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무렵 어느 날 아마존이 비밀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코드명은 타이토(Tyto).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위치한 디자인 연구소 랩126에서 비밀스럽게 움직였다. 당시는 애플이 아이폰 4를 출시했을 때다. 아마존은 아이폰을 능가하는 스마트폰을 만들려고 했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는 타이토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다. 아마존이 스마트폰을 자체 개발하고 있다는 루머는 2012년부터 흘러나왔다. 그로부터 2년 뒤 아마존의 첫 스마트폰 ‘파이어폰’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안타깝게도 파이어폰은 <비즈니스인사이더>가 꼽은 ‘2014 세계 IT 최악의 실패’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고 만다. 왜 베조스의 야심찬 계획은 아이폰 성공 신화의 발끝에도 가닿지 못한 걸까.

▲ 출처=아마존

아마존에 의한, 아마존을 위한 ‘쇼핑 스마트폰’

아마존은 특히 차별화에 신경을 썼다. 스마트폰 시장이 무르익은 만큼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지 못하면 주목받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렇게 탄생한 파이어폰에는 기존 제품에선 찾아볼 수 없던 특별한 기능이 대거 탑재됐다. 신제품 발표에 직접 나선 베조스는 어딘지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일단 3D 효과가 신선했다. 소문처럼 3D 디스플레이를 탑재한 것은 아니었지만 시차를 이용해 3D 오브젝트에 입체 효과를 주는 방식이다. 비밀은 파이어폰 전면에 달려있는 4개의 120도 카메라에 있다. 이 카메라들이 사용자 얼굴을 인식하고 이를 X, Y, Z축으로 추적해 얼굴 위치에 따라 화면을 움직여주는 식으로 3D 효과를 구현했다. 이 기능은 내비게이션이나 모바일 쇼핑 서비스에 접목돼 입체감 있는 사용자 경험을 제공했다. 차후에 게임이나 광고 등에도 접목될 것으로 아마존은 내다봤다.

4개의 전면 카메라 덕에 ‘다이내믹 퍼스펙티브’ 인터페이스도 구현할 수 있었다. 어두운 곳에서도 사용자 얼굴과 시선의 움직임을 정확히 읽어내 스크롤이나 스와이프 등의 기본 조작을 제품을 기울이거나 흔드는 식으로 구동할 수 있었다. 그러니 한 손으로도 조작이 간편했다.

파이어폰의 핵심 기능은 ‘파이어플라이’다. 파이어폰 왼쪽에는 파이어플라이 버튼이 달려있다. 이는 만능 검색 버튼이다. 텍스트는 물론 음악이나 사진, 영상 속에 그 어떤 것이든 인식해 검색을 할 수 있다. 파이어폰은 검색된 대상을 아마존에서 구입할 수 있도록 연결해준다. 파이어플라이 버튼을 통해 1억개 이상의 상품을 인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파이어폰에는 원클릭 결제 기능까지도 담겨있다.

제프 베조스는 파이어폰을 발표하면서 파이어플라이 기능을 중점적으로 소개했다. 책, DVD, 게임 타이틀, 과자, 캔 등을 사진으로 찍는 행위만으로 아마존에서 제품을 확인하고 구매하는 모습을 시연했다. 이런 기능 때문에 파이어폰은 스마트폰이 아닌, 아마존 전용 스마트 쇼핑 단말기로 불리기도 했다.

촬영한 사진과 영상을 무제한으로 저장할 수 있다는 점도 파이어폰의 강점이다. 데이터를 스마트폰 내부 저장 공간이 아니라 곧바로 아마존 클라우드에 저장된다. 아마존 프라임 서비스도 1년간 무료 제공했다. 아마존 프라임은 책, 영화, 음악 등 다양한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구독형 서비스다. 1년 이용료는 99달러다.

