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 COMPANY > 창업
“자연의 일부가 된 해피하우스 비발디의 四季같은 삶을 살죠”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동요 ‘즐거운 나의 집’이 절로 떠오른다. 노랫말 한 줄 한 줄이 어쩜 내 마음과 같은지. 누구나 자연이 푸르른 대지 위에 예쁜 집을 짓고 즐겁게 사는 삶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지 않을까. 강원도 춘천 끝자락 북한강변에 자리 잡은 동화 속 그림 같은 집. 한종선씨의 로망이 실현된 곳이다. 그의 제2 인생 철학은 ‘짓다’의 의미와 꼭 들어맞는다.

서울토박이 청년은 늘 시골생활이 궁금했다. 결혼 후 처가가 있던 경기도 평택은 그에게 시골을 친숙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줬다. 외갓집에서 사촌과 뛰놀며 자란 자녀들이 성년이 돼서도 친하게 지내는 것을 보고, 손자들에게도 그런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시골에 집을 짓고 살아야겠다는 바람이 선명해진 것은 그때부터였다.

36년 교육자의 길을 걸으며 어느덧 머리가 희끗해진 한종선(63)씨는 20여년 간 가슴에 품어온 꿈을 실현하기로 결심했다. 펜션지기로 변신해 투잡족이 되더니 정년을 불과 1년6개월 남기고 명예퇴직을 선택했다. 자연과 벗 삼아 사는 전원생활에 대한 열망이 점점 간절해졌기 때문이었다. 그토록 갈망하던 꿈을 향해 도전한 그는 과연 펜션에서 인생 후반전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을까. 그 결말을 듣기 위해 한씨를 만났다.

남이섬에서 새로운 꿈을 찾다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하던 2002년이었다. 한씨는 아내 이혜종(59)씨와 함께 산과 물이 있는 곳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전원생활을 펼칠 부지를 본격적으로 물색했다. 그러던 중 경기도 파주의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땅이 눈에 들어왔다. 배산임수 지형으로 입지가 뛰어난 명당 자리였다. 150평 규모의 부지를 선뜻 매입했다.

한종선·이혜종씨 부부는 펜션에서의 전원생활로 심신이 건강해졌다.[사진: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부부는 마을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이곳에 농사를 지었다. 서울토박이가 농사를 알 리 없었다. 콩부터 심어 가꾸며 주말농장을 운영했다. 마을사람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그렇게 3년이 흘렀고 시골생활에 적응하는 듯 보였다. 전원주택을 지을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한씨가 원하던 전원생활을 하기에는 커다란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도회지 사람에 대한 거부감이 쉽게 없어지지 않는 것 같았어요. 주민들과 친해지려고 애를 썼지만 잘 안 됐죠.” 결국 그의 첫 번째 전원생활 도전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간절하면 이뤄진다고 했던가.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한씨가 좁쌀친구를 보러 아내와 함께 강원도 춘천에 놀러갔을 때였다. “남이섬 한 가운데 자리한 곳이었는데 바로 앞에 북한강이 흐르고 있었어요. 아침에 자고 일어나 창문을 내다보니 강 위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거예요.

어찌나 멋있던지….” 이씨는 한 눈에 이곳 경치에 반해버렸다. 마음이 그리로 향하자 그는 270평의 땅을 친구에게서 사버렸다. 당시 평당 50만원이면 시골치고는 비싼 편이었지만 그동안 검소한 생활로 알뜰살뜰 모은 돈이 큰 힘이 됐다. 강원도 춘천, 그가 노후를 위해 꿈을 지을 자리를 드디어 찾아낸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집을 짓다
처음부터 수익을 목적으로 펜션을 지은 것은 아니었다. 집을 지을 즈음에 펜션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왕이면 주말에 손님맞이를 하며 단조로운 시골생활에 생기도 주고 유지비도 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5년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에서 한씨는 아내와 펜션 짓기에 돌입했다. “지금은 펜션이 활성화돼 있잖아요? 그러나 당시만 해도 펜션이란 단어 자체가 생소했어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어떻게 지어야 할지도 몰랐어요. 그런데도 펜션을 직접 짓겠다고 나선 걸 보면 어찌보면 만용같지만 참 용기백배했죠?”

