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는 꼬리 둘 달린 여우다. 구미호로서 영생을 살고 싶어 한다. 안상 스님은 문수를 보듬어준 스승이다.`

웹툰 ‘바람’에 등장하는 두 주인공이다. '바람'은 이세계와 인간계의 경계를 여행하는 내용이다. 조선시대 배경인데 낯선 세계 여행을 그린 판타지 사극이다.

장편이지만 아직 2회까지만 나왔다. 스포일러를 하기엔 너무 초반이다. “어떤 일이 이뤄지길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이란 뜻도 가지고, 주인공들이 공기의 움직임으로서 바람처럼 자유롭길 바라는 마음에서 제목을 이렇게 정했습니다.” ‘바람’의 작가 유연이 그랬다.

▲ 웹툰 '바람' 메인 타이틀 이미지. 출처=레진엔터테인먼트

 

'레진코믹스 세계만화공모전 대상작'

‘바람’을 그많은 신작 웹툰 중 하나라고만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레진코믹스 세계만화공모전’이라는 공모전이 있다.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를 운영하는 레진엔터테인먼트가 개최한다. 올해로 3회째인데 4월초 수상작이 발표됐다. 출품된 623편 가운데 ‘바람’이 대상을 차지했다. 유연 작가는 상금 1억원의 주인공이 됐다.

그가 웹툰 공모전에 응모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단번에 대상을 차지하게 된 거다. 졸업작품을 준비할 때 만들어놓은 만화 원고를 웹툰 포맷에 맞게 다듬은 게 지금의 ‘바람’이다. 유연 작가는 이 작품을 위해 호국불교를 공부하는가 하면 직접 절을 찾아 스님들에 상담을 요청해 조언을 듣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세계관이 단단해졌다.

사실 퍽 익숙한 소재는 아니다. 낯설게만 느껴진다. 그에게도 익숙한 아이템은 아니었던 듯싶다. “스스로 의문을 가지게 되거나, 궁금해하는 것에 관심이 많이 갑니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새롭게 알게 되거나, 생각치 못했던 면을 보게 되거나, 나름의 답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재를 좋아합니다.”

▲ 레진엔터테인먼트는 지난 4일 '제3회 레진코믹스 세계만화공모전' 수상작을 발표했다. 출처=레진엔터테인먼트

 

"미국 만화가 짐 리 좋아해…상금으로 학자금부터 갚을 것"

여느 예술 분야 작가들처럼 웹툰 작가도 하나의 독자적 세계를 만들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다른 만들어진 세계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한다. 작가가 아닌 독자로서 다른 작품을 소비하고 영감을 얻는다. 한 작가의 세계관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고려해야 하는 측면이다.

“짐 리(Jim Lee) 작가의 ‘배트맨 허쉬’입니다.” 유연 작가에게 ‘인생 만화’에 대해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만화라고 소개했다. 짐 리 작가는 ‘배트맨 허쉬’의 연필화 부분을 담당했다. 본래 그의 팬이자 배트맨을 좋아하는 유연 작가는 이 만화책을 덥썩 샀다.

▲ 유연 작가에게 자신의 모습을 캐릭터로 그려달라고 요청해 받은 이미지. 출처=레진엔터테인먼트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때였다. 이 만화를 알게 되고서 다양한 그래픽노블을 접하게 됐다. “만화의 그림체뿐 아니라 주제, 연출 스타일이 엄청나게 폭넓고 다양하다는 걸 인지하게 된 때였죠.” 이 시절부터였을까. 만화·애니메이션을 향한 어릴 적 꿈을 잠시 보류했던 그는 다시 ‘만화에 대한 욕심’이 커졌다. 결국 대학에 진학하면서 만화 관련 전공을 택했다.

그에게 좋아하는 웹툰을 묻자 딱 꼬집어서 특정 작품이나 작가를 언급하진 않았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좋아하는 작품이 많은데, 좋아하는 관점이 달라 하나를 꼽기 어렵습니다. 작품마다 지닌 스타일이 달라 그 다양함을 감상하는 게 즐거움의 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일상툰과 개그만화를 많이 봅니다.”

▲ 웹툰 '바람' 내용 중 일부. 출처=레진엔터테인먼트

대화는 자연스럽게 그의 개인적인 부분으로 흘러갔다. “창작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가”와 같은 얘기 말이다. 일단 시간제한이 빡빡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라고 했다. 본격 연재를 앞두고 뫼비우스띠와 같은 마감의 굴레가 걱정될 법도 하다. 이 압박, 어떻게 이겨내야 하나. “체력도 큰 요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운동습관을 잡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엠넷(Mnet)의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 ‘슈퍼스타K’ 우승자가 탄생할 때면 꼭 나오는 기사가 있다. 우승자가 억대에 달하는 상금을 어디어디에 활용할 것이라는 기사 말이다. 1억원을 받게 된 유연 작가에도 상금을 어디에 사용할 건지 물었다. “우선 학자금을 갚고요, 나머지는 생활비에 보탤 것 같습니다. 작품을 만드는 데 관심가지고 조언주신 분들께도 보답하고 싶고요.”

▲ 웹툰 '바람' 내용 중 일부. 출처=레진엔터테인먼트

 

"홀로그램으로 웹툰 보는 시대 올 것"

600편 넘는 경쟁작을 제치고 대상을 수상한 데엔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는 걸까. 그 다음 레진코믹스 세계만화공모전에 출품하려는 이들을 위한 팁을 달라고 하자 유연 작가는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제가 어떤 팁을 드릴 수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

그러면서도 본인의 사례를 소개하는 걸로 간접적인 팁을 줬다. “이번 작업을 할 때 응모한 1~2화에 대해선 단편 에피소드만으로 작든 크든 사건의 기승전결이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인물 갈등에 초점을 맞춰, 세계관은 이야기를 읽는데 필요한 정도로만 암시하려 했습니다. 2화와 함께 있는 3화 인트로는 장편연재가 된다면, 앞으로 전개할 방향에 대해 암시를 하고 싶어 그린 것입니다. 일종의 예고편이죠.”

인터뷰가 막바지로 흐를 무렵엔 미래를 논했다. 일단은 가까운 미래부터 얘기했다. “당분간의 목표는 작품 완결입니다.” 유연 작가는 ‘바람’을 레진코믹스에 장편 연재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정식 장편 연재가 처음이라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한편으론 자신이 담고자 한 느낌과 의미가 읽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 웹툰 '바람' 내용 중 일부. 출처=레진엔터테인먼트

차기작을 내기까진 시간이 걸리겠지만 방향성을 암시하긴 했다. 판타지라는 중심축은 유지하면서 배경과 장르가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기 싶다고 얘기했다. 예컨대 SF 판타지 같은 장르의 작품을 여건이 될 때 풀어내고 싶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론 이런 질문을 했다. 웹툰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 것 같냐는 조금은 거창한 질문을. 유연 작가가 그랬다. “저렴하고 선명한 홀로그램 기술이 대중화돼 홀로그램으로 책모양이나 스크롤 형식으로 웹툰을 감상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은 제가 그렇게 보고 싶어서 생각한 미래입니다. 멋지고 편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