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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발 대추농사꾼 화려한 변신 “패션쇼 런웨이 워킹 멋지죠”


환갑이 지나 인생을 다시 설계하는 사람이 있다. 모델, 영상편집, 농사 등 다방면의 일을 하고 있는 박기천씨가 대표적인 경우다. 박씨는 세월의 나이를 잊은 듯 "이제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것"이라며 열정을 불사른다. 그의 눈은 20대 젊은이처럼 빛나고,
몸은 40대 CEO보다 더 바빠 보인다.


“할 일이 너무 많아 잠을 하루에 4-5시간 밖에 못 잡니다. 이제 진짜 시작인 셈이죠. 머리도 너무 잘 돌아가고 힘도 넘칩니다.” 박기천씨(65)는 인터뷰 시간 40분 전에 미리 도착해 활기찬 웃음으로 기자를 맞았다. 경기도 안산에 사는 박씨는 오늘도 CF 촬영을 위한 오디션을 서울에서 본 뒤 약속 장소에 나왔다.

머리만 염색하면 50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건강미가 넘쳐 보인다. 박씨를 젊게 만드는 것은 낙천적인 성격과 그가 최근 재미를 붙인 수 많은 일 덕분이라고 할만 하다. 젊은 사람이라도 힘들 만한 일을 거뜬히 소화해내는 박씨를 보면 세월 자체의 무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대추농사 - “800만원 투자로 연 1500만원 수익”
박씨가 재미붙인 첫 번째 일은 대추농사다. 그는 경북 영도에 얼마 전 경매로 밭을 샀다. 지금은 평당 3만원대이지만 당시 가격은 평당 1만원 정도. 700만원 정도를 투입해 밭 700평을 산 셈이다.

그 땅에 대추나무 묘목 150그루를 심었다. 묘목값이 개당 5000원 정도가 들었으니, 땅값을 제외하면 75만원 정도가 더 들어갔다. 여기에 매년 비료 값 30만원, 왕복 교통비로 연 80만원이 더 든다. “농사 지은 땅에서 얼마나 버십니까?”라고 물으니, 2~3년 후 1500만원 정도를 예상한다고 했다.

올해에도 대추농사가 잘 안돼 현재까지는 수익이 많지 않으나 시간이 흐르면 한 그루당 10만원 정도는 벌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농사를 짓는 사람 중에 고추농사로 올해 3000만~4000만 원을 거뜬히 버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단순계산으로 1년간 직장에서 힘들게 일해 그정도 연봉을 받느니 차라리 ‘돈 되는’ 농사짓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땅을 제외하고 1년에 100만원 조금 더 들여 1500만원 정도의 수익을 낸다면 노후 대비책으로 괜찮지 않느냐"는 박씨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내친김에 “저도 지방에 밭 사서 농사지을 땅으로 만들어 부모님께 드리면 어떨까요?”라고 물으니 박씨는 손을 내저으며 그래서는 안된다는 시늉을 한다.

지금은 평당 땅값이 많이 올랐고 경매를 통해 좋은 땅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는 박씨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는 "땅 관리나 농사 모두 쉬운 일은 아니다"면서" ‘올인’해도 눈물 흘리는 농부가 많은데 ‘투잡’으로 생각하면 과연 그일이 제대로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박기천씨는 60세 이후부터 ‘이제 시작한다’는 마음을 굳혔다. 그림, 모델, 영상편집 등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것이 삶의 낙이다.


박씨도 땅을 사고 2년 동안은 나무가 자라지 않아 애를 먹었다. 하는수 없이 관련 책자를 찾아 읽고, 자료를 수집해 연구와 연구를 거듭했다. 그는 찰흙이 대추나무를 잘 자라게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곧바로 실천에 옮겼다. 지금은 다른 곳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맛있고 큰 대추가 그의 땅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인근 농민들도 신기해 구경하고 맛을 볼 정도로 소문이 났다는 것이다. “일찍 연락이 닿았으면 대추 한 웅큼 쥐어와 맛을 보게 할 텐데 아쉽네요.” 기자는 사진으로 밤처럼 큰 대추를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박씨는 뜻이 맞는 동료들을 모아 농촌진흥청에 '약초재배' 무료 강습을 신청하고, 몇 해 전에는 한국광물자원공사에서 무료로 ‘석재기능사’와 ‘석공예기능사’ 교육을 받고 자격증도 땄다. 여러 모로 의욕이 넘치는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패션모델 - “휴대폰 회사 CF도 찍었죠”
농사 일도 바쁜데 다른 일이 별도로 또 있다. 박씨의 두 번째 일은 바로 모델이다. 2008년 ‘노인일자리박람회’ 노인 모델 선발을 통해 모델에 데뷔했고, 현재 여러 매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노인 모델 지원자가 많아 당시 경쟁률은 10 대 1을 넘었다고 한다.

“160명 중 9명을 뽑았는데 당당히 제가 뽑힌 거죠. 그런데, 모델 일을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외모는 물론 연기력도 뒷받침돼야 하고, 연습도 해야 되고….”그는 당시 1, 2차 면접에 합격하며 서초노인복지관에서 노인 전문모델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현재 박씨는 에이전시회사에 소속돼 있으며, CF 모델 단편영화 엑스트라 등 각종 행사에서 모델 일을 하고 있다. 박씨는 메모리카드를 가져와 자신이 등장했던 장면들을 보여주며 세세하게 설명했다.

