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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우직한 나무심기 30억 황금열매 맺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25만평 호두·매실 1만그루 일궈…유명백화점서도 납품 요청 쇄도

되돌아보면 성공과 실패의 굴곡을 지나온 인생이지만, 과거를 기반으로 하거나 혹은 아예 새로운 발판에서 도약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되는 시기가 50대다. 가장으로서의 어깨가 무거울 뿐 아니라 노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는 갈수록 짧아지는 정년퇴직 시기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사회 때문이다.

새로운 트렌드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변화를 꾀할 수도 있지만 남은 삶은 안정적으로 구축해 외길을 가고 싶은 심정도 있을 터다. 이 같은 생각으로 50세에 자신의 이름을 의미 있게 남길 수 있는 도전을 시작해 그 꿈을 이룬 사람이 있어 화제다.


공군 소령 예편, 10년간 호텔 경영주로

김형광(69)씨는 경북 안동에서 대산농원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대산농원을 일구기 시작하기로 결심한 것이 50세, 그에게 있어 인생 2막이 펼쳐진 때다. 대산농원은 김 대표가 노후를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힘이다. 15만평의 산지에 빽빽하게 들어선 1만 그루의 나무, 그리고 여기서 나는 호두와 매실이 모두 김 대표가 맨 땅에서 시작해 얻어낸 수확이다.

국내에서 단일 규모로 가장 큰 농장인 대산농원에는 호두나무가 4000그루, 매실나무가 6000그루 심어져 있다. 대산농원은 14년 전 안동시 남동쪽에 위치한 길안면 대사리의 해발 400m 야산에서 시작됐다.

김 대표는 공군 소령 출신으로, 1979년 예편 후 호텔업에 종사했다. 당시 처가 쪽에서 경영하던 신사동의 한 호텔 경영에 참가했던 그는 10년 만에 일을 그만뒀다. 처가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사업을 이루기 바라는 어머니의 뜻이 가장 컸다.

곧바로 충북 영동에서 5년간 과수원을 경영했다. 이후 군 동료가 운영하던 전자제품 회사에서 도움의 손길을 뻗쳐 영업직으로 일했다. 이때가 유일하게 김 대표의 인생에서 비즈니스가 순탄치 않았던 시기다. 인건비와 물류비용, 초기 투자금이 높아 회사가 경영난에 빠졌고 김 대표는 4년 만에 퇴사했다.

그러나 크게 걱정이 없었던 이유는 이미 50대에 접어들며 호두 농장을 경영할 뜻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김 대표의 외가는 충북 영동군 일대에 호두나무를 심어 농사를 짓고 있었다. 김 대표의 어머니는 아들이 어렸을 적부터 보고 자라며 익숙해져 있던 호두 농장을 경영해 볼 것을 권했다.

어머니의 말씀에 따라 김 대표는 산림청 산하 임목육종연구소에서 호두 연구의 대가 이문호 박사를 만났다. 이 박사에게서 호두 농사에 관한 상담을 받고 그가 추천한 전라북도 순창 소재의 호두 농장을 찾았다.

이 농장은 당시 2만5000평 면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호두 농장이었다. 규모뿐 아니라 한 나무에 80kg의 호두가 달린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 김 대표는 이 박사의 적극적인 권유에 따라 당장 호두나무를 심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 시기부터 김 대표는 호두와 인연을 맺고 새로운 인생의 서막을 열었다.

호두농장 경영에 대한 확신이 선 후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임야를 알아본 시간만 1년 2개월. 공인중개사무소에서 연락이 오면 달려가서 땅을 확인했다. 당시 김 대표의 관심은 온통 적절한 산지를 찾는 일에 쏠려 있었다.

전국을 헤매고 다니다 임야를 발견하면 토양 일부를 추출해 호두 재배에 적절한지 전문 기관에 검증해 줄 것을 일일이 의뢰했다. 나무가 비바람에 쓸려 내려가지 않게 하기 위해 흙의 깊이도 쟀다. 암반 비율이 높은 산은 나무를 심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 까닭에서다.

