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CCTV와 금융전산화 시스템 개발에 다양한 경력을 소유한 전문가인 권하자 씨는 사십대 중반에 그동안 해온 일과 거리가 먼 치·의료 분야의 사업가로 변신했다. 국내 첫 3D 치아교정 기술 개발에 성공, 치아교정술 발전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70세를 훌쩍 넘은 나이에도 청년 사업가처럼 벤처기업 정신으로 열정적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 이코노믹리뷰 이미화 기자

24년간의 직장생활, 익숙한 금융·전산 일을 접고 인생 2막에 생소한 사업을 할 결심을 했던 마흔여섯 당찬 여자. 뭘 해도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해야 된다는 평소 지론이 출발점이었다. 치·의료 분야에 뛰어들어 국내에서 처음으로 3D 치아교정 기술 개발에 성공, 이후 벤처 사업장이 겪는 갖은 고비를 골고루 경험했다. 그렇게 10여 년. 그는 기술 선도 최고경영자(CEO)로 꼽힌다.

영국 왕세손비 케이트 미들턴을 비롯해 영국 모델 겸 배우 켈리 브룩, 할리우드 영화배우 새디 프로스트, 영국 패션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와 폴 스미스 등 세계 유명인들의 치아 시술에 그의 회사 기술이 사용됐다.

‘3D 지그시스템’으로 불리는 이 기술은 산업자원부 주최 ‘2005년 대한민국 기술대전’에서 산자부장관상인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서울대병원, 삼성의료원 등 국내 30여 개 병원에 공급됐으며 일본, 프랑스, 미국, 이탈리아, 호주 등 12개국에 수출됐다.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초일류 강소기업이 되는 날까지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는 오라픽스의 권하자(72) 대표를 만났다.

 

금융·전산 전문가에서 치·의료 분야 사업가로 변신한 계기는.

“원래 편하게 지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도전하는 삶에 대한 갈망이 강한 편이다. 1985년 마지막으로 몸담았던 금융회사를 나와 이듬해 남편과 사업을 시작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처음엔 내 경력과 연관된, 금융전산화에 필요한 소프트웨어 및 하드웨어를 개발·공급하는 시스템통합(SI)으로 출발했다. 디지털 CCTV와 금융전산화 시스템 등을 주로 개발했다.

그런데 47살이 되던 1989년 남편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경영 일선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자체 솔루션 없이는 치열한 SI시장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회사의 기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기술개발에 착수했다. 아이템은 아들에게서 나왔다.

치아교정을 위해서는 브라켓이라고 불리는 치아교정 장치가 필수인데 상당수가 개인별 특성을 무시한 채 수작업으로 이뤄지다 보니 교정기간이 길고, 교정효과도 크지 않았다. 이러한 치아시술의 문제점을 해결한 기술을 개발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국내에서 생소한 분야라서 도전의식이 더욱 발동했다.”

 

그 기술이 3D 치아교정 기술인가. 국내 첫 개발이라고 들었다.

“그렇다. ‘3D 지그시스템’으로 불리는 이 기술은 시뮬레이션으로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과 서비스를 가능하게 한다. 3차원 스캐닝을 접목한 지그시스템은 치과 환자의 치아를 3D 입체 데이터 형태로 스캐닝해 치아 상태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교정할 수 있는 최첨단 치아교정 진단 시스템이다.

환자의 치아와 치열 등을 정확히 측정하므로 환자에게 적합한 시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치아 안쪽에 보철물을 붙여 외부 미관상 눈에 띄지 않도록 치아교정이 가능한 것도 이 기술의 특징이다. 최근엔 양악 교정에도 응용되고 있다. 미용 목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양악수술에서 지그시스템은 턱 구조를  정확히 측정해 수술 후 환자의 만족도를 높여준다.”

 

3D 지그시스템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3D 지그시스템은 30여 년 전부터 세계 여러 회사가 관련 기술을 개발해 최근 상용화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국내 의료 환경에서는 대부분 의사와 의료 관련 종사자의 지식과 기술, 경험에 여전히 의존하고 있었다. 여기에 전형적인 치과분야의 비용 상승과 기존 치료 방법에 대한 거부감, 환자의 심미적 요구 증가 등으로 환경적 요인에 부응하는 새로운 치과치료 방법이 각광받는 상황이었다.

