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카메라밸리 한복판. 갤러리아백화점 인근 압구정로데오역부터 학동사거리로 이어지는 길목을 카메라밸리라고 부른다. 주요 카메라 업체 브랜드스토어가 몰려있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카메라밸리에 위치한 후지필름스튜디오를 들렀다. 후지필름코리아 사무실은 물론 제품 체험공간, 갤러리, AS센터, 아카데미 등이 모여있는 곳이다.

지하 1층 X 갤러리로 내려가 그를 기다렸다. 이곳에선 사진전 ‘43.8×32.9’이 열리고 있었다. 사진을 하나하나 둘러봤다. 후지필름이 야심차게 출시한 중형 포맷 미러리스 카메라 GFX 50S로 찍은 사진들이다. 거대사진 23점에 압도당하고 있을 무렵 그가 나타났다. 한국을 찾은 우도노 신이치로 후지필름 광학전자영상사업부 디지털 카메라 상품기획 및 영업 총괄매니저다. 그는 한 손에 후지필름 중형 미러리스 카메라 GFX 50S를 들고 있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아날로그×디지털' 매력 겸비 하이브리드 카메라

첫 화두는 역시 GFX 50S였다. 올해 초 일본에서 열린 후지키나 2017의 주인공 아니던가. 중형 미러리스 카메라라는 독특한 정체성 덕에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카메라다. 고모리 시게타카 후지필름 회장이 “디지털 카메라 주역이 35mm DSLR에서 미러리스로 바뀌는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소개했을 정도다.

우도노 총괄 생각도 다르진 않았다. “지금까지 프로나 하이아마추어 사이에서는 35mm DSLR로 사진을 찍는 게 메인이라는 인식이 있었죠. 우리가 중형 미러리스를 출시하면서 이제 프로는 35mm가 아니라 중형으로 찍는다는 인식이 정착될 거라고 봅니다. 10~15년 전에 필름시대 프로사진가들이 중형 포맷을 썼던 것처럼 앞으론 디지털에서도 중형으로 고화질을 추구하는 시대가 올 거라 생각해요.”

그가 후지필름에 입사한 지 22년이 흘렀다. 그사이 카메라시장엔 거대한 변화가 있었다. '아날로그의 몰락'쯤으로 얘기할 수 있겠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필름시대가 저물었다. 서둘러 디지털시대가 찾아왔다. 후지필름은 필름사업을 대폭 줄인 가운데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장점을 버무린 하이브리드형 미러리스 카메라 제품들을 선보이며 입지를 다지고 있다.

▲ GFX 50S. 출처=후지필름
▲ X-T1. 출처=후지필름

우도노 총괄이 가장 아끼는 카메라는 X-T1 역시도 그런 카메라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매력을 모두 갖춘 제품이다. 그는 후지필름 입사 전에 니콘의 수동 필름카메라 F2와 F3를 사용했다. “학생 때 돈이 없어 오래된 카메라를 중고로 사서 사진을 찍곤 했어요. 그 당시 썼던 수동카메라와 정말 비슷한 느낌의 카메라를 제가 다니는 회사에서 만든 것에 개인적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만의 생각이 아니다. 영국에 머물 때 우도노 총괄은 한 사진가에게 X-T1을 보여준 적이 있다. 사진가는 우도노와 비슷한 또래이며 필름카메라 니콘 뉴(New) FM2를 사랑하는 이였다. X-T1은 출시되기 이전 초창기 샘플 모델이었다. 이걸 보고 사진가가 굉장히 기뻐하며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우도노 총괄은 흥분된 표정으로 그 사진가의 반응을 재현했다. “아! 나의 FM2가 디지털로 왔구나!”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폰카로 이런 사진을 찍긴 어려울 겁니다"

그에게 한국유저한테 추천해주고 싶은 카메라가 없냐고 물었다. 다름 아닌 X-T20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달 23일 출시된 따끈한 신제품이다. X-T2보다 작은 크기에 후지필름 첨단기술을 전부 다 넣은 제품이라고 그는 소개했다. 최첨단 기술을 충분히 활용하는 데 능한 한국유저들에게 적합한 기종이라고 했다.

