 연세대에 진학했다. 또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고(故) 정몽필 인천제철 사장의 딸인 정유희 씨가 이 학교 출신이라고 학교 관계자는 귀띔했다. 대일외고의 부상은 한국 사회 권력 이동의 거울이다.

재벌기업 2~3세들은 아직 휘문고나 경복고, 서울고를 비롯한 전통의 명문사학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외국어 고등학교 출신들도 과거에 비해 하나둘씩 늘어나는 추세이다.

대일외고가 각광을 받는 배경은 달라진 대외 환경을 반영한다. 프리드먼은 매년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인도의 저임 회계사들이 미국의 괜찮은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게 세계화 시대의 냉혹한 현실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 외고 진학은 청소년 시절부터 국제 감각을 키우고, 평생을 갈 인맥 네트워크도 구축할 수 있는 양수겸장의 카드이다.

재학 기간 3개 언어는 ‘기본’
클린턴 미 국무장관의 이화여대 방문 행사는 새로운 유형의 젊은 세대의 등장을 예감하게 했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의 강연회를 그대로 옮겨온 듯 유창한 영어로 질문을 던지는 여대생들의 생기발랄한 모습은 기성 세대들에게는 충격이자 달라진 사회상을 절감하게 했다. 대일외고는 글로벌 인재의 양성소이다.

이 학교 학생들은 3년간 외국어 3개를 익힌다. 영어는 기본이고 스페인어, 독일어, 러시아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 중 전공 언어를 선택한다. 그리고 교양 과목으로 언어를 한 가지 더 배운다. 정임석 입학 팀장은 이러한 접근방식을 ‘1+2’라고 부른다.
학생들은 재학 중 영어를 비롯한 3개의 언어를 배워 대학에 진학한다. 유창한 회화를 구사할 수 있는 비결은 원어민 교사가 진행하는 듣기와 말하기 중심의 수업 덕분이다. 해외 집중 어학연수도 한몫하고 있다.

캐나다 교육청과 공동으로 이 광활한 북미 대륙에서 3주간 집중 영어 코스를 운영하며 학생들에게 현지 영어와 더불어 생생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 학교 측의 설명이다.

정임석 대일외고 입학팀장은 “학생들의 영어 몰입교육 차원에서 건물 한 동 전체에서 영어만 사용하는 이른바 ‘포즈존(FOZ, Foreign Language Only Zone)’을 조성해 운영하고 있다”며 학생들의 뛰어난 어학 능력의 배경으로 평소 영어를 꾸준히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꼽았다.

높은 명문대 진학률, 어학 프로그램과 더불어 정·재계 오피니언 리더들의 주목을 끄는 것은 이 학교의 독특한 인성 교육 프로그램이다.

퇴계 이황 선생의 가르침을 배우자는 취지로 세운 ‘퇴계관’과, ‘구도 장원’의 주인공 율곡의 이름을 딴 율곡관은 이 신흥 명문 사학의 건학이념을 방증한다.

바로 국적 있는 인재의 양성이다. 조선 시대 국가고시인 과거에 무려 아홉 차례나 장원을 차지했으며, 십만 양병설을 주장할 정도로 국제 정세에도 밝았던 율곡 이이는 이 학교 인재상의 바로미터다. 대일외고가 이른바 한국형 인재 양성의 요람으로 통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방학 땐 해외서 해비타트 운동 참가
대일외고는 따뜻한 가슴과 냉철한 머리를 지닌 조화로운 인재상을 중시한다. 학생들을 방학 때 몽골, 우간다, 러시아 등에 보내 집짓기 봉사활동인 해비타트 운동에 참가하도록 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봉사활동은 인류 보편의 가치인 휴머니즘을 배우고 발휘하는 살아 있는 교육 현장이다. 이 학교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동아리이다. 기악반, 종합댄스반, 남성중창단, 연극반, 컴퓨터 클럽, 영어연극반, 천체관측반을 비롯해 모두 30여개의 동아리들이 활동하고 있다.

대일외고 영자신문사 학생들은 재작년 주한 미 대사관의 초청으로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Hill) 당시 대사와 함께 환담을 나누는 등 뛰어난 영어 능력을 발휘해 미 대사관 직원들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는 후문이다.

서울에 있는 외고 가운데 유일하게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는 점도 주목거리다.

“엄마 매니저라는 말이 새로 생겨날 정도로 요즘 학생들이 학부형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는데, 등하교 시간에 소요되는 불필요한 시간을 줄여 학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또 학생들의 자립성을 키우려는 차원에서 기숙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 학교 관계자의 설명이다. 논술만 전담하는 교사들을 학년별로 한 명씩 두고 있는 점도 이채를 띤다.

‘꽃보다 남자’ 김준 씨도 졸업생
학교 역사가 짧은 탓인지 아직까지 중량감 있는 정·재계 인사들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법조·언론·연예계 등에 활발히 진출하며 한국 사회 차세대 리더층을 두텁게 형성해 나가고 있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F4’의 귀공자 역할을 맡고 있는 김준 씨가 이 학교를 졸업했다.

대일외고를 졸업하고 외대에 진학한 김씨는 드라마의 인기로 무명생활을 끝내고 화려한 인생역전을 꿈꾸고 있다.

대하드라마 <천추태후>에서 폭군 역할을 실감나게 연기해 호평을 받은 성격파 배우 최철호도 이 학교 졸업생이다.

또 대학가에서 인기가 높은 중창단인 ‘스윗소로우’의 성진환, <뽀뽀뽀>의 뽀미 누나로 널리 알려진 주슬기, 인기드라마 〈궁〉에 출연했던 최성준 등이 대일외고를 졸업했다.

언론계 진출도 부쩍 늘었다. 이호찬 MBC 기자, 박준영 KBS 기자, 양민효 KBS기자, 차다혜 KBS 아나운서, 남정민 SBS기자 등이 모두 이 학교 출신들이다.

법조계 인맥도 만만치 않다. 김주석 대법원 재판연구관, 박성호 광주지방법원 판사, 박정택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이국현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 김보성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 검사, 정소민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이종민 서울북부지청검찰청 검사 등이 모두 대일외고 출신의 법조인들이다.
박영환 기자 (blade@ermed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