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양인정 기자] 영화배우 신은경의 회생신청이 화젯거리다. 남편과의 갈등에서 빚을 지게 된 과정과 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워야 하는 그의 처지에 여론이 동정을 보냈다. 하지만 진실하지 못하다는 비난도 있다. 회생절차는 적어도 배우 신은경에겐 재기의 기회가 될 만하다.

파산과 달리 회생절차는 도박 등 사행성 있는 행위로 생긴 빚도 조정해준다. 일정 기간 동안 빚을 갚겠다고 한 만큼 파산보다는 관대한 조치를 해준다. 파산에 비해 절차상 혜택도 크다.

무엇보다 회생신청은 채권자의 독촉과 강제집행을 막아준다. 신분상 불이익도 적다. 반면 파산절차는 파산선고 결정으로 공무원 자격을 박탈하며 회사의 대표이사를 맡을 수 없도록 한다. 공인중개사 등 각종 자격시험에도 응시할 수 없다.

파산절차 초기에 강제집행을 당할 수 있다. 채권자의 급여 압류 등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기도 한다. 반면 이런 불이익이 회생절차에서는 없다.

그러나 이런 관대한 회생절차를 악용하는 사례는 파산에 비해 훨씬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원그룹 박성철 회장의 회생절차다.

42년의 업력을 자랑하는 신원그룹은 패션 중견기업이다. 회사는 1984년 5000만달러 의류 수출을 하면서 1987년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회사는 위기를 맞았다. 급등하는 금리로 채무상환이 어려워졌다. 회사는 1998년 5월 워크아웃을 신청하고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박 회장은 보유 주식과 부동산을 워크아웃 중인 회사에 무상증여하고 급여를 받아갔다. 이 덕에 박 회장은 5400억원의 채무를 감면받고 4700억원 규모의 출자전환과 신규운영자금 540억원을 지원받았다.

이후 박 회장은 회사에 보증 선 채무를 조정하기 위해 회사 급여를 소득으로 신고해 법원에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그는 회생절차에서 급여 외에 아무런 재산이 없다고 신고, 약 250억원의 개인채무를 탕감받았다.

그러나 검찰이 그의 조세포탈 혐의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차명으로 소유한 300억원대 주식과 부동산이 드러났다.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회사를 다시 지배한 사실도 밝혀졌다.

이 일로 기존의 감면받았던 그의 회생 채무는 모두 부활했다. 법원은 그를 사기회생죄로 4년의 중형을 언도했다.

자료=대법원 사법통계

신정아 사례, 위기모면用 회생절차도 ‘발각’

신정아 사건은 지난 2007년 개인회생제도가 시행된 후 소득의 허위신고로 회생절차가 폐지된 첫 사례로 꼽힌다. 학력위조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개인회생절차다.

개인회생 절차는 소득으로 일정 기간 채무를 상환하는 채무조정제도인데, 일반 채무 5억원 미만의 빚을 가진 채무자가 밟는다는 점에서 5억원 이상 빚을 진 채무자가 밟는 회생절차와는 다르다. 일정 기간 채무를 상환하고 나머지 빚을 탕감받는 점에선 대동소이하다.

신 씨는 박성철 신원 회장처럼 중형의 형사처벌까지 받은 것은 아니더라도, 재산과 소득을 숨긴 잘못으로 개인회생절차가 중단된 경우다.

그는 2005년 약 1억400만원의 빚을 5년 동안 나눠 갚겠다며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당시 신 씨가 법원에 신고한 소득은 성곡미술관에서 받는 월급 240만원이 전부. 법원은 매월 180만원씩 5년간 갚겠다는 그의 변제계획을 인가했다.

그러나 신 씨는 2007년 학력위조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수사과정에서 검찰은 그의 재산이 1억1000만원이라 는 사실과 급여가 240만원 이외에 111만원이 더 있는데도 이를 감추고 있음을 밝혀냈다. 

이 일로 신 씨의 개인회생절차는 중단됐다. 이미 2년간 채무를 변제했지만 모두 무효가 됐다.

당시 재판부는 신 씨에게 회생절차 무효 결정을 내리면서 “신 씨가 개인회생 절차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재산과 장래소득의 원천인 직업에 대해 사실대로 진술하지 않았다”고 적시했다.

검찰은 신 씨를 사기회생죄로 기소했으나 법원은 처벌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신 씨의 혐의에 대해 “채무자가 재산을 적극적으로 숨긴 것이 아니고 단순히 있는 재산을 없다고 신고한 것은 사기회생죄의 재산은닉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박성철 회장과 신정아 전 교수의 사례와 같이 재산의 숨기거나 소득을 거짓 신고해 형사처벌을 받거나 기소되 는 경우는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이 파산법조계의 분석이다.

그러나 개인회생 절차 중 절차가 기각되거나 중단되는 사례가 적지 않은 만큼 법원이 이 부분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회생사건 중 신청 기각된 사건은 9811건이고 변제를 하다가 중단된 사건(폐지)은 9051건에 이른다.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김준하 사무처장은 “박성철 회장과 신정아 전 교수의 사례는 모두 검찰이 별개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회생절차를 악용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라며 “최근 회생법원은 절차 심사방법이 정교해지고 다양한 사례가 축적되면서 채무자가 소득과 재산을 숨기는 것이 어렵게 됐다”고 설명했다.

법원은 심사과정에서 재산은닉과 소득 허위 신고를 적발하면 개인회생절차 폐지뿐 아니라, 사기회생죄로 처벌할 수 있다. 회생 파산제도는 ‘정직’을 전제로 한 제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