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이미화 기자
 

‘은퇴’라는 단어에 깃든 부정적인 의미를 타파하고 이를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인 오하영 씨. 인생2막을 마술사로 화려하게 연 그는 젊은 시절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배움을 멈추지 않고 있다.

 

어린이집 마술 공연

검은 망토 검은 모자

구름타고 지금 도착

구름타고 갈 거라고

신비로운 분위기 붕붕

고운 꿈 바른 마음

천사들의 눈이 반짝

호기심 쑥쑥 재미 솔솔

한 명 한 명 눈 맞추며

즐거움을 고루고루

동화작가 오하영 씨의 작품 중 일부분이다. 그러나 이 지면에서는 동화작가가 아닌 마술가 오하영 씨에 대해 쓰려고 한다. 박물관 문화해설사, 동화작가, 마술사, 기자, 웃음치료사, 교육강사인 그의 일에 대해 다 쓸 수 없기도 하거니와, 자신이 가장 불리고 싶은 이름이 마술가이기 때문이다. 평소 그가 가지고 다니던 가방에 마술용품이 가득 찬 것만 해도 마술사에 대한 열정을 짐작하게 한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마술사

찬바람이 유독 심했던 11월 월곡역에서 만난 그는 ‘할아버지’였다. 그러나 취재를 시작한지 3분만에 그는 '청년'으로 변했다. 요새 젊은이들이 쓰는 시쳇말로 그는 ‘볼매남’, '볼수록 매력있는 남자'였다.  1942년생. 70세가 넘은 청년은 어깨에 맨 커다란 가방에서 마술 용품을 꺼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마술을 배운 겁니다. 마술을 배우지 않았다면 제 삶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겁니다.”

기회는 우연하게 찾아온다고 했던가. 오 씨는 지금으로부터 약 30여 년 전인 1981년 마술을 처음 접하게 된다. 문화시찰을 위해 방문했던 일본여행에서 거리 마술사를 보게 된 것. 보통 사람이라면 보고 지나쳤을 거리 마술사를 보고 그는 제자들을 떠올렸다.

“다른 학년도 마찬가지지만 초등학교는 특히 학생들을 수업에 집중시키는 게 어렵습니다. 한번 떠들기 시작하면 수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죠. 그때 마술을 보여주면 쉽게 아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마술은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즐거움과 재미를 줄뿐 아니라 창의력과 탐구심도 심어줍니다”

그는 그 길로 마술용품 세 개를 구입해 독학에 들어갔다. 이 덕분에 그는 교직생활을 하는 내내 ‘마술선생님’으로 불렸다. 인기도 좋았다.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을 꼽으라면 항상 오 씨가 거론된 것. 그의 마술사랑은 퇴임식에서도 나타났다.

“퇴임식을 거창하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전교생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20여 분간 마술공연을 진행했습니다.”

교장선생님의 마술쇼는 이색 퇴임식으로 유명세를 탔다. 각종 언론에서 퇴임식을 취재해 소개했다. 이러한 관심은 그에게 다시 기회로 다가왔다. 서울교원연수원에서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마술 교육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이를 계기로 오 씨는 본격적인 마술사의 삶을 걷기 시작했다.

노력도 많이 했다. 취미로 마술을 하던 때와는 달리 교육을 위해서는 다양한 마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술 교육을 부탁받자마자 서점에 달려가 ‘마술’이 들어가는 책을 모조리 사봤다. 그 이후에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교육기관을 통해 전문적으로 마술을 배운 것이 아니라 오로지 독학으로 깨우친 마술이었던 만큼 우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마술은 배울수록 더 연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를 하더라도 능수능란하게 해내야 하기 때문에 길을 걸을 때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쉬지 않고 연습을 합니다. 끊임없이 준비하고 노력해야 하는 마술.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것 같아요.”

그는 수줍게 웃어 보이며, 겉옷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 마술을 보여줬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연습은 아무리 많이 해도 부족하다던 그는 이제 더이상 첫 공연에서 세 가지 마술을 보여주던 초보 마술사가 아니다. 지금은 60여 종류의 마술을 가뿐히 소화해내며 2시간의 공연을 해내는 프로 마술사다. 퇴직 후 행한 마술공연도 250회가 넘는다. 현재 그는 어린이집, 노인대학원 등에서 주로 공연한다. 몇 해 전에는 윤도현의 러브레터에도 출현했다.

“11월 28일에 광주에 위치한 노인대학교 졸업식에서 공연이 있습니다. 그럼 16개 시도에서 꼭 한 번씩은 공연을 한 게 됩니다. 제가 이렇게 말을 하면 주위에서 세종시가 있지 않느냐고 합니다. 최근 세종시가 특별자치시로 지정돼 잊고 있었던 거죠. 그럼 이제 세종시만 남았습니다.”

그는 한 달에 평균 7~8회의 공연을 한다. 행사에 따라 받은 금액에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유치원은 한번 출강할 때마다 7~10만원의 보수를 받는다. 그리고 노인대학원은 한 시간에 5만원으로 지정돼 있다.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땀 흘리며 일할 수 있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은퇴는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기회

마술을 통해 인생 후반전을 활짝 연 그이지만 은퇴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랜 교직 생활로 연금의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어느 정도 노후준비가 된 상태였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퇴직을 2년여 앞두고 불안감이 찾아왔다.

