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창업이라고 하면 대개 경험 없이 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 사업이나 외식업을 떠올린다. 하지만 최근에는 지식이나 재능을 활용한 창업이 활발하다.

재능 및 지식 기반 창업은 커리어를 기반으로 하는 사업이 대부분이라 리스크가 적은 편이다. 창업자가 익숙한 영역에 도전하므로 투자가 적고 수익을 만들기도 쉽다. 
일반적인 소자본 창업의 수명이 2~3년을 넘기기가 어려운 게 현실인데 26년간 재능 창업으로 장수하고 있는 회사가 있다.

▲ 권희덕 시세아컴퍼니 대표

대한민국 대표 성우인 권희덕 대표(사진, 61세)가 운영하는 시세아컴퍼니다. 시세아컴퍼니의 서비스영역은 방송프로그램 녹음 및 기업 광고 홍보물 녹음, 기업체 등을 대상으로 하는 좋은 글 낭독 서비스와 오디오북제작, 녹음실대여 등이다. 최근에는 민간사업을 넘어서 공익 서비스에도 앞장서고 있다. 재단법인 시세아를 통해 시각장애인 및 척수장애인들을 위한 장애인방송아카데미 설립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책임 활동은 오랫동안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해온 권희덕 대표의 소망과 집념으로 추진되고 있다.

◆ 최고 전성기에 미래 위해 창업 도전 

권희덕 대표가 계속 직장인으로 남아있었더라면 벌써 은퇴를 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창업을 했기 때문에 은퇴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개인과 회사의 재능을 살려서 장애인들을 위해 보람 있는 사업까지 할 수 있게 됐다.

권희덕 대표는 대한민국 대표 성우 중 한 명이다. ‘남편은 여자하기 나름이예요’라는 권희덕 대표의 목소리는 최진실 씨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영화 팬들의 심금을 울리던 명화의 여주인공 자리는 늘 권 대표의 몫이었다. 잉그리드 버그만, 맥 라이언, 임청하 등 세계적인 여배우들의 촉촉하고 우아한 목소리에 권 대표만큼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었다.

천부적으로 목소리를 타고난 권 대표는 일찍 출세했다. 초등학교때 학교 노래 자랑에 나갔다가 노래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방송국 어린이 합창단에 들어간 것이 계기가 돼 초등학교 5학년때 벌써 대전 KBS에서 소녀의 일기라는 방송을 맡아서 했다.

젊은 시절부터 영화나 방송에서 비중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던 권 대표가 창업에 도전한 것은 35세 때였다. 최고의 성우로 대접받던 그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건강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7년 주기로 입이 돌아가는 구안와사 증상을 겪었던 것. 구안와사가 오면 발음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성우라는 직업에는 치명적이다. 27세 때도 35세 때도 같은 증상으로 고통을 겪게 되자 ‘매도 빨리 맞자’, ‘미리 미래를 대비하자’는 생각으로 방송국을 그만두고 독립을 하게 됐다.

◆ 아부 못해 영업보다 사업 본질에 집중 
 
혹자는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최고 전성기에 있을 때 창업했으니 사업을 하는 것도 쉬웠겠지, 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뛰어난 재능으로 만인의 찬사를 받았던 사람이기에 ‘창업’에 도전하고 오랜 기간 사업을 유지해오는 것은 더 어려웠을 수도 있다.

유명세 덕분에 일감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가장 힘든 건 영업과 조직 관리였다. 대부분의 전문직 종사자들이 그렇듯이 권 대표도 마음에 없는 이야기나 아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주변에는 권 대표가 ‘만두 빚기’라고 표현하는 아부나 비굴한 몸짓이 많았다. 때로는 실력보다 관계가 훨씬 중요했다.

▲ 권희덕 대표는 오랫동안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를 다녔다.

치열한 시장 환경에서도 권 대표가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첫째, 영업보다 본질에 집중한 것이었다. 일을 줄이더라도 지나친 아부나 타협 없이 주어진 일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했다. 처음에는 권 대표의 그런 태도가 손해인 것 같았다. 하지만 업무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고 정성을 다하다보니 오히려 그 점이 장점이 되었다. 관계보다는 업무 성과와 충실도를 더 높이 평가하는 고객들이 권 대표의 회사를 찾았다.