농장 부지를 조사할 때 가장 중요시한 요소가 세 가지다. 첫째가 넓은 면적, 둘째가 청정지역, 셋째가 고지대였다. 이 조건을 다 충족한 산지가 눈에 들어올 때까지 고르고 또 골랐다.

마침내 발견한 것이 지금의 대사리 임야였다. 당시의 대지는 멧돼지와 노루 등 야생동물이 뛰놀며 수풀이 우거진 청정지역이었다. 부엽토가 허리 높이까지 쌓인 모습을 보고 김 대표는 애초부터 성장 잠재력을 발견해 산지를 매입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안동 지역은 강우량이 적고 쾌적한 날이 많아 호두 재배에 적합한 기후 조건까지 갖췄으니 금상첨화라는 판단에서였다. 다행히 김 대표의 아버지는 그 시절 영동군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였다. 아파트와 토지 등 소유한 부동산이 많았던 것. 덕분에 김 대표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지금의 대사리 야산을 매입할 자금 17억 원을 어렵지 않게 마련할 수 있었다.

야산의 나무를 베고 흙을 다듬는 와중에 김 대표의 머리에 떠오른 아이디어가 산지의 ‘계단화’ 작업이었다. 이문호 박사의 자문을 얻어 아이디어를 현실화해 식재단지를 조성하는데 걸린 시간만 3년. 이 작업은 공간 활용도가 높아져 10만평의 면적을 그 이상으로 이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개인 자금을 투자해 산지 주변에 없던 길도 새로 냈다. 이렇게 해서 1997년 비로소 대산농원이 탄생했다. 대산 농원의 주력 분야는 호두다. 김 대표는 동의보감을 통해 호두가 피부를 윤택하게 하며 머리털을 검게 하고 기혈을 보호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호두는 불포화 지방산이 풍부해 혈중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킬 뿐 아니라 콩팥의 기능을 강화시키고 폐의 기능을 개선할 수 있다는 것. 호두가 건강식품으로 각광받기 시작하자 김 대표는 약용으로 쓰일 호두 재배에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지난 2006년 김형광 대표가 심은 10년된 호두나무 열매를 살펴보고 있다.


단골고객만 400여 명 확보 판로 탄탄

일명 ‘황금호두’는 개간을 시작한 지 14년차인 현재, 한 나무당 수확량이 40kg에 달한다. 많게는 80kg까지 열매를 맺기도 한다. 건강한 토지에서 자란만큼 수확량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또 소비자들에게 품질을 인정받아 단골고객만 400여 명을 확보했다. 서울 강남구 서초동, 방배동 지역에 거주하는 고객들은 한 번에 주문하는 양만 40kg이다. 판매자도 1kg당 단가가 3만5000원이라 40kg을 수확해 팔면 140만 원의 수입을 거둘 수 있다.

김 대표는 한 나무당 140만 원의 수입을 거둘 시 전체 4000그루의 나무를 통틀어 56억 원의 매출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총 4000그루의 나무에서 최대 80kg의 호두를 수확한다고 가정했을 때 매출이 112억 원에 달하게 된다.

아직 나무에 호두가 열리는 시점이며, 토양 관리 여부에 따라서 수확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목표인 연간 30억 원 매출을 달성하지 못했으나 지난 2010년 한해 매출로 10억 원을 달성했다. 김 대표는 올 해 매출이 15억 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목표인 30억 원 매출도 머지않아 달성할 것으로 예상한다.

작년에 이상 기온으로 타 농장에서 호두 수확량이 급감한 현상도 대산농원의 호두 판매고를 올리는데 기여했다. 유충이 많이 생겨 토종 호두의 전체 생산량이 계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나 대산농원의 품종은 병충해 없이 잘 자라 단연 생산량이 돋보인다.

