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상무에서 전업 자전거 여행가로 | 차백성 씨

오랜 꿈을 좇아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억대 연봉의 대기업 상무 자리를 정리하고 전업 자전거 여행가가 된 사나이. 차백성 씨는 미국,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뉴질랜드, 유럽 등을 자전거로 돌고 그 여행기를 담아 두 권의 책까지 냈다. 자신만의 전문성을 갖춰 ‘1인 기업가’로 맹활약 중인 그의 두 바퀴 ‘열정 로드’는 영원한 현재형이며 무한한 진행형이다. 
자전거 여행가 차백성 씨는 3시간을 훌쩍 넘긴 인터뷰에도 시종 쾌활함을 잃지 않았다. 취재진보다 훨씬 넘치는 에너지를 보여주었던 그의 체력과 열정은 그 어느 젊은 청년 못지않았다.
ⓒ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바퀴 양옆에 4개의 짐 꾸러미를 장착하고 운전대 앞은 지도, 안장 꽁무니엔 작은 태극기를 단 자전거. 흰색 사이클 전용 모자에 붉은색으로 색깔을 맞춘 운동복과 배낭·검은색 선글라스를 착용한 이 자전거의 주인은 얼핏 50대 초반 아니 40대 중반으로도 보였다. 겉만 멋있고 젊어 보이는 게 아니었다. 건장한 체구 속에 숨어 있던 이 63세 ‘두 바퀴 여행가 오빠’의 체력은 지칠 줄 몰랐다.지난달 19일 오후 2시, 당초 촬영을 먼저 한 뒤 인터뷰를 진행하려고 했으나 ‘그림이 되는’ 장소를 물색하며 길 따라 걷다 보니 어느 새 ‘로드(road) 인터뷰’가 돼버린 상황. 서울 방화대교 남단 근처에서 강서둘레길로 이어지는 동안 카메라 앞에서 그가 자전거 타기를 반복하고 함께 걷고 대화하고, 또 타고 대화하며 걷기를 무려 3시간. 이 남자의 열정과 에너지는 그 어느 젊은 청년 못지않았다.오랜 꿈을 좇아 49세 나이에 억대 연봉의 대기업 임원 자리를 박차고 나온 얘기부터 시작해 자전거로 세계를 여행하고 그 흔적을 글로 남기고 있는 근황까지,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인생 후반전, 전업 자전거 여행가로 맹활약 중인 차백성 씨(63세) 얘기다. “상무님이 자전거 여행한다고 사표 냈대”기자가 물었다. “아무리 하고 싶은 일 때문이라지만 연봉 1억원의 상무 자리를 어떻게 선뜻 포기할 수 있죠? 후회한 적 없나요?” 차 씨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쿨~하게 답했다. “전혀요. 상무님이 자전거 여행을 한다며 정말 사표 낸 게 맞느냐고 반신반의하는 회사 직원들이 많았어요. 주변 사람들에겐 이해할 수 없는 돌발 행동으로 보였겠죠. 하지만 시간, 건강, 돈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50세가 제 꿈을 펼치기에 가장 적당한 나이라고 생각했어요.”그래도 너무 이른 나이에 퇴직한 듯싶었다. 아직 자녀가 한창 공부할 시기일 텐데, 교육비와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재산이 많은 것일까, 가족은 반대하지 않았을까.“식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꿈을 이뤄내는 스토리여야 재미있을 텐데 어떡하죠.(웃음) 제가 가족에게 자전거로 세계 여행을 하고 싶다는 오랜 꿈을 밝혔을 때 첫째 아이가 대학생, 둘째는 중학생이었어요. 아내는 전업주부였고요. 그렇다고 큰돈을 벌어놓았던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걱정했던 것과 달리 가족은 격려와 함께 흔쾌히 제 뜻을 받아들여줬습니다. 큰 회사의 중역도 좋지만 꿈을 이루는 아빠가 더 멋져 보일 거라는 아이들의 말에 힘을 얻었어요.”그는 “퇴직 후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과 가장 가까운 가족의 동의를 얻는 것도 중요한 과정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는 25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곧바로 여행길에 올랐다. 동반자는 달랑 자전거 하나였다. 어릴 적부터 꿈틀거리던 두 바퀴의 열정차백성. 1951년생이니 올해 63세. 자전거에 몸을 싣고 10만여km 이상을 달려온 지 올해로 14년째다. 차 씨는 우리나라 1세대 자전거 여행가이자 자전거 여행 작가·칼럼니스트다. 대중이 단박에 알아챌 만한 이력이란, <아메리카 로드> <재팬 로드> 등 두 권의 책을 출간했다는 것이다. 작품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들은 북미 대륙에서 하와이까지 7000km 종주, 일본 규슈에서 홋카이도까지 5000km 종주를 통해 자전거 여행의 생생한 경험, 미국과 일본의 역사·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 아름다운 풍광을 담아 자전거 세계여행을 꿈꾸는 이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그는 문화체육관광부 자전거 홍보대사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현재 여행은 물론 책과 칼럼 집필, 중·고등학교와 기업 및 공무원 대상 강연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이 제가 처음부터 전업 자전거 여행가로 출발한 줄 알더군요. 공과대학 토목과 졸업 후 대기업 건설회사 공채 1기로 입사해 토목기술자로 활동했어요.