두 번째 성공비결은 한 눈 팔지 않고 본업에 충실한 것이었다. 사업을 하다보면 주변에서 다양한 유혹이 많다. 말만 들으면 금방 큰돈을 벌 것처럼 귀를 솔깃하게 하는 유혹도 있었다. 하지만 권 대표는 본업에 충실하기 위해서 ‘더하기’가 아니라 ‘가지치기’에 더 신경을 썼다. 돈 좀 번다고 생뚱맞은 데 관심을 뒀더라면 벌써 넘어졌을 지도 모른다는 게 권 대표의 말이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재능창업’은 재능을 살리고 발전시키는 게 본질이다. 여기저기서 뻗치는 유혹을 잘 극복하는 것도 재능창업의 성공 비결중 하나라는 이야기이다.

권 대표는 성우를 하지 않았더라면 음식점을 창업했을 거라고 말한다. 음식 솜씨가 좋을 뿐 아니라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음식점을 내보려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전국 맛 집을 다니며 시장 조사를 하던 중 한 번은 쓰러져서 위기를 맞았다. 본업에 집중하는 게 정답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던 것이다.

세 번째 성공비결은 대인관계 능력이다. 얼마 전 한 사업가가 권 대표가 추진하는 ‘방송아카데미 설립’을 위해 1천만 원이라는 기부금을 선뜻 기탁했다. 오랫동안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하는 권 대표의 모습을 지켜봤기에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 없었다. 이렇게 사람을 한 번 사귀면 오래 사귄다. 권 대표를 보고 여장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은 여성스러운 성격이다. 아부는 못하지만, 처음 만나도 오래된 친구처럼 편안하게 대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진실한 사이가 되면 오래 관계를 유지한다.

▲ (오른쪽부터)권희덕 대표와 시세아컴퍼니를 통해 교육 받은 장애인들의 방송 활동 모습.

네 번째 비결은 결단이 빠르다는 점이다. 권 대표는 사업을 하는 사람은 결정이 빨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정이 빠르면 시간 지연으로 인한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어떤 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면 권 대표 쪽에서 빨리 포기하고 결정을 내려주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부담도 줄일 수 있고 관계도 잘 유지할 수 있다. 빠른 결정력은 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권 대표의 배려이자 의도적인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다섯 번째 비결은 초심을 지키는 것이다. 권희덕 대표는 신효범 씨의 ‘언제나 그 자리에’라는 노래를 좋아한다. 한 번 먹은 마음은 평생 그대로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목소리에 대한 철학이 그렇고, 사업경영 방침을 지키는 것이 그렇다.

여섯 번째 비결은 공동체 의식이다. 기업이 얻는 성과는 사회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회사는 언제나 사회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나만을 위한 사업은 싫증도 나고 대충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기면 늘 내가 하는 일이 올바른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 사회적 책임감 가지면 오랫동안 열정 유지 

▲ 서울맹학교 성우반 학생들이 방송 녹음을 하고 있는 모습.

권희덕 대표가 자신과 회사의 재능으로 사회에 기여하려는 노력 중 하나가 장애인을 방송인으로 육성하는 프로젝트다. 그녀가 대표로 있는 사단법인 ‘시세아’는 장애인방송아카데미 설립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최초로 장애인들을 위한 방송아카데미가 설립되면 시각장애인이나 척수장애인들을 당당한 방송 전문인으로 키울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자라고 할 수 있는 장애인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당당한 직업인으로 서게 된다면 우리 사는 세상이 한층 행복해질 것이라는 게 권 대표의 생각이다.

권 대표가 장애인과 인연을 맺은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국악방송 10주년 기념의 일환으로 심청이가 헬렌켈러를 만나는 라디오 드라마를 만들게 됐다. 당시 해설은 유인촌 씨가 맡았는데 그 자리에서 만난 국립맹학교 교장이 우리 아이들은 직업이 안마사 밖에 없다고 걱정을 하자 유인촌 씨가 ‘권 선생, 이 아이들을 성우로 만들어보시죠’라고 한 마디 던진 것이 계기가 됐다.