따라서 “지난 한 해 대산농원의 호두 생산량이 전체 호두재배 시장의 20% 이상을 차지했다”는 게 김 대표 측의 설명이다.

유명 백화점에서도 물건을 납품해달라는 주문이 쇄도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단골 고객에게도 물건이 없어서 못 파는 실정”이라며 “입점 수수료가 높은 백화점에 굳이 납품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향후 생산량이 증가하면 납품할 계획이 있다.

현재 국내 L백화점에서 판매하는 호두는 1kg당 7만 원의 단가를 형성하고 있다. 이마저도 피호두에 해당하는 금액이고, 살호두(껍질을 벗겨낸 호두)는 1kg당 12만8000원에 판매되고 있다. 토종 호두 생산량이 감소하자 가격이 치솟은 것이다. 김 대표는 중국 정부 측에서도 황금호두에 관심을 보여 연락을 취해 왔다고 전했다. 따라서 올 3월 경 중국 대형마트에 수출할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의사의 길 포기하고 가업 승계

김 대표는 현재 농장을 아들 김현규(38)씨와 함께 운영 중이다. 김현규 이사가 농장에서 수확한 상품의 관리·유통 등 실질적인 경영을 도맡아 하고 있다. 김 이사는 미국 캘리포니아 치과대학을 다니던 중 스스로 학업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가업에 뛰어든 이력이 눈에 띈다.

김 대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김 이사는 의사로서의 명예와 수입이 보장된 삶보다, 농업을 발전시키는 일에 더 큰 가치를 뒀다. 지금은 서울대학교 농업경제학과에 진학해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계속 공부하며 호두와 매실 재배에 과학적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겠다는 포부다. 김 이사가 바이오산업 연구원에서 연구를 거듭하는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다.

현재 대산농원은 호두뿐 아니라 매실 나무 6000그루를 심어 재배 중이다. 매실은 구연산이 풍부해 소화 기능을 돕는 작용을 한다. 따라서 대산농원 측은 매실 엑기스와 매실즙을 가공해 판매하고 있다.

김 대표는 토종 매실이 1kg당 2000원에 판매되는 반면, 대산농원에서 생산된 매실은 7000원에 판매된다고 설명했다.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토종매실보다 구연산이 1.7배 많아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며 물량 부족 현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 김 이사는 경북바이오산업연구원과 공동 연구한 기능성 매실 엑기스를 선보이는 프로젝트에 매진하고 있다. 비듬나무에서 추출한 스쿠알렌을 배양시킨 매실 엑기스를 개발한 것.

스쿠알렌은 피부 미용, 노화 방지와 항산화작용을 돕는 기름을 말한다. 따라서 스쿠알렌이 배양된 매실 엑기스는 노화 방지에 관심을 두는 많은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끌 것으로 전망된다. 김 대표는 상품 제조 허가가 떨어지면 아들이 개발한 매실 엑기스가 시중에 출시될 것으로 예상했다.

호두 초콜릿도 김 이사의 아이디어다. 현재 호두 한 알당 단가를 계산하면 800원이지만, 이 호두를 가공해서 호두 초콜릿을 만들면 1000원 이상의 단가를 책정할 수 있다.

또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초콜릿과 접목시키면 호두의 소비층을 더욱 확대시킬 수 있을 것이란 분석에서 제품 개발이 시작됐다. 현재 호두 바와 호두 초콜릿의 임상 실험이 완료된 상태며, 오는 6월경 시중에 출시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산지 매입과 공장 설립에 많은 자본금을 들였다. 공장도 220평 규모로 설립됐다. 그 과정에서 대출받은 기록도 많다. 산지를 매입하는 초기 단계에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큰 도움이 됐지만, 이후로도 가공품 개발과 공장 설립·운영에 소요되는 비용이 컸기 때문이다.


