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가상화폐 투자 실패로 인한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빚을 내 투자한 이들이 채무조정을 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8일 파산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가상화폐의 가격이 급락하자 채무상담을 위해 법률사무소를 찾는 채무자가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들 중 대다수는 30대 청년들이다.

초 단위로 투자가 이뤄지고 상한가와 하한가가 없는 가상화폐 시장에서 투자자들은 오로지 상승 가능성이라는 ‘운’에 따라 돈을 건넨다는 점에서 도박이나 사행성 행위에 가깝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는 주식이 기업의 가치와 연동되어 있고 상하한가라는 제한폭을 두는등  자본시장법의 여러 안전장치 적용을 받는 정상적인 투자행위와는 대비된다.

때문에 관심은 가상화폐 투자자가 빚을 지는 경우 채무조정제도를 통해 빚을 조정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가상화폐에 대한 명확한 법률적 정의와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투자 실패로 인한 채무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벌써 파산법조계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 가상화폐 투자실패, 파산절차로 보호받기 어려워

파산법조계는 가상화폐 투자로 인한 채무를 파산절차에서 조정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가 `도박 또는 사행성 행위`로 간주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채무자회생및 파산에 관한 법(통합도산법)은 도박또는 사행성 행위로 인한 채무는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의 김준하 사무처장은 “파산절차는 채무자가 채무의 완전 탕감을 목적으로 신청하는 채무조정 제도”라며 “채무가 늘어난 이유가 사기, 사치, 낭비, 도박 그 밖의 사행성 행위의 경우 법원이 채무의 탕감(면책)을 허가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 채무자회생법은 채무자가 과다한 낭비, 도박, 그 밖의 사행성 있는 행위로 인해 재산을 감소시키거나 과다한 채무를 지게 된 사실이 있을 때 면책을 허가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 사무처장은 “가상화폐 투자가 채무 발생의 원인이 된 파산절차는 아직 결정된 사례가 없지만, 주식 투자가 초단타 매매 등 투기성을 띠는 경우 면책을 허가하지 않은 법원 판례가 많다”며 “가상화폐도 법원이 이같은 기준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기존 판례중에는 `지속적인 초단타 주식 매매(day-trading)`를 사행성 있는 행위로 간주해 면책을 허가하지 않은 사례가 있다.

현직 파산관재인도 이같은 지적에 동의했다. 서울회생법원 파산관재인 홍현필 변호사(홍현필 법률사무소)는 “파산관재인으로서 향후 가상화폐로 인해 채무자를 조사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기존 주식 투자자 사례를 기준으로 보고서를 작성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투기성이 짙은 주식투자에 대해선 파산관재인으로서 재판부에 ‘면책불허가의견’을 개진한다는 것이다.

홍 변호사는  “다만,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험이 없는 새로운 투자로서, 채무자의 여러 사정을 고려해 투자자 채무에 대해 재량면책이 광범위하게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면서도 “현실적으로 이들에 대한 파산신청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상화폐 투자가 노동력이 있는 30대 청년들 사이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이들이 파신신청에 따른 채무 탕감보다는 월 소득으로 채무를 일부 변제하는 채무조정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홍 변호사의 설명이다.

재량면책은 원칙적으로 면책을 허가하지 않아야 하지만 파산신청에 이르게 된 경위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법관의 재량으로 채무 탕감을 허가하는 파산법상 제도다. 

홍 변호사는 “어느 정도 가상화폐를 보유한 상태에서 투자자가 파산신청을 한다면 그 가상화폐를 파산관재인이 시세에 맞게 환전을 하고 채권자에게 나눠 줘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며 “이 경우 파산관재인이 가상화폐를 어떻게 확보하고 어느 시기에 환전할 것인지 법적, 기술적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 가상화폐 실폐 투자자, 개인회생 또는 워크아웃 `현실적 대안`

워크아웃이나 개인회생제도를 통한 채무조정은 파산절차에 비해 수월할 것이라는 것이 관계기관과 파산법조계의 설명이다.

개인회생 제도와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 제도는 월평균 소득에서 법원이나 신복위가 인정한 생계비를 뺀 나머지를 일정 기간 갚도록 하는 제도다. 다만 두 제도 모두 채무가 5억원이 넘으면 이용할 수 없다.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 워크아웃은 연체 발생 90일이 넘는 경우 채무자가 최장 8년에서 10년까지 채무를 나눠 갚는 제도다. 

신용회복위원회 관계자는 “가상화폐에 대한 명확한 개념 규정이 없는 상태에서 다소 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채무의 발생 원인이 가상화폐 투자라는 이유로 채무조정에서 배척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가상화폐 투자가 투기나 도박에 가깝게 이뤄진 경우 심사대상에서 채권자에게 이의를 받을 수는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대다수 채권자가 채무조정에 동의한다면 특정 채권자의 이의가 있더라도 채무조정은 승인될 수 있다.

이에 반해 개인회생제도는 채무의 발생 원인이 투기나 도박이라도 채무조정을 배척하는 규정이 없다. 다만 워크아웃에 비해 신용도가 크게 떨어진다.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김준하 사무처장은 “개인회생 제도는 소득이 있는 채무자라면 채무 발생 원인이 투자나 도박이라도 신청이 가능하다”며 “기존 사례 중에는 초단타 매매를 한 채무자가 개인회생을 신청해 채무조정을 받은 경우는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반적으로 생활비나 병원비 등 불가피하게 채무가 늘어난 것과 달리 투기성 또는 사행성으로 늘어난 채무인 만큼 변제해야하는 부담(변제율)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변제기간을 연장해주기도 하지만 변제율은 90% 이상이라는 것. 일각에서는 개인회생 기간이 3년으로 단축된 만큼, 기존처럼  변제율을 법원이 강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종합적으로 보면, 노동력 있는 20~30대 가상화폐 투자자는 파산절차로 채무를 탕감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이들의 채무가 2000만~3000만원 정도로 비교적 적은 채무 규모라면 파산절차보다는 개인워크아웃이나 개인회생제도가 적절하다. 그러나 어느 경우나 채무가 5억원이 넘는다면 개인파산절차를 밟아야 한다.

김준하 사무처장은 “가상화폐 투자 채무자가 급여명세서 등으로 소득을 확실히 밝힐 수 있는 경우는 개인회생 신청이 유리하고 단기 아르바이트 등 소득은 있지만, 증명이 어렵다면 개인워크아웃 절차가 유리하다”고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