1999년부터 치·의료용 3차원 CAD(컴퓨터를 이용한 설계)·CAM(컴퓨터를 이용한 생산) 시스템 개발을 시작해 2002년 치아 전용 3D 스캐너를 최초로 개발했다. 치아교정용 3D 스캐닝 및 진단 시스템은 기존 유럽 및 미국에서 상용화 중인 치아 교정용 3D 스캐너와 달리 3차원 진단 및 분석 등 정확성에서 훨씬 뛰어난 데다 사이즈가 콤팩트하고 사용법이 간단한 것이 특징이다.

기존 제품의 경우 치아모형 진단에 서너 시간씩 걸리는 데 반해 이 제품은 스캐닝과 데이터편집을 전자동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30~40분이면 충분하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먼저 기술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해외에서 치·의료용 3차원 CAD·CAM 시장이 먼저 열렸던 덕분이다. 2008년 3D 지그시스템을 해외에 먼저 론칭했다. 2004~2007년 실측치아교정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프랑스 필링옹 박사가 3D 지그시스템을 임상에 채택했다. 임상 결과에 만족한 필리옹 박사는 그 후 영국 왕세손비 케이트 미들턴을 비롯해 세계적인 모델 켈리 브룩, 할리우드 영화배우 새디 프로스트,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 영국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 등 세계 유명인들의 치아시술에도 적용했다. 국내에는 2012년 6월 론칭했다.”

 

첨단 기술 사업은 외부에서 보는 것과 뛰어들어 승부를 거는 사업 사이에는 간극이 컸을 텐데.

“이 기술이 완벽하게 구현되기까지는 10년이 걸렸다.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3D 스캔과 CAD·CAM 관련 기술이 전무한 국내에서 기술을 개발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기존 기공사와 의사들에겐 환자 치료장치를 만들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 있는데 오라픽스의 기술은 그들의 노하우를 프로그램으로 구현하고 자동생산하는 것이었다. 오랜 기간 사람이 정교하게 진행하던 작업을 프로그램으로 구현하려고 하니 맨땅에 헤딩하는 식이었다. 프로그램 전체를 포기하고 새로 만든 적도 대여섯 번이나 된다.

(프로그램을 )한 번 만드는 데 1~2년 정도 걸린다. 중간중간에 계속 수정·보완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직원들과 밤을 새우며 포기하지 않았다. 그 결과, 오라픽스는 오랜 시간 임상을 거쳐 그 정확함을 평가받고 실제 사용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3차원 CAD·CAM 시스템을 치열교정 치료 분야에 접목해 개발에 성공한 회사로는 미국의 인비절라인, 오소캐드와 한국의 오라픽스가 대표적으로 손꼽힌다.“

 

어떤 순간이 힘들었나.

“세계적으로 이 분야의 경쟁사로는 6~7개 기업이 있다. 모두 굴지의 대기업들로 충분한 예산을 가지고 기술을 체계적으로 개발하는 게 가능하다. 반면 우리 회사는 소기업이다. 자금이 부족하고 고급 기술인력 보유가 어려운 게 현실이기 때문에 3D CAD·CAM 불모지인 국내 시장에서 자체적으로 기술을 개발한다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또 의사들에게 3D CAD·CAM에 대한 기본 지식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많았다. 외부에서 투자받은 게 30억원, 정부의 기술지원 투자받은 게 30억원가량이다. 지금까지 투입한 투자비용만 사실상 100억원 가까이 될 거다.”

 

좌절의 순간들을 어떻게 이겨냈나.

“지금까지 10년 넘게 이 힘든 과정을 이겨낼 수 있었던 데는 오라픽스의 전무를 맡고 있는 아들의 지원과 응원, 믿을 수 있는 직원들의 힘이 컸다. 내 사전에 한 번 시작한 일을 중도에 포기한 예는 없다. 지금까지 10년 넘게 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고 지금도 그 과정에 있다. 시장도 있고 기술도 있는데 중소기업이다 보니 애로사항이 많다. 정부의 벤처 지원 정책이 창업 초기단계에 집중돼 중소벤처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정책 지원이 미흡하다. 성장잠재력이 있는 기업에 투자 및 컨설팅, 멘토링 등을 복합적으로 제공해 성장을 지원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목표는.

“우리 회사의 직원은 나를 포함해 17명이다. 기술력을 인정받는 초일류 강소기업을 만들고 싶다. 올해 시무식 때 회사 직원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다. 모든 직원이 꿈을 가지고 행복과 보람을 느끼면서 출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 그리고 올해 매출은 1000억원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