열매 맺으면 매출 대비 순수익률 70%

애초 농장 경영을 구상했을 때는 3만평을 일궈 슬하의 3남매에게 각각 1만평씩 상속하려는 계획이었으나 점차 규모가 커지자 리스크를 우려한 부인의 반대가 거셌다.

그러나 지금은 대산농원의 미래를 내다보는 까닭에 가족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호두나무는 80년간 재배가 가능해 매년 호두가 40kg만 열려도 한 나무당 평생 1억1200만 원의 수익을 낸다. 얼마 전 추가로 10만평을 매입해 김 대표가 소유한 부지 면적만 25만평이다. 호두나무 1만 그루 소유는 먼 일이 아니다.

농지를 경영하며 동네 주민 등 인력을 고용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농장 부지 관리를 김 대표 본인이 해 육체 노동의 강도도 셌다. 기계가 들어가기 힘들 정도로 빽빽이 심어 놓은 나무 탓에 직접 올라가 흔들어 열매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계단으로 일구어 놓은 산지에서 풀베기를 하다가 굴러 떨어진 경험만 수 차례였다.

예초기(곡식이나 풀 따위를 베는 기계)로 풀베기 도중 쇳조각이 눈에 박혀 네 시간 가량 수술을 받은 적도 있다. 그러나 김 대표는 농장 경영이 체질이라고 말한다. 본인뿐 아니라 앞으로 후손들에게까지 경제적으로 넉넉한 삶을 보장해 줄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앞으로 여생을 대산농원 경영에 쏟겠다는 그는 “농업의 미래가 밝다”며 “매출 대비 순수익률이 70%에 달할 정도로 높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자연이 일꾼이라 그저 나는 호두를 따기만 하면 된다”며 “이 일이 천직이라 즐겁게 산다”는 그의 말에서 이제 곧 고희를 바라보는 삶의 여유가 드러났다.


크기 2배 ‘황금호두’ 상품성 만점

황금호두는 김 대표가 대산농원의 토력을 바탕으로 수확해 일반농원 품종보다 크기가 2배 이상 크고 껍질이 얇다. 인공화학비료 대신 천연거름을 뿌렸고, 소독이 필요 없는 청정지역에서 자라 품질이 뛰어나고 맛이 고소한 것이 특징이다.

김 대표는 자신만의 특별한 노하우로 황금호두를 길렀다고 전했다. 덕분에 묘목은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로 인기인데다 대산농원으로 묘목 구입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 그러나 김 대표는 “일반 토양에서 묘목을 기르면 실패할 확률이 크다”고 말한다. 호두나무는 뿌리가 땅에 깊이 박혀야 잘 자라는 까닭에 토양 관리가 중요하다.

이밖에도 평택, 원주, 강릉을 연결하는 선의 이남지역으로 경사가 15도 미만, 토심이 1.5m 이상으로 깊고 습하지 않은 산사면이 묘목을 심기에 적당한 곳으로 꼽힌다.
또 식재 후 6년은 지나야 4kg 이상의 열매를 수확할 수 있다. 따라서 10년 이상을 키워야 본격적으로 소득이 창출되기 시작한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투자·귀농자 임야 매입은 이렇게

산림을 경영할 목적으로 임야를 매수하고자 할 때는 관련 서류를 구비해 임야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시장·군수의 임야매매증명을 발급받아야 한다. 또 임야를 농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산지관리법에 따라 산지전용허가를 받아야 한다.

보통 임야를 매입하는 목적을 대규모 투자로 분류하지만 개인투자자가 공동투자의 분할기법을 활용해 임야를 매수할 수도 있다. 또 사전에 정확한 컨설팅을 받고 개발 방법을 연구하고, 해당 군청에서 개발계획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장기 투자와 귀농 목적의 경우 주변 환경과 입목 상태를 살피는 것은 필수다.

백가혜 기자 lita@asiae.co.kr


50플러스  |  econovill@econovill.com  |  승인 2011.01.27  22:3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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