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붐 세대의 대규모 은퇴는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와 노동력 공급 부족, 세대 간 숙련 단절에 따른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정부의 일자리 정책과 기업의 전직 지원 시스템도 베이비붐 세대의 노동시장 특성 분석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특히 기업들이 근로자와 퇴직자를 위한 전직 지원 서비스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정작 활용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프로그램이 별로 없는 게 현실. 한국고용정보원은 사무직 베이비부머를 대상으로 퇴직 후 경력 설계·재취업을 돕는 프로그램 만들어 국내 기업에 보급을 추진 중이다.

직장에 다니다 지난해 초 퇴직한 50대 최종헌 씨는 6개월 전부터 택시를 몰고 있다. 구인구직 사이트나 지인들을 통해 이리저리 재취업 자리를 알아봤지만 여의치 않아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일이다. 최 씨는 “전문 기술이나 자격증을 갖고 있지 않은 이상 몸으로 때우는 일 외에는 할 것이 없다. 그나마 나이 든 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이 택시운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하루 10시간 이상 꼬박 운전대를 잡아야 겨우 회사 납입금을 맞출 만큼 수입이 변변찮다고 고충을 털어놓는다.

몇 년 전, 구조조정으로 30년간 근무한 은행을 나오게 된 김형석 씨(가명·57). 그동안의 경력을 토대로 어렵지 않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여러 번 퇴짜를 맞았다. 김 씨는 “일자리를 구해보려 했지만 특별한 기술이 없고 은행원 경력으로는 경쟁력이 없더라”며 “여러 곳에서 재취업 연락이 와도 결국 전자제품 판매 영업 및 보험 영업뿐이었다”고 말했다.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그는 대안으로 외식업 창업을 고려하고 있다.

한국의 베이비부머가 재취업 문턱을 넘기란 쉽지 않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재취업을 원하는 사람은 많은 반면 경기침체 등의 영향으로 재취업 문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어서다. 2011년 기준 고용노동부 중견전문인력 고용지원센터를 통해 구직활동을 한 7781명 중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35.1%인 2732명에 불과했다.

재취업에 성공해도 일자리의 질은 낮은 수준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1년 조사에 따르면 베이비부머 재취업자의 종사 직종은 단순노무, 서비스, 장치·기계조작 등이 전체의 70%를 차지했다. 재취업 후 베이비부머의 직종 변화를 살펴보면 사무종사자는 26%에서 3.8%로 크게 떨어진 반면 단순노무 종사자는 7.5%에서 26.1%로 올랐다.

약 720만 명에 달하는 베이비붐 세대는 2010년을 기점으로 정년퇴직 연령에 도달해 향후 10년간 점진적으로 지금의 일자리에서 정년을 맞게 된다. 이들 대부분은 퇴직 준비가 매우 미흡해 노후 소득 보장과 일자리 확보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퇴직을 전후한 중장년층의 전직 및 재취업을 위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전직 준비는 재직 시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갑작스런 퇴직과 이로 인한 실업 상태가 장기화되면 재취업이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특히 퇴직에 따른 심리적 허탈감과 재취업에 대한 불안 및 초조함, 자신감 상실 등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조기 준비가 필수라는 설명이다.

이처럼 사무직 퇴직자들의 커리어컨설팅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생산직 등에 비해 핵심 전문기술 등을 보유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데 따라 최근 한국고용정보원은 이미 퇴직했거나 퇴직 예정인 사무직 베이비부머들이 효과적으로 자신의 퇴직 후 경력을 설계하고 재취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무직 베이비부머 퇴직설계 프로그램’을 마련, 국내 기업에 보급을 추진 중이다.

 

직무전문성과 재능 파악 가능해 자신감 고취

사무직 베이비부머 퇴직설계 프로그램은 퇴직자들이 재취업을 인생의 또 다른 출발로 여기고 자신의 직무전문성과 재취업 가능한 직종 및 일하는 방식을 알 수 있도록 돕는다. 5일간 총 30시간으로 구성되며, 대상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퇴직자 및 퇴직 예정자다. 프로그램 내용은 ▲잘 살아온 내 인생, 앞으로의 도전 ▲흥미 탐색 및 재능 찾기 ▲사무직 퇴직자의 취업현황 및 사례 ▲장단기 ‘내일’ 찾기 ▲직업정보 탐색하기 등이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2월 서울고용센터에서 시범 운영돼 베이비부머 참가자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당시 참가자들은 “사무직 퇴직자가 어느 직종에 어떻게 재취업하는지를 알고 내 직무전문성과 재능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어 자신감을 얻었다”며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이 프로그램이 더 많은 기업에 보급·활용될 수 있도록 기업 인사교육 담당자, 중장년 전직 지원 커리어컨설턴트 등을 대상으로도 홍보할 계획이다. 그 일환으로 지난달 삼성그룹 경력컨설팅센터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사무직 베이비부머 퇴직설계 프로그램 강사 양성 교육을 실시했다.

이 교육을 받은 인사담당자들은 회사에서 이미 퇴직했거나 퇴직을 앞둔 동료들에게 교육하게 된다. 앞서 고용정보원은 지난 6월, 기업 인사교육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 설명회를 열었으며 오는 9월에 2차 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국고용정보원 생애진로개발센터 장서영 연구위원은 “국회 계류 중인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300인 이상 기업은 퇴직을 앞둔 근로자에게 의무적으로 전직 지원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며 “더 많은 기업이 사무직 베이비부머 퇴직설계 프로그램을 활용한다면 기업들의 전직 지원 서비스 수준을 높이는 것은 물론 퇴직자들이 전직 및 제2인생을 설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삼성전자 경력컨설팅센터…퇴직 예정 3400여 명 전직 지원

민간기업이 운영하는 전직 지원 서비스로는 삼성전자가 대표적이다. 삼성그룹은 회사를 떠난 임직원이 다음 일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게끔 퇴직관리를 해주는 경력컨설팅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 삼성중공업, 삼성생명, 삼성물산, 삼성에버랜드 등 18개 계열사에 경력컨설팅센터가 있으며 계열사별로 적게는 2명에서 많게는 11명까지 담당자가 있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는 국내기업 중 처음으로 2001년부터 40~50대 중장년 퇴직(예정)자들의 재취업을 돕는 전직 지원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세근 삼성전자 상무는 지난 6월 고용노동부와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로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커리어컨설팅센터에서 열린 제1회 전직 지원 서비스 설명회에서 삼성전자가 어떻게 퇴직자를 돕고 있는지 소개했다.

지 상무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01년 서울 경력컨설팅센터를 설립했으며 2003년 수원, 2004년 기흥, 구미사업장에 차례로 센터를 열어 총 3418명의 전직을 지원했다. 삼성전자 경력컨설팅센터는 퇴직임원, 정년퇴직자(또는 예정자), 퇴직자(또는 예정자)를 대상으로 자문역 전직, 정년준비, 전직 상담을 해준다.

재취업알선뿐만 아니라 재교육, 창업 지원을 하면서 퇴직 후 삶을 계획할 수 있게끔 종합적으로 관리해준다. 이 가운데 84%는 재취업 후 받는 연봉이 동일하거나 더 많았으며, 95%는 직급이 그대로 유지되거나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