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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맛 시벳커피 매력에 빠져 ‘赤道의 남자’ 됐죠”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세상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청초한 연꽃은 더러운 시궁창 속에서 피어나도 진한 향기를 뿜어내고, 현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커피는 사향고양이의 항문을 통과해야만 더욱 그윽하고 맛좋은 커피가 된다. 코피루왁, 국내에선 ‘고양이똥’ 커피로 잘 알려진 일명 시벳커피가 바로 그것이다. 한때 건축업과 인테리어, 호텔사업 등 여러가지 직업을 전전했던 유화수(52)씨는 필리핀으로 건너가 시벳커피를 연구한 끝에 ‘천상의 맛’을 끄집어냈다. 고양이의 먹이가 됐으나 다시 세상에 나와 가장 귀한 커피로 대접받게 된 ‘시벳커피’처럼 유씨의 인생2막은 시벳커피를 통해 이전보다 훨씬 값지고 풍부해졌다. 시벳커피 전도사가 되기 위해 오늘도 고양이와 커피 연구에 여념이 없는 시벳하우스의 유화수 소장을 만나봤다.

중순으로 접어든 5월 낮 기온이 한 여름날씨를 방불케 할 만큼 뜨거웠던 지난 8일 오후, 4호선 이촌역 부근에 위치한 카페 모스(Cafe Moss)를 찾았다. 필리핀에 살고 있는 유 소장이 잘 알고 지내는 지인의 카페이다. 아파트 단지 정원과 연결된 곳에 마련된 야외 테라스에서 기다리고 있던 유 소장과 만나 인사를 나누는 와중에 그가 포장한 커피 봉지 하나를 건넨다. 검정색 봉투에 하얀 시벳고양이 사진이 붙어 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루왁커피인가보다 하며 커피봉투에 코를 갖다 댔더니 구수하면서도 진한 원두향기가 밀려온다. 언젠가 TV CF에서 봤던 갓 볶아 거뭇해진 커피콩 위로 솔솔 김이 오르는 광경이 연상됐다. 순간 눈이 커지면서 “아~, 이게 시벳커피의 향기군요”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유 소장이 “있다가 맛보시면 더욱 놀라실겁니다”라고 말하며 싱긋 미소를 짓는다.

사향고양이 배설물에서 추출한 희귀한 ‘시벳커피’
시벳커피, 국내에선 ‘루왁커피’로 알려진 이 커피의 정체가 뭘까 궁금증이 더욱 증폭됐다. 언젠가 고양이의 똥으로 만든 커피가 있다더라, 한 잔에 몇 만원, 비싸게는 수십만원에 팔린다더라 하는 식의 해외토픽 같은 이야기를 들었던 적은 있었지만 직접 보게 될 줄이야. 그러나 ‘그렇다더라’라는 식의 풍문만 들었지, 시벳커피가 어떤 지역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과정을 거쳐 커피가 되는지, 맛은 어떤지 등에 대해선 정작 정보가 없었다.

나중에 유 소장이 쓴 ‘시벳커피의 진실’이란 글에 따르면 우리에게 그나마 익숙하게 불리고 있는 루왁커피, 즉 ‘코피루왁’은 인도네시아 말로 ‘시벳커피’를 말한다. ‘루왁’은 ‘시벳’의 인도네시아 현지말이다. 알라미드 커피의 ‘알라미드’도 시벳의 방언이다. 시벳의 정식명칭은 ‘말레이 팜 시벳’으로 우리나라에선 ‘사향고양이’라고 부른다. 결국 우리가 알고 있는 루왁커피는 시벳, 사향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먹은 후 배설을 하면 그 배설물을 세척해 건조시켜 볶아 만든 커피이다. ‘고양이 똥 커피’라고 불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시벳커피의 원산지는 주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지로 이들 국가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10여년 동남아서 산전수전 겪다 시벳커피에 눈떠
유 소장은 현재 필리핀 마닐라 북쪽에 위치한 내륙지방인 바이욤봉(Bayombong)에서 시벳사육과 시벳커피를 생산하는 ‘시벳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규모는 300여평으로 이곳에 주거공간과 시벳사육장, 번식장, 커피 건조대 등이 갖춰져 있다. 현재 약 36마리의 시벳을 사육 중이다. 그가 시벳커피에 관심을 갖게 된 것 2009년 무렵이었다. 한국에서 건축업과 인테리어 사업을 하다가 10여년 전 사업과 재산 등을 정리해 필리핀으로 건너왔다.

