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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요즘 우리 사회에서 5060대는 천덕꾸러기 신세다. 기업 내부에서는 나이가 많아 해고되는 1순위이면서 재취업 가능성은 거의 없어 0순위에 가깝다. 정부는 기업에 일자리를 만들라고 압박하지만 이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말이 실감난다.

기업 인사담당자에게 5060대는 딜레마다. 5060대는 젊은 층의 승진을 위해 자리를 내보내야 하는 구조조정 대상 1순위자다. 젊고 유능한 직원의 승진, 인사를 통한 조직의 활력을 높이려면 이들에 비해 능력이 뒤처진 50대가 나가야만 하지만 자식들의 교육과 혼사 등으로 자금수요가 가장 많은 이들을 쉽게 구조조정 명단에 올리지 못한다. 중소기업 대표들은 “일할 사람이 넘치는데 왜 50대를 고용하느냐”며 대놓고 싫어한다.

한국 경제 성장기에 견인차 역할을 한 이들이 어쩌다 이런 신세로 전락했을까.

이유는 많다. 우선 수급 불일치가 꼽힌다. 고령자를 원하는 일자리보다 일자리를 찾는 고령자가 차고 넘친다. 일찍 구조조정을 당해 재취업 시장에 나온 40대 후반의 대규모 유휴 인력도 있다. 흔히 베이비붐 세대라는 53~61세(1955~1963년생)는 약 708만명인데 40대 인구는 839만명이나 된다. 이들과도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그럼에도 재취업해 인생 이모작에 성공한 이가 있는 것을 보면 반드시 인력 수급불일치만이 5060세대가 설 자리를 잃는 이유는 아니다.

‘잘나간 세월’ 취업 걸림돌 된다

기업이 고령자 채용을 기피하는 이유 중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고령 근로자의 ‘마음가짐’이다.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한 직장에서 오랜 기간 근무해 관리직급까지 올라간 고령 근로자들은 퇴직 후에도 ‘관리자의 마음가짐’을 갖고 있게 마련이다. 시쳇말로 ‘물’을 빼지 않아 고개가 뻣뻣하다. 이런 자세로는 재취업해 일반 직원으로 일하기가 힘들다. 다른 연령대의 직원들과의 소통도 어렵다는 게 기업 인사채용 담당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 인사담당 관계자는 <이코노믹리뷰>에 “과거의 업무 방식이나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해 현장 관리자의 업무 지시를 따르지 않는 고령 근로자들이 있다”면서 “이전에 ‘대접받던’ 것에 익숙해져 있는 고령 근로자들이 고객들을 대하는 태도가 친절하지 못해 발생하는 갈등, 건강상의 이유로 근태가 좋지 못한 점들은 여러 가지 문제를 발생시킬 때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인천에서 물류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정현규(40) 대표는 “최근 대기업 물류회사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고 퇴직한 시니어 근로자를 경력 사원으로 채용했다”면서 “나이 어린 대표이사의 업무 지시를 달가워하지 않거나 젊은 사원들과 소통을 단절하면서 문제가 발생했고, 결국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사를 그만뒀다”고 전했다. 정 대표는 “이런 마음가짐을 유지한다면 이 다음 어느 직장에서도 일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에서 직업소개소를 운영하고 있는 노지영(60) 씨는 “대기업이나 공기업에서 간부급으로 일하다 퇴직한 고령 근로자들은 구직할 때 요구하는 조건이 많은 편”이라면서 “그런 사람들은 다음 직장에서 오래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시대가 요구하는 역량 부족

5060세대의 재취업의 가장 큰 걸림돌은 고령자들의 역량 부족이다. 4차 산업혁명이 번지고 있는 이 시대의 부적응자로 전락한 것이 첫 번째 이유다. 글로벌 헤드헌터 업체인 스태튼체이스코리아의 강태영 지사장은 “은행과 조선, 건설업 등의 분야에서 구조조정으로 5060대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들은 모바일 기반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유연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은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연구결과도 같은 진단을 내린다. 이 연구원이 전국 2002개 사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을 벌여 2015년 발표한 <고령자 노동 생산성 기초연구>는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제시한다. 이에 따르면, 고령자 채용 경험이 있는 기업들이 더 이상 고령자를 고용하지 않는 이유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기록한 항목은 고령자 적합 직무 부족(51.0%)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외의 고령근로자 채용 기피 사유로는 높은 산재위험 등 고령근로자 관리의 어려움(45.1%), 고령근로자들의 역량·자질 부족(37.4%), 간접비용 증가(30.0%) 등이 있었다.

요약하자면 고령자가 할 만한 일(직무)이 없다는 것과 고령자의 역량과 자질 부족 두 가지가 고령자의 재취업을 막고 있는 것이다. 산재위험 등 관리의 어려움도 따지고 본다면 고령자의 역량 부족에 그 뿌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지은정 박사는 “50~60대 고령 근로자들의 업무 역량이 청년 근로자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기업들은 첨단화된 업무 시스템 습득 속도에서 젊은 근로자들과 나타나는 차이나 안전사고에 따른 산재 비용이 젊은 근로자들보다 많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 등 주요 비용과 연관된 문제들을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무 태도, 마음가짐 달리 해야

사회 초년생이나 청년 근로자들이 갖는 업무에 대한 ‘열의(熱意)’는 새로운 일터의 업무를 가능하면 빨리 습득하고 전문 인력이 되고자 하는 바람에서 시작한다. 이는 인생 2막을 시작하려는 고령 근로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새로운 직업이 인생의 후반기를 설계하는 중요한 기반인 만큼 업무를 최선을 다해 일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과 겸손한 태도를 갖추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관계자는 “고령 근로자에 대한 인식 개선으로 많은 기업들은 특정 직군에서 오랜 기간 동안 쌓은 고령 근로자들의 ‘경험’을 큰 장점으로 보고 있다”면서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들을 보면 고령 근로자들의 취업에는 업무 역량보다 마음가짐이나 태도가 더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생존 돌파구는 없을까? 있다. 다만 대단히 좁다. 강태영 지사장은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필수”라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학위나 자격증을 취득하고 대비할 것”을 권했다. 30대 대기업의 한 임원은 “사무직군 고령자를 위한 자리나 직무는 없다”고 단언하고 “자기가 몸담은 분야가 아닌 희소성 있는 분야로 진출하거나 전문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기업은 고령 근로자들을 무조건 받아들일 수 있는 복지단체가 아니다.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사람만 채용한다. 다시 출발선에 선다는 단단한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재취업할 생각은 단념하는 게 좋다. 시대가 요구하는 역량 구축, 변화에 적응하려는 강철 같은 의지와 실천, 겸손한 마음 등 삼박자를 갖췄을 때 문을 두드려야 한다. 물론 이런 것들도 필요 조건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