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노연주 기자

#그남자 - 그 남자가 사랑하는 모든 것. 블랙앤데커 18V 리튬이온 피벗 청소기 편

#치우고 좀 살아라 "금요일에 재워줘." 이 정도면 일방 통보다. 그 남자 여동생이 보낸 카톡이다. 그 남잔 회사가 서울이라 혼자 산다. 취준생 동생은 가끔 서울 놀러올 때 그 남자한테 재워달라고 조른다. 단칼에 거부해온 그 남자.

"ㅇㅇ." 이 답변 의외다. '동생이랑 간만에 술이나 한잔 해야지'란 마음으로 승낙했다. 금요일 하루 전날 저녁, 퇴근하고는 꿈쩍도 하지 않는 그 남자가 분주하다. 더러운 방을 치우느라 난리다. 널브러진 잡동사니를 여기저기 쑤셔 박는다.

디데이. 너무 부랴부랴 청소한 탓일까. 금요일 밤 늦게 도착한 동생이 오자마자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치우고 좀 살아. 결혼은 어떻게 하려고?" 완전 그 남자 엄마로 빙의한 말투. 예감이 나쁘다. 엄마한테 이를 것만 같으니. 동생은 원래 입이 싸다.

▲ 사진=노연주 기자

#새로운 청소기가 필요해 지난 주말의 무게를 겨우 이겨내고 월요일 아침을 시작한 그 남자. 회사에 출근해 오전은 멍때리다가 다 보냈다. 매번 이런 식이다. 점심시간엔 외부 업체 미팅이 있다. 만사가 귀찮은 그에겐 퇴근(?)이 절실하다.

처음 만나는 다른 회사 두 사람. 업무 이야기는 접어두고 사담을 나누기 시작한다. "취미가 뭐예요?" 상대방이 소개팅에나 어울릴 질문을 그 남자에게 했다. 잠깐 머뭇거리더니 답변이 가관이다. "글쎄요, 정리정돈?"

이 인간이 진짜. 밖에선 멀끔한 이미지인 그 남자. 깔끔한 척엔 장난 없다. 다시 퇴근한 그 남잘 기다리는 더러운 오피스텔. 동생이 떠나고 주말 사이에 다시 난리가 났다. 어쩌면 이 풍경이 그 남자 내면을 반영하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짧은 한숨을 내쉰다.

흔히들 하는 얘기가 있다. 청소는 습관이라고. 그 남자에게 청소란 습관이라기보다는 숙제다. '이번 주말엔 청소해야지!' 식으로 날 잡고 해야 하는 일이다. 몰아서 하려니까 항상 힘들다. 그러니 미루고 또 미룬다. 악순환이다.

집 구석에 처박힌 중국산 청소기를 바라본다. 흡입력이 너무 약해진 낡은 물건이다. 너무 많이 사용했다기보단 방치해둔 시간이 길어 낡아버린 느낌이랄까. 옷도 갈아입지 않고 침대에 누워있던 그 남자가 혼잣말을 했다. "새로운 청소기가 필요해."

▲ 사진=노연주 기자
▲ 사진=노연주 기자

#블랙앤데커라는 메시아 그 자리에서 폰으로 청소기를 찾아보기 시작한 그 남자. '청소기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을 품은 채로 대강 둘러본다. 그러다 특정 브랜드 제품에 눈길이 가닿는다. 블랙앤데커. 드릴 회사 아닌가요?

드릴로 유명한 회사 맞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공구 기업이다. 아폴로 15호가 1979년 최초로 달에 착륙했을 때 사용한 드릴을 블랙앤데커가 개발했다. 1979년엔 세계 최초로 충전식 무선 진공 청소기를 만들었다. 청소기 쪽에서도 충분히 명함 내밀 수 있단 뜻이다.

그 남자 마음을 사로잡은 물건은 블랙앤데커 18V 리튬이온 피벗 청소기(TPV1820RAC). 거대 호루라기처럼 생신 소형 무선 청소기다. 생김새가 유니크하다. 그 남잔 물건에 있어선 외모지상주의 아니랄까봐 디자인부터 따졌다.

작지만 강한 이 무선 청소기는 가격이 10만원대 초중반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취득한 특허 기술이 들어가 노즐을 200도까지 회전 가능하다. 구석구석 창의적으로(?) 청소할 수 있겠다. 2중 필터링 시스템으로 미세먼지 날리지 않는 깔끔한 청소가 가능하다. 직각 브러쉬, 틈새노즐, 바닥청소 전용헤드, 연장관 같은 액세서리가 패키지에 포함된다.

그 남자가 블랙앤데커에 푹 빠졌다. 하루 뒤 라면상자보다 훨씬 작은 택배박스 하날 받아들었다. 그 남잔 살짝 걱정했다. '흡입력이 너무 약하면 어쩌지?' 작은 청소기는 약하다는 편견 때물일까. 박스를 열자 블랙앤데커가 으르렁거렸다. 강력한 흡입력을 방증하는 소릴 냈다. 그 남자에게 청소요정이 필요한 순간, 블랙앤데커가 메시아처럼 찾아왔다.

▲ 사진=노연주 기자
▲ 사진=노연주 기자
▲ 사진=노연주 기자

#내일은 청소왕 며칠 뒤 훔쳐본 그 남자 방은 세상 깔끔하다. 먼지 하나 없는 바닥에 블랙앤데커를 문질러댄다. 사이클론 모터에서 나오는 강력한 흡입력으로 그 남자까지도 삼킬 태세다.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한 덕분에 방전시까지 힘이 균일하다.

이 청소긴 스펙상 12분을 버틴다. 그 남잔 의심했다. '시간이 너무 부족하지 않을까?' 막상 사용해보니 청소를 끝내고도 남더라. 그 남자의 아담엔 오피스텔엔 적당한 스펙이다. 완전 충전까지는 4시간이 걸린다.

청소 후 뒤처리도 간단하다. 원터치 버튼으로 손에 먼지를 묻히지 않고 먼지통을 비울 수 있다. 먼지 필터는 물로 닦을 수 있어 간편하고 청결하다. 청소는 거의 하지도 않으면서 희한하게 깔끔 떠는 그 남자에 딱 어울린다.

영국 사회철학자 칼 포퍼가 말한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 이런 것일까. 정리정돈이 취미라고 헛소리를 해댄 그 남자는 어느덧 '청소남'으로 거듭나고 있다.

그 남잔 그날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멋진 물건은 동기부여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