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건설 붐이 일면서 아프리카 수단, 나이지리아, 리비아 등에서 10년 이상 해외 근무를 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면서도 언젠가 자전거 여행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늘 지도책을 펼쳐보고 틈틈이 여행 자금을 저축했죠.”그의 아버지는 그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돌아가셨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을 보며 멋지게 잘 살다가 후회 없이 잘 죽고 싶었단다. 말하자면 지금의 웰빙(Well-being)과 웰다잉(Well-dying)의 의미를 일찍 깨친 셈이었다고. 때마침 읽게 된 우리나라 배낭여행의 선구자인 김찬삼 씨의 세계여행기는 그의 인생행로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사실 어릴 때 꿈은 신문사 특파원이 돼 전 세계 곳곳의 소식을 생생하게 전하는 거였어요. 세계여행을 김찬삼 씨가 도보로 했으니 똑같이 따라 할 순 없고, 나는 자전거로 해보겠다고 마음먹었죠. 그것이 내 인생을 관통하는 큰 꿈이 돼버렸네요.” 꿈이 실현된 미국 서부 해안길 3000km
ⓒ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중학교 때 실험 삼아 서울 돈암동 집에서 인천까지 자전거를 타고 내달려 봤는데 제법 할 만하더란다. 고등학교 때는 대구까지 갔다 온 적도 있었다. 배짱은 점점 두둑해져 곧 50세를 바라보던 차 씨는 직장을 때려치우고 아예 자전거 여행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 꿈이 이뤄진 첫 여행지는 미국 서부해안. 대한민국의 ‘낭만가도’로 알려진 강원도 속초~경북 경주 간의 7번 국도와 비슷한 매우 아름다운 곳이라서 택했다.그는 ‘극기(克己)’를 주제로 시애틀에서 샌디에이고까지 3000km를 하루 100km씩 한 달 동안 달려 미국 서부해안을 종주했다. 바람, 고독과 싸우고 가도 가도 끝없는 지평선뿐인 길을 달리며 거대한 자연 앞에서 겸손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후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뉴질랜드, 유럽 등을 여행했다.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자전거 여행이 있다면? “바다를 좋아하는 데다 경치가 아름다워서 해변 길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특히 지중해안, 미국 서부해안이 그렇죠. 자전거로 해안가를 따라 달리면 어찌나 멋있는지…. 또 해변가는 캠핑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좋아요. 텐트 치고 밥을 해먹을 수 있고 근처에 화장실이 있어 간단한 샤워도 가능하거든요.” “결국 기회는 준비하는 자에게 온다”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묻고 싶었던 것. 이른 시기에 퇴직했는데 어떻게 먹고 살고 또 자전거 여행 경비는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거다. 먼저 생계 문제 해결에 대한 그의 답은 이랬다. “아프리카 등지에서 10년간 근무할 때 저축을 많이 해놨어요. 월급이 한국에서 근무할 때보다 3배가량 높았거든요. 매달 100만원씩 받는 국민연금도 큰 도움이 됩니다. 물가상승률이 반영돼 매년 약 3만원씩 올라서 지금은 110만원을 받고 있어요. 그리고 자가 주택 한 채가 있고요. 무엇보다 빚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자전거 여행을 한 번 가는 데 드는 경비는 비행기 값과 캠프장 이용료 정도. 미국이나 유럽행 왕복 비행기 값만 200만원, 텐트를 치고 한 끼 식사를 하며 여기에 박물관·미술관 관람료 등이 더해지면 한 달 지출액은 최소 500만원이라고 했다. “여행하는 동안 캠핑을 하기 때문에 숙박비는 들지 않아요. 대신 의식주를 해결할 다양한 캠핑용품을 준비하죠. 텐트, 슬리핑백, 겨울옷, 여름옷, 코펠, 버너 등 자전거에 싣고 다니는 짐 무게만 해도 30kg이 나가요. 단 1g이라도 줄이려고 칫솔을 반으로 부러뜨려 머리(털이 있는 부분) 쪽만 가지고 다닌답니다.”그는 “거의 몸으로 때우고 최대한 아껴 쓰기 때문에 돈이 없어 여행을 못 가지는 않는다”며 “보름간 5만엔(약 54만원)으로 일본을 여행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자전거 여행 경비는 지난 여행기록을 모아 출판한 데서 들어오는 인세, 강연과 원고 청탁 등의 수입으로 충당한다. 큰돈도 아니고 생활에 보탬은 안 되지만 따로 마련한 여행계좌에 차곡차곡 모아둔다. 이 돈은 또다시 다음 여행 자금으로 사용한다.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지고 나니, 자전거 업체 협찬, 기업 홍보 제의 요청이 꾸준히 들어와 자비로 부담해야 하는 여행 경비를 크게 절감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60대 청춘의 속이 꽉 찬 이력서그런데 어째 첫 여행부터 극기심을 불태우더니, 이후 하는 여행마다 고생길을 자처하는 모양새다. 즐기는 여행 맞나. 특별한 이유가 있을 듯싶었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거지꼴로 여행하는 셈이죠. 