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매년 5월이 되면 어김없이 언급되는 인물이 있다. 부처(석가모니)다. 부처의 탄생일인 음력 4월 8일(석가탄신일)이 매년 5월에 끼어 있기 때문이다. 부처와 함께 5월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다. 바로 연꽃이다. 5월은 연꽃이 활짝 피는 계절이 아니다. 하지만 활짝 핀 연꽃의 모습은 5월에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전국의 사찰과 길거리에 걸린 수많은 연등이 연꽃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문화 속에서 연꽃은 매우 존귀한 꽃이자 종교적 상징물처럼 쓰여 왔다. 크리스트교 성경에 등장하는 ‘어린 양’과 비슷한 이미지다. 불교와 연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연꽃은 부처의 탄생 과정에도 등장하고, 생전의 설법에서도 중요한 소재로 쓰였다.

‘숫타니파타’에는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대목이 나오기도 한다. “말이 없이도 마음과 마음이 통하여 깨달음을 얻는다”는 ‘염화시중(拈花示衆)’의 미소와 함께 부처가 제자들에게 들어 보인 것도 다름 아닌 연꽃이다. 부처가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불화나, 연꽃의 이름을 딴 불교 경전까지 있는 것을 보면 연꽃을 향한 불교 신자들의 존경과 애정은 대단하다.

한국 고전 문화 속에서도 연꽃은 비범한 이미지의 꽃이다. 눈 먼 아버지를 위해 바다로 뛰어든 심청이 환생해 인간 세상으로 돌아올 때 탔던 것이 연꽃이다. 조선시대 궁궐 지붕에 그려진 형형색색의 단청에 자주 등장하는 꽃도 다름 아닌 연꽃이다. 유교 사회에서 연꽃은 군자(君子)를 상징하는 꽃이자 ‘다산의 상징’이라는 이미지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귀농 7년차를 맞은 차기설 대표의 화성 연꽃농원 비닐하우스에는 5600분(盆)의 연꽃이 자라고 있다. 7월 경이면 다양한 색채의 연꽃이 농원 안팎을 장식해 장관을 연출한다.


그래서일까? 연꽃은 흔히 보는 가까운 꽃이라고 하기보다 왠지 다가가기 어려운 꽃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연꽃은 보이는 것과 달리 어려운 꽃이 아니다. 그 어느 꽃보다 쉽게 길러서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할 수 있는 꽃이다.

“연꽃은 범접하기 힘든 꽃이 아니다”라고 외치며 ‘연꽃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인물이 있다. 차기설(54) 제부도연꽃영농조합법인 대표다. 그는 기자에게 연잎차를 내밀면서 연잎차의 효능을 자랑했다.

“연잎차는 남녀노소에 좋은 민속차입니다. 혈전을 없애주기 때문에 피가 맑아지고 순환기 계통에도 좋아집니다. 무엇보다 다이어트에 특효약이기 때문에 현대인들에게 어울리는 기호식품이 될 수 있습니다.”

하루 두 번 바닷물이 빠져야 들어갈 수 있는 신비의 섬 제부도를 코앞에 둔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에 차 대표의 농장이 있다. 1만6500㎡ 규모에 펼쳐진 연꽃 농장에는 비닐하우스 4동에 총 5600분(盆) 가량의 연꽃이 심어져 있다.

바람 쐬러 갔다가 ‘연꽃 대박’ 건졌다

아직은 파종기간이라 활짝 핀 연꽃 대신 푸른색 이파리밖에 볼 수 없지만, 7월 즈음이 되면 형형색색의 연꽃이 농장 곳곳을 채워 장관을 연출한다고 한다. 그는 연꽃이 결코 키우기 어려운 식물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늘 관심을 기울여줘야 하는 난에 비하면 훨씬 손이 덜 가는 식물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연(蓮)은 수생 식물입니다. 물과 햇볕이 없으면 죽는 식물이죠. 겨울이 되면 연꽃이 얼어 죽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얼어 죽는 것이 아니라 말라 죽는 것입니다. 겨울이 되면 대기로 수분이 쉽게 날아가기 때문에 물이 부족해지죠. 그 때 물을 제대로 채워주지 않으면 연은 죽습니다. 물을 잘 채워주고, 햇볕만 잘 들게 해준다면 연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조금의 관심만 있다면 집에서도 충분히 잘 키울 수 있는 식물입니다.”