기자는 박씨가 모 기업의 지면광고에 모델로 등장한 것을 보고 “어, 여기에도 출연하셨네요”라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노인 모델은 주연모델을 보조하는 역할이지만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인물이기도 하다.

박씨는 얼마 전 국내 굴지의 휴대폰 회사 CF를 찍었고, 공공기관의 지면광고도 촬영할 정도로 발도 넓다.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CF를 통해 버는 수입은 한번 촬영에 100만원 정도로 많은 편이지만 그런 일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CF 촬영은 1년에 한두 건 하는 것이 전부라며 박씨가 귀띔한다.

박씨는 “자신은 아직 초보이고 다른 할 일도 많기 때문에 모델 일을 통해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경력이 많은 동료 중에는 꾸준히 월 2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박씨는 그 자신도 시간을 할애하고 적극적으로 나서면 그 이상을 버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박씨는 서초노인종합복지관 동료들과 함께 가끔 연극 연습도 한다. 모델로 무대에 섰을 때 감정 표현에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에서다. 동료들에게 ‘멍하니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지만 말고 우리가 스스로 기회를 만들자’고 설득해 연극 동아리도 만들었다.

영상편집 - “영화 만들어 영화제 출품도 했다”
박씨의 세 번째 일은 영상편집이다. 연극동아리 사람들을 섭외해 영화를 직접 찍을 생각을 했고 실천에 옮겼다. 얼마 전에는 직접 촬영과 편집까지 도맡아 한 영화를 만들어 ‘서울노인영화제’에 출품하기도 했다.

그는 그 작품으로 본선에 당당히 진출한 바 있다. 박씨는 그 작품에서도 감독, 연출, 내레이션, 연기 등 1인 4역을 거뜬히 소화해냈다. 박씨는 자신이 찍었던 영화를 보여주며 3DMAX, 프리미어프로 등 생소한 영상편집 기술에 대해 쏟아냈다. “영상 콘텐츠 제작에 관심이 많아요. 제가 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고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박씨는 배운 영상편집 기술을 활용해 돈도 벌고 있다. 그는 “보통 편집하는 사람들이 1분에 1만~3만원 정도받는 것이 보통인데, 저는 그보다 훨씬 적게 받아요. 아마, 세상에서 제가 제일 적게 받을 겁니다. 돈도 중요하지만 관계도 중요하고 편집한다는 자체가 즐거움 아니겠습니까”라며 환히 웃었다.

그는 복지관에서 영상편집에 관한 강의도 하고 있다. 자신처럼 단기간 기술을 습득하고 따라오는 노인들이 별로 없어 아쉽지만 가르치는 재미도 쏠쏠하다는 것이 그의 반응이다.

박씨가 하는 일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사실 중학교 때부터 해왔던 그의 본업이다. 중학 시절부터, 초상화, 구상화 등 ‘수출용 그림’을 그렸다. 당시 학력은 없었지만 몇 해 전 제7회 대한민국 환경미술대전에서 당당히 특선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사람들이 사진보다는 그림을 더 좋아했던 1970년대 당시, 주문이 밀려왔다.

특히 초상화 주문이 많았다. “그림을 많이 그렸던 날은 예약이 밀려 잠을 못 자고 그림을 그려야 했던 날도 허다했어요. 당시 제가 그린 그림은 지금 돈 10만원, 20만원 정도의 수준이 아니었어요. 몇 백만원을 받고 초상화를 그려준 적이 많았습니다” 박씨는 얼마 전에도 500만원 정도를 받고 그려줬던 그림들을 컴퓨터를 통해 보여주었다.

단가도 높았고 일도 많았으니 돈은 자연히 따라왔다. “당시 봉급을 받는 사람이 평균 월 2만 5000원을 받았어요. 그런데, 제가 그림을 많이 그렸을 때는 제게 월 몇 백만원의 돈이 쑥쑥 들어왔죠. 일이 바쁠 때는 돈을 쓸 시간도 없었어요.” 그런데, 모아 둔 돈은 없단다.

젊은 시절 번만큼 쓰는 것도 좋아했기 때문이다. 특히, 친구들을 좋아해 돈을 모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도 돈 모으는 것보다는 일이 재미있고 연구하고 알아가는 것이 즐겁다. 요즘도 그는 궁금한 일이 생기면 파고들고 끝까지 배우려고 한다. 한 달에 2권 이상의 책은 꼭 읽으려고 한다. 얼마전에는 학점은행제를 통해 ‘미술학사’도 되었다.

그는 지금의 일과 만나는 사람이 모두 재미있단다. 그의 말을 빌자면 이제 시작이다. 그리고 그가 한 말 중 기억에 남는 말 하나. “120살까지 산다고 생각하면, 이제 반 살았어요. 그러려면 더 공부해야 합니다.” 인생2막도 활짝 열어젖히려면 상당한 내공이 필요한 듯 하다.

이학명 기자 mrm97@


50플러스  |  econovill@econovill.com  |  승인 2011.10.27  08: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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