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사랑으로 건강과 보람까지 찾아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40대 후반, 과감히 교사생활을 그만둔 백경숙 씨는 우연히 취미로 시작한 야생화에 ‘꽂혔다’. 그때부터 꽃과 나무를 10년 넘게 공부하면서 야생화 전문가로 거듭났다. 현재 서울 강동구 서원마을에서 야생화 분재를 전시한 ‘백경야생화갤러리’를 운영하며 야생화 강사 및 원예치료사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뼈를 깎는 아픔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몸이 그렇게 약하지도 않은데 언제부턴가 그녀는 늘 아팠다. 통증을 견디며 교단에 섰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방광 쪽에 염증이 생겼다”고 말했다. 뚜렷한 발병 원인은 찾을 수 없었다. 40대 이후 여성들에게 종종 찾아올 수 있는 질병이란 얘기뿐.

날이 갈수록 정상적인 교직 생활을 이어가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딸의 건강을 몹시 염려하던 어머니가 그녀에게 권유했다. “직장을 그만두면 안 되겠니?” 방전된 몸에 충전이 절실했다. ‘이쯤에서 멈춰야겠다.’ 그건 정말이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백경숙(61) 씨는 고등학교 교사로 살아온 지 24년째 되던 해,  마흔 여덟 살의 나이에  결국 건강 악화로 교직 생활을 포기해야만 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고 했던가. 이 선택이 그녀의 향기로운 인생 후반전을 열어줄 줄 누가 알았으랴.

‘우연’이 인도해준 길

그런데 말이다. 백 씨는 다 우연(偶然)이라고 말한다. “자기 인생의 방향이 결정되는 것은 우연이라고 생각하는데요.” 1999년 퇴직하고 몸을 추스르던 그녀의 눈에 처음 띈 것이 시민분재교실 강의였다. 우연이었다. 비닐하우스에서 분재, 야생화, 꽃꽂이 등 여러 분야의 전문 강의가 이론과 실습을 통해 이뤄지고 있었다.

꽃을 보러 다니는 걸 좋아하던 터라 강의 모습이 꽤나 흥미로웠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꽃과 나무들. ‘와~ 이게 뭐지?’ 동굴에 빠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듯했다. 그녀의 마음에 묘한 파문이 일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식물이 자신에게 펼쳐줄 신세계를 어렴풋이 직감하고 있었다. “집 근처로 산책을 나갔다가 어린이대공원의 시민분재교실에 등록한 게 야생화 전문가로 변신하는 단초가 됐지요.” 돌이켜 생각하면 역시 우연이다.

백 씨는 분재교실을 다니며 꽃과 나무를 새록새록 알아가는 재미에 눈을 떴다. 특히 인위적이지 않은 야생화의 아름다운 자태에 푹 빠져들었다. 몇몇 수강생들과 동아리를 만들어 꽃·나무 분양도 하고, 국내 ‘분재 1세대’로 통하는 고수 혹은 오랫동안 식물을 가꿔온 이들을 쫓아다니며 야생화를 배웠다.

국내외 현장답사도 숱하게 다녔다. 무엇보다 온갖 야생화를 내 손으로 키우며 특징, 재배할 때 유의사항 등을 꼼꼼히 기록하면서 몸으로 익힌 경험은 큰 자산으로 차곡차곡 쌓였다. 가꾸는 야생화 가짓수도 늘려나갔다. “야생화라고 해서 산과 들, 계곡으로 직접 캐러 다닌 건 아니에요. 꽃은 주로 지인들과 서로 교환하거나 꽃시장에서 구입했어요.” 단, 경제적으로 무리가 가지 않도록 스스로 ‘3만원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철저히 지켰다.

야생화 강사로 거듭나기

ⓒ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야생화를 배우러 다닌 지 2~3년쯤 지나자 몸이 많이 좋아진 게 느껴졌다. 4년이 넘었을 때 야생화에 대해 ‘이제 좀 알 것 같다’ 싶었고, 5년째 되니까 확신이 들면서 자신감이 솟았다.

공부를 할수록, 국내 유명 수목원 및 식물원과 유럽의 왕실 정원 등 세계적으로 이름난 곳들을 둘러볼수록 자꾸 욕심이 커졌다. “가꾸는 화분이 200여 개나 모인 데다 여러 가지 작업도 하고 싶은데 사는 곳이 아파트라서 한계가 있었어요.”

그녀는 야생화를 마음껏 기르기 위해 이사를 감행하기로 했다. 2009년 12월, 식구들을 설득해 서울 강동구 암사동 서원마을에 터를 사서 집까지 지었다. “마땅한 곳을 찾는 데만 1년이 걸렸어요. 도심 속에 있지만 시골 같은 마을, 전원주택을 지을 수 있는 데가 바로 서원마을이었죠.”

부지 383m²(약 110평)에 132m²(약 40평) 규모의 지상 2층짜리 집을 마련하고 마당엔 10평(33m²) 남짓한 자신만의 야생화 작업공간을 만들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꽃을 보면서 차를 마시고 책도 읽을 요량이었다. 그러다가 이왕이면 ‘여러 사람이 ‘꽃구경’을 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 씨는 길 가던 사람도 야생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집 담장을 없애고 항시 오픈된 야생화 갤러리를 만들었다. 이른바 ‘백경야생화갤러리’. 이름은 인상 깊게 읽은 허먼 멜빌의 소설 <백경(白鯨)>에서 따왔다.

