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꽃피는 산골, 어릴 적 살던 고향을 찾아 그 시절 흙 밟고 꽃내음 속에서 뛰놀던 기억을 되찾고 싶은 남자가 있다. 정신없이 사회생활을 하고 보니 어느덧 지긋이 나이가 들어 지위도 얻고 명성도 얻었지만 건강이 나빠지자 다 부질 없게 여겨졌다.

원하는 일을 한 과거에 대한 후회는 없다. 그러나 마음에 오랜 세월 묻어온 향수를 되살리고, 잃었던 건강도 되찾고 싶었다. 고향인 전라남도 광주에 터를 잡고 완연히 다른 인생의 전환을 시도한 이용규(58)씨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야말로 인생지사 새옹지마다. 새로운 인생에서는 그가 잃었던 것을 되찾고 두 번째 성공까지 거머쥘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고향에 사둔 땅 인근이 신도시로

그는 본래 기자였다. 기자 생활 30년간 안 거쳐본 부처가 없었다. 경제 일간지에서 두 번이나 편집국장을 역임했다. 케이블 방송의 부동산 관련 채널에서도 일했다. 편집국장을 두번이나 거치다보니 그의 손을 거쳐간 후배들만 해도 수두룩했다. 취재하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두려움 없이 도전하고 어디 가서 일 못 한다 소리는 안 들었다고 자부하는 이 사장은 자신의 입장을 ‘갑’이라고 표현했다. 하고 싶은 취재는 다 해봤다는 얘기다.

그는 기자 생활의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케이블 방송에 발을 들여놨지만 그때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는 위기를 맞았다. 허리 쪽 건강이 나빠지자 제대로 앉아서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허리는 한 번 나빠지면 평생 고생이라고, 그는 별다른 방도 없이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30년 기자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2007년, 평생 직업이라고 여겼던 기자를 그만두고 나니 특별히 무엇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무작정 고향으로 내려갔다. 나이가 들면 고향에 내려가려는 계획이 늘 있었던 터라 논 몇 평을 사 둔 게 있었다. 당시 광주시 광산구 수완동 주변은 이미 신도시로의 개발이 한창이었다. 아파트 단지가 새로 들어서 8만 명이 입주하는 프로젝트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그도 늘어날 주변 인구를 대비해 자신이 가진 땅에 건물을 지어 임대사업을 할까 고민했다. 그러나 그럴 바에 자신이 직접 사업을 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미식가였던 그는 특히 음식 맛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결심하게 된 것이 음식 장사였다. 그 중에서도 고급 음식점을 차리고 싶어 소재를 한우로 택했다.

한우 고기는 어떤 종류를 선택하는지가 관건이다. 그는 함평천지 한우의 명성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전라남도 함평군은 전국에서 최초로 한우산업특구로 지정될 만큼 한우 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곳. 또 소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사료를 먹여 고기 맛이 좋기로 유명했다. 당시 국내에서 서울 워커힐 호텔 식당 단 한 군데에만 공급되는 최고급 한우였다.

그는 함평천지 한우를 공급받고자 함평 축협으로 걸음 했다. 물론 조합장이 쉽게 승낙해줄 리 없었다. 고기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검증받은 식당에만 공급하는데 아무 경험도 없는 그에게 고기를 내줄 리 만무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6개월 동안 꾸준히 조합장을 찾아가 설득했다. 마침내 계약서에 조합장의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건물을 설계하는 데는 건축가뿐 아니라 그의 생각도 전적으로 반영됐다. 3층짜리 건물을 짓는데 고급 식당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내부 인테리어가 중요했다. 인테리어 회사 관련 일을 했던 아내의 도움을 받아 노출된 천장과 주변 경관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벽면 창문 등을 설치하고 디자인 소품들로 내부를 꾸몄다. 다른 고깃집과 달리 온돌석은 마련하지 않고 전부 테이블 좌석으로 마련했다. 단체석 공간도 따로 갖췄다. 180석을 갖춘 그의 한우 음식점은 이렇게 탄생했다.

상호는 우가미가(牛家味家). 스스로 “기자 생활밖에 할 줄 몰랐다”고 말하는 그가 새롭게 이용규 사장의 칭호를 얻었다. 단지 맛에 대해서만 민감할 뿐 고기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없었던 이 사장은 이후 경기도 안성 소재의 축산물 위생 교육원에 갔다. 그곳에서 일주일 동안 합숙하며 고기에 대해 기초적인 교육을 습득했다.

준비 기간은 2년이었다. 그동안 음식 맛, 서비스, 식당 분위기 세 가지에 포커스를 맞춰서 연구해 왔다. 음식 맛은 스스로 전국의 맛집을 다 돌아다니며 연구했다. 등심, 안심, 살치살 등 쇠고기의 맛있는 부분을 7~10일 정도 숙성시켜 최상의 상태로 제공한다. 고기는 상추에 싸 먹어야 제 맛이라는 인식을 떨치고 대신 상추 겉절이를 도입했다. 고기를 찍어먹는 소금은 직접 일 년에 두 번 신안 앞바다의 자은도라는 섬에서 사온다. 5년 묵은 소금에 당뇨병 예방에 좋은 약재 함초를 볶아 맛 좋고 건강까지 생각한 양념을 제조했다.

