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일과 자녀 양육 등 그간 인생의 노고에 치여 지친 50대들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삶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 마음 맞는 이들과 풍성한 교류의 장에 동참하는 이들, 그 모임 속으로 들어가 보니 목적도 내용도 다양하다.

40대부터 70대를 아우르는 세대, 그들의 에너지는 강했다. 마음 맞는 이들이 삼삼오오 모이니 외로움도 달래고 자기계발에도 일조해 의욕이 절로 샘솟는다. 어떤 이들은 “청춘의 열정이 되살아났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밝은 긍정의 힘과 에너지의 원천은 무엇일까. 그들의 특별한 만남을 살펴봤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취미 공유하며 토론과 파티

프랑스의 전통적 사교모임의 장인 ‘살롱’은 18세기 고급문화의 주류를 형성했다. 이곳에서 지식인들은 예술과 지성에 대한 담론을 펼치고 사상과 철학을 향유했다.

지금은 이 문화가 거의 사라졌다지만 서양에는 아직도 살롱 문화가 곳곳에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는 살롱 문화가 어떠한 형태로 정착했을까. 중장년층을 위주로 구성된 국내 사교모임은 살롱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고유의 색을 가졌다.

각자의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을 하나의 울타리 안에 결속시키는 요인은 공통의 관심사다. 주로 직장,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형성된 커뮤니티는 취미 생활을 타인과 함께 하기 위해 개설됐다. 정기 모임을 통해 취미 공유가 이뤄지니 회원 간의 친목은 자연히 따라 붙는다.

50대 이상의 시니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임 중 다수는 와인과 책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임 중 하나가 독서클럽이다.

독서는 나이나 성별, 직업 등의 개인적 차이를 불문하고 공유될 수 있는 활동이기에 스스럼없이 동호회 참여를 가능케 한다. 대체로 한 달에 한 번 정기모임이 열린다.

이들은 주로 오프라인 카페를 모임 장소로 정한다. 사전 준비는 필수다. 그 달의 지정도서를 읽어야 하는 것. 읽은 책의 내용을 토대로 자유롭게 토론을 펼친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대 앞에 자리 잡은 한 북카페&와인바는 오전부터 밤 늦은 시간까지 운영된다. 이곳은 2층에 고객들이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도서가 진열돼 있으며 바비큐 파티를 즐길 수 있는 테라스까지 갖추고 있다.

저녁 식사 후 늦은 밤 모인 회원들은 10시를 넘은 시간에도 열띤 토론을 펼쳤다. 책 한권에서 시작된 토론이 회원들의 개인적인 관심사로까지 이어진다. 칸트와 공자의 철학을 논하기도 한다.

이 모임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와인이 함께 한다는 것. 가게 사장이 문학에 관심이 많아 본인이 직접 토론에 동참한다. 40~50대로 구성된 네댓 명의 회원들은 가게에서 파는 와인을 한 모금씩 음미하며 각자의 생각을 공유한다.

주로 주부 회원이 주를 이루는 한 인터넷 독서클럽은 매달 이곳에서 정기 모임을 개최하고 테라스에서 바비큐 파티를 연다.

와인 마니아들이 모여 사교 모임을 형성하기도 한다. 모임은 다양한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신규영 와인마케팅 경영연구원 부원장은 10개가 넘는 와인 동호회를 운영한다.

그 중 신 부원장이 총무를 맡고 있는 ‘분당 CEO 모임’은 매월 둘째 주 목요일에 열린다는 이유로 이름이 ‘두목회’다. 주로 중소기업 CEO들로 구성된 이 모임에 회원들은 각자 와인 1병씩을 지참해 온다. 미국식 포트럭(Potluck) 파티를 연상케 한다.

신 대표는 “전 세계 와인 종류를 다 합치면 10만 가지가 넘으니 와인을 하루에 1병씩 따도 다 맛볼 수 없는 정도”라며 “와인을 마시기에 인생은 너무 짧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체로 와인 동호회가 3~7년씩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회원들 간의 신뢰나 친목의 깊이도 그만큼 두텁다.