당시 나이 40대 초반, 사업을 하면서 모았던 돈을 가지고 필리핀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해보고 싶었다. 은퇴도 대비해야 할 것 같았다. 5년간 보라카이에서 호텔과 여행사업을 했다. 생각보다 신통치 않았다. 다시 사업을 정리해 마닐라에서 인력 송출업에 뛰어들었다. 그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골프장을 포함한 콘도 개발사업에도 참여했다. 은퇴자들을 위한 공간으로 가능성도 있어보였다. 그러나 이마저 순탄치 않았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시벳커피 사업을 권유받았다. 필리핀에서 시벳커피를 만나는 일은 어렵지 않았고 그는 평소에도 시벳커피를 즐겨 마시곤 했었다. 맛이 좋기 때문에 품질만 제대로 유지되면 사업성이 있을 것 같았다.

그날부터 그는 시벳커피 원두를 찾으러 필리핀 전역을 누비기 시작했다. 맛좋은 시벳원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서슴지 않고 달려갔다. 그는 그때를 떠올리며 ‘시벳커피를 찾으러가는 죽음의 길’이라고 불렀다. 필리핀은 태풍 등 자연재해가 잦은 곳이다. 먼 길을 여행하다보면 다리가 끊기거나 길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기후가 습해 길이 젖었거나 안개가 자욱한 곳도 태반이었다. 처음 방문한 곳은 타북(Tabuk)이란 곳이었다. 뱅겟(benguet),바기오(Baquio), 보코드(Bokod) 등 필리핀의 오지란 오지는 거의 다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준’이란 필리핀 현지인을 만났다. 그는 시벳커피콩을 홀로 생산해 미국 텍사스에 수출을 하던 커피중개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아시풀로(Asipulo)란 지역에서 오랫동안 커피를 재배했다. 유 소장은 준의 가족과 함께 그들이 만든 로브스타 시벳커피와 유 소장이 가져온 아라비카 품종의 시벳커피 맛을 비교하는 품평회를 가졌다. 그리고 아라비카로 만든 시벳커피의 맛이 월등하게 좋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유 소장은 그 자리에서 최상급의 아라비카로 최고의 맛을 내는 시벳커피를 생산하고 싶었다. 그날 자리에서 유 소장은 준에게 자신의 계획을 밝혔다.

시벳하우스에 마련된 사육장에서 자란 시벳들이 커피열매를 맺고 배설을 하면 그 속에서 커피콩을 골라내 세척·건조, 로스팅·포장 과정을 거쳐 ‘천상의 맛’을 가진 시벳커피로 만든다.[사진: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이곳이 아라비카 커피가 부족하지만 인근에서 구할 수있을 것이고 준이 시벳커피를 만든 경험이 있으니 여기에 시벳커피농장을 만들자, 그리고 직접 손으로 채취한 고급 아라비카종 체리로 고급 시벳커피를 만들어 다양한 로스팅을 통해 최상의 시벳커피를 선택하고 각자 특성에 맞는 브랜드 네임을 부여하자.” 그날로 그들은 계약서도 쓰지 않고 동업자가 됐다.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우수한 품종의 아라비카와 시벳을 찾아 다시 필리핀 전역을 누비기 시작했다. 아시풀로엔 시벳하우스 1호점을 건설했다. 밖에 나가 아라비카와 시벳을 확보하고 안에서는 시벳을 키우고 커피건조와 로스팅을 반복하며 커피의 향과 맛을 개발하는데 온 정렬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동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동업자가 변절을 한 것이다. 그에게 남은 건 병든 시벳 다섯 마리뿐이었다.

현지인 동업자 배신 폭풍우 등 온갖 고난 끝 재기
유 소장은 절망스러웠다. 배신감도 배신감이었지만 최상의 시벳커피는 커녕 다시 재기가 가능할지도 모를 정도로 막막한 상황이었다. 그는 고양이 다섯 마리를 데리고 지금의 바이욤봉으로 돌아왔다. 다시 혼자 시작해야 했다.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는 일이었다. 남은 고양이들을 다시 먹이고 건강을 회복하게 하면서 수중에 남은 비용을 가까스로 추슬러 다시 커피콩과 시벳 구하기에 나섰다. 최상의 시벳커피를 만들겠다는 그의 의지는 이미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매일 커피맛을 테스트하면서 최고의 맛을 찾는데 온힘을 기울였다. 그러던 중 커다란 태풍으로 그가 머물던 곳이 고립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도로와 다리도 끊기고 외부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전기도 끊겼다. 그는 촛불을 켜고 커피 맛을 연구했다. 어느 날 한밤중에 그는 잠을 자다가 일어났다. 그날따라 일찍 잠이 들었던 그는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에 문득 커피가 생각났다.