▲ X-T20. 출처=후지필름

그는 한국과 일본유저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일본은 캐논이나 니콘과 같은 카메라 브랜드가 옛날부터 있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비해 카메라시장이 인구대비 큰 경향이 있습니다. 카메라시장 역사가 긴 만큼 일본엔 보수적 성향을 지닌 고객들이 많죠. 반면 한국유저는 좀더 신기술이나 신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빠른 것 같고요.”

‘카메라산업 위기’ 그 해묵은 화두에도 우도노 총괄은 의견을 내놨다. 일단 스마트폰 카메라(폰카)로 찍을 수 없는 것들을 얘기했다. “예컨대 스포츠사진을 찍는 프로사진가들은 폰으로는 초점거리가 맞지 않고 움직이는 피사체도 쫓을 수 없으니 도저히 사진을 찍을 수가 없을 겁니다. 일반유저의 경우 아이가 뛰어다니는 걸 폰으로 찍긴 어렵겠죠. 어두운 곳에서도 센서가 작은 폰으로 사진을 찍긴 어려울 거고요.”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그는 폰카의 진화를 인정했다. 그러면서 후지필름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도 제시했다. 스마트폰으로는 찍을 수 없는 고화질 영역으로 나아간다는 방침이다. GFX 50S에 담겨있는 방향성이기도 하다. 센서와 렌즈 크기가 작은 컴팩트카메라의 경우 폰카의 위협으로 수년 안에 비즈니스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한 가지 단서를 달긴 했다. 스마트폰으로는 얻을 수 없는 사진을 촬영 할 수 있는 특수한 컴팩트카메라는 살아남을 것이라고 했다. 예컨대 수중촬영이 가능한 방수카메라가 그렇다. 후지필름 파인픽스 XP 시리즈가 이에 해당한다. 최근 XP120이 공개됐다. 앞으로도 후지필름은 폰카로는 찍을 수 없는 영역에서 후지필름다운 새로운 제품군을 만들어갈 계획이다.

▲ 파인픽스 XP120. 출처=후지필름

1000만원 육박하는 GFX 50S, 자동차 파는 감각으로 세일즈

1934년 설립된 후지필름은 연매출 규모가 2조엔이 넘는 일본 국민기업이다. 다만 후지필름 전체 매출에서 디지털카메라 사업이 기여하는 비중은 10% 안팎이다. 필름사업을 대폭 축소하고 의학, 재생의학, 화장품 등 신사업 적극 육성한 결과로 보인다. 그럼에도 카메라 사업에 대한 강력한 야심은 그대로다. 80년간 필름시대에서부터 쌓아온 색 재현 기술이 있기 때문이다.

우도노 총괄은 이런 후지필름의 야심에 대해 얘기했다. “후지필름에 입사한 이후 카메라시장에서 넘버원, 넘버투를 해본 적이 없는 역사 안에서 20년 동안을 일했습니다. 그 안에 후지필름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올릴 수 있을까를 20년간 고민하고 있습니다. 현재 큰 목표 중 하나는 미러리스뿐만 아니라 렌즈교환식 카메라시장에서 탑 3에 드는 겁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그는 올해 GFX 50S 마케팅에 집중할 생각이다. “중형 포맷 카메라의 경우 아주 전문적인 제품이기 때문에 웹이든지 잡지에서 잠깐 제품을 봐서는 제대로 알기 어려울 겁니다. 앞으로 여러 국가와 도시에서 GFX 50S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이벤트를 확대해나갈 계획입니다. 엔화 기준으로 100만엔에 달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내부에선 자동차를 파는 것과 같은 감각으로 제품을 팔아야 하지 않겠느냐 얘기하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