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영 기반도 다져…저돌적 추진력, 친화력, 젊은 감각으로 무장


세계 4위의 타이어 강국인 한국 타이어 업계에 거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국내 타이어 3사의 오너 2·3세들이 보란 듯이 경영 전면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난 1일 한국타이어 조현식(40·3세)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해 큰 주목을 받았다. 금호타이어 박세창(35·3세) 상무는 지난 달 19일 열린 ‘금호타이어 개인투자자 설명회’에서 “목숨을 걸고 금호타이어를 살리겠다”며 비장한 각오를 드러냈다.

넥센타이어 강호찬(39·2세) 사장은 올 시즌부터 ‘넥센 히어로즈’ 구단 운영을 맡아 브랜드 이미지 강화에 전력을 다하고 나섰다.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인 이들의 전면 배치로 타이어 업계 경영에 ‘젊은 피’가 급속히 수혈되고 있다.

타이어 업종은 대규모 투자가 수반되는 장치산업이다. 제품도 자동차 회사나 정비소로 공급되는 중간재 성격이 짙어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지는 않는다.

회사 설립 햇수도 한국타이어가 올해로 69년, 금호타이어는 50년, 넥센타이어는 67년(흥아타이어공업사에서 출발)으로 비교적 오래 됐다. 그래서인지 타이어 업체들은 보수적인 색채가 짙다.

하지만 최근 들어 타이어 3사 오너 2·3세 모두가 한결 같이 경영 수업 차원이 아닌 경영 전면에 속속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다.

한국 타이어산업이 일본·프랑스·미국 등에 이어 세계 4위에 오를 정도로 글로벌화 된 점도 글로벌 감각으로 무장한 젊은 오너들의 전면 등장을 재촉한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비교적 오랫동안 유지돼 왔던 타이어 3사의 전문경영인 체제도 앞으로 어떤 형태로든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몇 년 간 타이어 3사의 경쟁 구도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한국·금호(2강)+넥센 (1약)’ 체제에서 한국타이어가 1강으로 앞장서고, 금호타이어가 회사 재건을 다짐하며 뒤쫓는 형국으로 변했다.

그 와중에 넥센타이어가 성장해 3강 대열 진입을 꿈꾸게 된 것도 커다란 변화다. 금호타이어는 그룹 유동성 위기 여파로 워크아웃에 들어간 데다 노사갈등까지 겹쳐 어려움이 컸다.

타이어 3사의 이 같은 경쟁 구도 변화는 3인의 오너 2, 3세 모두에게 큰 숙제를 던져준다. 앞선 회사는 더욱 앞서려 할 것이고, 뒤진 회사는 만회를 노리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젊은 바람’으로 무장한 세 사람의 역할이 회사 안팎에서 더욱 주목을 받게 됐다.

세 사람 중 최근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이는 한국타이어 조현식 사장이다. 그는 지난 1일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2003년 12월 부사장 승진 이후 6년 5개월여 만이다. 사실 부사장이던 지난 3월 말 주주총회에서 등기이사로 선임되면서 경영 전면 등장을 예고했었다.


한국 조현식 사장 승진, 3세 구도 본격화
재계는 그의 이번 사장 승진을 놓고 “한국타이어가 본격적인 3세 경영 구도로 가는 것을 뜻한다”고 풀이한다.

물론 전문경영인인 서승화(62) 대표이사 부회장이 경영의 중심에 서겠지만, 조 사장의 역할이 한층 더 강화되고 회사 안팎에 상당한 변화를 몰고 올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조현식 사장은 누구인가. 마케팅본부장(5년째)과 한국지역본부장(3년째)을 겸하고 있는 그는 1997년 27세의 나이로 한국타이어에 입사해 13년 동안 다양한 보직을 거치며 경영 수업을 받았다.

효성 창업자인 고 조홍제 회장의 차남인 조양래(73) 한국타이어 회장의 장남이자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을 맡고 있는 조석래 효성 회장의 조카다. 이명박 대통령의 셋째 사위인 조현범(38) 한국타이어 부사장(경영기획본부장)의 형이기도 하다.

조 사장의 부친인 조양래 회장은 비교적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는 오너로 재계에 알려져 있다. 회사 대표 자리도 전문경영인에게 오랫동안 맡겨왔다.

그런 가운데 얼마 전부터 3세 조현식·현범 형제가 경영권 승계 경쟁을 벌이는 것으로 외부에 비쳐졌다. 조현범 부사장이 이 대통령의 사위란 점이 승계 경쟁에서 유리한 영향을 미칠 것이란 얘기도 호사가들 사이에선 있었다.