그는 그 일을 두고 ‘커피향이 불러 잠에서 깼다’고 말한다. 당시 확보하고 있던 품종 중에 아라비카 마운틴 티피카가 든 병을 열고 원두를 오독오독 깨물어 먹었다. 향이 어느 때보다 남달랐다. 그는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조심스럽게 원두를 꺼내 빻아서 커피를 뜨거운 물에 우렸다. 한모금, 입안으로 커피액이 흘러드는 순간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당시 그가 기록한 ‘천상의 커피’란 제목의 글을 보면 그때 순간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 커피인데 맛은 커피가 아니다. 천상의 향기다. 신들이 먹는 차에 커피향을 조금 섞었다고 할까. 마시기 아까워 조금씩 마신다. 입안 가득히 향기로 채운다.” 이 일 이후에 그는 더더욱 시벳커피 개발에 자신감이 붙었다. 운도 따랐다. 고양이가 부족해 사업의 성패도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우연히 필리핀 소수민족인 ‘이따족’여인을 도운 것이 계기가 돼 시벳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이따족은 피그미족 다음으로 작은 부족이다. 시벳을 찾으러 퀘리노 지방에 갔다가 이 부족 출신인 ‘엘사’라는 여성을 만났다. 당시 그녀는 신장병에 걸려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병원에 딱 한번 간적이 있는데 의사도 손을 쓸 수 없어 비타민만 처방해줬다고 한다. 연민을 느낀 그는 자신의 사비를 털어 엘사를 병원에 데려갔다. 호흡기와 영양제를 투입했지만 그녀는 결국 병상을 털고 일어나지 못했다.

그 일 이후 이따족은 그에게 호의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길에서 시벳을 찾으러 다니는 그를 만나면 돌을 던지던 사람들이 시벳이 사는 곳을 알려주고 무려 45마리의 시벳을 구해줬다. 좋은 인연은 지속된다고 그는 그 이후로 이따족과 친구가 됐다. 비록 엘사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는 그녀가 마지막에 보여준 미소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향후 이따족 후원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다수의 시벳을 확보하게 되면서 그의 커피 사업도 다시 활기를 띠게 됐다. 지난해부터는 커피에 일가견이 있는 친구 임민철씨가 합류해 로스팅을 하면서 ‘천상의 커피’맛을 유지할 수 있게 돼 고른 품질의 최상급 상품 생산이 가능해졌다.

가족과 함께 매일 시벳커피 마실 수 있는 지금이 행복
그는 최근 2,3년 사이 바이욤봉에 시벳하우스2, 3호점을 연달아 내면서 사업의 내실화를 꾀하고 있다. 시벳커피는 한꺼번에 많은 양을 생산할 수 없다. 시벳 한 마리당 하루 50~200g을 생산한다. 50g정도를 생산해야 최상급의 상품이 나온다. 시벳커피는 일반 원두커피와 달리 인체에 들어가면 이완작용을 해 심신을 안정시키고 혈액순환에도 좋아 피로를 풀어주는 기능을 한다. 매일 시벳커피를 마시는 유 소장이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유 소장은 시벳하우스에서 매일 가족과 함께 일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생활하는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는 본인의 수입에 대해선 구체적인 수치를 밝히길 꺼려했지만 일단 이 일을 진지하게 해보려는 사람이라면 1억 정도 투자해 연 5000만~60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베이비부머 세대로서 한국의 은퇴자들이 시야를 국내에만 한정시키지 않고 필리핀이나 인근의 동남아 국가들에서 기회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커피를 사랑하고 진지한 자세로 소규모 커피집 창업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개발한 시벳커피 생산 노하우도 기꺼이 알려줄 의향도 있다고 했다.

유 소장은 앞으로 10여년 간은 시벳커피 개발과 보급을 위해 노력해 나갈 계획이다. 가까운 미래엔 시벳을 정책적으로 번식시키는 등 관련 산업 활성화를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베트남 시장을 공략해볼 복안도 갖고 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카페 모스의 바리스타가 시벳커피를 내려 가져왔다. 강배전한 커피잔을 입가에 댔다. ‘헉’다시 한번 눈이 커진다. 이럴 수가 정말 ‘천상의 맛’이 이런 건가보다. 쌉싸름하면서도 달콤한 향이 입안을 가득 매우며 오랫토록 향이 떠나지 않았다.

김은경 기자 kekisa@


50플러스  |  econovill@econovill.com  |  승인 2012.05.17  09: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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