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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千變萬化 유리공예 마법 홀려 30년 세탁달인 과감히 접었죠”

[사진 : 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밤하늘을 수놓는 혜성 꼬리 같다. 토치(절단이나 용접에 사용하는 버너)에서 길게 뿜어 나오는 1300도 이상의 강렬한 불꽃. 그 뜨거운 빛을 자유자재로 움직여 유리를 가열하고 끊어내는 이 남자.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어떤 물건이든지 순식간에 잘라버리는 광선 검의 주인 ‘제다이’ 분위기마저 풍긴다. 유리로 한 떨기 꽃을 피워내니 마법사로 불릴 만하다. 그의 이름은 홍성길. 나이는 예순, 유리공예에 제2의 인생을 담았다.

강원도 삼척시 도계유리마을. 서너 번 전화를 걸었다. 감감무소식이다. 인터뷰 약속을 잊을 리는 없을 텐데, 그의 휴대전화는 신호음만 울릴 뿐이었다. 할 수 없이 물어물어 마을 안으로 찾아들어간 작은 공방.

손님이 왔다는 소식을 그제서 들었는지 빠른 발걸음으로 걸어와 멋쩍은 듯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남자. “어이구, 죄송합니다. 작업하다 보니 전화가 오는지 까맣게 몰랐네요.” 유리를 만지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홍성길(60)씨는 이곳 도계유리마을의 최고령 유리공예가다. 언뜻 봐선 50대 초반이라고 해도 될 만큼 젊어 보였다.

그가 처음부터 유리공예에 운명을 걸었던 건 아니었다. 가난한 가정 형편 탓에 기술로 승부하겠다는 일념 하에 양복 재단사로 시작, 30년간 세탁소 사업에만 매진해 온 ‘옷의 달인’이었다.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는 말처럼 정말 갑자기 맞닥뜨린 어느 한 순간이 계기가 됐다. 젊음의 전성기를 한참 지난 55세의 나이였음에도 유리에 대한 불꽃 사랑을 폭발시키며 인생 항로를 바꾸게 된 것.

여태껏 그의 손을 거친 옷은 멋있기로, 깨끗하기로 언제나 최고였단다. 그래서 새로운 도전의 결과가 더욱 궁금해졌다. 유리공예 솜씨로 또다시 사람들의 마음을 훔칠 수 있었을까. 자신은 물론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의 의표를 찔렀던 두 번째 인생. 홍성길씨가 풀어내는 4대 관전 포인트는 흥미진진하다.

5년 전 인생의 로또 유리공예와 늦바람
“유리공예에 빠지게 된 사연을 들려주지 않겠느냐”는 질문부터 던졌다. “5년 전이었어요. 삼척시민으로 살뜰하게 세탁소를 운영하던 때였습니다. 어느 날, 손님 한 분이 도계유리마을에서 만들어 온 유리공예품을 보여 주더라고요. 투명하게 빛나는 유리가 참 아름다웠어요. 눈이 휘둥그레졌죠.” 그는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새로 조성된 도계유리마을은 석탄 폐석을 활용해 유리를 만드는 유리산업단지, 집에서 1시간이 넘는 거리였음에도 그는 한걸음에 달려가 유리공예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초급부터 고급과정까지 전 과정을 수료하며 2년간 유리의 세계를 맘껏 탐닉했다. 세탁소가 전부였던 잔잔한 호수 같은 삶에 저지른 최초의 도발이었다.

기성복에 밀려 맞춤 양복이 사양길로 접어든 1970년대 중반, 그는 양복 재단 일에서 수선을 겸하는 세탁소로 전환했다. 딸 셋을 모두 대학 보내고 결혼시키고 했던 것도 세탁소가 크게 번창했기에 가능했다. 사업은 승승장구였으나 돈을 버는 데만 목적을 두고 살아온 몸과 마음은 점점 피폐해졌다. “배달뿐 아니라 새벽 3~4시까지 이어지는 일들이 무척 고됐어요. 상식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요구를 들이대는 고객도 스트레스였죠. 이 와중에 신비롭고 즐거워지는 게 있었으니 바로 유리공예였어요. 지리멸렬한 세탁소 사장의 생활을 잠시나마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해방구였습니다.”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헤어 나올 수 없는 마력과 같았단다. 그는 더 깊이 빠져들었다. 앉으나 서나 ‘유리’ 생각이었다. 스스로 미쳤다고 말할 정도니까. 급기야 세탁소에서 손을 떼기에 이르렀다. 취미 삼아 했던 일을 이제 직업으로 삼을 심산이었다.
세탁 일은 아내에게 넘겼다. 갑자기 잘하고 있던 일을 때려치우겠다는 남편의 선언에 그녀는 심하게 반대했다. 홍성길씨는 아랑곳 않고 2008년 도계유리마을에 ‘블랙스톤’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창업, 공방을 차렸다. “유리공예를 알게 되면서 내 인생, 최고의 로또를 맞았습니다.”

