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의 공직생활을 마치며 이제는 유유자적 쉬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남을 돕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막연한 계획만 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인생은 생각대로만 살수 없는 법. 어느 날 갑자기 한 번도 경험해 본적이 없는 사업에 뛰어들어 좌충우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한 사람을 만났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송원제 기자)

은퇴 후 모진 시련을 가져온 이 사업을 계속하는 건 순전히 집을
지키고 종자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죠.

96세로 타계한 세계적인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인간은 호기심을 잃는 순간 늙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올해 70세를 맞은 세계적인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는 “이제 쉴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쉬면 늙는다(If I rest, I rest)”라며 “바쁜 마음(busy mind)이야말로 건강한 마음(Healthy mind)”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들은 젊은이보다 더 젊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다. 여기 이들처럼 젊은 열정을 가진 또 한 사람이 있다. ‘가바현미’로 인생역전을 꿈꾸는 60대 청년 정유근 신지푸드피아 대표다.

효소가 향후 건강 트렌드 주도 굳은 신념

“어이쿠, 이렇게 더운 날 여기까지 귀한 발걸음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손을 내밀며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는 정 대표. 올해 예순셋이 된 그의 얼굴을 보니 주름이 하나 없다. “어? 얼굴에 주름이?” “허허허, 이게 다 쌀 덕분이죠. 제 얼굴이 가바현미 효과의 산 증인입니다.”

그렇다. 가바현미. 이 쌀이 정 대표의 인생2막을 가능하게 만든 이유이자, 동력이다. 인사를 끝내고 소파에 앉자마자 정 대표는 현미 이야기부터 꺼냈다. “현미는 45가지 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완전식품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몸 안의 노폐물과 중금속, 다이옥신, 농약 등 유해물질을 몸 밖으로 배출시켜 주고 혈압, 당뇨, 고지혈증과 같은 성인병엔 매우 효과적입니다.”

가바현미는 왜 가바가 붙냐고 물었더니 가바현미는 주된 성분이 가바 즉, 감마아미노뷰티르산이 풍부한 현미로 일반 현미가 1이면 이건 16배나 가바 성분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 붙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현미를 일정조건에서 발아시키면 가바 성분이 16배가 늘어납니다. 가바현미는 일반 현미보다 눈이 4.3배가 큰 게 특징인데 그래서 눈이 큰 현미라고도 부릅니다. 가바는 뇌활성 신경전달 물질을 포함하고 있는데 고혈압, 뇌졸중, 당뇨, 치매 등에 효과적입니다.”

정 대표가 이렇게 가바현미 이야기부터 꺼내 드는 이유는 최근 그가 유기농 가바현미를 이용한 효소제품을 새롭게 출시했기 때문이다. “아직 홍보가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반응은 좋습니다.

두 달 만에 매출이 1000만원을 넘겼습니다. 지금까지 건강 화두가 미네랄과 비타민이었다면 앞으로는 섬유소와 효소로 건강 트렌드가 바뀌는 시대가 도래할 거예요. 효소산업이 본격화되면 많은 매출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하자 정 대표의 눈에서 작은 불꽃이 일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정 대표는 다시 입을 뗐다. “사실 지금이 가장 어려운 시기입니다.

2007년 3억원의 빚이 있는 회사를 인수해 현재 빚이 10억원까지 불었습니다. 사나흘 걸러 한 번씩 은행 대출을 갚아야 할 때면 속이 상해 말도 못할 정도예요.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 효소를 개발했는데 반응이 좋다고 하니 좋은 징조로 여겨져 상당히 고무적입니다.”

신지푸드피아에서 시판 중인 4.3배 눈이 큰 황금쌀 생산 농촌 현장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


투자회사 부도 위기에 엉겁결에 떠맡은 회사

정 대표는 젊은 시절 육군사관학교를 다니다 국세청 공무원이 돼 34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공직생활은 안정적이고 평온했다. 결혼 후 딸 둘을 낳아 길러 시집 보내고 아내와 둘만 남았을 때도 “아, 우리 내외 이렇게 별 탈 없이 노후를 보내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다만 은퇴 후를 떠올리면서 “그래도 사회생활을 계속하려면 돈이 들 테니 조금은 투자를 해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명예퇴직하기 한 해 전인 2004년 그는 후배의 소개로 친분을 맺게 된 서울대학교 식물생산과학부 작물분자육종연구실의 고의종 교수가 독점 개발한 가바현미를 알게 됐다.

그 가바현미를 이용해 쌀 가공식품을 만드는 업체가 있어 조금씩 투자를 시작했다. 바로 신지푸드피아의 전신인 주식회사 신지였다. 정 대표는 당시만 해도 회사가 이익이나 배당금이 나오면 은퇴 후 연금과 함께 여유로운 노후 자금으로 사용하겠다는 요량이었다.

