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미국 여행을 왔을 때, TV로만 보던 미국을 직접 보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한국과 다른 점이 많아서 더 흥미로웠다. 문화와 언어가 다르니 당연히 차이점이 많겠지만 전혀 예상치 않았던 곳에서 차이가 날 때의 흥미로움은 더욱 컸다. 개인적으로 낯선 지역에 대한 기억은 이와 관련된 향기나 냄새로 함께 기억되는 경우가 많은데, 자주 먹었던 음식 냄새라든가 바닷가의 짠 내음, 숙소의 비누 냄새 등이 여행 갔던 지역을 기억나게 하는 식이다. 미국은 한국과 다른 세제를 쓰는지 대형 쇼핑몰이나 건물에서 오전의 이른 시간이면 필자는 레몬향이 기억난다.

또 하나 미국에서 독특하다고 느꼈던 것은 화장실 문이다. 미국의 화장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 프라이버시가 전혀 보장되지 않는 느낌이 들었고, 다른 사람들의 소리가 다 들려서 굉장히 불편했다. 화장실 개별 칸의 칸막이가 바닥에서부터 천정까지 막혀 있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바닥에서 무릎 정도까지 칸막이가 훤히 뚫려 있고 문의 위쪽도 머리 위에서 천장까지는 역시 뻥 뚫려 있다.

옆의 칸과 분리해놓는 벽 역시 바닥에서 천장까지 막힌 것이 아니라 무릎까지 뚫려 있고, 머리 위에서부터 천장까지 개방되어 있어서 옆 사람의 신발이나 바닥에 내려놓은 물건이 훤히 보일 정도다. 심지어 화장실 칸의 문도 틈이 살짝 벌어져 있어서 문틈으로 앞의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 사람이나 손을 말리는 사람들이 다 보인다. 그러다 보니 반대편에서도 안쪽이 다 들여다보이지는 않을까 싶어 불편했다. 한국의 화장실들은 바닥에서 천장까지 막혀 있는 것은 물론, 백화점이나 쇼핑몰의 화장실에서는 음악까지 틀어 안팎에서 서로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할 정도인데 미국은 아예 훤히 보이니 불편할 수밖에.

뉴욕을 방문했던 유럽인 친구도 처음 화장실에 다녀오더니 미국인들은 그렇게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면서 화장실은 왜 이렇게 훤히 개방적으로 만들었느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물론 문조차 없는 경우도 있는 중국의 화장실보다는 낫지만, 미국 화장실이 한국이나 유럽의 화장실에 비해서 거부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 드라마에서 종종 화장실에 홀로 들어가 앉아 우는 친구에게 칸막이 아래로 휴지를 건네거나 휴지가 없다고 동동거리는 사람에게 휴지를 전달하는 모습이 나오는 것도 독특한 미국 화장실 설계 때문이다. 그러면 왜 미국은 화장실을 이렇게 뻥 뚫리게 해놓은 것일까.

▲ 외부에서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미국의 화장실 모습.

미국화장실협회에 따르면 화장실 칸의 문을 뚫리게 해놓은 것은 밖에서 쉽게 사람이 안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해서 문을 벌컥 열거나 굳이 노크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어느 칸에 사람이 있고 또 비었는지 쉽게 알 수 있어서 불필요하게 사람들이 줄을 늘어서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유는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된 화장실 칸막이 안에서 불법으로 마약을 복용하거나 판매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서다. 또한 범죄예방이나 긴급 응급상황 등에 대비하기 위해서이기도 한데, 환자나 노약자가 화장실을 이용하다가 정신을 잃거나 다치는 경우 외부에서 쉽게 이를 파악해서 신고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화장실에서 다른 사람에게 위협을 받거나 공격받는 경우에도 이를 외부에서 알아차리기 쉽다. 일부에서는 과거 따돌림을 받던 학생을 다른 학생들이 화장실에 가두고 자물쇠를 망가뜨려서 밖으로 나오지 못했던 사건과 관련이 있는데, 문이 잠기는 최악의 경우에도 문의 아랫부분으로 탈출할 수 있도록 하는 비상용도라는 주장도 있다. 비용 절감을 위해서라는 추측도 있는데 정확한 이유가 무엇이든 이렇게 설명이 다양한 것을 보니 미국 화장실이 독특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맨해튼 컬처기행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의 여주인공은 ‘마리아 선생님’

오드리 헵번이 주연한 영화로 유명한 <마이 페어 레이디>는 사실 1956년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첫 선을 보였고, 큰 인기를 끌어 나중에 런던의 웨스트엔드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버나드쇼의 피그말리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마이 페어 레이디>의 브로드웨이 초연의 여주인공은 <사운드 오브 뮤직>의 주인공인 쥴리 앤드류스였다.

첫 공연은 1956년 3월 15일 열렸는데 장소는 마크 헬링거 극장이다. 이 극장은 처음에 1930년 미국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워너 브라더스에 의해 영화 상영을 위한 극장으로 만들어졌다. 처음 극장의 이름은 워너 브라더스 할리우드 극장이었는데 당초 영화극장으로 지어졌지만 무대공연이 가능한 대형 무대 덕분에 주로 뮤지컬 공연이 열리고 공연이 비는 사이에 영화가 상영되곤 했다.

이 극장은 1947년 부유한 극장 프로듀서인 앤소니 페렐에게 매각됐는데 그는 1949년 유명한 브로드웨이 언론인이자 비평가인 마크 헬링거의 이름을 따서 극장을 마크 헬링거 극장으로 바꾸고 뮤지컬 전용극장으로 개조해서 선보였다. <마이 페어 레이디>는 1956년 초연한 이래 1962년까지 무려 2717번의 공연을 거쳐 이 극장의 최고 히트 뮤지컬로 떠올랐다.

이후 네덜란드조합에 팔린 마크 헬링거 극장은 1991년 타임스퀘어 교회에 팔리면서 현재는 교회로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 교회는 과거 극장의 건축양식과 디자인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관광객들의 극장 투어 등을 허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