1300도 고온 속 잠재된 예술혼 활짝
유리공예가는 1000도가 넘는 뜨거운 용광로 속에서 막 나온 젤리 같은 유리를 불거나 불로 녹여 섬세한 모양을 만든다. 1200도 이상의 유리를 파이프로 불어서 성형하는 블로잉 기법과 색유리 여러 장을 겹쳐 가마에서 하나로 녹여 만드는 퓨징 기법. 막대 모양의 유리를 1300도 이상 고온의 토치로 가열해 성형하는 램프워킹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한다.

이 중 램프워킹이 홍성길씨의 주력 분야. 여기까지 왔는데 능수능란한 솜씨로 빚어내는 유리의 예술세계를 안 보고 가면 섭섭할 터. 그가 눈을 보호하기 위해 선글라스를 쓰고 자리에 앉아 작업을 시작한다. 재료는 내열유리의 일종인 투명 파이렉스 유리.

우선 유리봉을 토치로 녹여 둥글게 두른 다음, 군데군데 핀셋으로 오물조물 눌러 활짝 핀 꽃잎 모양을 만든다. 딱딱했던 유리가 불에 달궈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말랑말랑해졌다. 불필요한 부분은 가위로 잘라낸다. 꽃 모양이 빚어지면 그 위에 또 다른 유리를 대고 살살 돌려가며 녹여준다. 유리꽃 위에 다시 투명 유리를 씌워 주는 것이다.

“이때 불 조절이 관건이에요. 고도의 집중력과 섬세한 손놀림이 필요하죠. 조금만 방심해도 모양이 찌그러져 망쳐버리거든요.” 기자는 보는 내내 눈을 떼지 못하고 와~ 감탄사를 연발했다. 10여분이 채 지났을까. 벌써 휴대전화 고리의 핵심인 예쁜 장식 부분이 뚝딱 완성됐다. 이 속도면 3일이면 200개를 생산해낼 수 있다고. “유리 속에 꽃을 만들어 넣는다는 것 자체가 이 얼마나 신비한 일입니까.”

그래서인지 액세서리를 전문으로 하는 가운데 그의 휴대전화 고리는 가장 자신 있는 주특기이자 매출 효자 종목으로 떠올랐다. 가격대는 7000원. 뿐만 아니라 고난도 테크닉을 발휘한 새 아이템, 빨간색 하트 모양의 유리 목걸이가 최근 큰 인기를 끌어 고무적이다. 휴대전화 고리보다 가격이 2만5000~3만원으로 더 높다.

공방을 운영한 지 3년째. 월 평균 매출은 100~150만원. 유리는 여름의 공예다. 투명하게 비치는 시원한 질감이 물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까. 판매량도 평소에 비해 2~3배 는다. 갈수록 디자인 및 기술 완성도가 높아지는 데다 관광객 수요가 많아져 올 8월엔 처음으로 300만원 이상의 큰 수익을 올렸단다. 한층 자신감을 얻은 홍성길씨의 얼굴 가득 함박웃음이 폈다.

[사진 : 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나이 예순에 기다림의 미학에 눈뜨다
그의 인생 궤적은 야구로 치면 대기만성형 강타자를 연상시킨다. 그의 작품이 성숙하고 도도한 매력을 발산하기까지. 거기엔 숱한 배움과 훈련의 연속이 자리하고 있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관련 책과 인터넷 사이트를 뒤적이며 닥치는 대로 공부하는가 하면, 좀 더 진보된 기술을 배우려고 지역 곳곳을 누비는 노마드가 되길 서슴지 않았다.

요즘은 ‘유리공예의 꽃’이라 불리는 블로잉 기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손과 팔에는 불에 덴 자국이 거뭇거뭇 남아 있다. 마무리 연마작업을 하며 피가 흐르고 뒤집어진 손톱까지 쳐서 영광의 상처라고 말하는 그. 보는 마음이 찡하다. 그렇게 수년을 거쳐 당당하게 선 유리공예가 ‘홍성길’의 모습과 작품은 기다림의 미학인 셈이다.

스스로 예방주사를 놓을 때는 언제일까.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어요. 다만 안주하지 않으려 해요. 창의적인 작품을 탄생시켜야 한다는 점을 항상 상기합니다. 또 세련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젊은 감각과 취향을 반영하려고 노력하죠.” 그는 원주한국구슬공예협회 등을 찾아 감각적인 액세서리 부자재를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팔고 젊은층의 자문을 구하곤 한다.