이런 점은 타이어 전문그룹인 한국타이어 오너 3세들이 세인들에게 더욱 주목받는 이유도 된다. 하지만 이번에 형인 조현식 부사장이 먼저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좀 더 두고 보긴 해야겠지만 ‘한국타이어가 장남 승계로 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신임 조 사장이 부사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국내 시장점유율을 계속 상승시켰다”면서 “특히 지난해 처음으로 내수점유율 50%를 돌파하면서 국내 타이어 업계 부동의 1위를 굳힌데 대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으로 안다”고 승진 배경을 밝혔다.

조 사장은 “한국타이어를 5년 안에 취업하고 싶은 기업 10위 안에 들도록 만들겠다”며 “오래 된 회사라 활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일부의 오해를 풀기 위해 스스로 홍보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젊은 오너인 만큼 부친 조양래 회장의 스타일과는 많이 대비되는 대목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젊은 실무급 직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즐기며 소통하는 스킨십 경영으로 직원들 사이에 좋은 평판을 얻고 있다고 한다.

이런 점이 사장 승진에도 한 몫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경영 승계를 완전히 받지 못한 ‘오너 3세 경영자’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

“더 처신을 잘해야 하고, 의사결정에서 실패하면 안 된다. 그러므로 의사결정 때는 평사원들 의견까지 다 들어본다. 그래서 평사원 ‘번개모임’도 자주 가져 악명(?)이 높다”고 말했다.

3대째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데 대해선 “전문경영인 체제의 장점이 더 많은 것 같다. 전문경영인은 구체적인 면에서 의사결정을 합리적으로 하고 우리가 못 보는 부분도 세심히 관리한다. 우리는 조언만 할 뿐”이라며 아직은 전문경영인 체제에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한국타이어의 티스테이션에서 제조 후 30개월이 경과한 타이어를 측면부에 구멍을 내는 방식으로 상품을 파기하고 있다.


금호 박세창 상무 “목숨 걸고 타이어 살리겠다”
한국타이어 조 사장이 상승세를 타고 있는데 반해 경쟁사인 금호타이어 박세창 상무는 이전엔 겪지 못한 커다란 어려움 속에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꾀하고 있다.

오너 2세인 박삼구(65)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인 그의 공식 직함은 그룹 전략경영본부 상무다. 그는 이미 4년째 그룹 본부에서 그룹과 관계되는 굵직한 전략사항들을 주로 챙겨왔다.

한때 ‘오너 3세 중 회장 승계 1순위’ ‘금호家 3세 그룹 대표주자’란 얘기를 들을 정도로 주위의 촉망을 받았다.

경영 수업 과정에서 늘 겸손한 자세로 임해 주위의 칭찬을 많이 들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젊은 오너답게 스포츠 마케팅과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고, 신문로 신사옥 프로젝트를 의욕적으로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여름 아버지와 삼촌(박삼구·찬구) 사이에 일어났던 소위 ‘형제의 난’으로 마음고생을 해야만 했다. 이어 대우건설 인수 후폭풍으로 인한 유동성 위기로 그룹이 채권단 관리에 들어가는 어려움에도 직면했다.

그나마 금호타이어(박삼구)와 금호석유화학(박찬구) 만큼은 오너들의 경영권이 인정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박 상무는 지난 3월 말 주주총회에서 금호타이어 등기이사로 선임됐다. 금호타이어를 본격적으로 챙기기 위해서다.

그룹 전략경영본부 상무인 만큼 금호타이어 보직을 갖고 업무를 관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너 3세 등기이사로 누구보다 열심히 뛰고 있다. 금호타이어 대표이사는 김종호(62) 사장이다.

박 상무가 금호타이어 회생에 열심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룹에서 타이어가 차지하는 중요성 때문이다. 그룹의 내로라하는 CEO들 대부분이 타이어 사장을 거쳤을 정도로 타이어 경영은 네트워크가 넓고, 내용도 중요하다.

금호타이어의 한 관계자는 “타이어는 경영의 스펙트럼이 넓어 경영 수업을 받기에 적합하다”고 밝혔다. 이를 반증하듯 박 상무는 30세였던 2005년 금호타이어 기획조정팀 부장(전략담당)으로 금호에 첫 발을 내디뎠다.

타이어 재건에 나선 그의 의욕은 대단하다. 박 상무는 지난 달 19일 열린 ‘금호타이어 개인투자자 설명회’에서 “목숨을 걸고 금호타이어를 살리겠다”며 비장한 각오를 드러내 주위를 숙연하게 했다. 금호타이어 개인투자자들에게 워크아웃 동의를 받아내기 위한 자리였다.

결연한 의지가 돋보이는 그의 이날 발언들을 더 살펴보자.
“제가 아직 젊지만 어르신들이 갖고 있던 도전정신을 본받아 목숨을 바쳐 뛰겠다.” “어릴 적 돌아가신 할아버지(창업주 고 박인천 회장)의 손을 잡고 광주공장에 간 적이 있는데, 어린 마음에 굉장히 큰 공장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 느꼈던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고 온몸을 던져서 회사를 살려내겠다.”