서울 출신인 그가 화성에서 연꽃 농장을 운영한 것은 올해로 만 6년째. 2005년 4월 경 지인의 소개로 화성에 내려와 연꽃을 키우기 시작했다. 경기도 내에서 연꽃을 키우는 전문 농장은 그의 농장이 유일하다. 도내에 두 곳 정도의 연꽃 농장이 더 있지만, 대부분은 지자체가 관상용 연꽃 보급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상업적 목적으로 연꽃 농업을 하고 있는 곳은 차 대표의 연꽃 농원이 유일하다.

서울에서 평범한 회사원으로 일하던 그는 2000년대 초 귀농을 결심했다. 그는 도시의 복잡한 환경과 과중한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싫었다고 회상한다. 그가 원했던 ‘사람 사는 세상’과 현실은 거리가 너무 멀었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스트레스가 덜한 한적한 곳에서 새로운 삶을 소망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귀농이었다.

하지만 그가 무작정 내려온 것은 아니었다. 치밀한 준비 과정이 있었다. 귀농을 조심스레 결심하던 때 그는 여러 가지 작물을 후보로 올려놓고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제가 귀농을 결심했을 때 블루베리와 포도를 작물 후보로 올려놨습니다. 특히 그 때는 블루베리 농사가 붐을 이루던 시대였어요. 블루베리 농사를 지어볼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더군요. 블루베리는 주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작물인데, 우리나라는 블루베리 주스를 가공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다른 작물로 눈을 돌렸죠.”

다른 작물 중에서 연꽃을 고른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현실의 삶에 지쳐 귀농을 결심하고 여러 가지 작물을 찾던 중에 우연히 그의 눈에 들어온 꽃이 바로 연꽃이었다. “몸과 마음이 지쳐 있어서 바람을 쐴 겸 연꽃 농장에 갔는데, 연꽃을 보니 ‘저게 내가 키워야 할 꽃이다’라는 생각이 불현 듯 들더군요.

그래서 연꽃을 키우는 방법과 시설 운영 방식 등을 알아보니 크게 어렵지 않겠다고 느꼈어요. 그게 계기가 되어서 연꽃 농장을 운영하게 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날 그 연꽃 농장으로의 여행이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던 것 같습니다.”

그는 연꽃 농사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연꽃 농사를 통한 수익 창출 구조와 가공 후 간편성 등을 면밀히 검토했다. 귀농 시작 단계에서부터 철저한 계산이 이미 깔려있던 것이다. 특히 전통 방식의 연잎차, 연차 가공 방식이 다른 작물에 비해 간편하고 자본이 적게 든다는 장점에 주목했다.

계획·대안 없는 ‘무대포 귀농’, 100% 실패

그는 안팎으로 ‘성공한 귀농인’으로 불린다. 화분에 담은 연꽃은 물론 연잎과 연근을 달인 연잎차와 연차는 오프라인 농원은 물론 인터넷에서도 호평을 얻고 있다. 그는 “‘고객에게 늘 믿음을 주자’는 생각으로 사업을 하다 보니 호평을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동료와의 신뢰 관계인 것처럼,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과의 신뢰 관계입니다. 고객 관리에 있어서 가장 첫째가 되어야 할 덕목은 믿음입니다. 고객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 사업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는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 농업인이기도 하다. 단순히 연꽃이나 연근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근 발효 효소를 만들어 차를 만드는 등 농업에도 벤처 정신을 접목하고 있다. 그의 노력은 지난해 말 열린 ‘제9회 벤처농업 창업경연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하는 열매를 얻었다. 그는 농촌에서 보기 드물게 교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엘리트 농업인이다. 그는 꾸준한 연구와 노력만이 농업이 발전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말했다.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이들, 특히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그는 철저한 계획을 주문했다. 아무런 계획과 대안 없이 후사를 준비하다 보면 결국 마지막은 실패의 쓴맛을 맛본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도시 사람들이 힘들 때마다 하는 생각 중에서 가장 한심한 생각이 뭔지 아세요? ‘다 때려치우고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어야겠다’는 생각이에요. 도시 사람들의 생각처럼 농사는 아무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성공하기는 힘듭니다. 특히 아무런 계획 없이 농촌으로 내려오는 ‘무대포 귀농’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체계적인 사업계획서를 제출한다는 생각으로 치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그는 “농업은 컴퓨터 칩을 만드는 것만큼 어렵다”면서 “먹을거리에 대한 철저한 철학이나 계획이 있어야 귀농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백현 기자 jjeom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