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동에 사는 김미영씨(40세, 가명)는 홀로 두 딸을 키운다. 김씨는 파산신청을 준비중이다.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에서 김씨의 파산신청을 도와준다. 파산신청을 위해 김씨가 작성한 진술서에 담긴 그녀의 사연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김씨의 큰 딸은 정세현(19, 가명)은 지적장애 3급이다. 세현이는 성매매관련 범죄에 연루되었다. 1년 동안 소년원에 있다가 지난달 가정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지적장애가 있는 큰 딸이 어떤 경위로 범죄에 연루되었는지 김씨는 알지 못했다.

둘째 딸 박수현(가명)은 이제 9살이다. 수현이는 매일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한다. 병원에 입원도 해보았지만, 병명과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의사의 답변만 들었다고 한다.

세현이와 수현이는 아빠가 다르다. 세현이의 아빠는 김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한 공장에서 만났다. 김씨는 세현이 아빠와 혼인신고도 올리지 않고 동거를 했고 세현이를 낳게 되면서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김씨는 세현이 아빠와 헤어진 후 연락을 못하고 있다. 

김씨는 수현이 아빠와 2008년 결혼했지만 2015년에 이혼했다. 이혼 후 수현이 아빠는 양육비를 주지 않았다. 김씨가 양육비를 요구했을 때, 아이의 아빠는 오히려 “양육비를 왜 주냐”고 화를 냈다고 한다.

아이들 먹는 것이 걱정되는 상황이 되자, 김씨는 신용회복위원회에서 300만원을 대출받았다. 김씨는 그 돈으로 월세를 얻고, 아이들을 먹이고 입혔다. 양육비를 받지 않는 상황에서 300만원으로 월세를 내고 생활비를 썼을 때, 김씨가 얼마동안 생활이 가능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둘째 딸 세현이는 항상 아팠다. 병의 원인은 판명되지 않았다. 김씨는 병의 원인을 몰랐기 때문에 표현하는 것보다 더 아이가 아파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세현이가 호소하는 고통은 돈이 있을 때와 없을 때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대출 받은 돈을 다 쓰고 나니 병원비 낼 돈이 없었다. 다급해지자 카드로 병원비를 결제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수입이 없었기에 카드대금을 낼 수 있을까 걱정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래도 카드결제를 주저하지 않았다. 돌아오는 결제일에 카드대금을 낼 수 없다하더라도, 김씨는 지금 당장 아이가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그녀의 마음은 절박했다.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영등포센터 홍경식 상담사(영등포센터)는 김씨의 채무가 약 1800만원이라고 말했다. 1800만원 정도의 채무로 파산신청을 한다는 사실에 처음엔 귀를 의심했지만, 눈으로 확인했다. 서류상 표시된 채무금액은 분명히 1891만원이었다. 김씨의 사정을 감안해 보면, 그녀의 채무 1800만원은 마치 1억8000만원만큼 무거웠다.

그 1800만원 안에는 신용회복위원회에서 받은 대출금 300만원과 아이의 치료비와 생활비로 쓴 카드대금 약 1300만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머지는 통신요금이다. 연체된 통신요금에서, 그간 김씨 가족의 궁핍한 삶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김씨의 수입은 한 부모가정 기초수급액 83만원이 전부다. 생활비 일부는 노부모에게 지원 받는다. 늙은 부모가 어디서 돈이 나서 이들을 원조해 주는지 알 수는 없었다.

채권자 중 일부는 김씨에게 파산신청보다는 분할해서 상환하는 개인워크아웃을 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홍 상담사는“기초생활 수급을 받는 채무자는 세금으로 생계비를 지원 받는 것이다. 이들에게 8년동안 상환하는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하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세금으로 빚을 갚으라는 말과 같은 것”이라며 “기초생활수급자가 채무에서 벗어나는 길은 파산 후 면책 받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라고 강조했다.

김씨를 위해 홍 상담사가 작성한 파산신청서에는 김씨의 채무상황과 생활상활이 자세히 기재되어 있었다. 그런데 신청서 뒤에 첨부할 서류가 꽤 두터웠다. 홍 상담사는 파산신청에 필요한 장황한 서류리스트를 보여주면서 법원에서 숨긴 재산이 없는지 확인하는 서류라고 설명했다. 

통신요금도 내지 못하고 기초생활수급액으로 사는 김씨에게 법원이 확인할 재산이 과연 무엇인지 이해하기가 난감했다. 

▲ <사진=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영등포센터>

“여기 오시는 분들은 정말 극빈자에요. 서류 발급에 필요한 1000원, 2000원이 없어서 걸어서 서류를 직접 발급받으러 다닙니다. 몸이 불편한 분들은 걷지도 못하니 다음 달, 다음 달 미루다 보면 이렇게 신청이 늦어진다”고 홍 상담사는 말했다.  희망까지 가는 길은 대게 거칠다.