정 대표는 2005년 은퇴를 했다. 처음엔 여느 은퇴자처럼 생활을 했다. 가끔 자문을 요구하는 기업이 있으면 고문을 맡아 일을 봐주기도 했지만 사업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2년쯤 지났을까 회사가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당시 이 회사의 2대 주주였던 그는 배당금은 커녕 연대보증을 선 이유로 3억원의 빚을 떠맡게 됐다. 회사도 곧 문을 닫을 것 같았다.

그대로 회사가 없어지면 연대보증을 위해 담보 잡힌 집도 함께 잃어야 했다. 정 대표는 중대 결심을 하게 된다. 회사의 대표가 되기로 한 것이다. 그는 집만큼은 잃고 싶지 않았다. 가족과 평생을 함께 살아온 집을 하루아침에 누군가에게 줘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또 지난 10년간 고 박사와 회사의 임직원들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해온 가바현미 종자를 그대로 사장시킬 수 없었다. 정 대표는 가바현미의 효능과 가치에 대해서만큼은 누구보다 강한 애착과 믿음을 갖고 있다.

정 대표는 “눈이 큰 가바현미는 지난 10년간 직접 밭에서 재배해 종자를 개량하는 순수 육종방식으로 키웠는데 이렇게 좋은 종자가 없어지는 걸 정말 볼 수가 없었다”며 “내가 사업을 시작하게 된 건 순전히 집을 지키고 종자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대표가 된 그는 힘들게 자본금 2억원을 모아 회사의 빚을 갚았다. 그러고 나니 전화기 한 대 놓을 돈이 없었다. 낭패감이 들었지만 그저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집을 담보로 다시 대출을 받았다. 제품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데만 쓸 수 있는 최소한의 돈이었다.

그렇게 대출 받기를 수차례,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날짜가 돌아오면 초조하고 답답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자도 불었다. 점점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자금 문제로 스트레스는 늘었다. 해야 할 일도 많았다.

4~5명의 직원들이 전문적인 연구를 제외하고 제품기획, 개발, 홍보, 마케팅, 판매 등의 광범위한 업무를 다 처리할 수 없어 대표가 일일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결국엔 과도한 스트레스와 과로로 쓰러져 정 대표는 병원 응급실 신세를 지기도 했다. 정 대표는 지난 날들을 “뼈를 깎는 고통의 순간들이었다”며 “기도하지 않고는 하루도 버텨낼 수 없는 생활들”이라고 회고했다.

그럼 그렇게 힘든 날들은 정 대표는 무슨 재간으로 이겨낼 수 있었을까? 그는 특유의 긍정적인 마음과 신앙심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원망보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며 “어떻게 됐든 노후생활을 힘차고 긍정적, 적극적으로 살게 되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일반현미보다 쌀 눈이 4.3배 크고(위) 가바 성분이 16배 많은 거대 배아현미와 이를 이용한 떡 제품, 유기농 현미효소 제품.


나눔 실천한 KFC 창업자 카넬 샌더스가 롤 모델

그는 하루하루 일기를 쓰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사업에 도전했다. 정 대표는 힘들 때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편 126장)’라는 성경구절을 읽고 쓰면서 스스로를 위로한다고 했다.

몇 년 전엔 이런 일기도 썼다. “KFC의 창업자(카넬 샌더스)는 나보다 5년 늦은 65세에 창업했다. 소스를 개발하고 1000여 군데를 찾아 다녀도 써주는 사람이 없었다. 엄청난 고생 속에서 결국 그를 알아보는 사람을 만났고 전 세계 8만여 대리점으로 대성했다.

그는 10년 뒤 75세에 인도네시아로 출장을 다녀오는 길, 마지막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까 고민하다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자고 마음 먹었다. 그는 15년 동안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살다 생을 마감했다. 나도 이 분을 롤 모델로 삼고 살아야겠다.”

그래서였을까. 정 대표는 2008년 신문을 보던 중 불황 속에 후원이 끊긴 보육원들이 어린이들에게 간식도 못줄 형편이라는 기사를 보고 쌀 과자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그는 “세계 각국의 어려운 이들을 돕는 손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봉사하고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삶이 그의 최종 목표이자 꿈이라고.

정 대표는 현재 은퇴를 준비하고 있는 인생의 후배들에게 “창업을 하려면 철저히 분석해라”고 조언했다. 정 대표는 정작 준비가 전혀 안된 상태에서 사업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야 했다.

그는 또 “중요한 일일수록 주위 사람과 힘을 합쳐서 결정하고 아는 사람을 상대로 매출 올릴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이번에 효소제품을 출시하면서 새로운 인생 3막을 꿈꾸고 있다. 제품에 대한 반응이 좋게 나타나고 있는 만큼, 그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던 만큼 언젠가 잘 되지 않겠느냐는 낙관적인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는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사람이었다. 모두가 인생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생 2막에서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어려움 속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정 대표를 보면서 앞날이 창창한 청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은경 기자 kekisa@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