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공허함 떨친 문화 발원자로서의 삶… 아내도 흔쾌히 동행

“평면회화나 조각, 설치미술 등 작가들의 작품 메시지를 잘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은 어떤 것일까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미술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서울 삼성동 경기고 부근 자택의 담을 허물고 최근 ‘이루미술관’을 개관한 건축가 이광만(60)씨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선택에 대해 강한 신뢰와 자긍심을 보였다.

그는 인간과 시간, 그리고 공간을 채우는 가장 역동적인 건축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공식 직함은 포스코 센터, 영풍빌딩, 한국은행 본관, 제주도립미술관 등의 건축 디자인을 리드해 온 (주)간삼건축의 대표이사 회장.

"선(線) 관점에서 건축의 공간구성이나 미술의 유려한 곡선은 사람을 중심에 놓고 보면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건축가로서 삶의 결이 표출되는 디자인을 지향하는 그에게 철학이나 음악 못지않게 미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고 그러한 인연이 닿아 있었을 것으로 느껴졌다.

“자녀들 출가시키고 부부 둘만 남게 되었는데 허전함이 크더군요. 상념에 빠져 앉아 있는데 문득 문화 발원자로서의 건축가를 강조해 온 나의 모습이 스쳐지나갔어요.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미술관 제안을 했는데 불평 없이 선뜻 응해주더군요. 세간을 한곳으로 몰아 옮기는 것이 주부로서 쉽지 않았을 텐데 아내가 그러더군요. 나눔으로써 불편한 공간은 행복의 산실이라고.”

연건평 181㎡(약 90평) 지상2층 중 1층 미술관 전면은 유리 사이로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여 열린 공간 이미지를 한껏 살리고 있다. 차분하면서도 깔끔한 실버 그레이(silver gray) 색채와 벽돌의 정감어린 외관은 정원과 어우러져 집을 다감한 느낌의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켜놓았다.

여기에 마치 사람이 서서 한손을 들고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맞이하는 듯한 ‘LEEROO’ 설치간판을 입구에 배치해 ‘인간 존중’ 느낌을 주면서도 모던한 그의 디자인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자연적인 채광과 내부의 조명 등을 고려했어요. 어린 아이와 연인이 그리고 부모님을 모시고 주택가 길을 오고가다 ‘어, 미술관이 있네?’ 하면서 관람하고 작가는 대중과 소통하고 그래서 예술을 우리 삶 속으로 끌어들일 수 있도록 친근한 공간을 나누고자 실용성을 중시했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생활 공간을 기꺼이 나눔으로써 작가들에게는 무상으로 공간을 나누고 창작 의지를 돋우는 깊은 배려가 담겨져 있다.

“건축과 회화에서 중요시되는 것이 또 있는데 바로 생명력이에요. 이것은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지요. 저는 이것이 이웃과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믿음의 근원이라고 확신합니다. 때문에 개개인의 새로운 창조의 에너지는 주변과의 조화에서 생성되는 부분이 많아요.”

이 회장은 자신과 같은 인문학적 지도자들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솔선수범이 많이 나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고 했다. 여러 문화행사에 후원 등을 한 적도 있었지만 늘 뭔가 만족스럽지 못한 갈증이 있었다는 그는 미술관 개관으로 건축가로서 정체성에 대해서도 더 탄탄해졌다고 했다.

“건축은 늘 새로운 것의 서술입니다. 담을 허물면서 저의 집은 파워 하우스가 되었어요.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때문에 건축가로서도 저는 거듭 난 것이지요.”

권동철 문화전문 기자 kdc@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