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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일 있으면 퇴직 두렵지 않아요”

[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공무원이었던 박창우씨는 정년퇴직 후 닥종이인형 작가로 인생 후반전을 열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데다 여성들이 대다수인 닥종이 공예 분야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두 세배의 노력을 기울이며 고군분투했다. 그 결과 차별화된 작품성으로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쓸며 이제는 자신의 브랜드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 있다.

순백색 한복을 입은 여인이 장삼을 높이 휘날리고 있다. 풍성하고 미세하게 주름 잡힌 치마와 춤사위가 어찌나 곱고 생동감 있는지 보는 이의 시선을 잡아끈다. 지난해 6월 이탈리아 로마의 국립미술박물관 전시회에 초대된 닥종이인형 작품이다. 한복의 아름다움과 우리 춤을 소재로 한 ‘살풀이’가 이 작품의 주제다. 대중과 평단은 “한국의 미를 가장 잘 살린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살풀이는 일본 미노시 한지테마파크에도 전시돼 호평을 받았다.

이 작품을 탄생시킨 사람은 닥종이인형 작가 박창우(61)씨다. 그는 현재 일본과 유럽에서 주목받는 닥종이 공예계의 ‘별’이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은발머리의 이 남자, 외모만 봐서는 닥종이 공예 공력이 수 십 년 된 베테랑 작가일 것 같지만 그게 아니란다. 전직은 공무원. 닥종이 공예가의 길은 50대 초반 뒤늦게 걷게 됐단다. 도대체 연세 지긋한 분이 한 번도 접한 적 없는, 게다가 여성들이 주류인 분야에 어떻게 뛰어들게 됐을까.

정년퇴직 전부터 준비한 꿈과 도전
박 씨가 닥종이인형과 인연을 맺은 건 서울의 한 구청에 근무하던 2004년. 문화체육부서 소속이던 그는 각 동사무소의 문화강좌 점검을 다니던 중 우연히 닥종이 공예반을 만났다. “남자는 배워보면 안 되나요?”

여자들만 있는 교실에 들어가기 멋쩍어 그냥 던진 말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줄이야. 제작 방법을 간단히 익혀 닥종이인형 만들기에 나섰는데 뜻밖에 강사의 칭찬을 들었다. 1년 배운 사람보다 더 잘한다는 것이었다. 생전 처음 본 닥종이인형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재료를 사다가 인형을 한 번 만들어보고는 닥종이공예 강사에게 가져갔다. 이를 본 선생님의 반응은 또 긍정적인 평가였다. 옛 단상을 회고하던 그가 자신의 첫 작품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매미채를 든 시골 소년이에요. 자, 보세요. 눈도, 입도… 참 못 만들었잖아요.”
흠 투성이라지만 첫 작품 치고는 수준급이었다. 박 씨가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쨌거나 완성된 닥종이인형이 참 예뻐 보였더란다. 게다가 얇은 한지를 한 겹 한 겹 붙이다보니 마음이 안정되고 잡념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한지를 자르지 않고 찢었을 때 생긴 종이 결이 정말 아름답고 따뜻한 느낌이 들더군요. 종이의 부드러운 질감은 어머니의 품속처럼 포근함을 줬어요. 이 섬세한 결로 얼굴의 주름이나 머릿결, 수염, 속눈썹, 동물의 털은 물론 희로애락의 표정과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다니…”

세 딸에게 옷을 직접 만들어 입혀 키우기도 한 ‘전력’이 있는 만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의상 연출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그는 이참에 정식으로 배워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래서 입문하게 된 닥종이 공예. 박 씨는 일이 끝나면 바로 닥종이공예 학원으로 달려갔다. 인형 하나를 배우면 집에 와서 머리통 10개는 만들 정도로 닥종이인형 만들기 삼매경에 빠졌다. 그러던 2006년 9월 어느 날, 처음 나간 공모전인 ‘대한민국한지대전’에 출품한 작품 ‘씨름’이 입선을 하면서 그는 닥종이인형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57살 은퇴 공무원, 취미를 업으로 삼다
이후 ‘제1회 크라운 해태제과 닥종이 인형공모전’ 입선(2006년), ‘제12회 전국한지공예대전’ 입선, ‘제7회 대한민국한지대전’ 입선(2007년)등 연이은 수상에 점점 자신감이 늘고 삶의 활력마저 되살아났다. 2008년 6월, 그렇게 닥종이인형을 만들며 맞이한 정년퇴직. 30여년 공직생활을 갈무리하고 닥종이 공예가로서의 전격적인 활동이 시작됐다. ‘할 일’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은퇴가 두렵진 않았다고.

