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회피연아 논란으로 불거진 ICT 업계의 개인정보제공 논란이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다만 이 문제는 개인정보제공 및 이에 대한 사생활 침해 논란의 담론을 넘어 손해배상 여부가 아닌, 적법한 법 절차의 가이드 라인을 명확하게 세우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언제나처럼, 법이 문제다.

▲ 출처=유튜브

회피연아 복마전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지난 2010년 당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끝나고 귀국한 피겨요정 김연아 선수를 환영하며 두 손으로 어깨를 두드렸는데, 김연아 선수가 이를 회피하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게시됐다. 이후 유 장관은 문제의 동영상을 게시한 사람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으나 이내 취하해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 했다.

하지만 유 장관으로부터 명예훼손 소송을 당했던 차 모씨가 네이버에 위자료를 청구하며 논란이 다시 시작됐다. 개인정보보호 의무를 망각하고 개인정보를 수사당국에 제공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네이버가 자신의 개인정보를 기계적으로 수사기관에 제공한 책임을 묻는 셈이다.

판결은 몇 차례의 변곡점을 거쳤다. 다만 고등법원이 수사당국의 요청에 대해 네이버 역할론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고등법원은 사업자가 수사기관의 요청에 따라야 할 의무는 없으며, 네이버는 수사기관의 개인정보 제공 요청에 대해 각가의 사안에 따라 제공 여부를 심사하는 등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충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차 모씨의 손해배상도 인정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결은 달랐다.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요청이 있을 때 네이버가 이를 실질적으로 심사할 의무가 없다고 봤으며, 배상을 무위로 돌렸다.

▲ 출처=픽사베이

전기통신사업법 83조 3항

이번 판결은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담론을 시작으로 유난히 그 관심이 손해배상청구 여부로 쏠리는 분위기다. 일반적으로 손해배상이 불법의 바로미터로 여겨지기 때문에 명확한 가치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담론을 논하기 전, 이 문제는 법적인 가이드 라인을 명확하게 세워야 할 필요성이 엿보인다.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을 보자. 본 조항은 [전기통신사업자는 법원, 검사 또는 수사관서의 장(군 수사기관의 장, 국세청장 및 지방국세청장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 정보수사기관의 장이 재판, 수사(「조세범 처벌법」 제10조제1항·제3항·제4항의 범죄 중 전화,인터넷 등을 이용한 범칙사건의 조사를 포함한다), 형의 집행 또는 국가안전보장에 대한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정보수집을 위하여 다음 각 호의 자료의 열람이나 제출(이하 "통신자료제공"이라 한다)을 요청하면 그 요청에 따를 수 있다]고 되어있다.

문제는 ‘따를 수 있다’는 표현이다. 해당 표현에 대해 대법원은 이 조항을 ‘따를 의무가 있다’고 보지 않았다. 즉, 의무가 아니라 ‘그럴 수’ 있다는 뜻으로 정의한다는 것이다.

네이버도 이 지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네이버는 14일 “대법원 선고의 핵심은 네이버가 각각의 개별사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 이를 심사할 의무가 없다는 뜻”이라고 단언했다. 정리하자면 수사기관의 요청이 왔을 경우 네이버가 개인정보를 제공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럴 의무가 없다는 것을 말한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고등법원의 판결 이후 네이버는 이러한 부분에 대한 확답을 받기 위해 대법원 상고를 결정했다고 부연하기도 했다.

결국 모든 문제는 전기통신사업법 제83조 제3항의 애매한 문구다. 수사기관의 정보제공 요구에 ‘따를 수 있다’고 명기된 상태에서, 네이버는 이러한 사안을 자체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내부적인 판단을 세웠다는 뜻이다.

이러한 판단이 자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여지는 있지만 네이버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논쟁을 끝낼 최선의 수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개인정보를 제공하거나 제공하지 않는 등의 가치판단에서 손을 떼면서 법 조항의 모호한 해석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론적으로 네이버는 법을 어기지 않은 상태에서 조항의 애매함을 대법원 상고를 통해 스스로 정리한 분위기다. 손해배상책임을 회피하는지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법 조항의 명확한 가이드 라인이 필요하다는 담론이 등장하는 이유다.

▲ 출처=네이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법원 판결은 네이버가 수사기관의 영장을 일종의 가이드 라인으로 삼아, 철저하게 법대로 해결하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법 조항의 애매한 문제를 지적하며 이를 명확하게 세워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이유다.

오픈넷도 이러한 분위기는 일단 환영이다. 과도한 사생활 침해 가능성은 당연히 지양해야 한다는 전제로 개인정보보호를 보호하되, 법적인 절차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경신 교수는 “영장이 없어도 무차별적으로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통신사에 비해 네이버의 행보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다만 네이버가 차 모씨의 개인정보를 영장없이 수사당국에 제공한 점은 묘한 씁쓸함을 남긴다. 물론 법 조항의 애매함을 고려하면 문제가 없지만 개인정보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방식에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가다. 일단 네이버는 영장을 가이드 라인으로 삼으며, 수사당국에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가치판단에서 손을 떼려는 분위기다. 합법적이며, 또 이성적인 판단인데다 애매한 법 조항의 문제로 야기된 일이지만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거대담론 측면에서 논란은 계속될 조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