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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 불다가 뒤늦게 만난 홍삼 이야기"

[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색소폰 연주가였던 주창근씨는 사업에 실패한 후 전북 진안에서 홍삼제조 업자로 재기에 성공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밤업소를 전전하고 심지어 어부가 될 뻔도 했지만 홍삼을 만난 그는 지금 연 매출 1억원 이상의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귀농한다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요. 더군다나 홍삼이라니요. 홍삼은 음악하면서 선물로 한 박스 받은 게 다였는데. 사람의 운명, 그거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더군요.”

10년 전까지만 해도 주창근(50) 씨는 서울에서 제법 잘 나가던 색소폰 연주자였다. 오로지 음악만이 자신의 길이라고 믿었다. 강남의 주요 유흥업소와 라이브카페에서 색소폰 연주가로선 섭외 1순위였고 유명 연예인의 밴드 구성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역 시절 주 씨가 색소폰을 멋들어지게 연주할 때면 사람들은 그에게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냈다. 덕분에 돈도 많이 모았다. 그는 모은 돈으로 자기만의 사업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시작한 것이 술집이었다. 익숙한 일을 하면 잘 될 거라고 막연히 믿었지만 막상 현실에 부딪혀보니 익숙하다고 다 잘 되는 건 아니었다.

강남 섭외 1순위 색소폰 연주가 악기 팔고 낙향
술집 운영은 그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개업만 하면 번번이 장사가 안돼 문을 닫아야 했다. 결국은 가진 것을 모두 잃고 빈털터리 신세가 됐다. 할 수 없이 가족과 함께 형님 집으로 들어가 잠시 얹혀 지내야 했다. 당시 아내가 둘째 아이를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그조차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현실은 인정사정없었는데, 형편은 더욱 어려워져만 갔다.

결국 아내는 친정식구들이 있는 전북 진안으로 내려갔다. 그가 진안으로 내려가기 1년 전의 일이었다. 그 사이 그는 서울에서 색소폰을 불었고 금요일만 되면 진안에 내려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 후 월요일에 다시 서울로 돌아와 홀로 생활을 했다.

그렇게 수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 그는 시골에서 생활에 적응했고 심지어 좋아지기까지 했다. 그러자 음악 일에 회의감이 들었다. 밤에 업소를 나가는 일도 염증이 느껴졌다. 자신 때문에 힘들어하는 가족을 더 이상 두고만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음악을 접기로 하고 다음날 가지고 있던 악기를 처분하기로 했다. 색소폰 하나만 남겼다.

“색소폰을 군대 가서 처음 배웠어요. 소싯적에 제가 노래를 좀 잘했는데 훈련소에서 군내 가수로 차출됐죠. 밤마다 대대장한테 불려가 실컷 노래를 부르면 훈련에서 열외되곤 했어요. 마침 군악대원이 한 명 전역하게 되면서 자리가 비었고 그 자리에 제가 들어갔죠. 악기를 하나씩 다룰 줄 알아야 해서 색소폰을 선택했어요. 남들은 소리 내는 것도 힘들다고 하는데 전 일주일 만에 완벽하게 소리를 낼 정도로 소질이 있었죠.”

원래 처가는 부산에 있었다. 아내의 누이가 진안으로 시집을 가게 되면서 장인과 장모도 진안으로 가서 함께 살게 됐다. 주 씨의 동서는 어부였다. 어업권을 가지고 바다에 나가 일을 했던 동서는 본격적으로 진안에서 살기로 한 주 씨에게 함께 어부일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벌이도 괜찮을 것 같고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뭔가를 해야 했기에 주저 없이 바다로 나섰다.

막상 시작해보니 어부는 하늘이 내려주는 직업임을 알게 됐다. 아무나 못할 일이었다. 특히 어업은 밤에 일해야 했기에, 칠흑 같은 어둠을 대낮처럼 여기며 고기를 잡는 일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생계를 위해 다시 색소폰을 들고 도시로 나갔다. 진안에서 1시간 내로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인 대전에서 라이브카페 몇 곳을 돌며 연주를 했다. 역시 늦은 밤까지 일하고 새벽에 돌아와야 했다. 기름값을 빼고 나면 남는 것도 별로 없었다. 6개월 만에 그만뒀다.

색소폰 무료 연주하며 지역 인심 얻어 홍삼사업 시작
그러던 중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주 씨 부부는 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 교회 목사가 헛개나무를 재배하며 열매추출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당시 별다른 일이 없었던 주 씨는 목사를 도와 헛개열매 즙 내리는 일을 했다. 처음 하는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목사가 그를 불렀다. 기술을 전수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젊은 사람이 보수도 없는 일을 묵묵히 착실하게 해나가는 모습이 좋아보였나 보다. 헛개농법을 배우면서 다른 농사법에도 관심이 갔다. 농촌생활을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농촌엔 농사일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정말 많다는 것이었다. 농업기술센터같은 곳에서 수시로 농작물 교육을 실시했다.

헛개나무를 재배하고 즙을 제조하는 과정을 어깨너머로 봐온 그는 다른 농작물도 배워두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안농업기술센터에서 사과, 오미자, 인삼 재배 교육 기술을 배웠다. 사과와 오미자 재배는 가끔 수업을 빼먹었지만 인삼은 빼놓지 않고 수업 전 과정에 참여했다.

