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한양에서 오셨어요?” 머리에 탕건을 쓰고 농민 작업복을 차려 입은 남자가 고무신을 신으며 주막 밖으로 나와 객을 맞는다. 올해 63세 송기준씨. 흙벽에 짚으로 엮은 지붕을 얹은 초가집 27채가 너른 뜰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곳 한옥마을의 주인이다. 전라북도 정읍에 자리한 ‘송참봉 조선동네’는 100년 전 우리 조상들이 살던 마을의 모습을 복원해 놓은 재래식 초가 마을이다. 약 1만 평 규모의 대지에 구들방, 주막, 서당, 뒷간, 곳간, 축사 등을 갖춰놓고 하나의 마을을 구성했다. 마을에서는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했다. 모든 것이 현대식 환경과 거리가 멀었다.

초가집에 토속밥상 뒷간 경험까지

빗장 열린 닭장 속에서 나온 닭과 오리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마당에는 수십 개의 장독이 가지런히 줄지어 서 있다. 밭에는 상추와 각종 채소가 자라고 서정주 시인의 <추천사>에 나올법한 그네가 춘향의 노래를 재현한다. 공용 화장실도 이름이 ‘뒷간’이다. 이곳에 손님용으로 내주는 방만 모두 60여 개. 동시에 200명도 투숙이 가능하다.

마을은 ‘벼슬하고 싶어서’ 송참봉이라 스스로를 칭하는 송씨의 꿈이다. 약 7년 전, 서울에서 아내, 두 딸과 함께 정읍에 귀향했다. 송씨는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 9세 때 서울로 이사했지만 그 전까지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던 기억이 늘 가슴 속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종손인 송씨는 서울에 거주할 때도 집안일이 있을 때마다 정읍에 내려왔다.

살고 있는 지역보다 친숙한 이곳에 터를 잡고 옛 마을을 복원하겠다고 결심은 송씨의 숙원이 됐다. 세대가 거듭되면 옛날 조상들이 살던 집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전통 초가 마을을 제대로 한번 만들어보자’는 계획으로 만 평 땅을 매입했다. 땅 값은 평당 4만 원이라 총 4억 원이 들었다. 짚, 황토, 소나무 등 필요한 재료를 구하고 마을 주민들을 고용해 마을을 지었다.

지역의 공가를 헐고 거기서 나온 재료를 재활용했다. 초가 한 채를 짓는 데는 큰 돈이 들지 않았다. 특히 현대식 건물과 비교하면 초가 건축 비용은 매우 저렴한 편이다. 그러나 인건비가 많이 들어 마을을 건립하는데 약 25억 원의 비용이 소모됐다. 사재를 털었고 일부는 대출을 받아 송씨는 마을에 과감하게 투자했다.

현재까지 송씨는 만 평 중 절반 정도의 부지에 집을 지었다. 나머지 5000평에도 지속적으로 투자해 총 40채의 초가를 지을 계획이다.

주말 손님 100여 명…갈수록 인기

송참봉 조선동네는 후한 인심덕에 관광객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팻말에 적힌 숙박료를 보니 성인·중고생 1만 원, 초등학생 5000원이다. 하루에 한 사람당 숙박료가 1만 원이라니 부담 없이 찾을 만하다. 송씨는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많은데, 네 식구가 오면 4만 원이라 그리 싼 편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인터넷 블로거들은 이만한 환경에 이 정도 가격을 이곳의 최대 장점으로 꼽는다.

평일에는 투숙객이 10쌍 정도지만, 주말에는 100여 명 이상이 방문한다. 성수기에는 최대 180명까지 찾기도 한다. 송씨는 충분히 운영해 나갈 수 있는 수입이라고 설명한다.

이곳에 두 채 있는 주막은 식당 역할을 한다. 평일 오후 2시를 넘은 시간에도 식사하러 방문한 손님들로 붐볐다. 심지어 광주, 대전, 전주에서 오는 단골 고객들도 많다.

닭백숙(3만 원), 참봉밥(5000원)을 포함해 4~5가지의 메뉴가 판매된다. 주막답게 막걸리를 한두 잔 마시는 손님들도 눈에 띈다. 주변에 식당이 없어 마을에서 숙박하는 손님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식사를 한다.

