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여인에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게 있었다. 꽃보다 예쁜 ‘다육이’와 평생 마주하며 살리라. 쉰 두 살이 되던 해, 인생 후반부에는 10여년간 켜켜이 쌓인 다육이에 대한 사랑과 소망을 세상에 흩뿌려보고 싶었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두 번째 인생 지표를 희망차게 세우고 도전해 보기로. 참, 다육이가 누군데 그러냐고? 꿈은 정말 이뤄진 거냐고? 궁금하다면 지금부터 이 여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알싸하고 향긋한 노란 동백꽃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 하였다.” 김유정 단편소설 ‘동백꽃’ 본문 중에 나오는 대목이 떠올랐다. 선인장을 닮은 외모에 빛깔도 분홍, 초록, 파랑 등 다채로운 이 개성 있게 생긴 식물에 소설 속 주인공처럼 그만 아찔하게 넋을 잃었으니까. 지난 5월 8일 오전, 지하철 양수역에서 자전거도로를 따라 남한강을 건너 발길이 닿은 곳은 ‘백송화원’. 입구로 들어서면 화려한 꽃 터널이 우선 반기고 이때부터 자연과 하나 되는 별천지가 시작됐다.이국 땅 어딘가에 와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어 본능적으로 카메라 모드의 휴대전화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정신을 빼앗긴 사람은 비단 기자만이 아니었다. 아주머니 한 분이 휴대전화를 들이대고 찍어대기에 바빴는데 기자에게 친근하게 말을 붙인다. “정말 아름답지 않아요?” 잠시 후, 희끗희끗하게 세월이 묻은 은발에 모자를 눌러 쓴 여인이 등장했다.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에 자리한 이 화원의 주인장인 그녀가 바로 이야기의 주인공인 정혜선(53)씨다.평범했던 20년 사무원 생활을 청산하고 꽃피운 제2 인생의 터전은 온통 꽃밭이었다. 이 꽃밭을 메우고 있는 묘한 매력의 식물들은 그녀를 매혹시킨, 취재기자를 홀린 주인공, 바로 ‘다육이’였다. 다육이는 그녀가 부르는 다육식물의 애칭이다. 남은 인생을 걸 만큼 다육식물과 사랑에 빠진 그녀의 연애사가 새삼 궁금해졌다.취미생활로 키운 다육식물, 창업 모티브를 얻다“어서 오세요. 길 찾느라 힘들었죠?” 초여름 날씨처럼 뜨거운 햇빛과 더위 속을 헤치며 당도한 기자에게 시원한 차를 대접하며 반갑게 맞이한다. 탱자 열매를 3년간 숙성시켜 담근 새콤달콤한 맛이 갈증에 지친 온몸의 세포를 깨우기에 충분하다. 목을 축이자마자 건넨 첫 질문. “다육식물이 무엇인가요?” “사막이나 높은 산과 같이 물기가 적은 토양에서 견딜 수 있도록 잎이나 줄기에 많은 양의 수분을 저장하고 있는 식물들을 말해요. 종류가 수 만 가지에 이르는데 알로에나 산세비에리아 등과 선인장도 다육식물에 속한답니다. 99%는 거의 수입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정씨가 다육식물과 인연은 맺은 것은 10년 전쯤이다. 늘 바쁘고 반복적인 일상에 지쳐 쉬고 싶어 퇴직한 게 1999년. 평소 워낙 꽃을 좋아했던지라 이후 2년 동안은 계속 서울에 살면서 아파트 집 곳곳에 야생화를 많이 들여놨다. 마침 도예에 심취해 있던 때라 야생화에 잘 어울리는 화분에도 관심이 많았고 직접 화분을 만들기도 했다.그러던 어느 날 양재동 꽃시장을 둘러보던 중 시선이 확 꽂힌 식물이 있었으니, 바로 다육식물이었다. “국내에 다육식물이 수입되기 시작하던 시기였어요. 처음 보는 종류였는데 너무 예쁜 거예요. 그때부터 얘들(다육식물)을 사 모으게 됐어요.” 다육식물을 꼭 ‘얘들“이라고 부르는 정씨에게서 자기 자식마냥 아끼는 애정 어린 마음이 묻어났다.

