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9일에도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벌써 충북 증평 모녀의 추모글과 복지 사각지대를 성토하는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추모글을 올린 한 청원인은 “한 달에 5만원인 임대료조차 수개월 체납된 상태였다”며 “송파세모녀 동반자살 사건 이후 법령도 통과되고 각종 정책도 만발했는데 이 같은 일이 벌어져 안타깝고 분노한다”고 글을 게시했다.

괴산경찰서는 8일 충북 증평 소재 아파트에서 40대 여자와 4세의 딸이 침대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경찰은 이들이 심마니를 하던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생활고에 따른 자살로 추정했다.

이들은 약 6만원 상당의 월세와 수도비, 전기요금을 상당 기간 체납했다. 모녀가 사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가 계속 쌓이는 우편물과 연락 두절을 의심해 경찰에 신고하면서 모녀의 죽음은 세상에 알려졌다.

시신 상태를 감안했을 때 이들은 이미 두 달 전에 사망했을 것으로 경찰은 밝혔다.

이들 모녀에겐 먼저 사망한 남편과 같이 갚아나갔던 수천만의 채무가 있는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유서에는 "혼자 살기가 너무 힘들다. 딸을 먼저 데려간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채무내용 무엇? 조정 가능했던 채무들

그들의 삶을 옥죄던 것은 ‘채무’였다. 남편의 사망도 채무 때문이다. 그들의 채무는 과연 죽음을 피할 수 없을 만큼 무시무시한 것이었을까.

알려진 증평 모녀의 채무는 먼저 자살한 남편이 사업상 진 빚과 생활비로 쓴 카드대금이었다. 월세 13만원짜리 임대아파트 보증금 1억2500만원이 이들의 재산이었다.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김준하 사무처장은 “증평 모녀의 경우 남편의 채무문제를 먼저 채무 조정했다면 자살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채무상담과 채권소각 운동을 하는 시민단체 ‘주빌리은행’의 한 상담사는 “두 모녀의 채무 문제만 놓고 보면 상속채무와 카드대금을 모두 포함해 조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간단하게 채무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증평 모녀의 경우 아파트 보증금 1억2500만원 재산 때문에 개인회생과 파산제도 활용은 쉽지 않다. 

개인회생은 채무를 나눠서 갚는 동안 채무자가 가진 재산 이상을 갚아야 하고 이 경우 단축된 3년의 기간은 적용되지 않는다. 또 파산제도는 가진 재산을 모두 채권자에게 나눠줘야해 모녀의 경우 유일한 생활터전을 잃을 염려가 있었다.

이 상담사는 “모녀의 보증금 규모를 감안하면 개인회생 신청하는 경우 매달 200만원이상을 갚아야 하는데, 이같은 채무조정은 모녀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보증금이 일부 대출을 받아 형성된 것이라면 대출금을 공제한 부분을 재산 가치로 삼아 월 변제금을 다시 산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때는 월 변제금이 크게 줄어들 수도 있다.

재산 규모와 채권 금액, 채권금융회사의 내용을 고려해 보증금을 단계적으로 처리하고 채권자와 협의를 통해 채무상환에 나설 수도 있다. 조정이 되지 않으면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아 워크아웃을 신청해볼 만도 했다. 

사전채무조정과 재무 설계를 하는 사회공헌기업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 서경준 본부장은 증평 모녀가 ▲채권추심 대응요령과 법적인 채무자 권리 보호 방법을 익히고 ▲지출 절감 방법을 깨닫고 ▲소득 활동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위축된 심리정서를 회복할 수 있도록 코칭함으로써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 수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서 본부장은 특히 “남편과 사별한 후에 삶의 용기를 잃은 것이 자살의 주요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며 "채무에 직면한 사람에게 혼자서 살아갈 방법을 구체적으로 찾아주고 용기를 심어주는 코칭도 입체적인 채무조정의 일부분"이라고 강조했다.

"금융복지, 약자가 도와달라고 할때까지 기다려선 안된다"

김준하 처장은 “배우자가 먼저 사망했을 때 누군가가 채무조정제도나 긴급지원제도를 알려줬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마음 아파했다.

긴급복지지원제도는 갑작스러운 위기상황으로 생계유지가 곤란한 저소득층에게 생계 · 의료 · 주거지원 등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신속하게 지원해 위기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이같이 채무조정 방법과 긴급 복지지원제도가 있지만, 이를 알려줄 시스템이 없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채무조정과 저소득층의 육아에 대한 걱정은 여전히 금융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셈이다. 

서울시는 현재 일명 ‘찾동(찾아가는 동주민센터)서비스’로 다가가는 복지서비스를 해오고 있다. `찾동`은 서울시가 2015년 7월부터 ‘평생 찾아가는 복지실현’을 목표로 동마다 배치된 우리동네주무관, 복지 플래너, 방문 간호사 등이 빈곤위기 가정 등을 찾아가는 서비스다. 관련 복지전문가가 생활고의 원인이 채무에 있다면 금융복지상담센터의 상담사와 연계해 채무조정에 나서기도 한다.

좋은 시스템이지만 현실에서 적용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인력과 재정이 부족한 탓이다.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소속 한 상담사는 “센터는 현재 회생법원과 기관의 출장 상담으로 채무조정 실적은 해마다 늘고 있지만 찾동 서비스와 한몸처럼 일하려면 인력이 지금보다 훨씬 많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서울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서울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자체는 이런 찾아가는 서비스를 꿈도 못꾸고 있다. 증평을 포함한 충북 지역은 현재 금융복지상담센터조차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