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9×194㎝, 2006

 

“En Peu d’heure Dieu labeure.

시간은 필요 없으리/신이 하는 일엔.”

<휴고 그로티우스(Hugo Grotius, 1583~1645)의 ‘윤리적 도덕적 명구집’(1610)에 나오는 글로, 괴테 자서전:시와 진실 中,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전영애·최민숙 옮김, 민음사 刊>

 

직립의 수림을 비추는 저 찬란한 광채가 황홀하게 대지에 내려오는 것이 훤히 보일 때까지 대숲 초록 잎들은 일제히 흔들어 댔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무상무념(無想無念)의 텅 빈 공간처럼, 오솔길 맨발의 흙 촉감에 불현 듯 떠오르는 단상이 스쳤다. 모든 것이 악기 그것이 마음!

 

▲ 91×116㎝, 2013

 

◇오롯이 피어나는 꽃불

불현 듯 떠올라 단숨에 피안의 세계를 유영하는 직관의 본능이다. 화면은 이들을 꿰매어 하나로 엮은 삼베위에 엄숙과 경건함이 얹힌다. 나무의 격렬한 진통의 산물인 진액이 화가의 손을 거쳐 광활한 영혼의 대지위에 스며든다. 숯과 조개가루 등이 뼈와 살이 되는 듯 그렇기에 동일한 색채가 나올 수 없는 화면의 삼베는 여러 색채를 받아들인다.

하여 손으로 하는 옻칠의식에 대자연의 품에서 거리낌 없이 스스로 저마다의 제 빛깔로 찬양한다. 누르스름 삼베의 수직제직(垂直製織)위 옻에 담근 손이 부드럽고 강하게, 긴장과 이완의 리드미컬한 운율로 영원의 노래를 보듬는다.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서 떠나는 자와 남는 자의 통곡이 그 위 뚝뚝 떨어지며 상처와 아쉬움을 위무한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마지막 대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의 재롱, 헌신하여 육신을 보살핀 부모에 대한 공경의 효심이 마침내 훨훨 타올라 허공에 흩어진다.

삼베는 물위에 불꽃을 연기를 남긴 채 산화(散華)하며 여운으로 흐른다. 아 심령의 감흥은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다 마침내 검은 재 되누나. 산산이 부서지네. 물, 바람, 공기와 산과 구름에 얹혀 천만리 어디론가 날아가는 그 모든 것들이 여전히 오롯이 피어나는 꽃불인 것을.

 

▲ 신창세기(Re-Genesis), 260×132㎝ Mixed Media, 2009

 

◇유연과 관대의 융합세계

물, 세월이 말도 없이 흘러간다. 한여름 폭우 속 온갖 불온한 것들의 뒤섞임이 우르르 밀려든 그 흙탕의 물줄기가 수정처럼 맑고 해맑게 본디 그대로를 껴안을 때까지 얼마나 슬픔과 고통의 시간을 겪었으랴.

꽃동산에 나비 날고 야트막하게 돌아가는 강물에 하늘거리는 실버들, 배롱나무꽃잎, 만추의 가랑비에 젖어 외로이 떨어지는 고엽 한 잎이 바람을 따라가듯 무심히 가누나. 한 생을 살아가며 스스럼없이 온전하게 나를 던질 수 있는 믿음이란 것이 얼마나 될 것인가.

조개껍데기 박막(薄膜)의 발색은 물과 햇빛이 빚은 생명의 빛깔. 오색찬란함이란 생의 오묘함과 유구한 시간의 풍광이 반짝이는 것과 실로 다르지 않음을. 물과 흙은 서로를 끌어안으며 더욱 견고해져 간다.

유연과 관대함으로 하나 된 융합세계 그 첫 여명에 아스라이 바스락거리며 새 생명으로 깨어나는 오오 비로써 우주는 신비의 창을 열어 보인다. 그때 거침없이 쏟아져 밀려드는 눈부신 영광의 찬가를 관류하는 그곳에. 온전히 자아를 맡긴 보혈(寶血)을 향해 내미는 손 바로 이정연(ARTIST RHEE JEONG YOEN)작가의 ‘신창세기(Re-Genesis)’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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