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네이버 영화

최근 전 세계 박스오피스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작품들로는 마블의 ‘닥터 스트레인지’, 그리고 해리포터 시리즈의 프리퀄 격인 ‘신비한 동물사전’ 등이 있다. 본 작품들의 공통점은 본래 영화 시나리오가 아닌 만화나 소설로 만들어졌던 내용, 즉 원 소스(One-Source)가 있다는 것인데 이 원작들은 짧게는 10년 이상에서 길게는 거의 한 세기 동안 많은 이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아 왔다. 수많은 콘텐츠들이 생산되고 없어지는 가운데서도 이들은 수없이 다시 읽히고, 새롭게 응용되며 상업적 가치를 갈수록 더하는 하나의 ‘고전’이 됐다. 그들의 가치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또 한 가지의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다. 바로 잘 짜여진 하나의 ‘세계관’이다. 지금부터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는 '메가 콘텐츠'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 세계관과 관련한 이야기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 출처= 마블 공식 홈페이지

마블, “평행우주, 모든 것은 연결돼 있다” 

마블(MARVEL)의 기원은 1939년 ‘타임리 코믹스’라는 이름으로 설립된 미국의 단행본 만화책 출판사다. 60년대에 회사명을 마블 코믹스(MARVEL COMICS)로 바꾸면서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타임리 코믹스는 당시 미국의 대공황과 2차 대전 참전 등 사회의 암울한 분위기를 반전하기 위해 ‘미국이 최고’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히어로(영웅) 서사 작품들을 출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첫 번째 히어로가 바로 퍼스트 어벤져 ‘캡틴 아메리카(1941)’다. 이후 산하 여러 작가들의 창작을 통해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등 다양한 히어로들이 만화책으로 등장했다. 처음엔 작품 속에서 각 히어로들의 활동 배경은 거의 연관성이 없었다. 그러다가 히어로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한 작품에서 여러 명의 히어로들을 겹쳐서 주인공으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러한 작품들이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자 마블은 아예 하나의 공통 세계관으로 히어로들을 묶고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설정을 덧붙였다. 이를 통해 그간 각 히어로들에 분산돼있던 팬덤을 하나로 아우르며 엄청난 시너지를 만들었다. 이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어벤져스(Avengers)다.

마블의 상상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다른 우주의 가능성을 말하는 ‘평행 우주 이론’에 입각한 다중 세계관(Multiverse)을 만화에도 적용시켜 히어로들은 여러 우주에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대전제를 만들었다. 심지어 각 세계관은 서로 연결되기도 한다. 각 히어로들은 작가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일부 작품들은 마블이 아닌 다른 곳으로 판권이 팔리기도 한다. 마블은 자신들에게 판권이 남아있는 캐릭터들을 영화화하고 이를 공통의 세계관으로 통합했다. 이것이 바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Marvel Cinematic Univers)다. MCU는 여러명의 히어로들이 어벤져스라는 이름으로 뭉치는 과정을 담은 ‘페이즈1’, 어벤져스 멤버들 간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궁극의 적(타노스)의 존재를 인식하는 ‘페이즈2’, 히어로들의 분열과 재통합으로 타노스를 무찌르는 ‘페이즈3’로 구성돼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페이즈 3의 종결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출처= 마블 공식 홈페이지

마블코믹스의 통합 세계관에서 출발한 MCU의 경제적 가치는 가히 천문학적 단위에 이른다. 영화 개봉 수익만으로 계산했을 때, 현재까지 개봉된 총 14개 작품 중 흥행순위 상위 5개 작품 수익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어벤져스1(15억1900만 달러) 1조7800억 원, 어벤져스2:에이지 오브 울트론(14억500만 달러) 1조6000억 원, 아이언맨3(12억1500만 달러) 1조4200억 원, 캡틴아메리카 3:시빌 워(11억5300만 달러) 1조3500억 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7억7300만 달러), 9000억 원 이를 합치면 약 7조500억 원이다. 여기에 MCU를 기반으로 활용된 콘텐츠들의 가치들을 합치면 그 가치는 적어도 몇 배 이상으로 늘어난다.

“히어로들의 이야기를 하나로 연결시켜 볼까?”라는 다소 단순한 마블의 발상 전환은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만들었고, 이는 콘텐츠 부가가치 활용의 힘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됐다.

 

▲ 고전 속 서유기 삽화.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서유기 “환상의 세계, 공통의 목표, 매력적 캐릭터”

서유기(西遊記)는 시내암의 <수호지>와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 왕세정의 <금병매>와 더불어 중국 ‘4대 기서’ 라고 불리는 고전(古傳)이다. 이 중에서도 서유기는 불교에 근거한 이승과 저승, 지옥 등의 광범위한 세계관을 담아낸 환상(판타지) 소설이라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구분된다. 기본적 성향은 판타지이지만 재미있게도 그 기본은 당(唐)나라 승려 현장(玄裝, 600~664)법사가 서천(인도)에 불경을 가지러 여행을 떠난 실화에 기인한다. 실제로 현장법사는 불경을 얻으러 가는 여정을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라는 책으로 남겼고, 서유기는 여기에 상상력을 보태 만들어진 이야기다. 

서유기는 주인공 삼장법사(三藏法師)와 그의 세 제자인 손오공(孫悟空), 저팔계(猪八戒), 사오정(沙悟淨)이 불경을 얻기 위해 인도로 향하며 겪는, 81가지 어려움(八十一難)을 이야기로 담았다. 5~6세기 소설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상상력, 치밀한 이야기 구성,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는 ‘이야기’로써의 활용 가치가 충분하다.

이에 서유기는 수많은 영화와 애니메이션 등에서 매력적으로 다룰 수 있는 원작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참고로 서유기의 스토리를 모티브로 한 KBS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1990)’는 우리나라에서 방영된 만화 역사상 최고의 시청률(42.8%, 1992년 11월 29일 기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 출처= 드래곤볼 슈퍼 공식 홈페이지

서유기의 세계관을 활용해 가장 성공한 콘텐츠는 바로 일본 만화가 토리야마 아키라(鳥山明)의 ‘드래곤볼(1986)’ 시리즈다. 만화의 내용은 원작의 불교 세계관하고는 크게 관계가 없지만, 소원을 이뤄주는 구슬 ‘드래곤볼’을 찾아 주인공들이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과 더불어 사후세계, 그와 관련된 인물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에는 서유기 세계관의 개념들이 녹아 있다. 심지어는 주인공 이름도 '손오공'이다. 드래곤볼 만화책 단행본은 전 세계 2억3000만부 이상이 팔려나간 글로벌 베스트셀러가 됐으며, 여기서 파생된 만화와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합치면 대략 500여 편에 이른다.

드래곤볼이 서유기를 차용한 수많은 콘텐츠들 중 하나인 것을 감안하면, 서유기의 환상적 세계관도 MCU에 못지않은 천문학적 경제적 효과가 파생된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