그는 퇴직 다음날 바로 지역 문화원의 새로운 닥종이인형 강좌를 찾았다.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다시 기초부터 차근차근 다져나갔다. 그리고 몇 달 후, ‘수원화성 종이공예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동안 적지 않은 수상 경력을 갖고 있어 우쭐했던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부끄러워졌습니다. 선생님과 다른 닥종이 공예가들의 작품을 봤는데 정말 실력이 출중했거든요. 인형이 진짜 살아있는 것 같았죠.”

미술 전공이 아닌 데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해 생긴 간극을 좁히기 위해 두 세 배의 노력을 기울였다. 노후에 독서실이라도 차려볼까 하고 집 근처에 구입해둔 89m²(27평)짜리 사무실에 작은 공방을 마련, 매일 틀어박혀 작품을 만들고 또 만들었다. 마침내 박 씨의 노력이 서서히 빛을 발했다. ‘제10회 대한민국한지대전’ 특선2점과 특별상, ‘제5회 크라운해태 닥종이 공모전’ 은상과 특선 등을 수상, 여성들이 대다수인 그것도 기라성 같은 닥종이 공예가들 틈바구니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비결은 기존 형식과 차별화한 작품성에 있었다.

평범함을 거부하다…차별화된 작품으로 승부
닥종이 공예는 뼈대가 되는 피복전선(철사)에 한지를 조금씩 뜯어 풀로 붙이며 기본적인 형태를 만들어 간다. 잘게 찢어 붙여야 내구성이 좋아진다고 한다. 색깔을 넣을 땐 염색한 한지를 뜯어 붙인다. 한 번에 종이를 7, 8겹 붙이고 나면 작업물이 마를 때까지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 잘 말리지 않으면 인형 속이 썩어버리므로 완전히 건조된 후에야 다시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인형 머리 하나 완성하는 데만 한 달 이상이 걸리며,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까지는 석 달가량의 기간이 소요된다. 박 씨는 “닥종이 공예가 재료와 작업 자체는 간단해 보일지 모르지만 보통 정성과 시간을 쏟아야 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의 닥종이인형 작품은 엄청난 정성과 시간을 투입하는 것 외에 다른 것과는 ‘다름’을 지향한다.

우선 크기부터가 대형이다. 대개 닥종이인형의 키가 35~50cm인 반면 그의 인형은 1m에 이른다. 평범함을 탈피, 시선을 끌고 비교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요소일 수밖에 없다. 단순한 종이 인형 작품이 아니라 조각품,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코노믹리뷰 이미화]


또 한지를 직접 염색해 사용하므로 색감이 다채롭다. 그는 귤, 부추, 감초, 커피 같이 흔한 것들을 모두 염색재료로 쓰고 있다. 이를테면 부추를 우려내어 선명한 초록색을 얻는 식이다. 무엇보다 연출력이 뛰어나 중심인물과 다른 여러 가지 주변 소품 및 환경을 더한 대작을 만드는 데 능하다. 정교하고 사실적인 소품 만들기에 일가견이 있는 그는 자신의 장점을 살려 작품 속에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담아낸다. 따라서 각종 공모전에서 그의 작품들은 인기가 높다.

“이야깃거리를 만들기 위해 작품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는 항상 상상을 해요. 염색 재료뿐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행동 등이 모두 작품의 모델이 됩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이들을 유심히 살피다가 오해를 사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박 씨. 한 번은 공중목욕탕에서 사람들의 벗은 몸을 관찰하다가 ‘이상한 놈’ 취급받은 적도 있단다. “인체의 흐름을 연구하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 인형에 옷을 입혔을 때 디테일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모양새를 살릴 수 있거든요.”

경상북도 울진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던 점도 한몫했다. 향수에 젖게 하는 우리네 과거의 생생한 재연, 푸근한 웃음과 정감어린 동작들은 모두 경험에서 우러나온 상상력과 솜씨가 빚어낸 힘이다. 그는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는 표현력을 구사하기 위해 매주 수요일이면 인사동을 찾는다.

