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브 코끼리-일월행복가족도, 162×130㎝ mixed media, 2017

 

“머나먼 곳, 저녁과 아침과 열두 번의 바람이 지나간 하늘을 넘어 나를 만들기 위한 생명의 원형질이 이곳으로 날아오고, 여기에 내가 있네. 이제, 숨결이 한 번 스치는 동안 나 기다리니 아직 산산이 흩어지지 않은 지금 내 손을 얼른 잡고 말해주오. 당신 마음에 품고 있는 것들을.”<어슬러 K. 르 귄(Ursula K. Le Guin)著 ‘바람의 열두 방향’에 실린 題詞, 알프레드 에드워드 하우스먼(Alfred Edward Housman)시집 ‘슈롭서의 젊은이’ 中, 최용준 옮김, 시공사 刊>

단란한 코끼리가족 모습이다. 앞줄에 천진한 아기코끼리가 있고 누이와 엄마, 아빠가 마치 기념촬영을 위한 포즈를 취한 듯하다. 싱그럽게 출렁이는 물결, 대지의 푸르른 산, 청명한 하늘은 자연과 함께 일치된 화목한 가정을 단란한 정경으로 부각시킨다.

해와 달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서로에게 아름답게 비춰주며 힘이 되어주는 앙상블을 연출한다. 그런가하면 둥근달 위 코끼리들이 평화로운 전원의 풍경으로 인도한다. 광활한 뭍을 이동하며 살아가는 집단생활 속에 비춰진 순수한 눈동자가 달빛아래 영롱하다.

“보듬어 가며 죽어가는 동무의 앙상한 모습을 보고 슬퍼하며 울고 있는 동료애의 숭고한 심성에 감동한 적이 있다. 그러한 순수성이 인간들에게 사라질까 문득 두려웠다. 태초의 그 순백의 마음으로 돌아가고픈 열망을 표현하고자 했다.”

 

▲ 러브 코끼리-태초, 92×73㎝, 2017

 

◇자연의 근원, 생명 중심으로 돌아가야

‘러브 코끼리’연작초기작품은 동화적 이상향을 향한 꿈과 사랑 그리고 평화의 판타지를 그려 나갔다. 최근엔 자연의 근원과 생명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유의 확장을 볼 수 있다. 동물이 사라지면 인간도 존재할 수 없다는 인식이 그 바탕으로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통해 서로 배려하는 모습과 감정을 표현하는 풍경이 화폭에 충만하다.

속도와 경쟁의 현대사회에서 각자 다른 생각과 목표를 향해 달리지만 미워도 슬퍼도 가족은 함께 살아가길 바라고 그 울타리를 지키면서 생각들을 한 마음으로 모아야하지 않겠는가라는 귀감을 선사한다. 인간본연의 심성과 우주의 신비로움이 스민 화폭은 의도하지 못하는 삶 속의 풍랑과 맞닥트려도 가족의 단합된 모습으로 헤쳐 나가는 사랑의 힘을 드러낸다.

 

▲ (왼쪽)치유의 빛, 116×89㎝, 2017 (오른쪽)73×60㎝, 2018

 

그런 까닭에 동물과 인간의 공존이야말로 인류가 지향해야할 가치라고 외치는 ‘러브 코끼리’작품세계는 잔잔하면서도 큰 울림을 건넨다. 화면의 자연스러운 질감처리를 내기위해 톱밥이나 샌드(sand), 계란껍질을 얇게 부셔 물감을 입히는 등 물성의 다양성을 운용한다. 투박한 느낌의 다소 거친 자연스러운 마티에르를 통해 코끼리 모습처럼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는 발원과 그 안에서 새로운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은경(LEE EUN KYUNG)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보고 싶은 것만을 보며 판단하고 경계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문에서 ‘러브 코끼리’시리즈를 시작했다. 익숙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우리가 어떻게 보는지 스스로 살펴야 한다는 생각이다.

왜곡하지 않고 마음을 다해 순수하게 바라보면 심리적 안정감을 되찾고 마음의 치유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빛으로 찬란하게 발현하여 서로에게 사랑의 힘으로 되돌아 올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