반찬에 울릉도 특산물인 명이나물을 포함시켜 야채의 깊은 맛을 더했고, 기본 국으로 맑은 국물의 선지국을 제공해 시원한 맛을 냈다. 자체 떡갈비도 개발했다. 광주 송정리 지역은 떡갈비 골목이 있을 정도로 떡갈비가 유명한 까닭에 이 사장도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섞어 양념을 입힌 떡갈비를 메뉴로 만들었다. 10명가량 되는 직원 교육도 철저히 시켰다. 서비스 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외부에서 강사를 불러 직원 교육에 투자했다.

식당 분위기에는 주변 경관이 한 몫 한다. 우가미가 오른쪽에는 큰 연꽃 방죽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푸른 연꽃 잎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지만, 한 달쯤 후에는 연꽃이 무성하게 피어난다는 게 이 사장의 설명이다.

가게 옆에 자리 잡은 왕버드나무는 450년 나이를 자랑한다. 광주 보호수로 지정된 귀한 나무로 또 하나의 구경거리다. 가게 마당에 이 사장이 직접 심어놓은 꽃과 나무, 그리고 솟대까지 눈에 띈다. 우가미가는 어느 곳 하나 이 사장의 세심한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이재용 사장이 들러 음식 맛 칭찬도

2년 전 가게를 오픈한 후 이 사장은 준비기간 동안 일궈 놓은 맛과 서비스 면에서 최상을 유지하는데 전념하고 있다. 만년 ‘갑’이었던 그가 ‘을’의 입장이 돼 성심성의껏 손님을 맞는다고 설명했다.

평일에는 100명가량의 손님이 방문한다. 주로 비빔밥 같은 점심 식사 메뉴를 찾는 손님이 많다. 손님이 제일 많이 찾는 날은 목요일부터 주말까지다. 이때는 한우가 제법 잘 팔린다. 우가미가의 한우는 단가가 150g에 3만5000원으로 서울 지역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인터넷 창에 광주 우가미가를 입력하면 직접 방문한 고객들의 호평이 자자하다. 가게 위치상 차로 이동하는 고객이 많아 소문을 듣고 찾는 고객이 대부분이다. 근처에 있는 삼성전자 광주 공장에서 방문하는 단체 손님도 꽤 많다. 이 사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광주공장에 방문했다가 임원진 60여 명과 함께 우가미가를 찾은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당시 이재용 사장이 고기를 비롯해 가게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고 평해 뿌듯함을 느꼈다.

이 사장은 손님맞이에 다양한 방법을 도입하기도 한다. 5월은 가정의 달로 가게를 찾는 가족 단위 손님이 늘 것으로 예상, 가족을 위한 이벤트를 마련했다. 부부 방문 시 와인을 제공한다거나 가족 방문 시 어린이 고객을 위해 떡갈비를 제공하는 이벤트가 호응을 얻고 있다.

수입의 5%는 늘 홍보 활동에 사용한다. 기자 출신답게 TV 광고나 지역신문, 인터넷 등을 활용해 홍보하는 법에는 도가 텄다. 명절에는 불고기를 만들어 직원들과 직접 보육원이나 고아원 등 사회복지시설에 나누어 주기도 한다. 또 자신의 땅 중 남는 땅은 근방의 주민들이 직접 농사지을 수 있도록 내 준다.

5~6월이면 경관이 아름다운 연꽃 방죽을 활용, 마을 청년회에 연꽃 축제를 제안해 작년까지 두 번 열렸다. 축제를 소재로 사진 공모전을 직접 열어 입상작을 선정하고 상금을 수여하기도 했다.

이 사장은 수입만 바라보고 이 지역에서 장사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고향을 살기 좋고 아름다운 곳으로 보존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매일 아침 밭에서 일을 하며 건강도 많이 좋아졌다. 좋은 공기를 마실 뿐 아니라 날마다 하는 밭일이 운동이 돼 자연 치유 효과를 얻게 된 것이다.

이 사장은 스스로를 ‘은퇴 없는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80~90세를 넘어도 마음껏 장사할 수 있도록 터를 일군 것을 축복이라 여긴다. 우가미가 일대를 맛집 거리로 만들겠다는 포부도 있다. 주변에서 요식업에 관심을 두고 있는 지인이 있으면 자신의 계획에 동참하도록 제안하기도 한다.

과거에 부동산 담당 기자로 일했던 경력이 길어 이 사장은 대지를 매입하고 활용하는 일에 특히 관심이 많다. 지속적으로 주변에 사놓은 땅도 꽤 넓다. 우가미가 바로 옆 부지에는 또 하나의 건물을 지어 스크린 골프장으로 활용하도록 임대를 냈다. 주차장만 차 100대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됐으며, 남은 공간에는 패밀리 레스토랑 등 주로 요식업 계통 종사자에 임대를 내 줄 계획이다.

건물 뒤편 조그마한 야산에는 벤치와 정자 등을 마련, 향후 야외 호프로 활용할 생각이다. 공교롭게도 우가미가는 오른편으로 시골 경관이, 왼편으로 신도시 풍경이 함께 어우러진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5년 뒤에는 이곳이 지역 특성을 살리고 빈 땅도 활용한 광주의 명소가 되어 있을 겁니다”라고 말하는 이 사장의 자신감이 고향 땅 아니면 어디에서 나올 수 있을까.

백가혜 기자 lita@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