사진 이미화 기자
“40년 넘게 교직생활을 해온 덕분에 다른 사람들보다는 노후 준비가 잘 돼있었습니다. 하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일어나 가던 곳이 없어진다는 생각에 막막했습니다. 이제 막 60대에 접어들었을 뿐이었으니까요.”

그는 퇴직 전 부랴부랴 워드프로세스를 배웠다. 그리고 워드 2급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1급을 따지 못한게 못내 아쉽기만하다. 워드프로세스 1급 자격증이 있으면 복지관이나 노인대학 등에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오 씨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은퇴 후 삶에 대한 준비는 적어도 4~5년 전에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더불어 가능한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해야 다양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은퇴는 오 씨의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가족과 생계를 위해 포기해야 했던 꿈도 다시 갖게 됐다.

“퇴임을 하고 나서 은퇴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은퇴는 두렵고 막막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젊은 시절 바쁜 생활에 치여 미처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는 우선 박물관 문화해설사에 도전했다. 이룰 위해 퇴직 직후 찾아온 여름동안 문화해설사 교육을 받았다. 현재는 당당히 고인쇄 박물관 문화해설사로 활동 중이다.

오 씨는 물관을 찾은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우리나라 금속활자의 우수성과 귀중한 문화유산에 대해 아릴 수 있다는 자부심이 크다고 웃어보였다.

그는 이외에도 도(道)자원봉사센터 교육강사, 복지관 노인 소비자 강사, 동사무소 자치위원, 웃음치료사 등으로 활동 중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게 자원봉사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돈은 먹고 살 정도만 있으면 됩니다. 현재 마술사를 하면서 그 정도의 돈은 충분히 벌고 있죠. 그래서 나머지 시간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주로 투자합니다.”

그는 은퇴 후 기자가 되고 싶었던 꿈도 이뤘다. 신문에서 실버넷(www.silvernetnews.com) 인터넷 뉴스 기자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주저 없이 지원한 것. 실버넷 뉴스 기자는 55세 이상으로 구성돼 있으며, 주로 복지나 의료 등 노인을 위한 콘텐츠를 만든다. 현재 그는 미래경제부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 또한 그가 활동 중인 수많은 자원봉사 중 하나다.

꿈꾸기 때문에 노후가 즐겁다

그는 동시와 동화로 이미 등단까지 한 동화작가이기도 하다. 2000년에는 사이버 출판기념회를 열었으며, 2001년에는 전자북 동시집도 출간했다. 특히 시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소재는 주로 봉선화였다. 퇴직 후 틈틈이 작품 활동을 한 덕분에 한국아동문학연구회 예술상, 월간아동 문화대상, 옥로문학상 등을 수상하는 영광도 얻었다. 이제 그의 꿈은 300억을 버는 일이다.

벤치마킹 대상은 일본의 시바다 도요(柴田トヨ)다. 지난해 100세를 맞이한 시바다 도요는 99세에 ‘약해지지마’라는 첫 시집을 출간했으며,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150만부가 넘게 팔렸다.

“300억을 번다는 꿈이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제 계획을 듣고 나면 다들 수긍을 합니다. 우선 저는 기대 수명을 120세로 잡았습니다.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 만큼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세계 최고령자로서 110세, 120세에 각각 시집을 출간할 계획입니다. 이 책들이 시바도 도요의 책만큼 판매가 된다면 결코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건강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에 매일 1시간씩 운동을 하고 있다. 그는 오랜 기간 운동을 꾸준히 해온 결과 20대 못지않게 가슴 근육도 발달됐다며 자랑했다. 이와 관련된 일화도 있다.

“몇 년 전 수능이 끝난 직후 고3을 대상으로 자원봉사자의 사명에 대해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던 중 복근이야기를 했더니 학생들이 보여 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이에 망설이다가 살짝 보여주자 학생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나왔습니다. 당시 고3 학생들은 92년생, 저는 42년생으로 무려 50년 넘게 차이가 났지만 그때만큼 나이를 잊고 교감할 수 있었습니다.”

12월 실버넷뉴스에서 진행하는 행사를 위해 매주 월요일 춤을 배우러 청주에서 서울 월곡까지 찾아오는 오하영 씨는 요즘 강남 스타일에 빠져있다. 실버넷 기자들과 함께 어울려 강남스타일을 배우며 함박웃음을 짓는 그는 꿈이 있고 또 꿈꾸기 때문에 노후가 즐겁다고 말한다.

50+ 성공노트

자본금 마술 용품 구입 및 교육비 등 50만원 가량

준비기간 및 과정 마술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60~70개의 마술 용품을 익혀야 하므로 1~2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마술관련 책을 통해 독학으로 익히는 방법도 있지만 요즘에는 지역 복지관이나 문화센터 등에서 마술 수업을 실시하고 있으므로 이를 이용하는 것이 유용하다.

성공노하우 마술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하나의 마술을 능수능란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수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항상 작은 소품을 들고 다니면서 연습하는 열의가 중요하다. 그리고 처음 공연을 하면 떨려서 실수를 할 수 있으므로 사전에 미리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술 공연을 해보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