손님맞이를 위한 부부의 펜션 단장이 한창이다.[사진: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이씨가 설계 공부를 하며 도면을 완성했다. 오랜 주부 경험을 살려 생활이 편리하도록 집안의 동선을 짜고 아파트에서는 구조상 불가능했던, 원하는 공간들을 넣어 모형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지붕이 예쁜 집을 짓고 싶던 차에, 우연히 잡지에서 발견한 펜션에 확 꽂혔다. “제가 상상하던 펜션의 모습이었어요. 그길로 바로 펜션을 시공한 건축가를 수소문해 찾아갔죠. 서로 충분한 의논을 거쳐 제 마음에 꼭 드는 펜션이 완공될 수 있었습니다.”

지붕이 예쁘게 나온다고 해서 목조주택으로 지었다. 콘크리트보다 비용은 더 들지만 이점이 많다. 친환경적인데다 단열이 뛰어나고 건축 기간도 더 빠르다. 석 달만에 유럽풍의 2층짜리 집이 완성됐다. 펜션에서 객실 수는 곧 수익과 직결되지만 원래의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객실을 3개로 최소화했다.

아침에는 물안개가 피어나고 낮에는 솔바람 솔솔~, 저녁에는 붉은 노을이 어스름한 하늘을 적시는 풍경.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다웠다. 그래서 객실 이름을 ‘물안개’ ‘솔바람’ ‘노을구름’이라고 붙이고 펜션 이름도 ‘풍경’으로 정했다.

마당도 부부가 직접 꽃과 나무를 심어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꿔나갔다. 처음이라 뭐가 뭔지도 모르고 덤볐기에 시행착오도 많았단다.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내기 위해 파고라 바닥을 잔돌로 깔았다가 청소가 어려워 걷어내고 콘크리트로 바꿨다. 수돗가에도 돌을 둘렀는데 삭막한 느낌이 나는 것 같아 잔디를 심었다. 의외로 손이 많이 가서 죄다 뽑아내고 화초로 교체, 또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시멘트로 최종 마무리했다.

그렇게 하나부터 열까지 부부의 땀과 정성스런 손길이 펜션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땅과 집 마련, 마당 공사까지 족히 4억원이 넘는 자금이 들었다. 그해 여름, 한씨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풍경펜션의 문을 열었다.

찾아온 손님들과 소통을 하다
첫 손님을 맞던 ‘역사적인 날’을 떠올리며 이씨가 까르르 웃는다. “개시 손님이라 얼마나 반가웠겠어요. 남편이 너무 잘해주려다가 잔뜩 ‘오버’ 했답니다. 관광차 강촌에 가려는 손님을 모셔다 드리려고 직접 운전대를 잡았는데 과속 ‘딱지’를 이틀 연속이나 떼였지 뭐예요.” 일이 서투르고 긴장하다 보니 베개 커버를 갈아 끼우는 것을 잊어버리기도 했다고.

지금은? 쾌조의 항해를 하고 있다. 7~8월 여름 성수기에는 객실이 만원이다. 펜션 앞으로 북한강이 흐르고 있어 수상레저와 경비행기를 즐기기에 제격이어서 인기 만점이다. 겨울에도 인근에 강촌리조트가 있어 스키를 타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 남이섬이 보이는 강변을 산책하고 음식 재료만 준비해 오면 국내산 참숯으로 바비큐 파티도 할 수 있다.

“아담하면서 아늑한 공간이 마치 우리 식구들이 사는 집처럼 느껴져요.” “깨끗하게 아주 잘 꾸며놓았네요.” “집이 너무 예뻐서 찾아 왔어요.” “주인장이 서글서글하니 인심도 좋더군요.” 펜션을 다녀간 손님들은 하나같이 칭찬 일색이다. 거의 모든 여행객이 다시 찾고 단골이 된다. 그럴 땐 뿌듯한 마음이 한 가득이란다.