농업기술을 배우면서 그는 점점 지역사회와도 가까워졌다. 동네 사람들과 안면이 생기면서 지역에서 그가 색소폰 프로라는 사실도 함께 알려졌다. 당시 진안군에 ‘느티나무앙상블’이란 연주모임이 있었는데 어느 날 색소폰 연주를 함께 해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 일이 지역 일에 참여하게 된 시발점이 됐다. 그는 마을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행사나 진안군 차원의 대소사 때마다 색소폰 연주를 하게 됐다. 물론 무료봉사다.

[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주로 뽕짝 메들리나 인기드라마 주제가 등을 연주해 문화를 많이 접하지 못한 주민도 색소폰 연주를 좋아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진안을 대표하는 유명인사가 됐다. 그는 지역 합창단은 물론 진안군청 공무원 색소폰 동호회 등 여러 모임에 참가하며 지역주민에게 색소폰의 매력을 알려나가고 있다.

인삼재배와 홍삼제조 기술을 배운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진안군에서 홍삼가공농장을 보조하는 사업공고가 떴다. 홍삼은 진안군의 대표적인 특산품이기에 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된다는 마음에서 지원서를 냈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예상치도 않게 그가 사업자로 선정됐다. 타 지역 사람이지만 의욕적으로 농사일을 배우고 성실하게 지역봉사를 해온 그를, 지역사회에서 인정했기 때문이다.

사업자로 선정된 후 그는 인삼을 더 깊이 알고 싶었다. 이번엔 중앙대학교산학협력단에서 운영하는 ‘인삼과 홍삼에 관한 전문가 과정’에 1년간 참여했다. 그사이 농가보조금이 나왔고 그 돈으로 그는 홍삼을 제조해 팔았다. 홍삼을 팔아서 이윤이 남으면 조금씩 땅을 사서 일궜다. 홍삼공장도 세우고 건조장도 만들고 집도 짓고 그런 식으로 2~3년을 보냈다.

초기 자본금은 약 8000만원 정도로 시작했다. 자기자본금이라고 할 게 전혀 없었다. 모두 대출을 받거나 농가지원금으로 충당했다. 집은 3%대 저리로 4000만원을 보증 받고 나머지는 돈을 벌면 모아뒀다가 나중에 결제하는 식으로 마련했다. 집을 지을 때 아는 사람을 통해 통상적인 비용(약 1억원)보다 약 3000만원 정도를 절약할 수 있었다.

“집을 딱 짓고 나니까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습니다. 아무것도 없이 내려와서 가족들이 함께 살 터전을 마련했으니 그 감격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공장을 세웠을 때 ‘내 공장이 이렇게 생기는 구나’하는 마음에 기분이 좋았는데 집을 짓고 나니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기쁨이 몰려왔었죠.”

8000만원 자본금으로 1억대 연매출, 성공한 귀농인
주 씨의 홍삼공장과 집은 현재 진안군 용담면 송풍리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5개가 한꺼번에 수몰돼 거대한 호수를 이루고 있는 용담댐 부근이다. 규모는 약 300평 정도이다. 진안은 다른 지역보다 고지대에 있기 때문에 낮과 밤의 기온차가 많이나 농작물 품질이 유수하다. 그곳에서 홍삼 제조 7년 차를 맞고 있는 주 씨는, 홍삼으로 연매출 1억원 이상을 올리고 있다.

“건강식품이 수요가 워낙 편차가 심합니다. 괜찮을 땐 월평균 1000만원까지도 벌고 안 될 때는 500만~600만원 정도를 벌기도 합니다. 매출만 1억~1억5000만원 정도 됩니다.”

그런 그도 요즘 걱정이 있다. 농사를 짓느라 대출과 보증을 받아 자금을 마련해온 탓에 내야 할 이자액수가 너무 커져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아내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그래서 그는 요즘 홍삼 판매 마케팅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구상하고 있다. 다행히 얼마 전 진안군에서 시행한 홍삼품질인증농가로 지정됐다. 진안군은 요즘 중국산이나 불법으로 만든 홍삼이 기승을 부리자 품질인증제를 시행한 것이다.

“진안군 전체에서 11개 농가가 지정됐는데 그 안에 포함돼서 정말 뿌듯합니다. 저는 하나라도 좋은 걸 이웃과 나눠 먹고 싶은 마음으로 홍삼을 내립니다. 그 정성이 소비자들에게 전달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는 앞으로 홍삼제조장을 체험 위주 공간으로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겠다는 계획이다. 지금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건 황토방을 짓는 일이다.

“주 고객들을 대상으로 그분들이 오셔서 홍삼도 즐기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계획입니다. 미니음악회도 열어 그분들 앞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게 제 소망입니다.” 주 씨의 농촌 적응기는 성공적이다. 그는 올해 전국귀농귀촌페스티벌에서 전북 지역 우수사례로 선정돼 상을 받기도 했다.

“저는 처음부터 귀농귀촌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건 아닙니다. 여기서 살면서 농촌엔 새로운 인생에 도전할 기회가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은퇴를 준비하신다면 농촌도 한 번쯤 문을 두드려 보시는 것도 좋을 겁니다. 사람 좋고 살기 좋은 진안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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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과정 지역 농업기술센터서 사과교육, 오미자교육, 인삼교육 받고 지역 교회 목사에게 헛개 추출 기술 습득, 중앙대학교산학협력단 인삼·홍삼 전문과 과정 1년 수료
성공노하우 자신의 특기인 색소폰 연주로 지역에 봉사하며 주민들과의 친화력 발휘해 적성에 맞고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함, 근면·성실함과 강한 책임감과 늘 연구하는 자세로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 타지역인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에서 신뢰와 인정을 받아 성공의 발판으로 만듦


김은경 기자 kekisa@


50플러스  |  econovill@econovill.com  |  승인 2012.08.03  07:2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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