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KDB산업은행이 STX 조선의 자구계획안을 수용하면서 STX조선의 구조조정이 중대고비를 넘겼다. 법정관리는 모면했지만,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무력한 협상력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번 STX조선 사태는 정부의 엄격한 구조조정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일각에서는 자구계획안의 제출시한을 하루 넘긴 것을 두고 구조조정의 원칙을 깼다는 비판도 있지만, 법정관리 엄포와 함께 고강도 자구 계획안을 관철시켰다는 점에서 채권단의 단호함이 강하게 드러난 게 사실이다.

정부와 산업은행의 이같은 단호함은 다른 조선 3사는 물론 현재 몸살을 앓고 있는 한국GM에게도 강력한 신호를 주고 있다는 평가다.

산은은 한국GM에 대해 이달말 실사가 끝나는 대로 다른 구조조정 기업들과 동일한 잣대를 적용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STX조선의 노조원들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다. STX조선 노조는 5년 동안 기본급 5%를 삭감하고, 상여금도 600%에서 300%로 낮춰 받는데 마지못해 합의했다. 이 기간 동안 매년 6개월씩 무급휴직에 대해서도 동의했다. 따라서 이들은 거의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고 생활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불투명성, 그 불편한 진실에 대해 

조선업종의 노동계는 국민의 혈세낭비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을 이해하면서도 구조조정 방식에 대해서는 쉽게 수긍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구조조정의 방향을 정한 컨설팅 보고서에 대한 불만이 컸다. 정부와 채권단이 STX조선에 요구한 `고정비 40% 절감`안은 산업자원부가 의뢰한 삼정회계법인의 컨설팅 보고서에 기초한 것이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노동연구원의 안재원 연구원장은 “노동자의 운명을 결정한 보고서였는데도, 보고서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의견과 주장이 투명하게 반영되지 않았다”며 “실사하는 과정에서 형식적 의견수렴만이 있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말 정부는 신구조조정 혁신정책을 통해 구조조정에 앞서 산업적 요소를 반영하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이 혁신정책은 특정 기업이 유동성 위기나 적자가 가속화하더라도 업황의 호조가 예상되거나 해당 산업의 특수성을 구조조정에 반영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안재원 연구원장은 “수출입은행이나 산업연구원의 지표에 따르면 조선 산업의 물동량은 늘어나는 상황이고, 이에 대한 선박 건조 준비가 필요함에도 정부의 STX조선 구조조정안은 역시 금호타이어와 같이 재무적 구조조정를 관철시키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정치마저 빼앗아간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대해

STX조선 노조 관계자는 “이번 협상 과정에서 지역정치인들이 나서 전방위로 인원 감축 중심의 구조조정에 대해 반대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면서 “결과적으로 고용보장 이외에 성과는 없었다”고 말했다.

노조의 정치적 접근은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금호타이어의 구조조정과정에서 “부실기업의 구조조정 문제를 정치논리로 풀지 않겠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기업 구조조정의 정-경분리를 선언한 것.

김 부총리의 이같은 발언은 구조조정에 정치가 개입되면 부실기업에 혈세를 쏟아붓는 일이 반복된다는 반성에 나왔다.

정부의 이러한 방침은 공정한 구조조정을 표방하는 것이지만, 일각에서는 노동자가 정치적 수단을 이용해 구조조정의 불투명성을 주장하거나 기업파탄의 책임소재를 규명하는 일마저 차단하려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내 한 산업정책 연구원은 “정치라는 것이 `경제적 배분을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인데 구조조정에서 노동자의 정치적 해결을 단절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노동자들에게 그나마 협상 수단을 차단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구조조정의 정경분리 원칙은 결과적으로 채권자에게 유리한 결과만을 안겨주는 원칙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 정부의 높은 지지도로 이 원칙에 반기를 들 수 없다는 것도 현 노동계의 분위기다.

금속노조의 김태정 조선담당 정책국장은 “STX 조선의 경우 그동안 총 4조5000억원의 돈이 들어갔지만 그 돈이 어떻게 쓰여졌는지에 대해 구조조정과정에서 규명할 그 어떤 힘도 노동자들은 갖지 못했다”며 “한국의 노동자들은 구조조정과정에서 기업 부실의 책임이 있는 채권단과 경영진에게 ‘헤어컷(부채 탕감)’을 요구할 힘조차 없다”고 토로했다.  문재인 정부아래서 현실은 여전히 채권자 우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