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노연주 기자

#일상가젯 - 그 물건으로 바뀌는 일상 이야기. 가찌아 브레라 편

취준생 시절 카페 알바를 했다. 이때 알았다. 사람들이 지독하게 아메리카노만 찾는단 사실을. 열에 일곱은 아메리카노다. 알바로서 편하긴 하다. 커피 제작자 입장에서 에스프레소 다음으로 아메리카노가 만들기 쉬우니까.

취향 없는 사람들. 이런 생각을 한 기억이 난다. 이젠 평범하게 회사 다니는 내가 이 꼴이다. 아침마다 사무실 건물에 있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사들고 출근한다. 습관이 무섭다. 커피 없이 아침을 시작하면 일에 집중을 못한다. 이게 다 카페인 탓이다.

'커피를 즐긴다'는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 하루를 버티기 위한 카페인 섭취 과정이랄까. 생각해보면 카페 알바할 당시 손님 없는 시간에 직접 만들어 마신 커피가 훨씬 여유로웠다. 여유의 기억을 오늘과 내일, 나아가 일상으로 불러들일 방법이 없을까.

▲ 사진=노연주 기자

#여유의 복원 커피머신. 전에 느낀 여유를 복원해야겠다 생각했을 무렵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물건이다. 단어는 문장이 됐다. '자취방에 커피머신을 설치해야겠다.‘ 내 일상에 여유를 한 줌이라도 복원할 수 있지 않을지.

걸림돌이 있다. 커피머신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나다. 섣불리 접근했다간 호갱 되기 딱이지 않겠나. 막연한 판타지일지도 모를 일이다. 막상 커피머신을 들이면 귀찮은 일이 잔뜩 생겨나지 않을까.

직접 커피를 뽑아마시는 것부터 커피머신 청소·관리까지. 원두도 매번 사야할 테고. 처음부터 너무 계산하면 일상은 결국 '현행 유지'에 머물겠지.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본다. '어떤 커피머신이 내 자취방에 어울릴까?' 의식의 흐름대로 조건을 나열해보자.

첫째, 지나치게 비싸면 곤란하다. 둘째, 사용하기 쉬워야 한다. 셋째, 공간을 너무 많이 차지하면 안 된다. 넷째, 다양한 커피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다섯째, 인테리어 소품으로 손색없을 정도로 멋져야 한다.

▲ 출처=가찌아
▲ 사진=노연주 기자

#자취방 커피머신의 조건 가찌아 브레라(Gaggia Brera). 그렇게 고르고 고른 물건이 이거다. 마음대로 정한 조건에 나름 부합한다. 가찌아란 브랜드는 이번 기회에 처음 알았다. 80년 전통 이탈리아 커피머신 브랜드다.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하더라.

우아한 메탈 재질로 두른 겉모습이 일단 합격. 좁은 자취방에 부담을 주지 않을 정도로 몸집도 아담하다. 설치도 쉽다. 물통 타입이라 수도를 연결할 필요가 없으니. 그냥 코드를 연결하고 물을 채운 다음에 원두를 넣고 버튼만 누르면 끝이다. 실제론 말보다 쉽다.

전자동 커피머신이라 간편하다. 자판기처럼 버튼을 누르면 커피가 나오니까. 에스프레소는 물론 아메리카노(롱커피)도 가능하다. 스팀 노즐이 있어서 우유를 데워 라떼나 카푸치노도 만들 수 있고. 잘만 응용하면 거의 모든 커피를 섭렵할 수 있겠다.

세라믹 그라인더날로 원두를 바로 갈아 내린 커피라 맛이 신선하다. 원두 분쇄도는 5단계로 정할 수 있다. 원두량도 3단계 조절이 가능하다. 내 입맛에 맞는 커피를 뽑아 마실 수 있다는 얘기다.

▲ 사진=노연주 기자
▲ 사진=노연주 기자

#홈카페로의 초대 가격은 생각이 갈릴 수 있겠다. 70만원대이니까.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한없이 비싸 보일 수도 있으니. 어쨌든 내겐 여유를 복원하는 비용으로 다가왔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사는 느낌이랄까.

가찌아 브레라로 자취방 주방은 홈카페로 재탄생했다. 여유가 필요할 때 버튼을 누른다. 열정이 필요한 순간에도 마찬가지. 여러분, 우리집에서 커피 마시고 갈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