▲ 출처=아마존

‘메이데이’ 서비스도 차별화 포인트다. 이는 실시간 고객 대응 서비스다. 파이어폰을 사용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메이데이 버튼만 누르면 아마존 전문 상담원에게 곧바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15초 안에 연결되며 원격제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준다. 물론 기능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다.

스펙도 전반적으로 준수한 편이다. IPS 방식의 4.7인치 HD 디스플레이를 탑재했으며 AP는 퀄컴 스냅드래곤800을 실었다. 2GB 램에 저장공간은 32GB와 64GB 모델로 나뉜다. 전면 210만·후면 1300만 화소 카메라를 채용했다. 돌비디지털플러스 기술을 적용한 스피커가 제품 아래 위로 달려있어 스테레오 출력이 가능하다. 두께 8.9㎜에 무게는 160g이고 배터리 용량은 2400mAh다.

‘0.02%의 영향력’ 재고 소진조차 어렵네

모두가 파이어폰의 등장에 환호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혹평들이 이어졌다. “기본기가 부실하면서 잔재주만 많다”거나 “쇼핑 단말기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안드로이드폰과 경쟁하기에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반응도 있었다.

소비자들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시장조사업체 치티카 인사이트는 파이어폰이 출시되고 나서 20일간 북미 스마트폰 관련 웹트래픽을 조사했다. 여기서 파이어폰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작 0.02%에 불과했다. 미국과 캐나다 스마트폰 사용자들의 수억 개의 웹페이지 뷰를 조사한 결과다.

무관심은 부진한 성과로 이어졌다. 시장조사업체 컴스코어는 파이어폰이 출시 후 3주간 3만5000대가량 팔렸다고 했다. 애플은 아이폰 5S와 아이폰 5C 출시 첫 주에만 900만대를 팔아치운 바 있다. 결국 아마존은 2014년 3분기 실적 발표에서 “파이어폰 탓에 1억7000만달러 수준의 손실을 냈다”고 했다. 당시 파이어폰의 재고를 돈으로 환산하면 8300만달러 수준인데 재고 소진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곁들였다. 수요 예측 대실패다.

지난해 8월 아마존을 사실상 파이어폰 사업을 철수하기 위해 움직였다. 랩126에서 파이어폰 개발에 가담한 엔지니어 수십 명을 해고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와 함께 스마트폰 프로젝트를 무기한 연기했다. 그 다음 달 아마존은 파이어폰 판매를 중단하기에 이른다.

▲ 출처=아마존

“베조스식 간섭경영의 희생양”

파이어폰은 왜 아이폰이 될 수 없었나. 일단은 기대보다 충분히 저렴하지 않았다. 32GB 모델은 649달러, 64GB 제품은 749달러였다. ‘값 싸고 성능 좋은’ 안드로이드폰과 비교하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다. 아마존 고위임원은 “가격을 잘못 책정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아마존은 출시 두 달 만에 제품 가격을 200달러가량 낮췄다.

베조스의 생각과는 달리 파이어폰은 충분히 특색 있는 제품이 아니었다. 스펙 자체만 놓고 봐도 당시 최신 스마트폰에 비해 장점을 찾기 어려웠다. 야심찬 3D 기능도 신기하기는 하지만 쓸모가 있진 않았다. 바코드나 제품을 스캔해서 쇼핑하는 방식도 다른 스마트폰에서 아마존 애플리케이션(앱)을 설치하면 이용 가능했다. 안드로이드를 개조한 파이어 OS는 오히려 다양한 서비스를 활용하는 데 지장을 줬다.

베조스가 파이어폰의 실패를 초래했다는 견해도 있다. 파이어폰에 참여한 엔지니어들은 미국 경영 월간지 <패스트컴퍼니>에 증언했다. 그들은 파이어폰이 베조스식 마이크로 매니지먼트의 희생양이라고 입을 모았다. “고객들이 아닌 제프 베조스를 위해 파이어폰을 개발했다.” 익명의 엔지니어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