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벌어라

‘돌려막기’는 빚을 갚아나가는 또 다른 방식이다. 다만 새로운 빚을 만들고 그 빚이 또 빚을 만드는 구조로서, 역시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다. 돌려막기를 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재정적 파탄을 암시한다. 자신의 소득으로는 갚을 여력이 안 되기 때문에 다른 빚을 만들어 갚아가는 것이다. 새로운 빚이 금새 다가온다. 미봉책이다!

그렇지만 어떤 상황에서는 돌려막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더 이상은 소득이나 자산의 처분으로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에서 돌려막기는 시간을 벌어주는 효과가 있는 게 사실이다.

예컨대 카드대금결제일이 임박했거나 대출금의 이자납부일이 임박했을 때, 현금서비스를 받거나 소액대출을 받아 임박한 결제일을 넘긴다면 다음 결제일까지 시간을 벌 수 있다.

자, 시간을 벌었다 치자. 그럼 그 번 시간 동안 무엇을 할까? 이것이 중요하고 이 문제를 피하지는 말아야 한다.

다음 달에도 어김없이 결제일은 찾아올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흔히 말하는 재무설계는 통하지 않는다. 돌려막기가 시작됐다는 건 사실상 ‘잠재적 파산 상태’일 가능성이 높다. 이때부터는 개인도 기업과 같이 구조조정에 들어가야 한다. 기업이 워크아웃을 하거나 법정관리에 들어가듯 개인도 워크아웃과 개인회생을 적극적으로 고려해봐야 한다.

결제가 임박해 있거나 극심한 독촉을 받을 때는 이런 구조조정을 차분히 전략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전략적인 판단 아래, 구조조정 위해 돌려막기로 당분간 빚을 갚아 시간을 버는 전략도 생각해야 한다.

더 나은 것은, 돌려막기를 하지 않고 구조조정을 할 타이밍을 잡는 것이다. 또 이미 돌려막기와 빚 갚기를 되풀이하는 과정이라면 지금 바로 구조조정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런데 이런 빚 구조조정을 하려면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그러나 그 스트레스는 독촉 전화보다는 적으니 차분히 준비해보자. 우선 어느 제도를 이용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한다. 선택지에 따라 채무의 감면 규모와 상환기간이 결정된다.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컨설팅을 하는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의 서경준 본부장은 “채무조정을 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변제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이것은 상환능력과는 다르다. 그는 “상환능력은 대출 단계에서 고려되는 것이지만, 변제능력은 조정된 채무에 대해 매달 변제도 가능하고 생활도 가능한 능력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조정된 채무, 변제도 생활도 같이 해나갈 수 있는 능력이라는 점에서, 원리금을 갚을 것이냐 하는 상환 능력과 다르다.

요컨대 돌려막기로 번 시간은 자신의 변제능력에 맞게 구조조정이 가능한 출구전략을 짜는 소중한 시간이다. 이 기간에 개인 구조조정 종류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워크아웃

선택지 중 하나는 워크아웃이다. 워크아웃은 법절차 전에 채무조정을 하는 것으로, 개인회생이나 개인파산과 같은 법원이 주도하는 채무조정제도에 들어가기 이전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채무조정을 말한다.

워크아웃은 채권은행들의 위임을 받은 신용회복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채무조정제도다. 이 신용회복위원회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금융회사들이 금융소비자가 채무를 연체했을 때 채권자로서 채무자와의 채무조정에 응하기로 협약을 맺고 있다. 협약을 체결한 금융회사는 시중은행은 물론 저축은행, 보험회사, 등록대부업체, 자산관리회사, 유동화 전 회사 등 4970곳이다.

워크아웃의 채무조정은 당장 갚아야 할 원리금을 장기간에 걸쳐 갚도록 해주는 것이다. 채무자의 소득과 생계비에 따라 상환기간이 줄어들기도 한다. 워크아웃을 이용하려면 적어도 90일 이상 연체를 해야 신청할 수 있다. 90일 동안 연체로 인한 채권 추심을 감당해야 한다는 단점이 개인에게는 걱정거리다.

90일 아닌 30일 연체 상태라면 독촉 전화도 피하는 차원에서 프리워크아웃를 활용해도 된다. 신용회복위원회 관계자는 “워크아웃은 이자를 감면하고 채무상황에 따라 원금도 감면되는 반면, 프리워크아웃은 원금 감면 없이 이자율의 감면만 있다”고 두 제도를 구분해 설명했다.

채무자가 워크아웃을 신청하면, 신용회복위원회가 관련 채권자에게 채무조정에 합의할 것인지를 통지하는데, 이 중 51%가 합의에 동의하면 채무조정이 시작된다. 이때부터 추심 공포가 사라진다.

빚을 정상적으로 갚기 어려운 상황에서 금융소비자가 워크아웃을 결심했다면, 연체 상황이어야 한다. 돌려막기를 하고 있었다면 일단 중단해야 한다.

워크아웃을 신청하려면 연체기간 90일 동안 추심 압박이 들어올 수 있다. 이 기간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추심하는 금융회사와 협상할 수도 있다. 심리적 안정을 지키고 협상을 대신해줄 사람을 찾기 위해 채무자대리제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

현행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에서는 채무자가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면 금융회사가 채무자를 방문하거나 말, 글, 음향, 영상 등으로 독촉 압박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 제도는 막판 빚을 갚기 위한 심리적 안전장치다.

그러나 이 기간에 금융회사가 채무자의 급여 등을 가압류를 할 수도 있다.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 다만 워크아웃이 승인되면 채권자와 협의해 급여 가압류를 해제할 수 있다는 것이 신용회복위원회 측 설명이다.

이자와 원금을 감면해 준다는 점에서 보면 워크아웃은 프리워크아웃보다 장점이 크다. 하지만 90일 연체기간을 감당할 자신이 없고 급여 가압류로 인해 인사상 불이익이 예상된다면 프리워크아웃을 검토해야 하는 게 현실적이다. 빚을 갚기 위해 급여를 보호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채무자가 채무조정신청을 할 경우, 둘 다 최장 10년까지 나눠서 갚도록 해준다. 주로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는 10년까지로 상환기간을 길게 잡아주지만 통상은 8년(96개월)이다.

 

개인회생

빚을 갚는 제도 중 법원에 신청해야 하는 개인회생이라는 법적 제도가 있다. 이것이 신용회복위원회 워크아웃과 확연히 구분되는 점은 90일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아직 연체되기 전, 연체의 우려가 있어도 신청 가능하다. 때문에 돌려막기를 하는 상황이라도 개인회생을 신청할 수 있다.

법원에 신청해서 개시결정이 이뤄지면 개인회생은 월평균 소득에서 법원이 인정하는 생계비를 공제한 후 나머지 소득을 최장 60개월 변제하는 방식이다. 법원이 인정하는 생계비는 보건복지부가 매년 고시하는 최저생계비의 150%다. 부양가족 수에 따라 생계비는 조금씩 늘어난다.

변제하게 되는 금액은 자신의 자산가액보다 많아야 한다. 예를 들어 보유자동차를 팔아서 1000만원을 받을 수 있다면, 자신이 갚게 되는 변제 총액은 이를 팔아서 얻는 돈보다 많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변제가 60개월 동안 가능하도록 안정된 직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개인회생은 채권자의 동의가 필수조건이 아니기에, 법원에서 판단한다. 개인회생은 금융회사나 대부업체가 아닌 개인 간의 빚도 조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