다육식물의 매력을 꼽아보라고 했는데 청산유수가 따로 없었다. “다육식물은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색감과 모양이 다르답니다. 그 위치를 조금만 바꿔 놓아도 전혀 다른 분위기를 자아낼 수 있어요. 해가 바뀌어도 늘 꽃을 볼 수 있고요. 다육식물 마니아들이 생기는 이유죠. 햇빛을 잘 못 보는 겨울에 주로 웃자랄 때가 많지만 봄에 햇빛을 쬐이면 수형(樹形)이 다시 구불구불 제대로 나오거든요. 겨울의 웃자람 고통을 잘 견디기만 하면 봄에는 예쁘게 잘 자랄 수 있어요. 고진감래, 식물에도 인생철학이 담겨 있는 것 같지 않아요?”서울 근교를 누비며 다육식물을 구하러 다니고 또 그에 맞는 화분을 사러 다니고… 취미로 다육식물을 키워온 지 어언 5년. 집안은 걸어 다닐 수 있는 공간만 빼고 모두 다육식물이 들어차 있었다. 발에 치이는 식물들에 남편과 아들, 딸, 주변 사람들이 짜증을 내더란다. 번뜩 머릿속을 스쳐간 생각이 경기도 양평에 마련해 놓은 땅이었다. 퇴직 후,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연 속에서 강을 바라보며 밥을 먹고 차도 마시는 공간으로 활용할 요량으로 남편과 힘을 합해 14060㎡(약 400평) 규모의 부지를 사둔 것이었다.정씨는 그동안 자신이 수집한 다육식물과 화분을 이곳으로 옮기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었다. 원래 자리하던 30평 남짓한 홑겹 비닐하우스를 리모델링하고 난방 시설을 갖춰 다육식물과 화분을 전시했다. 사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판매도 했다. 서울 송파구 집에서 양평의 비닐하우스까지 매일 아침 10시 출근 도장을 찍고 저녁 8시까지 제때 연탄을 갈며 다육식물을 정성스럽게 보듬기를 5년여. 가족은 물론 주변에서 열정이 대단하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게 창업을 하게 된 계기가 됐어요. 은퇴 후 좋아하는 일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사업으로 추진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죠.”양평에 터전 마련 테마가 있는 화원 가꿔남편은 처음에 반대했다. 마음뿐 아니라 몸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라며 말렸고, 도예방을 차릴 것을 권했다. 하지만 정씨는 소신대로 밀어붙였다. 사업을 하기에 여러 제반 조건들이 충족된 것 같아서였다. 우선 10년 가까이 다육식물을 수집하고 키우면서 갖게 된 지식과 경험은 웬만한 전문가 뺨칠 정도다. 또 전시 비닐하우스를 운영하는 동안 들르는 사람들마다 꽃과 딱 맞는 분을 골라주고 감각 있게 심는다며 칭찬하곤 했다.다년간 만반의 준비가 돼 있던 터라 마땅한 장소와 설비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좀 더 유동인구를 확보할 수 있는 인근으로 사업장을 마련하고 181㎡(약 55평) 규모의 비닐하우스를 900만원을 들여 새로 지었다. 당시만 해도 저렴하게 지은 편이라고 했다. 전기 및 수도 시설 공사, 선반 설치 등에는 2000만원이 채 안 들었다. 토지 임대료가 그리 비싸지 않은 데다 다육식물 등 대개의 상품들도 이미 확보된 상태에서 출발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 외 비용은 아낄 수 있었다.“다육식물 대품의 경우 상당히 비쌉니다. 아마 맨 손에서 다육식물 화원을 창업하려면 식물 값만 해도 꽤 많이 필요할 거예요.” 실내조경을 배운 적이 있어 하우스를 꾸미고 상품을 하나하나 배치하는 작업을 대부분 직접 했다. 그리고 지난해 4월, 다육식물을 길러 판매하는 ‘백송화원’의 문을 열었다. 집도 근처로 이사했다.백송화원에는 다른 다육식물 판매점에 비해 구경거리가 많다. “‘테마가 있는 볼거리’가 콘셉트예요. 다육이의 진가를 맛볼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각양각색의 다육식물, 특색 있는 인형들과 화분…. 다른 데서는 오래 키운 다육식물을 볼 수가 없을 거예요. 화분도 수 년 전 제작된 것부터 최근 것까지 다양합니다.”자랑 거리를 늘어놓는 그녀의 얼굴이 뿌듯하다는 표정이다. 아무래도 사업이다 보니 상품성을 더 확보하기 위해 다른 꽃집에서 판매 가능한 상품들을 더 구입하고 있다. 소매 형태로 꽃 농장에서 보통 꽃 20개짜리 한 판 중 가장 예쁜 것들만 15~20개가량 골라 사온다. “1개당 1500~2000원 가격인데 한 판을 사게 되면 값이 배는 뛰어요. 사실 한 판을 가져와도 다 못 팔아요. 반 판만 팔아도 많이 파는 거죠.” 