설명회 후인 지난 달 31일 마침내 금호타이어는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경영 정상화를 위한 약정(MOU)을 체결하고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나섰다.

두 차례에 걸친 5800억 원 규모의 출자 전환과 대주주 100대 1, 소액주주 3대1 등의 주주별 차등 감자, 6000억 원의 신규자금 투입 계획 등을 내 놓으며 워크아웃 졸업의 첫 단추를 끼웠다.

넥센타이어가 불황 속에서도 매출이 증가하자 공장 직원이 기쁜 마음으로 생산에 한창이다.


넥센 강호찬 사장, 히어로즈 통해 브랜드 파워 업
한국·금호의 2강 체제에 도전장을 낸 넥센타이어 강호찬 사장 역시 젊은 패기의 오너 2세 경영자다.

2001년부터 8년 간의 경영 수업을 거쳐 지난해 초 영업부문 사장에 올랐다. 해외영업 현장을 누비며 수출시장을 개척하거나, 국내 납품처 확보 등에 큰 솜씨를 발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역별로 특화된 영업 전략을 구사했고, 전 세계 틈새시장을 찾아 영업부문을 전진 배치시켰다. 이는 지난해 글로벌 불황 속에서도 넥센타이어가 매출을 28%나 늘릴 정도로 선전한 배경이 됐다.

그는 해외시장에서 거둔 좋은 실적을 바탕으로 내수도 탈환하기 위해 요즘 ‘넥센’ 브랜드 파워 제고에 부쩍 열을 올리고 있다.

그 일환으로 국내 프로야구 제8구단인 히어로즈의 메인 스폰서를 올 시즌부터 2년 간 맡고 나서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넥센타이어는 지난해 전 세계 125개국에 6억 달러 상당을 수출한 글로벌 20위의 타이어 업체다. 그러면서도 한국·금호에 비해 상대적으로 브랜드 인지도가 낮다는 평을 들었다.

강 사장은 넥센타이어의 브랜드 이미지 향상에 관심이 크다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제는 품질을 확보했으니 자체 브랜딩을 강화하는 데 역점을 둘 것입니다.

적어도 남이 넥센타이어가 좋다고 추천하면 그런 회사 제품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죠.” 지난해 넥센타이어는 생산의 80% 상당을 수출할 정도로 글로벌 제품력과 가격 경쟁력, 해외영업력은 좋아졌다.

하지만 국내 시장에선 상대적으로 한국·금호타이어 브랜드 파워에 미치지 못해 손해를 보고 있다고 판단, 스포츠 마케팅에도 나선 것이다. 넥센타이어는 올해 처음으로 매출 1조 원에 도전하고 있다.

창업주 강병중(71) 회장의 외아들인 그는 젊은 2세 경영인답게 저돌적인 추진력과 노사 친화력, 젊은 감각으로 무장하고 회사 변신에 앞장서 왔다.

2001년 오너 2세로 입사할 당시 30세였던 그는 그 흔하던 해외유학 대신 양산공장 근무를 택했다. 이후 4년 간 공장 근로자들과 고락을 함께하며 경영의 바닥을 익힌 그의 일화는 감동적이다.

부친이 강조하는 ‘투명경영과 진실경영’을 되새기며 경영과 노사 화합을 배웠다는 것. 최근 부친인 강 회장이 전문경영인과 자신에게 경영을 맡기고 후선으로 물러나 더욱 책임감이 크다.

그는 올해 새 대표이사로 영입된 이현봉(61) 부회장(삼성전자 서남아본부 사장 출신)과 지난 4년 간 부회장으로 넥센타이어 성장에 큰 역할을 했던 홍종만(67) 회장(삼성자동차 사장 출신) 등과 경영을 조율하고 있다.

오너와 전문경영인 체제의 장점을 잘 융합시키면서 온전한 경영 승계 시기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넥센타이어는 올 하반기 경남 창녕에 1조 원 상당이 들어가는 제2공장을 착공할 계획이다. 2017년까지 연차적으로 연산 2100만 개짜리 친환경·미래형 타이어 공장 건설에 나서게 된다.

기존의 양산공장(연산 2000만 개)과 중국 칭다오 공장(현재 연산 600만 개, 2017년 1900만 개로 증설)에 창녕공장까지 합치면 연산 6000만 개의 세계 굴지의 업체로 부상하게 된다.

국내에서 한국·금호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3강 체제를 갖추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20위에서 10위 업체로 발돋움한다는 야심 찬 청사진이다. 그래서 강 사장은 경영에 신바람이 나 있다.

성태원 경제·산업 전문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