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어오르다, 75×72×12㎝ 도자, 적동, 2017

“나는 아직 우리 항아리의 결점을 보지 못했다. 둥글다 해서 다 같지가 않다. 모두가 흰 빛깔이다. 그 흰 빛깔이 모두가 다르다.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그렇게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 고요하기만 한 우리 항아리엔 움직임이 있고 속력이 있다. 싸늘한 사기지만 그 살결에는 다사로운 온도가 있다. 실로 조형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과장이 아니라 나로선 미에 대한 개안(開眼)은 우리 항아리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한다. 둥근 항아리, 품에 넘치는 희고 둥근 항아리는 아직도 조형의 전위에 서 있지 않을까.”<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지음, (재)환기재단 刊>

교교히 흐르는 밤하늘의 달을 바라보노라. 달이 차고 기우는 것에 비움과 채움의 깨달음을 얻는다. 마침내 고매한 조각들이 모여 아름다운 선을 품는다. 비대칭적 자유스러움 그 편안함과 완벽을 추구해가는 정제(精製)야말로 백자 달항아리의 고상한 풍취의 진수가 아닐까. 선(線)이 살아 있다는 건 생명이 흐르고 있다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300년은 족히 넘은 세월이리. 한국인의 자부심 깃든 멋스런 기품의 자태로 우주기운을 품속에 보듬어 온기를 담고 있는 것이니. 바라보는 내겐 감격의 떨림이다. 하여 마침내 큰 울림으로 흘러흘러 저 평등의 달빛이 달항아리로 모아져 쏟아져 들어오는, 아아 숨의 미학이여!

▲ 소통, 32×55×6㎝ 도자, 적동, 자개, 2014

◇비정형의 선, 가슴가득 메우는 공명

아티스트 마효숙(ARTIST MA HYO SOOK)씨는 이렇게 전했다. “우주의 작은 점 하나로 태어난 나는 늘 자연에서 삶의 고단함과 상처를 치유 받는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밤하늘의 둥근 달과 별을 바라본다. 작품에 사용하고 있는 재료 또한 자연에서 얻어지는 흙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를 사는 우리들. 서로에게 여유의 눈과 마음으로 다가가고는 있는지 문득 돌아본다. 작품의 달과 꽃과 새의 모습처럼 서로를 환하게 비추어 줄 수 있는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하나의 가지 수평으로 뻗어 나아간다. 마음의 아름다운 선이 백자 달항아리가 품은 비움의 넉넉함과 교우하듯 우리 삶은 매순간이 처음인 것을. 그것은 필연 그러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 변함없이 한 길을 걸어가는 일은 참으로 고되고 힘든 고독의 길.

꿋꿋하게 묵묵히 한 결 같이 살아가는 한국인의 기질처럼 오로지 자식에 헌신하는 어머니 마음 또한 어찌 이와 다를 것인가. 가슴 속 꿈틀거리는 삶의 열정을 더욱 힘차게 피어오르게 했던 빈 마음의 광대한 자리. 기다림에서 피어나는 희망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을 일깨워 준 어느 날 달빛 아래서 내 가슴으로 훅 들어와 안겼던 저저 달항아리!

▲ 한결같이, 75×40×6㎝ 도자, 적동, 2017

마효숙 작가는 수화 김환기(樹話 金煥基)의 오마주 작업을 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말했다. “군더더기 없는 비정형의 선, 불완전해 보이지만 가슴을 가득 메우는 울림이 있는 완벽한 아름다움의 선. 특히 달항아리 선들은 단순해 보이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은 청아한 선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의 작품을 대할 때마다 텅 빈 가슴이 벅찬 감동으로 가득하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몇 해 전, 문득 그가 그린 그림 속 항아리를 꺼내어 진짜 도자기로 만들고 싶어졌다. 마침 내가 달항아리 부조작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