음식 판매로 나오는 수입도 꽤 될 터였다. 식사 재료는 대부분 마을에서 길러 자급자족하거나, 근방의 농가에서 조달한다.

특히 주말에는 주막이 눈 코 뜰 새 없이 바빠 동네 주민들이 일손으로 나서기도 한다. 정규 직원은 5명이지만 필요할 때마다 주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단체로 관광하러 오는 학생들을 위해 송씨는 전통 체험 기회도 마련했다. 서당에서 옛 조상들의 생활상을 가르치는가 하면 마당에서 윷놀이, 제기차기, 팽이치기, 연날리기 등 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곳에는 TV도 없고 인터넷도 연결되지 않는다. 손님이 묵는 방에는 오로지 이불과 옷장, 작은 탁자만 놓여 있다. 그야말로 옛 생활을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한 구조다. 송씨는 “덕분에 가족 손님들이 서로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갖는다”고 말했다. 가족끼리 같이 흙을 밟으며 산책하고 대화를 나누다 따뜻한 온돌에 누워 잠드는 일이 이곳의 매력이다. 현대 문명과 동떨어진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즐기면서 고요히 평정을 되찾는 공간이기도 한다. 1~2인 고객 역시 많이 찾는 이유다.

단체로 관광하러 오는 학생들을 위해 송씨는 전통 체험 기회도 마련했다.
서당에서 옛 조상들의 생활상을 가르치는가 하면 마당에서 윷놀이, 제기차기,
팽이치기, 연날리기 등 민속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평생 모은 25억 투자한 옛것 사랑

송씨의 인생 1막은 달랐다. 젊은 시절에는 가구 공장을 운영했다. 25년간 10여 명의 부하 직원을 두고 있었다. 소규모 회사였지만 돈벌이가 나쁘지 않았다. 초가집 27채를 지을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러나 25년째 같은 생활은 송씨의 삶을 색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계기가 됐다. 물론 늘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던 꿈이 인생을 전환하는데 가장 큰 동기를 부여했다. 그리하여 10여 년 전인 53세 때, 충분한 자금을 마련한 순간부터 ‘송참봉 조선동네’가 본격적으로 송씨의 머릿속에 구상되기 시작했다. 7년 전에 마을을 짓는 공사를 시작해 4년 반의 시간이 소요됐다.

명색이 사장이었지만 마을을 짓기 위해 구상한 계획이 뜻대로 움직이지만은 않았다. 여러 사람을 모아 일을 하다 보니 계획이 자꾸 어긋났다. 사람마다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또 현대식 건축자재를 사용할 수 없었던 송씨는 “빈 집을 헐어 구들, 주춧돌 등 전통집의 재료를 구하기가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관광객들을 위해 오픈한 시기는 불과 2년 반 전이다. 송씨는 앞으로 마을이 완성되는데 10여 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에 녹는 흙의 특성상 비가 오는 날씨에 취약한 초가집은 유지·보수 작업에 많은 노력을 요한다. 따라서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 송씨는 ‘초가집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지금은 대부분 일하는 사람들이 40~50대의 나이든 장년층이지만 송씨는 20~30대의 청년들도 고용할 계획이다. 전통 초가를 짓는 법과 옛 생활상을 전수하려는 생각에서다. 농사 짓는 법, 장 담그는 법, 소·염소 등 가축 기르는 법도 젊은 사람들에게 가르쳐 우리 전통의 대가 끊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실제로 농촌 생활에 호기심을 가진 젊은이들이 방문하기도 하고 전화로 이곳 생활에 대해 문의하기도 한다.

또 한옥마을이 인기를 끌자 마을 건립이나 사업에 대해 문의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송씨는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농촌으로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언제든 응원하고 싶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꼭 한옥마을 건립이 아니더라도 50대 이후에 직업을 바꾸려는 이들은 이미 충분한 시간에 걸친 치밀한 계획이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송씨 역시 마을을 건립하는데 크고 작은 어려움이 따랐다.

그가 이러한 실패의 변수들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까닭이다. 조선동네로 유명세를 탄 송씨는 “앞으로 5년 내에 서울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송참봉 조선동네를 알게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 지금은 안전사고 방지와 고객들의 편의를 위해 실내에 백열등을 설치했지만 2년 내에 마을이 제 모습을 갖추면 전구도 모두 없앨 계획이다. 그야말로 전통 문명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백가혜 기자 lita@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