최소한의 경비로 하는 짠돌이 여행을  도대체 왜 하느냐고요? 여행의 의미와 묘미는 힘든 과정에서 얻어지는 달콤한 맛에 있으니까요. 하하.”현지 먹을거리와 관광명소만을 즐기는 식의 여행은 사양한다. 그는 ‘테마가 있는 세계 자전거 여행’을 위해 매번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끊임없이 도전한다. 일례로 그의 책 <재팬 로드>는 일본 속에 남아 있는 우리 역사의 흔적을 찾아가는 ‘역사 순례’를 테마로 삼았다. 대마도를 자전거로 돌며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흔적을 더듬고, 조선통신사의 루트를 따라가며 우리와 일본의 과거·현재·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식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자전거 여행엔 메시지가 담겨 있고 그것이 곧 ‘차백성’표 자전거 여행의 차별성이자 ‘퍼스널 브랜드’라고 주장한다. 이 분야에서만큼은 대한민국 1위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이는 특별한 여행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하는 그의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지론에 따라 여행지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엄청나게 공부한다. 여행담 한 페이지를 풀어내는 데도 수십여 권의 관련 책을 섭렵한다. 지금 쓰고 있는 유럽 여행기도 마찬가지다. 오는 4월 중순쯤 출간 예정인 신간에서는 1907년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 파견된 사절 ‘헤이그특사’에 얽힌 새로운 이야기를 전할 심산이다.“처음부터 여행하고 책을 쓰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어요. 전업 자전거 여행가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죠. 무엇이든 시작이 중요해요.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다해 담금질하다 보면 길이 보이고 또 뭘 해야 할지 방향이 잡힙니다. 노년을 대비해야 하는 퇴직 이후의 인생을 더욱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대안은 자기 전문성을 높이고 이를 경쟁력으로 남들과 차별화하는 것이에요. 자신만의 퍼스널 브랜드를 구축해 ‘1인 기업가’가 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다”는 그는 이제 호주 대륙 횡단과 이집트 카이로의 피라미드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희망봉까지 1만3000km 아프리카 종단을 꿈꾼다. “난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지금이 좋고 앞으로 다가올 날들이 더 기대됩니다. 인생 후반전은 오롯이 나를 위한 삶을 살 수 있는 시간이니까요.” 

나의 아름다운 50+

전업 자전거 여행가가 되려면.“한창 열심히 일하고 한 번 치열하게 살아봐야 할 젊은 세대에게는 비추천입니다. 하지만 인생의 웬만한 것들을 다 경험해본 뒤 인생 2막을 펼치려는 중년층에게는 전업 자전거 여행가가 적합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대신 자신의 자전거 여행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 남들과는 다른 차별화된 자전거 여행가가 돼야겠죠.”자전거 여행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먹을 것이 제일 중요해요. 저는 여러 음식에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고추장을 꼭 챙깁니다. 고추장을 밥에 비벼 먹거나 라면에 넣기도 하고 빵에 발라 먹기도 해요. 그리고 여행하면서 결핍될 수 있는 영양 상태에 대비해 영양제를 꼭 가져갑니다. 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책도 절대 빼놓을 수 없죠.”자전거 여행에서 주의해야 할 점은.“교통사고와 질병, 부상을 조심해야죠. 여행지에서 물이 바뀌거나 유행하는 질병에 걸리는 것. 특히 혼자 하는 여행의 경우 설사를 하게 되면 매우 곤란해요. 수시로 화장에 드나들어야 하니까요. 영국, 아일랜드, 홍콩, 일본은 좌측통행으로 우측통행이 기본인 우리나라와 교통 체계가 반대인 국가여서 교통사고에 각별히 유의해야 합니다.”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나요.“여행하지 않을 때는 등산과 테니스, 자전거 동호회 활동을 통해 틈틈이 기초 체력을 다지고 있어요.”자전거 여행 시 원칙이 있다면.“저는 항상 혼자 여행합니다. 왜냐하면 전투에 가까운 여행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여행 모드’로 바꿔야 하거든요. 동반자가 있으면 배려해야 되고 그렇게 되면 제가 원하는 바를 온전히 얻을 수 없어요. 외롭지만 철저한 계획과 준비로 홀로 여행하는 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제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