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화려해 보이는 연예인도 일반인처럼 불가피한 이유로 빚을 지고 채무조정을 한다. 최근 한때 명성을 크게 얻었던 연예인들의 파산과 회생 소식에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탤런트 김혜선과 과거 소방차로 인기를 끌었던 멤버 이상원, 작곡가 신사동 호랭이와 영화배우 신은경이 그 주인공이다. 김혜선과 이상원은 파산절차를, 신사동 호랭이와 신은경은 회생절차를 밟고 있다.

많은 사람은 이들이 빚을 지게 된 사연과 규모에 관심을 가진다. 이들의 과거 명성과 현재 연예활동을 감안하면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는지 측은한 눈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반면 이들이 밟았던 파산과 회생절차도 주목을 받았다. 유명 연예인들이 빚을 진 것이 커다란 뉴스였지만 결국 이들은 파산과 회생절차를 통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이 제도를 통해 탕감받거나 감액조치를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절차를 밟는 모든 사람이 빚을 조정받고 재기하지는 못한다. 파산과 회생제도가 무조건 관대하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파산신청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람들

착오로 입고된 삼성증권 자사주를 매도한 삼성증권의 직원들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앞서 삼성증권은 직원들에게 자사주 1주당 1000원을 배당해야 할 것을 주식으로 1000주를 배당했다. 일부 직원들은 이 주식을 임의로 매매해 주가가 하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일부 투자자들은 쏟아지는 매물에 놀라 주식을 팔기도 했다.

이들이 팔아버린 삼성증권 자사주는 501만 2000주. 전날 종가 기준으로 매도했을 때 삼성증권 직원이 매도한 물량은 2000억원에 달한다. 삼성증권은 이미 시장에 풀린 주식을 다시 사들이거나 빌려서 거래하는 방식(대차거래)으로 전량 확보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이번 일로 향후 번질 법적 분쟁은 크게 ▲착오로 전산 입력한 직원의 책임 ▲주식을 임의로 팔아치운 직원의 책임 ▲증권사의 투자자들에 대한 책임과 관련될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증권은 특히 회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주식을 임의로 팔아치운 직원들에 대해 회사가 입을 손해를 구상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직원의 경우 이들이 물어야 할 손해액은 개인당 수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회사에서 벌어진 일로 억울하다며, 이들이 파산신청이라도 한다면 법원으로부터 구제받을 수 있을까.

김·박법률사무소의 윤준석 변호사는 “파산신청은 주로 채무를 탕감받는 ‘면책’을 목적으로 법원에 제기하는 제도”라면서도 “법원이 파산신청한 채무자의 모든 빚을 면책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채무자회생법은 채무자가 진 빚 중에 탕감을 해서는 안 되는 빚을 열거하고 있다”며 “이를 일반적으로 ‘비면책채권’으로 분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채무자가 갖고 있는 빚 중에 은행 대출 빚과, 누군가를 때려 치료비 등을 물어줘야 할 빚 등은 법에서는 구분을 한다. 때문에 파산절차를 밟더라도 잘못한 행동으로 인해 발생한 치료비는 비면책채권이 된다.

이 채무자가 파산절차를 밟는 경우 은행 빚은 탕감을 받을 수 있지만 누군가를 폭행해서 물어줘야 할 손해배상 책임과 같은 빚은 비면책채권으로 탕감을 받지 못한다.

채무자회생법에서 정한 주요 비면책채권의 종류는 이와 같다. ▲ 조세 등 세금 채무 ▲ 채무자가 고의로 피해를 줘 불법행위로 물어줘야 할 빚 ▲채무자가 중대한 과실로 타인의 생명 또는 신체를 침해해서 물어줘야 할 빚 ▲채무자가 자신이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근로자에게 일을 시키고 줘야 할 임금·퇴직금 및 재해보상금 ▲채무자가 양육자 또는 부양의무자로서 부담해야 하는 비용 등이다. 이런 빚은 탕감받지 못한다.

파산법조계는 삼성증권의 사태에서 주식을 임의로 팔아버린 직원들의 책임을 ‘고의 불법행위 채무’로 본다. 이들이 ‘고의’를 가지고 주식을 팔았는지 여부는 형사절차에서 규명될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는 이들의 행위가 횡령죄를 구성하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법무법인 대율의 안창현 대표변호사는 “해당 증권사 직원들은 당일 공시나 회사 긴급 회람이 있은 후 주식을 팔아 고의성이 짙다”며 “이 같은 사실을 몰랐더라도 출처 불명의 주식이 입고됐다면 그 경위를 파악해봐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 않고 매도한 것은 횡령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해도 무방해 보인다”고 말했다.

미필적 고의는 군중을 향해 총을 쏘는 것과 같이 특정 목적이 아니더라도 ‘범죄가 일어나도 어쩔 수 없다’라는 속마음을 지녔음을 의미한다.

안 변호사는 “일부 직원들은 아침에 출근해 기계적인 업무를 하다 착오 입고를 인식하지 못하고 매도 처리를 했을 수도 있다”며 “이런 경우 횡령의 고의는 인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증권사 직원들의 빚이 이번 일로 생긴 손해배상 채무라면 이들은 파산신청을 하더라도 빚은 고스란히 남게 돼 파산신청의 실제 효과가 없다.

 

무책임 음주운전자들… 교통사고 때 파산 구제 안 돼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김준하 사무처장은 “채무자회생법이 비면책으로 규정한 채권은 크게 채무자의 잘못된 행동으로 생긴 빚과 채권자에 대해 책임져야 할 빚으로 구별된다”고 설명했다.

고의 불법행위 채무와 중과실 손해배상 채무는 전자에 해당한다. 근로자에게 줘야 할 임금이나 이혼 후 자녀에게 줘야 할 양육비 채무는 후자에 해당된다.

중과실 손해배상 채무에 대해서도 파산제도는 관대하지 않다. 예컨대 만취 상태이거나 마약 등을 복용한 후 운전하다 사람을 사망하게 하거나 반신불수로 만든 경우, 이들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할 채무가 중과실 손해배상 채무다. 이런 경우로 확정된다면 그 채무는 면책되지 않는다.

중과실이 아닌 전방주시 소홀 등으로 사고가 생기거나 운전 미숙으로 사고를 내서 발생한 손해배상 채무는 면책을 받을 수 있다. 중과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채무자의 빚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켜 생긴 것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면 파산신청을 단념해야 한다.

김준하 사무처장은 “이런 상황의 채무자는 파산절차를 밟더라도 결과적으로 아무런 빚 탕감을 받을 수 없다”며 “법원은 실익 없는 파산신청에 대해 파산 기각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원이 받아들일 수 없는 파산신청이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