“인사동은 소재가 무궁무진한 곳이에요. 가게의 진열된 상품들,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 색감 등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다 관찰하고 사진을 찍어 기록합니다.” 살아 숨 쉬는 듯한 ‘박창우표’ 닥종이인형 작품의 가격대는 50만원대~100만원대까지 천차만별. 대작일수록 비싼데 개중에는 3000만원이 넘어가는 고가도 있다.

한국적인 닥종이인형 세계화에 앞장서고파
닥종이인형에 매달려온 지 8년. 전국대회를 누비며 탄 상장만도 20여개에 달한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상을 가장 많이 받은 닥종이인형 작가에 속한다. 이미 해외에도 이름이 알려졌다. 그는 “오로지 인형을 예쁘게만 만들어야겠다는 욕심 하나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말린답시고 온 집안에 널어놓은 눈·코·입 없는 닥종이인형들,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민둥민둥한 인형 머리통과 손가락들…

가족들이 처음엔 흉측하니 저리 치우라며 원성이 자자했지만 이제는 어엿한 닥종이공예가이자 작가·예술가인 남편과 아빠로의 변신에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있다. 정년퇴직한 예전 직장 동료들에게도 ‘할 일’이 분명히 있는 그는 선망의 대상이 다.

유명해지다 보니 전시회 초청, 작품 제작 의뢰가 끊이지 않고 들어온다. 박 씨가 “향후 2~3년 스케줄이 벌써 꽉 차게 될 것 같다”며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최근 한·일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일본 전시회에 닥종이공예 부문 한국 대표로 초청받아 작품 40여점을 선보이고 돌아왔다. 또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초대작가로도 선정돼 요즘 작품 기획에 여념이 없다.

그가 바라는 것은 ‘닥종이 공예의 세계화’다. 한국에만 있는 한지가 가진 무한한 매력을 닥종이 공예, 닥종이인형을 통해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다는 것이다. 더불어 닥종이인형을 ‘작품’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 국내 미술계 풍토를 바꿔놓고 싶다는 바람도 비쳤다.

“나중에 닥종이인형 박물관을 세울 거예요. 누구든 차 한 잔 하면서 편한 분위기에서 닥종이 공예의 매력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래서 지금 돈을 차곡차곡 저금하고 있습니다.(웃음)” 한지에 불어넣는 열정과 따뜻한 혼으로 그는 그렇게 제2의 청춘을 즐기고 있었다.

50+ 성공노트
자본금 공직에 있을 때 노후 준비 차원에서 평당 580만원인 27평 규모의 사무실 구입, 퇴직과 동시에 닥종이공예를 할 수 있는 작업실 및 공방으로 활용. 한지 값 1장당 1200원으로 작은 크기의 작품 제작 시 3만~5만원 정도 투입. 생활비는 연금과 그동안 모아 놓은 약간의 돈으로 충당함.

준비기간 및 과정 퇴직 전부터 문화센터, 지역문화원의 닥종이 공예 강좌를 다니고 독학 등으로 10년여간 공부하며 기술을 연마. 닥종이 공예는 대학에 아직 정식과목이 개설돼 있지 않으므로 문화센터나 사설학원의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이 대부분임.

성공노하우 현업에 있을 때 발견한 관심거리, 취미를 적극적으로 배워 기량을 발전시킴으로써 은퇴 후를 대비함. 이왕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주변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연구, 남들과 차별화된 작품을 제작해 경쟁력을 높임. 집에 있으면 나태해질 수 있기 때문에 작업실이자 공방을 마련해 깊이 집중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 및 사업장을 조성함.

닥종이 공예가 작은 소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한지 한 장 한 장 떼어서 붙이는 작업을 수천 번 해야 하는 ‘정성과 시간의 예술’인 만큼 자기와의 싸움을 슬기롭게 이겨낼 수 있는 고도의 인내심은 필수. 몇 시간씩 한지를 찢는 데는 상당한 힘이 필요하므로 손목과 팔의 건강을 다스릴 줄도 알아야 함.


전희진 기자 h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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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플러스  |  econovill@econovill.com  |  승인 2012.12.06  06: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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