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화
서른이 넘어서 미술관을 처음 찾았다는 윤운중 씨는 지금 미술작품 전문가로 살아가고 있다. 현재는 미술과 음악을 접목한 콘서트마스터로 왕성하게 활동 중인 그는 남과 다름을 추구하는 습관이 기회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미술관 주변을 많이 돌아다녀야 한다. 미술관으로 가는 익히 아는 길 말고 너만의 길을 찾는 게 중요하거든. 미술관 근처에 화장실은 어디에 있는지, 화장실에서 미술관으로 돌아오는 가장 빠른 길은 어딘지 알아놓으면 도움이 될 거야. 물론 유명한 작품이 미술관 어디에 걸려 있는 지 정도는 눈 감고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익혀놔야 한다.”

올 겨울 처음으로 함박눈이 내린 지난 5일 故김대중 전 대통령의 자택이 있는 마포구 동교동에 위치한 커피숍에서 만난 윤운중 씨는 제자 두 명과 한창 상담 중이었다.

그들은 한 여행사가 주최하는 미술해설사가 되기 위한 워크숍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출국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윤 씨의 말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 적던 그들은 1년 후 돌아와서 찾아뵙겠다며 인사를 하고 커피숍을 나섰다. 윤 씨는 어느덧 포스트 윤운중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고 있었다.

제자들이 찾아올 정도로 미술해설사로 자리 잡은 그이지만 처음부터 미술작품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술은 기피했던 분야였다. 윤 씨는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에 합격한 삼성전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86년 12월의 일이다.

삼성전자 중앙연구소에서 로봇을 설계하고 신제품 개발에 힘쓰던 그는 문득 회의감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근무를 시작한 지 12년 만인 1999년 돌연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라

“일에 대한 회의감이 든 건 IMF 직후였습니다. 당시 존경하던 선배들이 시대적 상황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는 것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에서 10년 후의 저를 발견했습니다. 10년 후 보다 젊은 지금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데 수월할 것이란 생각에 과감히 결정을 내렸던 거죠.”

그의 나이 서른두 살 때 일이다. 남들보다 빨리 인생 2막을 준비하게 됐지만 퇴직 후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는 것도 아니었던 만큼 막막한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두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당시 막연하게 해외 관련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한국을 벗어나지 못할 거 같았죠. 그렇게 일을 찾고 있었는데 지인이 해외바이어를 소개해줬습니다. 그는 저에게 한국 에이전시 역할을 부탁했습니다.”

퇴직을 한 지 1년 만인 1999년 그는 의류관련 무역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대기업에 근무했던 경력이 큰 도움이 됐다. 재미도 있었다. 해외 바이어를 만나기 위해 해외 출장이 잦았고,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직접 계약을 성사시키는 일은 쾌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저는 기본적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습니다. 어떤 직종에 대해 기본적인 틀만 알고 있으면 나머지는 적응 문제라고 봅니다.”

그렇게 무역업을 4년 정도 영위하던 윤 씨는 지인으로부터 제안을 받게 된다. 이는 그의 인생에 미술작품이 들어오게 되는 계기가 된다.

“지인이 여행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상품 중 단체관광객을 위한 프로그램은 있었지만 가족이나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한 상품은 없었습니다. 그 분이 그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큰 호응을 얻었죠. 특히 박물관 해설 프로그램은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그 분은 배낭여행 증가로 수요가 대폭 늘어나자 혼자 감당하기 어려워 저에게 SOS를 요청한 겁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는 거절했다. 관광가이드에 대한 안 좋은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침 그때 낮은 인건비를 기반으로 커진 중국 무역시장 때문에 국내 의류 관련 무역업이 사양산업이 되고 있었다. 이에 윤 씨는 무역업이 장기적으로 비전이 없다고 판단, 지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2003년 로마로 떠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모나리자’의 달인이 되다

37살의 윤 씨는 미술해설사의 길에 첫발을 내디뎠다. 무릇 해외에서 생활을 시작하면 언어를 가장 먼저 배우지만 그는 언어보다 일을 하기 위해 미술사 공부를 시작했다.

사진=이미화
“고흐와 고갱을 형제라고 알고 있을 정도로 미술작품에 대해 아는 게 없었습니다. 여행이 아닌 일을 하기 위해 왔기 때문에 닥치는 대로 미술관련 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미술관을 찾아 열심히 작품을 찾아봤죠. 좀 더 다양한 정보를 얻고자 현지 유학생들을 만나면 미술작품에 대해 물었습니다. 운이 좋으면 책에 없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윤 씨는 미술사에 공부할수록 일이라기보다는 상식을 쌓는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더 열정적으로 미술사나 미술작품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나갔는지도 모른다.

사실 박물관 가이드를 하기 위해서 많은 공부가 필요한 건 아니었다. 다만 욕심이 있고 필요를 느끼는 가이드만 찾아서 공부를 하는 정도였다.

“미술세계에 대해 알면 알수록 일을 하는데 있어 느끼는 보람이 커졌습니다. 소중한 시간을 내 열한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바퀴를 돌아 로마까지 찾아온 이들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만족감 때문이었죠.”

