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유례없는 전세난으로 인해 전세가격이 천정부지 뛰고 있는 가운데 최근 임대차를 둘러 싼 집주인과 세입자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집값 상승에 대한 낮은 기대감과 저금리 기조 속에 집주인들은 전세를 월세나 반전세로 돌리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전세 품귀 현상은 더욱 극심해져 세입자들의 한숨 소리는 커지고 있는 것.

#1. 세입자 오 씨의 사정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중산동 A아파트에서 전세로 거주 중인 아내와 두 어린 자녀의 가장이자 직장인인 오 씨(39세). 전세 계약 만료 4개월여를 남긴 상황에서 어린 자녀와 직장이 집 근처에 있는 탓에 지금 살고 있는 곳에 1000~2000만원 정도 전세보증금을 더 내고 거주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부동산에 집을 매매로 내놓았으니 집을 구매하거나 전세보증금 7000만원을 올려주지 않으려면 집을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은 것. 최근 사회적으로 ‘미친 전셋값’, ‘월세시대’란 말이 이슈가 되고는 있지만 막상 본인이 그 입장이 돼보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상실감과 함께 ‘집주인이 갑’이라는 약육강식의 법칙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2개월여 동안 오 씨는 일과 중에도 틈틈이 곳곳에 전화해서 전세물건이 나왔는지 알아보고, 퇴근 후 발품을 파는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새로운 전셋집을 찾아 계약까지 이르게 됐다.

고비를 넘겼다고 생각한 오 씨. 하지만 이후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운 전셋집 보증금 마련을 위해 현재 살고 있는 집 주인에게 계약만료 전날까지 전세보증금을 빼 달라 요청했지만 집주인은 아직 이 집이 안 나갔다는 이유로 집이 팔리기 전까지는 보증금을 절대 못 돌려준다는 것이었다.

오 씨는 “계약기간을 다 못 채우고 나가는 것도 아니고 계약서에 명시된 날을 다 채우고 나가는 건데 왜 못 돌려 주냐”고 집주인에게 항의하자 집주인은 “그러면 전세계약 만료일 자정(밤12시)까지만 돌려주면 되는거 아니냐”고 언성을 높이며 결국 두 사람의 감정싸움으로까지 치닫게 됐다.

현재 오 씨는 이사 일주일을 남겨 둔 상태에서 새 전셋집 보증금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아야 할지 주변 친지들에게 손을 벌려야 할지 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2. 집주인 박 씨의 사정

서울시 은평구 응암동에서 거주하고 있는 박 씨(63세). 그는 퇴직 후 20여 년째 살고 있던 단독주택을 허물고 3층 규모의 다세대주택을 지어 현재 그곳에서 나오는 임대료를 가지고 생활을 유지 중이다. 하지만 월 100만원도 되지 않는 임대수익으로 생활이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집을 정리하기로 결심하고 근처 공인중개업소에 내놓았다.

한동안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지만 최근 집을 매수하겠다는 사람이 나와 4월 초에 이 집에 들어왔으면 한다고 했다.

이후 박 씨는 전세계약기간이 5월 말 종료되는 세입자에게 전화를 걸어 “매매를 하려고 하니 3월 말에 집을 비워달라”고 양해를 구했고, 계약 중도 집을 비우는 것이니만큼 복비와 이사비용을 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세입자는 “복비, 이사비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나갈 집이 구해져야 하는 게 아니냐”며 중도 이사를 거부했고, 심지어 매매차 집을 보러오는 사람들의 방문까지 거절했다.

생계를 위해 집을 정리하려는 박 씨. 현재 집을 산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때 팔아야 하는데, 나중에 팔리지 않을 경우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막막해 전전긍긍 중이다.

집주인-세입자 갈등, 민사적 사안…상호 소통이 중요

서울시 전월세지원센터 관계자는 “전셋값이 고공행진하는 바람에 전세보증금을 둘러싸고 집주인과 세입자 간 분쟁이 최근 빈발해졌다”며, “특히 전월세 관련 상담 고객 중 보증금 반환·회수 문제로 문의하는 고객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입자 오 씨의 경우 집주인의 보증금 반환일은 원칙적으로 계약서에 명기된 날짜에 돌려주는 것이 맞다”며, “하지만 국내 환경 상 일반적으로 세입자는 계약만료 전 미리 집을 구해야 하고, 집주인은 집이 나가야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줄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집주인과 세입자가 대화로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만약 세입자가 새로운 집에 미리 계약하고, 원래 살고 있는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서울시 전월세보증금지원센터 상담을 통해 저리로 전세보증금을 대출받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전했다.

집주인 박 씨와 관련 그는 “현재 전세계약 기간 중 거주 중인 세입자에게 집주인 박 씨가 집을 팔겠다고 세입자에게 집을 보여 달라고 할 의무는 없다”며, “최근 임대차 관련 분쟁들은 대부분이 민사적인 사안들로 정답이 없기 때문에 집주인과 세입자간의 소통이 최우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