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부품을 덕지덕지 가져다 붙였다. 세기말 거대 전함처럼 기괴한 탱크가 하늘을 날아오른다. 적군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조그마한 탱크. 어처구니 없게도 압승 예감은 빗나갔다. 거대 탱크가 날다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상대편은 뒤집힌 탱크를 차분히 파괴했다.

비록 졌지만 황당하고 유쾌하다. 방금 플레이 영상을 페이스북에 곧바로 공유한다. 내 멋진 탱크가 얼마나 삽질을 하는지 다들 구경하라고. 자랑 아닌 자랑이다. 다시 게임으로 돌아와 전세계 유저가 올린 탱크 설계도를 살펴본다. 탱크 하나에 눈길이 머문다. ‘이 탱크 조립한 사람 왠지 제정신 아닐 것 같은데? 멋져!’

▲ 출처=루미디아게임즈

이달 말이면 나올 모바일 게임이다. 루미디아게임즈가 만든 ‘슈퍼탱크대작전’이다. 여러 부품으로 나만의 탱크를 조립해 싸우는 게임이다. 전투에서 이기는 것 만큼이나 기발한 탱크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2월말 출시를 목표로 막바지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기발한 탱크 만들어 소셜 미디어에 '자랑'

그들을 만나러 판교엘 갔다. 루미디아게임즈를 이끌고 있는 이장호 대표와 김영호 부사장을. 스마일게이트가 운영하는 창업 지원 프로그램 ‘오렌지팜’ 출신인 이들은 현재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에 둥지를 틀고 있다. 둘은 ‘건즈(GunZ)’로 유명한 마이에트 엔터테인먼트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 이장호 루미디아게임즈 대표(좌)와 김영호 루미디아게임즈 부사장(우).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우리가 만든 콘텐츠를 유저가 소모하는 방식이 아니라 그들이 콘텐츠를 직접 만들고 공유하는 게임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죠.” 김영호 부사장이 그랬다. 슈퍼탱크대작전의 씨앗이 된 아이디어다. 그 다음엔 레고와 마인크래프트를 떠올렸다. 마음껏 부품을 조립해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게임을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

처음부터 탱크를 소재로 삼은 건 아니었다. 초기엔 우주를 배경으로 전함을 만드는 게임을 구상했다. 개발하다 보니 사이즈가 너무 크고 어려웠다. 모바일 환경에서 즐기기 쉽지 않을 것만 같았다. 더 간단한 걸 생각하다가 떠올린 소재가 탱크였다. 둘은 ‘포트리스’라든지 ‘웜즈’를 연상하기도 했다. 콘셉트가 조금씩 선명해졌다.

결국 프로젝트가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레고 블록으로 무언가 만드는 것처럼 아기자기한 부품으로 탱크를 조립해 글로벌 유저들과 실시간으로 싸우는 게임이 탄생했다. 앞으로 어떤 모습의 탱크가 만들어질지는 그들도 모른다. 유저 상상력에 따라 경우의 수는 무한대에 가까우니까.

플레이 초반엔 탱크 규격이 작다. 부품도 얼마 없어서 만들 수 있는 탱크가 한정적이다. 레벨을 올릴수록 규격도 커지고 부품 종류도 늘어난다. 모든 부품을 다 사용하려면 100시간 넘게 게임을 플레이해야 한다. 부품은 업데이트를 통해 이것저것 추가될 예정이다. “크리스마스나 할로윈 같은 때엔 재미있는 부품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예컨대 사슴 뿔 같은 것 말이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전투보단 창작이 핵심인 만큼 조작이 어렵진 않다. 실시간 유저 대결인데도 자동 플레이 모드를 지원한다. 인공지능(AI)이 알아서 싸워준다는 얘기다. 물론 직접 하면 더 잘 싸울 수 있다. 게임에 승리하기 위해선 상대 탱크에 달린 무기를 먼저 부수는 게 중요하다. 둘은 나중에 팀플레이 모드가 추가될 수 있다고 전했다.

게임을 할 때마다 리플레이 영상이 저장된다. 이걸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에 바로 공유할 수 있다. 탱크 조립 장면도 공유 가능하다. 소셜 게임의 면모를 갖춘 셈이다. 심지어 탱크 설계도도 공유할 수 있다. 멋진 설계도를 골라 직접 사용해보는 것도 가능하다. 공유 가치가 있는 기발한 설계도를 올려 많은 유저들의 선택을 받으면 설계한 사람한테 보상이 주어지는 시스템이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RPG 텃밭에서 자라난 샌드박스 게임, 그 미래는

슈퍼탱크대작전은 단순히 국내만을 바라보고 만든 게임이 아니다. 스마일게이트와 함께 141개국에 게임을 동시 출시할 계획이다. 마인크래프트 같은 샌드박스(게임 안에서 유저의 마음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게임) 장르가 북미에서 엄청난 흥행을 거두지 않았는가. 이들도 그쪽을 바라보고 있다.

글로벌 타깃 게임이니 폰 요구 사양도 낮게 잡았다. 국내야 최신폰이 넘쳐나지만 해외엔 다양한 플레이 환경이 존재하는 탓이다. 게임이 널리 퍼질 수 있게 용량도 최소한으로 줄였다. 패키지 용량은 약 60MB, 설치되면 100MB에 불과하다. 요즘 모바일 게임은 업데이트 용량만 1GB가 넘는 현실 아닌가.

사실 샌드박스 게임이 국내에선 비주류다. 엄연한 사실이다. RPG(역할수행게임) 장르가 모바일 게임 시장을 꽉 잡고 있다. 업계엔 이런 쏠림 현상을 우려하는 이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국내 유저들이 이 게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 같으세요?” 기자가 묻자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김영호 부사장이 말문을 열었다. “레고도 국내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잖아요? 어릴 때를 돌이켜보면 ‘과학상자’처럼 비슷한 즐거움을 느끼는 것들이 있었죠. 뭔가 조립해 만들어내는 걸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 게임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거예요. 절대 다수는 아니겠지만 시장이 분명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장호 대표도 말을 보탰다. “한국 시장이 굉장히 고도화돼서 개발팀을 보면 10년 이상 경력을 가진 사람들 중심입니다. 숙련된 개발자들이 많은 자본을 들여 좋은 게임을 만들고 있죠. RPG는 아무래도 신생 개발사 입장에서는 만들기 어려워요. 우린 팀 규모가 작으니까 안 해본 시도를 하면 시장의 다른 면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갓겜’(최고의 게임을 이르는 말)의 조건은 분명했다. 새로운 경험을 주는 완성도 높은 게임을 갓겜이라 여겼다. 한때 '퀘이크'에 빠져있던 둘은 아이러니하게도 아기자기한 소셜 샌드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앞으로도 루미디아게임즈는 이런 게임을 만들어갈 계획이다. 유저가 뭔가 만들어낼 수 있고, 그걸 남들한테 공유하고, 그 속에서 재미를 찾는 그런 게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