왕성한 교류의 장을 형성하는 또 하나의 모임은 댄스모임이다. 살사, 라틴 댄스 등 종류가 다양하다. 40대만 넘어서도 춤 배우기에 늦은 나이라며 질겁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뒷심을 다지는 이들은 춤을 통해 인생의 활력소를 얻는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서는 매주 토요일 ‘살사유’ 회원들의 모임이 이뤄지고 있다. 춤을 배우려는 40~50대 장년층이 모여 열정적으로 스텝을 밟는다.

전국에 몇 군데의 지부를 두고 운영되는 ‘1004 토탈댄스’의 회원들은 50대에서 7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하다.

서울시 성북구 안암동에 위치한 토탈댄스 지하 연습실. 20명가량의 회원들이 탱고, 블루스, 지르박 등 사교댄스에 한창이었다. 이곳에서 춤을 배운 회원들은 강사 자격증을 취득해 개인 수업에 나서기도 한다.

취미로 시작한 춤으로 용돈벌이까지 하는 셈. 안암동 지부를 운영하는 진용자(61) 원장은 “춤을 배우고 우울증을 치료한 사람도 많다”며 “꾸준한 연습을 거쳐 전국대회에 출전해 입상한 경험도 다수”라고 밝혔다.

춤 연습 중간에 주어지는 휴식 시간에는 대화가 그칠 줄을 모른다. 그야말로 밝고 건강한 사교 문화가 꽃피는 장이다.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삼정동에서는 이색적으로 종교 단체에서 댄스 모임이 운영되고 있다.

춤을 배우기 원하는 이들이 삼정동 성당의 강당을 빌려 모였다. 부부로 구성된 이곳 ‘M.E’라는 단체의 회원들은 웰빙댄스, 레크댄스, 밸리댄스 등의 안무를 배운다. 건강도 증진시키고 부부간의 금슬도 쌓기 위한 목적이다.

모임은 매주 토요일에 열리며, 자체적으로 외부에서 강사를 초빙해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2개월째 강습 중인 이안순(51) 강사는 “요즘은 ‘사랑의 배터리’ ‘당신이 최고야’ ‘어부바’ 등 신나는 트로트 및 가요에 맞춰 진도를 나가고 있어 회원들의 반응이 뜨겁다”고 말했다.

50대 이상의 시니어들의 모임 '1004 토탈댄스' 회원들이 연습을 마친 후 고대캠퍼스 안을 거닐며 또 다른 커뮤니티의 장을 열고 있다(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시니어 창업 등 교육모임도

중소기업청이 운영하는 ‘시니어넷’ 인터넷 사이트에도 다양한 목적의 소모임이 눈에 띈다. 그 중 ‘에듀시니어’는 18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에듀시니어는 시니어 강사를 발굴, 육성하기 위해 설립됐다. 주로 정보·지식 교류가 이뤄지는 이 모임은 서울 용산구 남영동의 한 개인 사무실을 임대해 운영되고 있다.

주로 소셜 웹 기초 교육이 이뤄졌고, 현재는 기초 단계를 넘어서 회원들이 소셜 웹을 손쉽게 활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강사는 따로 외부에서 초빙하지 않고, 회원들이 개별적으로 알고 있는 정보를 협업을 통해 나누고 있다.

모임 운영자이자 정부에서 운영하는 시니어 창업스쿨의 총괄매니저인 홍정구씨는 “브레인 스토밍이나 회의 주재를 잘 하는 법, 강사가 갖춰야 할 태도나 말투, 강의법 등 다양한 주제가 모임에서 다뤄진다”고 설명했다. 모임은 매주 월요일 오전 7시~9시에 열린다.

이밖에도 가나아트갤러리에서 열리는 ‘CEO문화포럼’은 조찬모임으로, 저명한 CEO들이 참여하고 있다. 모임은 비공개로 운영되며,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이장우 이화여대 교수 등이 강연에 나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가혜 기자 lita@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