상품 대한 애정이 충만하니 품질은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할 터. 화원에서는 화분갈이에 기존에 쓰던 흙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는 반면 그녀는 항상 완전히 새 흙으로 교체한다. 흙을 갈지 않고 쓰면 불순물이 섞여 있어 새 흙을 첨가하더라도 오염되기 때문이란다.경력 1년차의 아직은 신참내기 사업가. 회사만 20여년 다니던 샐러리맨이 난생 처음 하는 사업인 만큼 그리 만만치는 않다. 장사의 법칙을 하나 둘씩 깨달아 체득해 나가고 있다. “상품을 구입할 때 양주, 의정부 등 예전에 다육이를 구하러 다녔던 곳을 방문해 “저, 장사합니다”라고 공표합니다.내가 장사한다는 걸 알려야 더 좋은 물건을 더 저렴하게, 다양하게 살 수 있어요. 같은 상품이라도 꽃집마다 가격이 다르니까요. 소량이라도 여러 집에서 가져오는 것이 좋습니다. 한 집에서 왕창 사오면 재고밖에 안 돼요. 또 여러 꽃 농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물건 보는 안목도 길러지죠. 고객의 취향도 각양각색이므로 내가 좋아하는 상품들만 사올 수 없어요.”가격대는 천차만별이다. 책정하기도 까다롭다. “다육식물은 사서 죽이지만 않으면 해가 갈수록 가치는 더해집니다. 흔히들 ‘금액을 모르는 장사’라고 해요. 제가 수년여 키워 가지고 있는 다육이들은 좀 비싸요. 가장 비싸다고 하면 백지수표 정도?(웃음) 정말 소중한 애들은 아직 ‘출가’시키지 않았답니다.” 대략 작은 품종들은 1만원 이하이며, 두 세 종만 팔더라도 3만~4만원은 남긴다.화분 가격까지 포함하면 몇 십만원 정도는 손에 들어온다. 지역 특성상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전원생활을 하기 위해 내려온 경우가 많아 이런 식물 및 화분 구입에는 돈을 쓰는 편이라고 했다. 취미생활과는 엄연히 딴판이기에 다육식물을 기르고 관리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자기 것만 고집하지 않는다. 인터넷 사이트와 서적 등을 통해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있다.꽃은 생물이라서 한꺼번에 갖춰 놓고 판매할 수 없는 것도 애로점이다. 수익이 나면 재투자해 한 달에 한 두 번 계속 상품을 구입해야 한다. 또 연고가 없는 장소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르는 고객이 더 많다. “꽃집 관계자들이 말하기를, 화원을 알리고 고객을 확보하기까지 3년 정도는 걸릴 것이라고 하네요.” 아직은 장사에 능숙하지 않단다. 하루 종일 고객을 상대하는 일도 힘든 부분이다.월 매출 400만원…먹거리장터 갖춘 매장 내고파화원 판매를 하다가 얼마 전부터는 전국 꽃배달 서비스를 하고 있다. 경조화환, 기념일 등 각종 행사 꽃바구니를 제작해 배달한다. 대기업을 다녔던 남편도 퇴직한 지 올해로 3년째. 남편의 넓은 인맥이 고객 확보에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다. 처음 서비스를 개시했기 때문에 다른 데보다 저렴하게 가격을 매겼다. “경조화환의 경우 평균 10만원씩인데 우리 화원은 8만원이에요. 개당 2만~3만원 정도 이익은 남더라고요.” 올해는 다육식물을 구입하려는 고객이 더 늘어 월 매출 300만~400만원 정도를 올리고 있다. 고정 지출로는 공공요금과 1년에 한 번 내는 토지 임대료, 인터넷 비용 정도가 든다.비수기가 없다는 건 큰 장점이다. 다육식물 마니아들은 반짝 손님이 아니라 꾸준히 화원을 찾아 구매하는 고정 고객이기 때문이다. 수익 면에서도 괜찮다. 일반 꽃들을 판매하는 화원에서 10개를 팔아야 올릴 수 있는 수익을 다육식물 1개만 팔아도 가능하다.취미로 다육식물을 기르다가 화원을 차리는 이들이 많은데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구체적인 노하우를 가르쳐 주고 있다. 정씨는 “직장 다닐 때에 비해 금전적으로 풍족하진 않으나 시골생활은 큰 지출이 필요 없을 뿐더러 재미와 자부심도 느낄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현재 가지고 있는 땅을 더 넓혀 다육식물과 먹거리 장터를 결합한 매장을 차리고 나머지 인생을 즐기며 살고 싶다는 꿈도 밝혔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기자의 손에 그녀가 올망졸망 귀여운 다육식물들을 건네준다. 그건 그저 평범한 ‘다육이’가 아니었다. 다육식물에 대한 그녀의 일편단심, 지고지순한 사랑 그 자체였다.전희진 기자 h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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