김씨가 홍 상담사를 찾아왔을 때 비용이 얼마나 들어갈지 물었다고 한다. 홍 상담사가 무료라는 말에 김씨는 비로소 안심했다. 홍 상담사는 "센터에서 도움을 주는 일은 무료임을 적극 알려달라"고 인터뷰 내내 얘기했다.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에서는 상담할 때 수임료를 받지 않는다. 기초생활수급자, 한부모가정 대상자는 법률절차에 소요되는 비용을 일부 지원한다.

어린 딸과 아들에게 상속된 채무, 결국 파산신청

상담센터를 찾는 사람들의 사연은 저마다 처절하다. 홍 상담사가 들려준 얘기 중에는 어린 아이들의 파산신청 사례도 있었다.

40대 초반의 배성미씨(가명, 여)는 지체장애 3급이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2명의 자녀를 두고있다. 배씨는 오른쪽 무릎 뒤쪽에 물이 차서 오래 서 있지 못한다. 오른쪽 중지 손가락이 펴지지 않는다. 직장에서 배 씨는 한 손으로 일해 왔다. 배 씨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어렵게 직장을 얻어도 오래 다니지 못했다.

배씨는 지난 2002년 가축관리 일을 하는 남편을 만났다. 월급이 많지 않았다. 두 아이를 낳으면서 배씨는 일할 수 없었고, 남편의 월급은 상대적으로 더 적어지게 됐다. 부족한 생활비는 남편의 대출금과 카드로 충당해야 했다.

배씨의 남편은 2008년에 사망했다. 다시 일을 해야 했지만 아이들이 아직 어렸다. 배씨의 유일한 소득은 기초생활 수급액뿐이었고 이 돈으로 월세를 내고 아이들을 먹이고 입혀야 했다.

배씨는 남편이 죽었으니 남편의 채무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고 생각했다. 배씨가 본인을 비롯해서 어린 딸과 아들이 각 4400만원의 채무를 상속받았다는 사실은 센터를 찾아왔을 때 뒤늦게 알게 되었다.

센터 상담사는 금융감독원 콜센터(1332)를 통해 상속채무를 파악했다. 이들은 모두 파산신청을 했고 6개월만에 면책을 받았다. 반년이 걸린 일이지만 법원은 '패스트트랙'으로 면책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했다.

지난 2014년 서울 송파구에서 세 모녀가 방안에 연탄불을 피워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생활고가 자살의 동기였다. 집주인에게 죄송하다는 유서와 함께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이 남겨졌다. 두 딸이 모두 취업을 하지 못했고 큰 딸은 7년동안 당뇨병을 앓았다. 어머니는 두 딸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을 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이 사건이 '복지 사각지대'에 관한 문제라고 말했다. 송파 세모녀의 불행이 사망한 남편의 채무를 상속받은 일에서부터 시작됐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채무는 3개월 이내에 포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들은 알지 못했다. 이 빚으로 인해 두 딸은 취업할 수 없었고 생활고는 극복되지 않았다.

이들이 상속포기를 했다면 삶이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법은 이렇듯 어렵고 멀기만 하다.

지체장애를 안고 어린 자식들 돌봐 온 배씨는 상속채무를 파산신청했고 다행이 법원으로부터 채무를 갚지 않아도 된다는 면책결정을 받았다. 어린 자녀들까지 파산신청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지만 상담센터가 어쩌면 제 2의 '송파세모녀'가 될 가족의 참사를 막은 셈이다.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는 빚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법률비용조차 없어 도움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파산신청과 회생신청을 도와준다. 경우에 따라 상속채무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센터의 상담사들은 상담신청서와 법원에 제출할 서류를 정리해서 법률구조공단으로 보낸다.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는 또 국내에서 처음으로 동행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상담사가 채무자와 대한법률구조공단까지 함께 간다. 채무자를 상담한 상담사가 신청할 서류의 내용을 대한법률구조공단 관계자에게 설명해 주기 위함이다.

▲ <서울금융복지센터는 LH공사와 연계하여 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에 도움을 주고 있다>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영등포센터는 LH영등포지사 건물 내에 위치해 있다. 센터는 이 곳에서 LH공사와 연계하여 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에 도움을 주고 있다.

홍 상담사는"파산절차를 통해 채무가 면책되더라도 열악한 주거환경에서는 새출발이 어렵다"며"기초생활수급자로서 채무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파산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월 2만원 청약저축을 가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이 업무를 LH와 협업한다"고 설명했다.

<빚으로 고통을 겪고 계신 분은 제보나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함께 고민을 나누며 좋은 해결책을 찾는데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 연락처: 이코노믹리뷰 편집국 회생,파산부 02-6321-3042, 3096
 

- 이메일: lawyang@econovill.com 또는 supermoon@econovi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