“유리공예 상품을 살 만한 사람들은 누구냐”고 물었다. 가족단위 관광객이 많고 40~50대 중년층 주부들이 주로 지갑을 연단다. 요즘은 젊은 세대의 선호도도 상당히 높아졌다고. 인기 비결은? “우선 유리 특유의 맑고 영롱한 빛깔 때문에 한 번 보면 사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어요. 또 유리공예품은 똑같은 제품이 나올 수 없다는 게 어필하는 것 같아요. 유리가 녹는 과정에서 제각각 달라져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물건이 되는 거죠. 희소가치가 있으니까 선물용으로도 각광받고 있어요.”

공예 중 역사가 가장 짧은 유리공예는 이제 막 싹을 틔운 분야다. 서구에서 공예 분야의 하나로 인정받은 건 1960년대 후반. 우리도 80년대 중반이 돼서야 겨우 시작한 상황이었다. 그만큼 젊은 공예로서 향후 전망이 밝다. 지난 3월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된 ‘리빙디자인페어’에 도계유리마을 공예가들의 작품이 처음 출품됐는데 관람객 반응이 매우 좋았다고 한다.

유리공예 대중화 필생의 목표를 세우다
이어서 그가 도계유리마을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다. 우리나라 에코타운 조성의 성공적인 사례가 강원도 삼척시의 도계유리마을이다. 지식경제부 추진 지역연고산업 진흥사업의 일환이다. 탄광촌으로 유명했던 삼척시에서 쓸모없이 버려지고 토양 오염을 일으킬 수 있는 석탄 폐석을 이용, 유리를 만드는 도계유리산업단지를 개발한 것.

이곳에서 운영하는 유리공예 인력 양성 과정을 수료한 후 창업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삼척유리특성화사업단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진다. 마을 내 공방 임대와 가마 사용 등이 무료다. 도계유리마을에서 판매도 겸하지만 주력 판매처가 따로 있다. 삼척시 관광명소 몇 군데가 그곳. 여기서 판매한 상품의 수익금은 모두 유리공예가들이 가져간다. 홍성길씨도 도계유리마을의 수혜자다.

“매출의 3분의 1 정도만 재료비로 나가고 운영비도 거의 들지 않아요. 부담 없이 내 가게를 낼 수 있는 거죠. 퇴직 후 2~3년, 빠르면 1년 만에 유리공예가로서 상품을 내놓을 수 있어요. 자원 재활용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1석2조의 산업 유리공예이기 때문에 기술만 확보된다면 향후 전망은 매우 밝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처음엔 걱정이 앞서 반대했던 가족이 요즘은 그를 많이 응원해 준다. 조만간 세탁소 사업은 완전히 접을 계획이다. 그동안 모아 놓은 돈과 유리공예 수입으로 생활을 꾸려나갈 생각. 그래도 반평생을 바친 세탁소인데 미련이 없을까 싶었다. 그는 단번에 “후회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제가 몸은 60대지만 마음은 30대예요. 그야말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합니다. 용기와 의지만 있으면 이 세상에 못할 건 아무 것도 없답니다.”

마지막으로 그의 꿈 이야기를 청했다. “우선 유리공예를 널리 알리는 데 앞장 설 겁니다. 다음엔 유리공예 작가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5년 후쯤 시골에 아늑한 공방을 열어 장애인 일자리 창출에도 힘을 보태렵니다. 손재주가 많은 그들이 유리공예를 통해 재능도 살리고 보람에 소득까지 얻어 인생을 활기차게 살아나갔으면 해요.”
홍성길씨의 인생 2막은 유리처럼 반짝인다. 그리고 그가 그 특권을 오래도록 누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유리공예 배우려면
유리공예는 남서울대학교 유리공예과와 홍익대학교 도예유리과 2곳이 있다. 여름철에는 지역문화센터의 특강을 이용할 수 있다. 주로 사시사철 수강이 가능한 유리공예 작가의 공방을 추천한다. 수강료는 초보자의 경우 한 달 25만~30만원. 램프워킹, 퓨징 기법 등을 배울 수 있다. 1회 1만원 안팎의 비용으로 작은 목걸이, 접시 등을 만들어 보는 일일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된 곳도 있다.
핫저니 서울 은평구 불광동 605-2. 02-389-9411
유리마루 충북 청주시 흥덕구 산남동 1165번지. 043-294-6262
도계유리마을 강원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 111-3 흥전부업단지. 033-541-6259


전희진 기자 hsmile@


50플러스  |  econovill@econovill.com  |  승인 2011.09.30  00:4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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