윤 씨는 총 7년 동안 유럽에서 생활했으며, 이중 1년은 로마에서, 6년 파리에서 지냈다. 로마에서 생활할 때는 하루 평균 45명의 관광객을 상대했다. 7달 후 그를 스쳐간 관광객은 무려 7000명이 넘었다. 그는 욕심이 많았다. 파리에서는 주로 루브르박물관 미술해설사로 나섰다.

루브르박물관에 전시된 미술작품을 공부하다 한 작가의 미술작품이 여러 미술관에 흩어져 있는 것을 알게 되자 모든 미술관을 찾아 다녔다. 그리고 그 작품들의 연결고리를 찾아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루브르박물관만 일정에 넣었던 관광객들이 오르세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에 대해 궁금해 하고 미술사해설 요청도 들어왔다.

그의 이러한 열정을 관광객들도 알아줬다. 한번은 대학생 시설 배낭여행을 왔다가 윤 씨의 가이드를 받았던 분이 결혼 후 신혼여행을 이용해 찾아왔던 것. 해설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관광객도 있었다. 돈벌이도 괜찮았다. 처음 시작은 1인당 20유로(한화 약 28000원)였지만 이후 35유로(한화 약 49000원)까지 올랐다.

그는 미술해설사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미술의 기저가 되는 배경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서양사에서 가장 중요한 신구약성서와 그리스로마신화, 교회사, 성자전 등을 공부가 필요하다. 또한 서양 미술작품의 경우 단테의 신곡이나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등의 고전문학과 긴밀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문학적 소양도 쌓아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미술해설사가 되기 위해서는 성품이 중요하다고 윤 씨는 말한다.

“만약 당신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누군가 쓰러져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그냥 보고 지나친다면 미술해설사를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해외여행을 가보면 알겠지만 예상치 못한 사건이 많이 발생합니다. 현지에 아는 사람이 없는 만큼 낮에 미술해설을 들은 저에게 많은 연락이 옵니다. 그럴 때 손을 뻗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사실 그런 성품이 미술사 지식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성품에 이어 이야기를 즐겁게 할 수 있는 ‘입심’을 두 번째 필요 요소로 들었다. 이 경우 노력만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재미있게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세미나처럼 딱딱하고 따분하게 설명하면 아무도 듣지 않습니다. 따라서 다양한 에피소드를 섞어 이야기를 만들어 전달하는 게 중요하죠. 만약 전달력이 부족하다면 내용이 좋은 작품을 우선 설명하면 됩니다. 그런 작품들은 에피소드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집중해서 듣습니다. 그리고 점차 스킬을 익혀 나가면 됩니다.”

미술에 음악을 더하다

그는 이제 콘서트를 기획부터 연출, 진행을 혼자 맡아서 하는 국내 대표 콘서트마스터로 활동 중이다. 콘서트마스터는 윤 씨의 미술해설을 들은 스톰프뮤직의 대표가 미술작품에 음악을 더해 공연을 올려보자는 제안에서 시작됐다. 스톰프뮤직은 클래식 및 재즈전문 음반사다. 당시 미술에만 심취해있던 그는 파리가 음악으로도 유명하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제안을 받고 다시 한 번 저의 무지함에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6개월가량 음악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스톰프뮤직의 대표가 한 제안이 실효성이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는 2년가량 음악 공부를 한 후 2010년 미술해설사 일을 접고 한국에 귀국했다. 그리고 6월 열린 쇼케이스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70번의 공연을 마쳤다. 오는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에도 ‘크리스마스 아르츠 콘서트’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다. 그는 자신이 성공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언제든 새로운 일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한다.

“성공이요? 간혹 저를 보고 성공했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성공여부는 자신이 판단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아직 성공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성공이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즐거운 일을 찾아 나설 준비가 돼 있을 뿐입니다.”

윤 씨는 안정적인 삶이 싫다고 한다. 사람들이 안정적인 사람을 추구하기 때문에 퇴직 후 사람과 새로운 직업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에 갇혀서 사고를 하게 되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다고 그는 조언한다.

“인터뷰를 하게 되면 미술사 학위에 대한 질문을 한 번씩 받습니다. 저는 여전히 고졸입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제 분야에 자신이 있고, 인정도 받고 있습니다.”

그의 강한 어조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도전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50+ 성공노트>

준비기간 및 과정 미술해설사가 되기 위해서 미술사공부가 이뤄져야 하는데 개인차가 있지만 6개월이면 가능하다. 또한 여행사나 박물관 투어 가이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기업에 취업이 됐다면 일과 공부를 병행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기업 자체적으로 미술해설사를 양성하는 프로그램도 있어 이를 활용하면 좋다.

성공노하우 남과 다른 해설을 하려고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식을 쌓아야하며, 유럽의 대표 미술관뿐 아니라 한 평짜리 작은 미술관도 찾아가 작품을 익히고 관련 책을 찾아 읽어나가는 자세를 갖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