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 마흔아홉 살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어떻게 계산하든 오십이다. 나이로서 오십이 싫은 것이 아니다. 그 나이가 퇴직을 생각할 수 있는 첫 번째 나이여서 그런 거다. 이제 나는 840만명(2016년 기준, 50세 이상 인구수)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래 난 86학번, 67년생, 양띠다.

우린 엑스세대 또는 오렌지 세대라고 불렸으며, 민주화를 이루어낸 세대라고도 불렸다. 그래서 삶에 대한 프라이드가 높다. 외고가 처음 생기기 시작했고, 자비 유학을 떠났으며 배낭여행도 시작했다. 모뎀의 지지직 소리가 매력인 PC 통신부터, 버스가 언제 도착하는지도 볼 수 있는 스마트폰까지, 온오프라인을 다 경험해 보았다. 어떻게 보면 기술 혁신적 문화의 시작을 맞이한 첫 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풍요로웠고, 다행히도 졸업만 하면 취업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름 전문가도 또 전문직도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IMF와 글로벌 위기를 겪으면서 잃어버렸던 예전의 그 풍요로움을 되찾기 위해 우리는 아이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밀어 넣었고, 부동산 투자를 일상으로 만들었으며, 증권을 투자가 아닌 도박 게임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 우리가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 서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퇴직. 직에서 물러난다는 이 말은 참 요상스럽다. 왠지 고개가 숙여지고, 어깨가 처지면서 우울한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이다. 민방위 소집이 끝났을 때도 좀 섭섭하던데, 이건 좀 더 심하게 우울함을 부추긴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에겐 2~3년이라는 시간이 더 남아있다. 그게 다행이다. 근데 이게 정말 다행일까? 시간은 어차피 흘러간다. 그때까지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가 갑자기 퇴직을 맞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때가 오면 이미 늦은 거다. 베이비부머 선배들처럼 아무 준비 없이 마지막 날까지 회사에 앉아 있다가 퇴직하고 갑자기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어 힘들게 살고 싶지 않다. 그 선배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또 어떻게 끝나가는지 옆에서 많이 지켜 봐왔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내 자리를 몇 년 더 연장하는 대가로 너무 많은 희생이 따른다. 우리 선배들은 정말 퇴직이 닥쳐올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일까? 아이들 졸업시키고 취직시킬 때까지만 하자고 다짐하면서 하루하루 보내다 보니 결국 자신들에 대한 준비는 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그날을 맞이하지는 않으리라.

그런데 가만히 있지 않으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걸 알려 줄 과외 선생도 없고 선배들이 먼저 간 프랜차이즈라는 길은 정말 아닌 것 같고, 정말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나만 그럴까? 아닐 거다. 우린 아직 생각만 있고 답을 찾지 못했다. 핑계지만 우리는 지금도 살아가기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뭔가 시작해야 한다. 우리 진짜 이제 오십이기 때문이다.

출발. 새로운 시작을 뜻한다. 하지만 출발을 하려면 출발하기 바로 전까지 있었던 일들을 종결지어야 한다. 그래서 출발을 ‘과거를 끊어낸 자리’라고 이외수 선생은 이야기했다. 여러분은 출발할, 과거 아니 현재를 끊어낼, 자신이 있는가? 사실 우리는 여러 번의 출발을 했다. 바로 졸업이라는 절차를 통해서다. 졸업은 업을 끝냈다는 뜻이지만 사실 업보다는 하나의 과정을 끝냈다는 말이 더 맞다. 그래서 교육에 관련된 일에 그 용어를 많이 쓴다.

졸업과 출발. 졸업을 해야 출발이 있다. 그럼 우리는 이제 어디에서 졸업해야 하는가. 바로 지금 내 직장에서 졸업해야 한다. 한 직장을 수십년 다녔으면 이제 그곳에서 배울 건 다 배웠다. 그럼 이제 그곳에서 졸업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출발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승진이란 이름으로 포장한다. 하지만 정확히 이야기하면 직장에서의 승진은 졸업이 아니다. 업무 프로세스의 한 단계를 넘어선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 우리는 지금의 업에서 졸업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남은 수십년을 살아갈 수 있는 출발을 할 수 있다. 오늘 그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우리 진짜 이제 오십이다.

2018년부터 7년 후가 되는 2025년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약 20%가 노인(65세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2017 보건복지부 통계연보). 이들은 누구인가. 바로 지금의 나다. 그때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노인 인구 20%의 사회에서의 삶. 이건 새로운 문화다. 다행히도 우린 항상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고, 맞이했고, 이끌어 왔다. 이제 우리는 경쟁이 아니라 공유하고 협동하는 새로운 삶의 가치에 대한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살 길이다. 앞만 보고 노력해서 여기까지 온 것처럼, 우리의 미래도 지금부터 앞만 보고 준비해야 한다. 단 이제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우리의 미래를 공유할 수 있게, 지금부터 같이 모여서 모의해보자. 우리는 뭉치면 뭐든지 해냈다. 민주화도 또 금융위기도 그랬다. 새로운 문화 만들기, 우리가 지금부터 시작하자. 우리는 아직 사회에서 일하고 있는 오십이다.

이제 광장이 아니라 교실에서 모일 때가 되었다.