벽과 천장을 유리로 꾸며 갤러리와 온실을 겸하도록 했다. 미스김 라일락, 등대꽃, 덜꿩나무 등 이름표를 단 야생화 화분을 500개 이상 전시했다. 전혀 판매를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수년 이상 자식처럼 정성껏 키운 야생화 작품은 팔지 않는 것이 원칙.

둥글레, 무늬구절초, 물싸리, 오공구루마, 꽝꽝나무…. 그녀에게 수백 종의 야생화 분재를 키운 노하우를 물어오는 사람이 많았다. 주변에서 교사 경력을 살려 강의를 개설해 보라는 권유도 여러 번 받았다. “하던 게 가르치는 일이었던지라 강의하는 건 자신 있었죠. 그래서 작업장 인근 비닐하우스에서 야생화교실을 열고 식물 특징부터 어울리는 화분 고르는 법, 가지치기 요령 등 이론과 실습 교육을 진행하기 시작했죠.”

원예치료사로의 담금질

그 무렵 한 지인이 식물의 힐링 효과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녀를 부추겼다. 원예치료를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백 씨는 2009년 건국대 평생교육원에서 원예치료 전문과정을 공부했다. 6개월간 한 학기를 배우고 노인주간보호센터 및 노인요양센터 등에서 어르신 대상으로 강의를 하는 등 60회의 실습을 마쳐 원예치료 자격증을 땄다.

이후 백 씨는 올해 1월까지 4년간 원예치료사로 활동했다. 유치원, 중·고등학교 방과후 수업 강사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노인요양원에서 치매 노인들과 원예치료 가운데 하나인 식물 가꾸기 수업을 진행했다. 지역문화축제 등에서 전시회를 열고 강동구청 제안으로 지난해부터는 주민 대상 강좌도 열고 있다. 야생화 전문가이자 강사, 원예치료사로 ‘백경숙’이란 이름이 차츰 알려지면서 그녀의 갤러리에도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래서 요즘 백 씨는 자신의 갤러리 강의에 좀 더 집중하고 있다. 주 대상층은 40대 중반~60대 초반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수강생은 10명 정도. 대부분 여성이지만 요즘엔 퇴직하고 취미거리를 찾으러 오는 남성들도 있다고.

1인당 한 달 수강료로 5만원을 받는다. “실제 월수입은 60만원 내외지만 체감 수입은 그 두 배를 버는 것 같아요. 그만큼 재미있고 보람 있는 일이기 때문이죠.”

ⓒ이코노믹리뷰 박지현 기자

꽃이 있는 전원마을 조성 꿈

그녀가 야생화와 인연을 맺은 지 14년째. 야생화 문외한이 이렇게 야생화 갤러리를 운영하고 강의까지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단다. “우연한 계기가 취미로 이어졌고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아 행복합니다. 게다가 건강까지 회복했으니 더 바랄 게 없죠. 온 가족이 나를 응원해준 덕분이기도 하고 흙과 식물을 가까이해 몸과 마음이 치유가 된 게 아닐까요.”

백 씨는 “하루 중 야생화 하나하나와 눈을 맞추며 물 주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잔디를 깎고 마구 자라나는 풀을 신경 써서 뽑아주는 것 외엔 별다른 어려움도 없다고 했다.

‘우연’이 지금의 인생 2막을 열어줬다고는 하나, 그녀가 말하는 우연은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식이 아니다. “굉장히 열심히 공부했기 때문이죠. 제 노력의 대가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인생길을 걷고 있는 곳인 만큼 백 씨는 서원마을에 애착이 깊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이 동네를 일본 오미야 분재촌처럼 꽃이 있는 전원마을로 가꾸는 것이다.

“30년쯤 걸릴까요? 입장료를 내고도 국내외에서 견학을 오는, 꽃으로 유명한 그런 마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녀의 꿈 역시 소박한 야생화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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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성공노트

자본금

383m²(약 110평) 부지에 132m²(약 40평) 규모의 지상 2층짜리 집과 야생화 갤러리는 마련하는 데 14억원가량 들었음. 땅 구입 자금 10억원에 주택 건립 4억원. 함께 거주할 동생과 자금을 분담해 투입함으로써 부담을 줄였음. 야생화 화분을 사 모을 때는 경제적으로 무리가 가지 않도록 ‘3만원 가이드라인’을 준수. 교사 퇴직 후 연금과 야생화 강사 및 원예치료사 강의료 5만원(1시간) 등이 생활비 및 부수입.

준비기간 및 과정

야생화 문외한이었으나 어린이대공원의 시민분재교실 강의를 통해 꽃과 나무에 대해 기초를 배움. 동료 수강생들과 동아리를 만들어 꽃·나무 분양 활동을 하고, 국내 ‘분재 1세대’로 통하는 고수와 오랫동안 식물을 가꿔온 이들을 쫓아다니며 이론과 실습을 두루 거쳐 야생화 지식을 쌓음. 또 국내외 현장답사 등을 통해 온갖 야생화를 직접 키우며 특징, 재배할 때 유의사항 등을 꼼꼼히 기록하면서 몸으로 익힌 경험을 자산으로 만듦.

2009년 건국대 평생교육원에서 원예치료 전문과정을 공부, 6개월간 한 학기 교육과 60회 실습을 마치고 2년 만에 원예치료 자격증 취득.

성공 노하우

취미로 시작했으나 전문가로 거듭나기 위해 열정적으로 배우러 다님. 전문지식을 축적한 뒤 교사 경력을 살려 야생화 강사로 변신했고 원예치료사 자격까지 갖춰 더욱 전문적인 활동으로 영역을 넓힘. 이름이 차츰 알려지면서 자신의 갤러리로 강의를 들으러 오는 수강생이 늘고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이 잇따르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