50분짜리 드라마를 앞이 안 보이는 장애인들이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한 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시각장애아들을 데리고 훈련을 시작했다. 권 대표가 시범으로 목소리로 녹음을 해준 다음 시각 장애아들에게 집에 가서 듣고 연습해오라는 숙제를 냈다. 똑같은 목소리를 내려면 띄어 읽기 강약 조절 등을 위한 연습이 필요했던 것이다. 다음날 연습 내용을 점검하던 권 대표는 깜짝 놀랐다. 권 대표의 목소리와 똑같이 발음하는 장애아가 있었던 것이다. 그 장애아는 밤새도록 권 대표의 목소리를 들으며 연습을 했던 것이다.

▲ 권희덕 대표가 척수장애인들에게 성우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그렇게 시각장애인과 인연이 시작돼 권 대표는 지난 6년 동안 국립맹학교 교사로 봉사 시각장애인들에게 성우 훈련을 시키는 교육을 봉사해왔다.

시각장애인과 척수장애인을 위한 방송인력 육성 사업을 생각하게 된 것은 봉사를 해오던 국립맹학교의 졸업식에 참석한 게 동기가 됐다. 40년 동안 맹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쳐온 70세 교사가 반신불수가 되자 학교동문회장인 안마사회 회장을 비롯해 동문들이 3일 만에 1천3백만 원을 모금해 은사에게 전달하고, 그 교사에게 배운 섹소폰, 전자기타 등을 연주하면서 재학생들이 스승의 은혜를 부르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하게 된 것이다.

그때부터 시각장애인들을 당당한 사회인으로 키워내겠다는 꿈을 갖게 되어 ‘장애인방송아카데미’ 설립을 위한 사단법인을 발족하고 몇 년째 기금 마련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오는 11월 7일에도 더케이 호텔에서 장애인방송아카데미 후원기금 마련을 위한 디너쇼 행사를 진행한다. 김병찬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되는 이번 행사에는 가수 송창식 씨와 김종환 씨, 기타리스트 함춘호 씨와 장애인들의 공연, 그리고 시낭송회 등이 준비돼 있다. 1인 20만원으로 디너쇼 참가 티켓을 구입하면 공연도 관람하고 기금마련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 인생이 담긴 목소리, 훈련으로 바꿀 수 있다 

권희덕 대표는 화장품 광고 녹음을 많이 했다. 화장품 광고의 음성녹음은 아무나 할 수 없다고 한다. 목소리가 지적이고 촉촉하고 우아해야만 화장품 광고를 할 수 있다. 화장품 광고의 목소리는 정적이고 느리게 표현된다. 활발하고 명랑한 목소리는 쉽지만 조용하고 느린 목소리에는 내면의 소리를 담아야 하므로 웬만한 내공 없이는 잘 하기가 힘들다.

광고에서 유난히 권희덕 대표의 목소리가 인기를 얻는 비결이 있다. 권 대표는 어떤 목소리이든 웃음을 머금고 한다. 광고 모델은 웃지 않더라도 권 대표가 소리를 녹음할 때는 항상 미소를 머금는다. 비록 고객들은 성우의 표정을 볼 수 없지만 미소를 머금고 낸 목소리라야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는 게 권희덕 대표의 목소리 철학이다.

권희덕 대표는 목소리에 사람의 인생이 담긴다고 말한다. 권희덕 대표의 목소리가 촉촉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건 권 대표 안에 엄마 같은 선함이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려고 늘 노력한다.

▲ 시각장애인이 공익 광고 방송 녹음을 하고 있는 모습.

목소리 전문가답게 권 대표는 목소리는 노력을 통해서 고쳐질 수 있다고 말한다. 소리에는 화법이 중요하므로 화법을 순화하는 게 중요하다. 큰소리는 가급적 작게 말하고, 말 자체도 긍정적인 단어와 내용을 담는 것이 비결이다.

우리나라 시각장애인은 3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이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은 안마 지압사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시각장애덕분에 혀나 청각은 정상인보다 더 발될 되므로 훈련만 되면 성우가 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는 게 권 대표의 말이다.

또 하지불구 장애인들도 걷는 게 불편할 뿐 전문적인 교육만 제대로 받으면 얼마든지 방송 전문인이 될 수 있고 실제로 전문인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으므로 이들을 이한 전문교육기관이 꼭 필요하다는 게 권 대표의 말이다.

앞으로도 20년 이상은 거뜬히 일할 수 있다고 말하는 권 대표의 가장 큰 소망은 장애인방송아카데미를 설립해 시각장애인들과 척수장애인들을 전문가로 육성하고 그들이 전문가로 설 수 있도록 일감까지 마련해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