풍경펜션만의 매력을 물었다. “모처럼 오신 손님들이 기분 좋게 지내다 갈 수 있도록 깨끗하고 편안한 공간이 되게끔 항상 신경쓴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씨가 쑥스러워하며 툭 던지는 말, “또 주인장인 제가 멋지잖아요. 하하.” 기분 좋으면 모닥불도 피우고 고기도 구워준다. 아이들이 놀러오면 손자들 생각나서 폭죽도 공짜로 나눠준다. “손님들과 격의없이 어울려 밥을 먹고 맥주를 마십니다. 수다도 떨고요. 젊은 사람들과 함께 하니 제 몸과 마음도 젊어지는 것 같아요.”

그랬다. 이곳 펜션의 특별한 또 하나의 풍경은 주인과 손님의 경계가 없다는 것. 얼마나 친해졌으면 한 여행객으로부터 점심식사 초대까지 받았단다. “우리 펜션 같은 곳을 영국에서는 B&B(Bed&Breakfast)라고 해요. 자녀를 출가시킨 노인들이 젊은 여행객을 받아 잠을 재워주고 아침식사도 같이 하면서 소통할 수 있는 장소가 되는 거죠. 진정한 의미의 펜션은 소통과 정이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자연의 변화 속에서 행복을 누리다
서울 집에서 춘천 집까지 약 1시간 30분 거리. 요즘 한씨는 주중·주말할 것 없이 펜션을 오가며 본격적인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교사 생활을 할 때는 주말과 방학 기간에만 가능했는데 퇴직 후 시간적으로 한결 여유가 생겼다.

올해로 펜션지기 경력 6년째. 생초보였던 부부의 펜션 운영 성적표는 어떨까. 월 평균 수입이 140만원, 예약 대행료 및 운영비 등을 제외하면 순수익은 대략 70만원이다. 하지만 이익 창출의 잣대로만 평가하는 건 무리란다. “돈을 많이 벌려고 한 게 아니에요. 펜션 유지비 정도만 나오면 되죠. 객실이 너무 많으면 되레 얽매일 수 있기 때문에 일을 즐길 수 있는 지금에 만족합니다.” 한씨가 경쾌한 목소리로 답했다.

부부는 “돈보다 얻는 것이 훨씬 많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사계절에 따른 자연의 변화를 온전히 느낄 수 있지요. 삶에 생동감이 넘친다고나 할까요.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며 꽃과 나무를 가꾸는 재미가 쏠쏠해요. 도시에서는 절대 누릴 수 없는 혜택이죠.” 무엇보다 사람들과 만나 소통할 수 있어 더 없이 활기차고 행복하단다.

“우리 집(펜션)에 오신 손님들 모두가 내 집처럼 편안하게 쉬었다 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소박한 바람을 내비친 부부는 동행해온 세월만큼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처럼 욕심 부리지 않고 자족하는 마음으로 살겠노라고.


한종선·이혜종 부부의 펜션 창업기

교사로 재직 시 산업금융채권이나 금융채권, 공모주 투자 등을 통해 원금을 2배로 불려 재테크 했다.
-1980년대 초반 당시는 금리가 상당히 좋아 운이 따랐다.
무리한 투자는 하지 않았다.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의 270평 규모 부지를 1억4000만원에 구입했다.
-경기도 파주의 150평 규모 땅을 평당 50만원에 처분한 자금에 재테크로 마련한 돈을 합쳤다.
건축면적 50평에 2층짜리 목조주택(객실 3개) 건설과 마당 공사까지 평당 400만원이 들었다.
식기류·가구·침구 등 집기 구입비에 1000만원이 들었다.
발품을 판 만큼 저렴하게 마련할 수 있다. 때마침 점포가 폐업하는 바람에 고급 브랜드의 침구를 30%나 싸게 살 수 있었다.
도시인들의 전원생활 성공 핵심 요건은 주변 이웃과의 친밀한 관계다.
시골에서 집을 지으려면 구획 정리, 기반시설(하수도) 등을 갖춘 곳에 선정한다.
펜션 주인장은 유능한 관광가이드이면서 솜씨 좋은 바비큐 요리사, 청소전문가가 돼 있어야 한다.


전희진 기자 hsmile@


50플러스  |  econovill@econovill.com  |  승인 2011.12.02  07:40:59
50플러스의 다른기사 보기

[태그]

#당당한50, #이코노믹리뷰, #재테크, #부동산, #주식, #투자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여백
여백
전문가 칼럼
동영상
PREV NEXT
여백
포토뉴스
여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