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현실(VR)은 사실 신세계가 아니다. 군수용으로는 제법 오래된 기술이다. 비행 시뮬레이터가 대표적이다. 이걸 민간 영역으로 끄집어내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잠재력이 어마어마한 신시장이 될 거라는 전망이 나왔다.

특히 지난해는 VR 원년이 될 거란 얘기가 돌았다. 고성능 PC·콘솔 기반 VR 헤드셋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HTC·오큘러스·소니 등이 시장을 장악할 것으로 보였다. 실상은 기대 이하였다. 기기 판매고 자체가 기대치에 크게 못 미치는 걸로 알려졌다.

게임 플랫폼을 운영하는 피지맨게임즈 김영호 대표는 VR 시장 자체가 아직 제대로 시작되지 않은 단계로 봤다. 그를 지난 10일 만났다. 김 대표는 그 누구도 VR 시장을 만들려는 효과적인 접근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관련 업체들이 그저 ‘언젠가는 소비자가 VR 헤드셋을 구매하겠지’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기기는 왜 안 팔렸나. 가격 허들이 가장 치명적이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사용자 입장에서 보자. 고가의 VR 헤드셋만 갖춘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PC를 최신 사양으로 업그레이드해야 VR 콘텐츠 구동이 가능하다. 적어도 100만원 이상은 더 들여야 한다. 가격 허들이 VR 확산 속도를 느리게 했다고 그는 지적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VR 디바이스-플랫폼-콘텐츠 연결고리 만들기

김 대표는 직접 VR 시장을 열어나갈 생각이다. B2B(기업 간 거래)적 접근법으로 로드맵을 짰다. 기본적으로 피지맨게임즈는 콘텐츠를 유통하는 플랫폼 사업자다. VR 시장에서도 이 역할은 유지된다. VR 콘텐츠를 유통하는 오픈마켓을 준비하고 있다.

끝이 아니다. VR 오픈마켓은 이미 다수 존재하지 않는가? 그는 플랫폼이나 오픈마켓은 있어도 디바이스가 보급되지 않은 걸 가장 큰 문제로 봤다. 그래서 디바이스를 다양한 오프라인 공간에 뿌리려는 계획부터 추진하고 있다. 모텔이든 호텔이든 카페든 빵집이든 미용실이든 PC방이든 최대한 보급하려 한다.

대개 VR 오픈마켓에서 유저가 콘텐츠를 소비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 게임 하나 다운로드하는 데 3000원을 과금하는 식이다. 기본적인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사업 모델이다. 그는 VR 디바이스가 보급된 매장의 점주들로부터 월정액을 받을 생각이다. 월 4만원가량으로 금액을 책정했다. VR을 매장 홍보수단으로 활용하고 비용을 지불하란 얘기다.

소비자는 VR 콘텐츠를 공짜로 체험할 수 있는 구조다. 매장에서 VR 헤드셋을 착용하면 피지맨게임즈의 ‘피시모스토어’가 나타난다. 거기 올라온 VR 콘텐츠를 마음껏 즐기면 된다. 피지맨게임즈는 월정액 수익에서 일정 부분을 콘텐츠 업체에 지급한다.

정산 시스템은 합리적이다. 콘텐츠 업체들에 콘텐츠별 월 이용시간을 투명하게 공개한다. 이를 바탕으로 시간만큼 정확한 비율로 정산을 해준다. 윈-윈(Win-Win) 구조다. 콘텐츠 업체 입장에서는 VR로부터 바라지도 않았던 돈이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구조인 까닭이다. 피지맨게임즈는 월정액 매출에서 약 20%를 가져간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성인물 콘텐츠 앞세우는 까닭은

뿌릴 디바이스는 중국 아이디어렌즈의 K2다. 올해 초 두 회사는 협약을 맺었다. 아이디어렌즈는 중국산 싸구려 VR 헤드셋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세계 최초로 일체형 VR 헤드셋을 만들었다. 기기를 휴대폰·PC·게임기 등과 연결하지 않아도 독자적으로 구동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니 간편하고 직관적이다.

K2의 스펙은 모바일 VR 헤드셋과 유사한 정도다. 본래 K2엔 아이디어렌즈의 VR 마켓이 내장된다. 이 기기를 한국으로 들여오면서 피시모스토어를 기본 런처로 적용하기로 했다. K2는 현재 전파인증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숙박업소 중심으로 먼저 기기를 보급할 생각이다. 그 다음은 콘텐츠다. 어떤 VR 콘텐츠를 앞세울 것이냐의 문제다. 김 대표는 일단 게임은 아니라고 봤다. 오히려 VR 콘텐츠는 영상 쪽이 더 낫다고 얘기했다. 콕 찝어 얘기하면 ‘성인물’을 꼽았다. VR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그것만한 콘텐츠가 없다는 설명이다. 물론 심의를 통과한 콘텐츠만 서비스한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그는 이미 성인 콘텐츠 20여개를 수급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지금 콘텐츠 제공을 전제로 촬영에 들어간 업체도 있다고 했다. VR 게임의 경우 제작에 최소 6개월은 걸리지만 360도 영상은 1주일 정도만 기다려도 완성된다. 그러니 신속한 수급이 가능하다.

늦어도 3월 초에는 숙박업소에서 이 같은 구상대로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성인물만 밀어붙일 생각은 아니다. 엔터테인먼트, 애니메이션, 게임 등을 차근차근 아우를 생각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전국 카페와 PC방 등 다양한 공간에서 K2와 피시모스토어의 조합을 만나볼 수 있게 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VR 콘텐츠가 돈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면 제작에 나서는 업체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면서 VR 콘텐츠가 질적·양적 성장을 이룰 것이라는 생각이다. 먼저 중요한 건 디바이스를 최대한 많이 보급하는 일이다. 그는 올해 안에 10만대를 보급하고 싶어 한다. VR 시장을 열어보겠다는 김 대표 도전이 성공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